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화, 자본운동의 변화와 계급통치전략

[주례토론회] 가계와 개인의 금융적 포섭 - 가공자본과 증권화, 신용과 수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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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1990년대 말 이후 한국사회에서 개인들의 일상적인 저축과 대출 행위의 패턴 및 리듬은 크게 변형되었다. 주식보유 또는 펀드와 퇴직연금 가입 등을 통해 개인과 가계 저축의 상당 부분이 전통적인 은행예금 대신 글로벌 금융시장과 연동되기 시작했으며, 주택구입과 대학등록금 마련, 소비재 구매를 위해 다양한 종류의 대출에 의존하는 생활양식이 일상화되었다. 개인과 가계는 임금소득 외에 금융자산의 보유와 거래를 통해 자산소득을 취득하는 한편, 주택담보대출이나 학자금대출, 신용카드 이용에 따른 원금과 이자를 직접적으로 채권자들에게 지급하고 있다. 증권화(securitization)의 기법을 통해 부채를 자산으로 유동화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개인과 가계가 진 부채는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고수익의 투자 상품으로 둔갑했고, 대출기관은 추가적인 대출을 제공할 수 있는 신규자본을 쉽게 융통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대다수 개인들의 경제적 지위와 형상은 저축자에서 투자자로, 노동자에서 채무자로 변형되었으며, 개인과 가계의 경제적 운명은 글로벌 자본시장의 동학에 크게 의존하게 되었다.

한편에는 전지구적인 수준에서 작동하는 글로벌 금융의 추상적인 흐름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지역적인 수준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개인들의 저축과 대출 행위가 있다. 그리고 지난 몇 십년간 영미권을 중심으로 일상생활과 글로벌 금융의 관계는 전례 없는 수준으로 긴밀하게 연관되기 시작했다.(Langley, 2008) 한국사회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금융적 축적의 조건을 마련하기 위한 자본시장 활성화 및 소비자신용 육성 정책에 따라 대략 2000년대부터 주식 및 펀드투자가 일상적인 경제적 행위가 되고, 개인과 가계가 소득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부채를 짊어지기 시작했다. 단적인 예로 2003년 4조원 규모에 불과하던 주식형펀드의 개인부문 설정액 규모는 2008년 119조원 규모로 급성장했고, 전체 펀드계좌 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직전인 2007년 초 2,350만 계좌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슈퍼마켓에서 상품을 사듯 쉽게 금융자산에 투자할 수 있게 해준 펀드는 2000년대 초중반 ‘부자 되기 신드롬이라 불리는 재테크 광풍을 수반하며 한국사회에 ‘대중투자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크게 일조했다.

대중화된 ‘재테크 문화’를 강조하는 연구들에서 종종 간과되는 점이 이 시기에 개인과 가계의 금융자산 뿐만 아니라 금융부채 또한 급격하게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경우 1997년 200여 조원 규모였던 가계부채는 이후 폭발적으로 팽창해 2013년에 이르러서는 바야흐로 ‘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를 열게 되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부동산투자 열풍을 타고 개인과 가계가 은행대출을 받아 부동산투자에 적극 뛰어들면서 가계부채 중 주택담보대출의 비중이 월등히 높게 나타나고 있다. 중산층이 자산증식을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적극 활용했다면, 빈곤계층은 경제적·사회적 재생산을 위해 신용카드 현금서비스와 대부업체의 신용에 깊이 의존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고용 없는 성장’이 추구되면서 정리해고로 직장을 잃거나 임금소득만으로 사회적 재생산을 수행할 수 없게 된 빈곤계층은 고금리 대출을 통해 실질임금의 감소를 메울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일상생활의 금융화’는 대중들이 소비자신용을 통해 자본시장의 동학에 깊이 연루되었다는 경제적 현실만을 지시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훨씬 더 광범위한 사회문화적 변형을 함축하고 있다. 한때 ‘투기’나 ‘빚’ 등 도덕적 어휘와 결부되어 비합리적이고 탐욕스런 행위로 간주되던 개인들의 금융적 실천은 이제 “새로운 삶의 방식이자 자아 획득의 수단”(Martin, 2002: 2-3)이 되었다. ‘재테크’에 이어 등장한 ‘빚테크’라는 용어는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금융적 실천은 더 이상 요행을 바라는 탐욕이 아니라 복잡한 수학적 계산과 재무적 책임성에 기초하여 이루어지는 합리적 행위로 간주되고 있다. 새로운 ‘금융적 합리성’에 따르면 오늘날 부자가 되기 위해선 안정적인 직장과 습관적인 저축행위가 아니라 과학적인 금융지식의 숙달과 체계적 실천(재테크)이 필수적이다. 개인투자자를 위한 각종 금융 지침서들, 금융 섹션을 담은 신문과 24시간 금융뉴스를 전달하는 케이블TV, 금융정보를 교환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들,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금융교육 프로그램에 이르는 미디어와 담론들의 범람은 이러한 메시지가 이미 한국사회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음을 증명하는 듯하다.

