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vs 혐오표현 규제? "한 가지 답은 없다"

'혐오표현 실태와 대책' 토론회 2부
혐오표현 규제, ‘다양한 방식’ 존재… ‘사회적 논의’가 중요

‘혐오표현의 실태와 대책’에 관한 토론회

[편집자 주] 지난 한 해를 정리하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로 혐오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혐오의 색채는 옅어지긴커녕 짙어지고 가속화되고 있다. 혐오가 만연한 오늘날의 사태를 짚고 이에 대한 규제와 사회적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열렸다.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와 혐오표현 연구모임이 28일 서울대학교 근대법학교육 백주년 기념관에서 진행한 ‘혐오표현의 실태와 대책’에 관한 토론회를 1, 2부로 나눠서 싣는다.

1부 : 혐오표현의 문제점과 실태
2부 : 혐오표현 규제와 사회적 대안

혐오표현은 사회적으로 이미 차별받고 있는 소수자들을 더욱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혐오표현이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등 같은 경우와 본질적으로 다른 이유가 바로 이 지점이다. 그러나 혐오표현 규제는 늘 표현의 자유와 맞물려 논의된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을 최소화하면서 혐오표현을 효과적으로 규제하는 방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28일 서울대학교 근대법학교육 백주년기념관에서 개최된 ‘혐오표현의 실태와 대책’ 토론회 2부에 참여한 패널들이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했다.

이주영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전문위원은 국제인권법 체계에서 표현의 자유가 무한정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혐오표현을 규제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들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 전문위원은 “세계인권선언과 주요 국제인권조약의 가장 기초가 되는 원칙은 차별금지와 평등”이라며 특히 세계인권선언 7조에서 ‘모든 사람이 차별이나 차별의 선동에 대해 평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표현의 자유 역시 기본적이고 중요한 자유로 인정되고 있으나, 자유권규약 제19조 3항에서는 명시적으로 ‘권리의 행사에는 특별한 의무와 책임’이 따르며, ‘타인의 권리’ 등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그 자유가 일정한 제한을 받을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 전문위원은 “표현의 자유가 개개인이 자아를 실현하고 발전하는 데 기본적인 조건이며, 민주사회의 기초적 토대이자 다른 권리 실현의 매개로써도 그 가치가 매우 높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 제한은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한에서만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제인권법상의 확고한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즉, 혐오표현을 규제한다는 명목으로 개인의 정당한 권리인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도록 명확한 기준과 촘촘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유권규약 제19조 3항이 인용된 판례를 통해 표현의 자유 제한이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법률에 의한 제한, 타인의 권리나 명예, 국가안보, 공공질서, 공중보건 또는 도덕의 보호를 위해 필요하고 정당한 수단이며, 표현의 자유를 최소한으로 제약하면서 정당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비례성’에 부합하는 조치임을 국가가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유럽인권재판소가 유럽인권협약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는 관용, 사회평화, 반차별이라는 협약 기본 가치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 특정 소수자 집단과의 공존을 부정하고 배척을 선동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제한될 수 있다는 기조를 가진 점도 덧붙였다.

혐오표현의 형사범죄화, "효과 적고 오남용 소지 크다" vs "심각한 혐오표현에 대해서는 필요"

그렇다면 일정 기준에 따라 자유로운 표현으로 인정될 수 없는 혐오표현임이 명백해졌을 때에는 어떤 방식으로 규제해야 예방과 처벌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는 그 답이 ‘형성적 규제(Formative Regulation)에 있다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다른 국가들에서 혐오표현을 어떻게 규제하는지 살펴보면, 형사법적 접근, 민사구제 차원의 접근, 그리고 차별시정기구에 의한 규제 등의 방법이 있다”면서 “이 중에서는 차별시정기구에 의한 규제가 사후적 시정에만 머물지 않고 사전예방적 방식의 규제인 ‘형성적 규제’를 가능케 한다”고 평가했다. 차별시정기구가 혐오표현 규제를 주도하면, 소수자에 대한 소극적 ‘보호’를 넘어 ‘자력화’ 된 당사자가 스스로 해결의 주체가 되도록 지원하는 것에 일차적인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차별시정기구가 규제를 담당하게 되면 금전적 손해배상, 행위 중지, 교육이수, 원상회복, 재발방지 후속조치 등 문제의 층위에 맞는 다양한 조치가 활용될 수 있으며 여의치 않으면 민법상 소송 지원까지 가능하다.

