중소 조선사, 경남서 대거 몰락…정부 ‘나몰라라’

경남도의회, 정부 중소조선소 구조조정에 우려

국내 최대 조선사들이 위기의 늪에 빠지면서 사실상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가운데, 지역의 오랜 버팀목으로 자리 잡았던 중소조선사들은 잇따라 도산하고 있다. 한순간에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과 버팀목을 잃은 지역 소상공인이 당장 직격탄을 맞았다. 지역의 버팀목인 회사가 아예 없어지면서 위기를 극복할 기회조차 잃은 지역경제는, 스스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해야 하는 과제에 놓였다. 정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조선업 위기…수주잔량 세계 순위 바뀌어

조선산업은 전자 산업, 자동차 산업과 3대 주력 수출산업으로 꼽히지만 최근 위기를 맞고 있다. 국내 조선업은 2000년대 후반에 세계금융위기를 맞으면서 줄곧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3대 조선사는 물론이고 중소조선소도 위기를 피하지 못했다.

위기는 세계 수주잔량 기준 순위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났다. 2008년만 해도 국내 조선사는 세계 10위권 안에 8곳이 포함됐다. 하지만 대형 조선사를 비롯한 국내 조선업이 위기를 맞고 중국과 일본 조선사가 점차 성장하면서, 성동조선해양과 에스피피(spp)조선 등 세계 10위권에 올랐던 국내 중소 조선사 3곳이 모두 순위 밖으로 밀려났다.

중소조선사가 모두 밀려나자 굳건하던 대형 조선사 순위도 바뀌었다. 지난해 11월말, 중국 조선소인 상하이 와이가오차오가 한국 대형 조선사를 밀어내고 세계 5위를 차지한 것이다. 현대중공업 등 국내 3대 조선사와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 한국 조선사 5곳은 최근 10년 동안 1~5위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대미포조선이 6위로 밀려나면서 중국 조선사에게 5위 자리를 내줬다. 7~10위는 모두 중국 조선사(2곳)와 일본 조선사(2곳)다.

조선업 위기, 중소조선사 직격탄…27곳->6곳 줄어

국내 조선업종 위기는 중소조선소가 먼저 직격탄을 맞은 모양새다. 국내 중소조선소는 27곳이던 게 최근 6곳으로 수가 줄어드는 등, 줄도산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조선업종에서 회생 불가능한 ‘한계기업’은 지난해 18.2%로 최근 5년 동안 3배 늘어났다.

경남 통영시는 한때 조선소의 빛으로 밤이 어둡지 않았지만 요즘은 밤이 어둡기만 하다. 통영 미륵도는 한때 국내 중형조선소로 들어찼지만 세계 금융위기 때부터 성동조선해양과 21세기조선, 삼호조선, 신아에스비(sb) 등 주요 조선소가 잇따라 경영위기를 맞았고 사실상 도산한 곳이 많다.

규모가 가장 큰 성동조선해양은 2010년부터 채권단이 관리하다가 삼성중공업에 위탁 운영되는 모양이고, 21세기조선은 2013년 파산한 뒤 아직 공장은 남아있지만 수년 동안 운용되지 않고 있다. 삼호조선은 한국야나세이 매입해 ‘한국야나세통영조선소’로 이름을 바꿨다. 한국야나세통영은 선수금 발급 보증을 정부가 거부한 가운데 자력으로 3500톤(t)급 석유화학 제품 운반선을 한 척 건조하면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70여 년 통영 신아에스비, 결국 파산

마지막으로 남은 신아에스비(sb)는 2000년대 초 선박 수주잔량 기준으로 세계 16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결국 지난 11월 23일 창원지방법원에 파산 신청서를 제출했고 이어서 27일 파산선고를 받았다. 신아에스비는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경영난을 겪다가 2014년 4월부터 법정관리를 받던 중, 4차례 매각을 시도했지만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한때 4000여 명에 달하는 노동자의 일터였던 신아에스비에는,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 중인 23명의 노동자만 남았다.

신아에스비의 파산은 지역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신아에스비는 1946년 설립돼 1980년 시장 매물로 나오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통영유지와 임직원, 노동자가 각각 각출한 자금으로 명맥을 이었다. 종업원 지주회사로 되살아난 신아에스비는 1993년 5000만 달러 수출탑을 쌓는 데 이어 2009년 6억 달러 수출탑을 쌓는 쾌거를 이뤄냈다. 하지만 이국철 전 회장 등 전임 경영진의 잇따른 부패에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70년 역사의 회사가 무너지고 만 것이다.

인근에 있는 경남 사천시 조선소 사정도 마찬가지다. 에스피피(SPP)조선은 지난 2010년 1조 원이 넘는 손실을 입은 뒤 채권단 관리 아래 운영되었다. 에스피피조선은 인력을 절반 가량 줄이고 급여를 삭감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올해 상반기 341억 원 영엽이익을 내고 유조선 8척을 신규 수주 했지만 끝내 매각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은행 등 채권단이 선수금 발급 보증을 거부하면서 신규 수주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중소조선소, 정부 외면 속 어두컴컴

이에 경남도의회와 사천시의회까지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상황이다. 사천시 총인구가 12만여 명인데, 에스피피조선과 관련사의 노동자, 그 가족이 1만 3000여 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경남도의회와 사천시의회는 지난 12월 각각 대정부 건의안을 채택하고, 정부의 중소 조선소에 대한 구조조정에 우려를 나타냈다.

지역 경제가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고, 오히려 재기 발판을 위한 선수금 발급 보증 등 중소 조선소의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12월 30일 발표한 조선업 구조조정안은 각 회사 자구안을 바탕으로 한 에스티엑스(STX)조선해양 지원, 삼성중공업의 성동조선해양 경영협력, 에스피피조선 매각 등 뿐이다.
덧붙이는 말

윤태우 기자는 울산저널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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