개인의 금융투자와 대출기회 확대는 단지 합리적인 이익추구 행위라는 점에서만이 아니라 ‘금융의 민주화’라는 측면에서도 정치적으로 정당화되었다. 최첨단 금융공학으로 무장한 금융시장은 순수한 시장의 전형으로 여겨졌고, 자유 시장의 옹호자들은 금융이 기업만이 아니라 개인들에게도 자산을 축적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주장해왔다.1(쉴러, 2013; 프리드먼, 2009) 금융민주화론에 따르면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은 제1금융권으로부터 급전을 빌리지 못해 고금리의 사금융을 이용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불법추심의 위험에 노출되곤 한다. 따라서 신용등급이 낮은 ‘금융 소외자’에게까지 금융의 문턱을 낮추고 그들에게 자산축적의 기회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외환위기 이전까지 개인에게는 저축이 강조되고 대출은 주로 기업을 대상으로 이루어졌기에, 개인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은 일종의 특혜로 간주되었다. 그 결과 “신용등급이 높지 않은 서민에게 돈을 빌려주는 행위야말로 금융권이 해야 할 사회적 책무인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제윤경, 2015: 185)될 수 있었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역설적으로 ‘금융의 민주화’ 담론이 확산되고 있는 현실은 자본주의의 파국을 예고하는 듯했던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도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와 환상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미국에서 발발한 금융위기를 계기로 새로운 자본축적 모델로 간주되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모델은 경제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는 것은 물론 공공부채와 가계부채의 증대, 소득의 양극화 심화, 실업률의 증대, 사회통합 저해 등 만만치 않은 사회경제적 비용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던컨, 2013; 뒤메닐·레비, 2014; 스티글리츠, 2013; 마라치, 2013; 크루그먼, 2013; 하먼, 2012; 하비, 2014) 그러나 각국이 금융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재산권 보장과 금융시장의 안정성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의 이념은 여전히 지배적인 공공선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2 금융위기의 책임은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의 도덕적 타락과 탐욕, 금융 감독기관의 감독부실과 탈규제화, 신종 파생상품의 위험성 등 금융 외적인 요인들로 돌려졌다. 금융시장은 본래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나 정부의 개입으로 원만한 작동이 교란되었거나, 투자자들의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요인이 금융시장의 과도한 거품과 폭락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즉, 자본의 내재적 동학이 아닌 시장에 대한 정부개입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신자유주의 정책과 이데올로기가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셈이다. 그리하여 금융을 민주적으로 통제함으로써 더 많은 이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는 믿음만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금융에 관한 경합하는 담론들과 상이한 서사들의 공존은 금융이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적 실천의 문제라는 점을 함의한다. 금융화는 추상적인 자본의 동학으로서 경제적 현실일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다양한 의례, 의미, 규범들을 생산하는 담론적 현실이기도 하다. 금융적 축적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고 개인과 가계를 금융시장으로 포획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물질적 제도와 장치(dispositif)들이 개발돼야 할 뿐만 아니라, 주체에 관한 특정한 표상과 새로운 정체성이 주조되어야만 한다. 즉, 금융화 시대의 새로운 주체형상으로서 투자자 또는 채무자는 다양한 물질적·담론적 장치들을 통해 생산되며, 그것이 어떤 장치들 내에 배치되고 포획되는가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의미화 된다. 정부의 정책대상으로서 금융접근성을 제고시켜야 하는 ‘금융소외자’, 금융투자를 통해 부를 축적하고 자유를 실천하는 합리적이고 진취적인 ‘금융투자자’, 과다채무와 불법추심으로 고통 받는 ‘신용불량자’, 보험과 리스크 관리 기술을 통해 생애위험을 스스로 책임지는 ‘윤리적 주체’ 등 금융적 주체는 다양한 언표를 통해 재현된다.