홍 교수는 혐오표현을 형사범죄화 하는 방식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법이 실제로 적용된 사례들을 보면, 집행실적도 미미하고, 일관된 기준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혐오표현을 형사범죄화 하는 것이 소수자를 향해 국가가 그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있다는 점과 시민사회를 향해 혐오표현을 관용하지 않는다는 ‘신호’ 역할은 할 수 있겠으나, 이러한 신호는 정치지도자의 발언이나 교육 등 반혐오표현정책 시행 같은 다른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밝혔다. 홍 교수는 “형사범죄화의 효과는 제한적인데 반해 오남용의 소지가 절대 적지 않고, 자칫 ‘국가가 나쁜 표현을 금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면서 형사범죄화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김지혜 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 교수는 홍 교수의 이러한 입장과 조금 다른 주장을 했다. 사회적 해악이 크고 분명한 혐오표현에 대해서는 형사적 규제가 진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조직적이거나 사회적 권위로 자행되는 혐오표현에 대해 소수자 개인이 민사적으로 대응하기에는 자원의 차이도 크고 정보 접근의 어려움도 겪게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인간 존엄성, 평등, 표현의 자유 등 시민 사회의 기초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 사회가 ‘다양성’과 ‘소수자’라는 화두와 다원적 민주주의의 요청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전방위적 노력 속에서 혐오표현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하고, 그 안에 형사범죄화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혐오표현 규제, 시민사회단체·언론 등의 역할도 중요

국가적 차원에서의 혐오표현 규제와 더불어 시민사회와 언론을 비롯한 여러 이해당사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류민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다양한 해외 사례를 통해 국내 시민사회와 언론 등 민간 분야에서 혐오표현 규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소개했다. 유네스코는 지난 2015년 ‘온라인 혐오표현에 대항하기(Countering Online Hate Speech)’라는 매뉴얼을 발간했다. 온라인 혐오표현은 법적 관할 측면에서 적절한 법적 수단을 강구하기 어렵기에, 이 매뉴얼은 미디어 및 정보 공유를 통한 소수자 집단의 역량 강화와 대중 교육 방식을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 비영리단체인 ‘남부빈곤법률센터(Southern Poverty Law Canter)’는 해마다 ‘혐오지도(Hate Map)’를 만든다. 일정한 기준 하에 인종 우월주의단체, 반성소수자단체 등 혐오단체를 선정하여 주별 분포와 차별선동영역을 공시하는 것이다. 류 변호사는 이를 두고 “이 목록의 객관성에 대해서는 논쟁할 수 있겠지만, 관련 단체 및 국가 행위자에 경고할 수 있는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류 변호사는 시민사회뿐 아니라 언론과 인터넷 중개자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수자 집단이 자신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도록 하고 혐오표현의 유통 및 확산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언론사들이 내부적인 규제와 더불어 표현의 자유와 평등에 관한 국제기준 해석을 담고 있는 ‘캄덴원칙’에 따른 보도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캄덴원칙은 언론에 의해 더욱 유포되는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차별 또는 부정적 고정관념을 경계하고 불관용을 고취할 수 있는 불필요한 언급을 지양해야 한다는 등의 원칙을 담고 있다. 인터넷 중개자 역시 사람들의 정보접근 실현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중에게 더욱 잘 전달할 수 있도록 내부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류 변호사는 기업들이 인권보호와 증진에 대한 사회적, 도덕적 책임을 이행해야 하며, 이러한 개념에 근거하여 내부규정을 구성할 때 ‘UN 기업과 인권 지도 원칙’을 참고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토론회 전체 사회를 담당한 문경란 제1기 서울시 인권위원회 위원장은 토론회를 마무리하면서 “혐오표현의 실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적절한 규제 수단을 마련하기까지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그는 “그러나 오늘 준비한 토론회 장소가 비좁아 더 넓은 곳으로 이동할 만큼 많은 분이 참석하신 것을 보며 희망을 보았다”면서 “한국 사회 내 혐오표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해결방안을 같이 고민하며, 나아가 함께 행동할 동료들이 굉장히 많다는 생각에 든든해진다. 힘든 과정이겠지만 서로 격려하고 대화하며 효과적으로 우리 사회의 혐오에 대응해 나갈 수 있길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다.
덧붙이는 말

최한별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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