요컨대 개인과 가계의 금융적 포섭은 자본관계의 확장으로서 착취와 수탈의 강화이지만, 행복과 성공, 안전과 개인의 책임 등 다양한 윤리적 가치를 동원해 개인들을 주체화하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적 권력관계의 헤게모니를 강화시킨다. 그 결과 오늘날 자본-노동관계는 더 이상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삶의 중심에 놓이지 않으며, 금융시장에서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금융투자자들과 개별화된 계약관계로서 채권자-채무자 관계가 사회적 삶 전반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는 금융화가 추상적인 자본의 동학과 담론적 실천, 계급지배와 개인화의 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금융화는 단지 당대의 현실을 묘사하는 술어적 규정이 아니라, 자본이 작동하는 지배적인 방식이자 자본주의적 권력관계에 따라 현실을 재현하고 주조하는 권력의 기술이다. 라자라토의 표현을 빌면 “금융은 자본의 정치학”(Lazzarato, 2014: 13)이다. 따라서 금융화로 인한 사회경제적 효과 및 정치적 함의를 분석하기 위해 자본의 추상성과 구체성에 대한 변증법적 이해, 다시 말해 ‘정치경제학 비판’과 ‘비판적 문화연구’의 문제의식을 접합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2. 금융화의 문화정치경제학을 위한 이론적 탐색

금융화에 관한 정치경제학적 논의들은 ‘글로벌 금융’의 동학을 특정한 ‘현실’ 경제나 사회 너머에서 작동하는 ‘체계system’, ‘흐름flow’, ‘운동movements’, ‘순환circulation’ 등으로 규정함으로써, 금융을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분리된 추상적인 힘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으로써 추상적이고 거시적인 글로벌 금융과 지역적이고 구체적인 일상이라는 수직적이고 대립적인 관계가 설정되며, 개인의 일상적 삶은 추상적인 금융의 작동에 의해 수동적이고 무차별적인 영향을 받는 것으로 설정된다.(Langley, 2008) 그러나 개개인의 일상적인 삶은 글로벌 금융의 추상적이고 일방적인 효과에 직접적으로 노출된다기보다 특정한 사회적 맥락 내에서 역사적, 문화적, 도덕적 요소들에 의해 매개된다. 예컨대 대부를 통해 잉여가치의 생산을 확대하려는 단일한 목적을 갖는 산업자본과 달리, 개인과 가계가 대출을 받는 목적은 즉각적인 소비실현이나 위험에 대한 대비부터 자본소득을 노리는 투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나아가 금융적 실천들은 새로운 소비패턴(신용카드의 보편화와 과잉소비), 금융적 합리성과 규범(계산적 합리성, 투명성, 책임성), 주체성의 변형(투자자와 채무자 주체성의 형성), 금융수단을 통한 사회적 가치의 추구(금융의 민주화, 소액금융, 사회책임투자) 등 광범위한 문화적 변동을 포함한다. 즉, 금융화는 단지 자본의 축적구조나 금융행위자와 금융제도 등의 연관을 지시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당대 자본주의가 조직되고 작동하는 방식을 배치하는 지배적 원리이자 일상의 영역에서 새로운 합리성과 윤리적 규범에 따라 주체를 주조하는 계기이기도 하다.(서동진, 2015) 따라서 우리는 당대 금융의 작동을 이해하기 위해 “한편으로 자본시장들 내에서의 변화와 다른 한편으로 일상생활의 공간들, 실천들, 정체성들 내에서의 변형간의 교차를 탐색”(Langley, 2008: 7)할 필요가 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금융에 관한 일련의 경제사회학과 문화경제학적 접근들은 금융이 사회적 맥락 내에 착근(embedded)되어 있으며, 글로벌 금융의 작동과 일상적 삶의 실천은 다양한 제도적·기술적·담론적 장치들에 의해 매개된다는 점을 강조한다.3(Aitken, 2007; Callon, 1998; Granovetter, 1985; Langley, 2008; Leyshon and Thrift, 1997; Miller, 2001; Preda, 2007) 먼저 랭글리는 글로벌 금융과 일상을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관계로 설정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행위자네트워크이론(Actor Network Theory)의 분석틀을 빌어 ‘금융 네트워크financial network’ 개념을 제안한다. 금융 네트워크 연구는 금융시스템의 중심에 위치한 자본의 권력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시스템을 구성하고 그 원인이 되는 네트워크들, 노드들, 행위들(예컨대 일상적 저축)”(Langley, 2008: 23)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글로벌’과 ‘로컬’은 정치경제학에서 전제하는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인 연결성의 차원에서 이해된다. “자본시장의 다양한 네트워크들과의 연결lengthening, 중첩overlap, 교차intersection를 포함하는 저축과 대출 네트워크에서의 변형들은 ‘지구적’인 동시에 ‘지역적’이다.”(Langley, 2008: 24)

그러나 이처럼 금융화에 관한 문화경제적 분석 또는 통치성 논의에 기댄 논의들의 주요한 약점은 ‘자본의 추상성’4 을 배제한 채 금융화의 사회적 효과를 우연적이고 이질적인 담론과 제도, 장치들의 효과로 환원하려 한다는 점에 있다. 뮤추얼펀드, 연기금, 소비자신용 등 각각의 금융 네트워크의 출현과 발전은 사회적 맥락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나지만, 그것들의 배치와 운용은 궁극적으로 자본축적과 자본권력의 확장을 위해 조립되고 배열된다. 물론 이러한 자본축적의 동학은 경험적 수준에서 관찰되지 않으며, 현상적으로는 금융을 둘러싼 서로 경합하는 담론들과 이질적인 주체화 전략이 공존하는 듯 보이게 마련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과 노동 간의 착취적인 사회적 관계가 필연적으로 소유와 평등, 계약의 자유가 지배하는 상품의 교환관계로 현상하듯, 금융화는 당대 자본주의의 현실에 관한 특정한 표상과 해석들, 행동과 전략들에 기초하여 작동하고 있다. 즉, 리스크 평가와 관리, 투자의 합리성, 자기책임의 윤리 등은 자의적이고 우연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금융화된 현실이 그러한 외양을 통해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 계기들을 구성한다. 따라서 ‘정치경제학 비판’과 ‘비판적 문화연구’의 교차를 적극 사고하는 문화정치경제학적 접근의 관점에서 금융화에 관한 이론적 탐색을 시도할 필요가 제기된다.

1) 개인과 가계의 ‘금융적 포섭’ (Ⅰ) : 가공자본과 증권화

금융화에 관한 정치경제학적 논의들은 금융화를 주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간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고, 금융화의 특징을 금융자본의 지배력과 주도력 강화로 보는 경향을 보인다.5
이러한 관점의 근본적인 약점은 “자본의 수익성 보장을 잉여가치 생산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유통 영역에 속하는 소득 재분배의 문제”로 간주하며, 그리하여 “당대 자본주의의 성장 ‘지체’와 불안정성을 일종의 ‘탐욕’ 또는 어쨌거나 소득 관리에 있어 나쁜 규제의 결과”(Milios and Sotiropoulos, 2009: 169)로 이해한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분석에 따르면 금융자본은 산업자본과 대립하기보다 정세에 따라 함께 자본축적과 자본주의적 권력관계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며, 그런 점에서 금융화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왜곡’이 아니라 유기적인 발전과정으로 이해된다. 마르크스가 금융적 자본의 형태를 ‘이자 낳는 자본(M-M')’으로 규정하면서, ‘이자 낳는 자본’에서 “자본 관계는 가장 표피적이고 물신적인 형태에 도달”(마르크스, 2010a: 513)한다고 했을 때 함의했던 것이 바로 이 점일 것이다. 다시 말해 “산업 자본과 이자 낳는 자본 사이의 ‘대립’은 오직 자본주의적인 경제적, 사회적 관계의 표면에서만 나타나며, 그것들의 본질적인 특징(예컨대 노동력의 착취를 통한 잉여가치의 생산)을 위장”(Milios et al., 2002: 51)한다. 마르크스의 분석에서 금융적 자본의 대표적 형태인 ‘이자 낳는 자본’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자본의 흐름에 대해 외부적이고 기생적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미 중요하게 고려되어 있다. 마르크스의 유명한 자본의 정식을 이자 낳는 자본까지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자본의 정식


발달된 신용제도를 포함한 현대의 금융시스템은 사회 내 모든 계급의 화폐저축과 유휴화폐를 집중시켜 사회적 기금의 저장소를 이룬다. 은행은 자신의 고유한 지불약속들인 은행권이나 중앙은행권을 발행하여 이러한 사회적 기금을 개별자본가에게 대부함으로써 실물자산의 축적을 뒷받침한다. 이처럼 은행을 통해 결집된 화폐가 기능자본가에게 대부되면, 이 화폐는 이제 단순한 유통수단이길 그치고 생산영역의 외부에서 산업자본이 생산하는 잉여가치의 일부를 이자로 수취하는 ‘이자 낳는 자본’으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먼저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화폐자본가와 기능자본가가 점유하는 공간 모두가 ‘자본의 장소’라는 것이다. 생산 과정에서 기능자본가가 임노동자에 맞서 자본을 대표한다면, 화폐 자본가는 기능자본가의 대리를 통해 노동의 착취 과정에 참여한다. 투자자와 관리자 사이에 이차적인 모순 관계가 발전할 수 있지만 이는 더욱 구체적인 수준의 분석을 요구하며, 금융적 자본과 산업자본 모두 잉여가치의 착취 증대를 통한 ‘이윤’ 확대의 동기에 의해 추동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Sotiropoulos et al., 2013: 52-53)

다만 화폐자본가 입장에서는 대부한 화폐가 기능자본가에 의해 생산과정에 투입되는 동안 화폐에 대한 통제권과 유연성을 잃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장애들은 마르크스가 ‘가공자본fictitious capital’이라고 부른 금융증권들의 창출을 통해 해소된다. 산업자본가는 은행대출 대신 미래에 생산될 잉여가치를 담보로 증권을 발행해 사회적 유휴화폐자본을 모을 수도 있다. 이러한 유가증권의 구매자는 화폐를 대부했을 때와 달리 그들의 주식과 채권을 다른 투자가들에게 판매함으로써 언제든지 자신의 화폐를 되찾을 수 있다. 그리하여 이제 이러한 청구권들은 소유자에게 일정한 화폐수입을 보장해주면서 ‘스스로 가치가 증식하는 자본’처럼 보이게 된다. 즉, “자본의 명목상의 대표물”(마르크스, 2010b: 652) 또는 “가상의 부”(마르크스, 2010b: 653)로서 가공자본에 이르면 “자본의 실제 증식과정과 관련된 것은 모두 완전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자본은 스스로 증식하는 존재라는 생각(표상)이 굳어”(마르크스, 2010b: 639)진다. 마르크스는 화폐자본의 상당량이 이처럼 이자 낳는 증권에 투자되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경향을 이미 자본주의 발전의 내재적 경향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이루어지는 모든 나라들에서는 엄청난 양의 이른바 이자 낳는 자본이 이런 형태로 존재한다. 그리고 화폐자본의 축적이란 대부분이 생산에 대한 이들 청구권의 축적이나 이들 청구권의 시장가격의 축적을 의미한다. 〔...〕 이들 소유권증서의 가격변동에 의한 이익과 손실, 그리고 이런 소유권 증서가 철도왕과 같은 극소수의 수중으로 집중되는 것 등은 사태의 본질상 점점 더 투기의 결과로 나타나며, 그런 투기는 노동을 대신하여 자본의 본원적인 수익 획득 방식으로 나타나고, 또 직접적인 폭력을 대신해서 나타나기도 한다.(마르크스, 2010b: 642, 653)

마르크스가 미래수익의 청구권들을 가공자본이라 부른 까닭은 그러한 증권들의 화폐가치(가격)가 “아무런 자본도 대표하지 않거나 혹은 그것이 나타내는 실제 자본가치와는 무관한 방식으로 규제”(마르크스, 2010b: 642)되기 때문이다. 유가증권의 시장가격은 현실자본의 가치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소유자에게 가져다줄 미래의 소득흐름에 기초해 매겨진다. 이를 마르크스는 자본으로의 환산(자본화)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는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수입을 현재의 이자율로 대부된 어떤 자본이 벌어들이게 되는 수익으로 계산함으로써 그것을 자본으로 환산한다.6(가공자본의 가격=연간수익금/이자율) 그러나 이는 국채처럼 정기적인 고정수익금을 가져다주는 경우에 한하며, 현대 자본주의에서 가공자본의 가격은 이러한 공식으로 단순화할 수 없다. 가공자본의 가격을 결정하는 연간수익금은 현실적인 수익금이 아니라 다양한 리스크를 고려한 기대수익금이기 때문이다.(곽노완, 2006: 97) 따라서 현대적인 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각종 금융자산의 가격은 다음과 같은 확장된 공식으로 표현된다.(지주형, 2011: 92)

자산의 현재(시장) 가치 = (예상) 미래수익/수익률
= 미래수익 × 기대가치 / (정상수익률 × 리스크)
7

이에 따르면, 금융자산의 현재가치는 이자율만이 아니라 미래의 경제적 상황에 대한 주관적 기대와 리스크에 달려있다. 이처럼 가공자본의 가격이 미래수익에 대한 기대와 리스크 평가에 기초한다는 점은 가공자본 자체가 투기적인 성격을 지니며, 나아가 가공자본 가격의 폭락에 따른 금융공황의 취약성을 급격히 증대시킨다는 점을 의미한다. 가공자본의 가격에 영향을 끼치는 리스크 요인은 원자재 가격, 경쟁조건의 변화, 이윤율과 금융비용 등에 더해 금융세계화 이후 해외자본의 유출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복합적이다.8 특히 1970년대 이후 변동환율제로 이행하고 자본시장이 자유화되면서 제3세계 국가들은 외국자본의 유출입과 환율의 급격한 변동의 위험에 크게 노출되었으며, 그로 인해 외환위기와 외채위기 등 금융공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곽노완, 2006)

이런 의미에서 1970년대 이후 금융화를 특징짓는 규정적 요인은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언으로 은행의 신용화폐 창출9에 대한 규제가 풀리면서 자본주의적 신용창조 능력이 극대화되고(던컨, 2013), 이를 통해 막대한 화폐자본을 동원할 수 있게 된 금융적 자본이 가공자본에 대한 투자를 확대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곽노완, 2006) 벤 파인도 이와 유사하게 금융화를 “유통 중인 다양한 형태의 자본(금융자산과 시장을 비롯하여 다른 자산들과 시장들을 포함)의 강도와 범위가 확장될 뿐만 아니라, 점차 서로 다른 자본들과 접합되는 과정”(Fine, 2010: 99)으로 규정하면서, 특히 가공자본의 범위 확대를 1970년대 이후 전개된 금융화의 차별적인 특징으로 지목하고 있다.10(Fine, 2013)

1970년대 이후 금융세계화를 촉진하기 위해 시행된 자본시장의 탈규제화와 금융혁신은 새로운 금융상품을 시장에 내놓았으며, 이를 통해 증권시장을 중심으로 한 금융시장의 팽창과 더불어 새로운 금융공황의 가능성을 심화시켰다. 1971년에 금태환제도가 종언을 고하고 1973년에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와 더불어 변동환율제가 시행되면서 ‘화폐 자체’가 상품화되었고, 정크본드(junk bond) 매입을 통한 기업의 인수·합병 거래에서 보듯 ‘자본의 소유권’도 투기대상이 되었으며, 파생금융상품의 도입을 통해 금융상품의 가격에 대한 ‘기대’와 ‘예측’ 자체도 사고 팔리게 되었다.(곽노완, 2006; 맥낼리, 2011; 윤종희, 2015) 금융혁신을 통해 등장한 ‘증권화securitisation’ 기법은 금융자산의 형성을 더욱 촉진시켰다. 전형적인 금융자산은 상품이나 토지 등 실물자산을 토대로 형성되지만, 증권화를 통해 기존의 금융자산(대출 채권)을 토대로 새로운 금융증권을 창조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처럼 부채가 자산으로 전환됨으로써 하나의 채권-채무 관계로부터 두 개, 세 개의 채권이 발행되었고, 이것이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고수익을 보장하는 증권으로 판매되었다.11
(윤종희, 2015: 506)

증권시장의 발전과 더불어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 크게 위축되었던 뮤추얼펀드와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의 활동도 활발해졌다. 이들은 상업은행을 대신해 개인투자가를 흡수하면서 빠르게 성장했고, 대규모로 빈번하게 주식거래를 수행하면서 증권시장의 활성화를 촉진했다. 이를 통해 개인과 가계의 소득이 직접적으로 글로벌 자본시장과 연동되기 시작했다.(윤종희, 2015: 478) 증권화 또한 개인과 가계의 금융적 포섭을 확대한 주요한 기제로 작용했다. 주택담보대출이나 가계에 대한 신용대출은 수익성이 떨어지거나 위험성이 높아 전통적으로 은행이 꺼려하는 사업이었다. 그러나 채무불이행의 위험을 투자자에게 전가하고 추가적인 대출금의 확보를 가능하게 해주는 증권화 기법을 통해 이러한 제약이 완화될 수 있었다. 증권화를 통해 이자수익을 낳는 증권으로 변모한 누군가의 부채는 연기금과 펀드 등을 통해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판매되었다. 요컨대 금융화는 자본시장에서의 활발한 거래를 위해 금융기관과 기업만이 아니라 개인과 가계를 적극 참여시키며, 금융기관은 이러한 거래를 중개함으로써 수수료와 이자수익을 취하기 때문에 ‘과잉거래’를 부추기게 된다. 나아가 금융화는 착취를 강화해 산업 전반의 이윤율을 상승시킬 수도 있다. 금융적 자본은 “인수·합병과 구조조정을 강제함으로써 잉여가치율과 이윤율의 상승에 기여”(윤종희, 2015: 502)할 수 있기 때문이다.12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임금소득을 주식이나 펀드 등 금융증권의 형태로 보유함에 따라 개인과 가계는 자본시장의 동학에 경제적 삶의 운명을 의존하게 되었으며, 가공자본 특유의 변동성과 위험성 나아가 투기성에 휘말리게 되었다. 금융상품이 본질적으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사실상 모든 투자는 일종의 투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탐욕이나 부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우선적으로 가공자본 자체의 본성과 동학으로부터 비롯된다. 사회적 삶 전반이 금융적 축적과 금융적 논리에 따라 새롭게 조직되고, 일상적인 소비 활동과 재생산 활동을 주식, 펀드, 연금, 보험 등 갖가지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를 통해 영위하는 상황에서 투자자로서의 삶은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금리가 높고 안정적인 소득흐름이 예상될 때에는 저축이 합리적인 행위이지만,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고 실업과 소득저하의 위험이 상존하는 환경에서는 금융투자가 합리적인 경제적 행위로 표상된다.

이처럼 이자 낳는 증권의 수익성과 헤게모니를 극대화 하는 금융화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강화하는 한편, 개인과 가계를 금융시장의 참여자로 적극 참여시키는 ‘금융적 포섭’을 수반했다. 그로 인해 개인과 가계의 경제적 삶은 소득과 저축 대신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와 수익에 깊이 의존하게 되었으며, 자본시장의 성패에 이해를 같이 하면서 사실상 자본가와 동일한 이해관계를 갖게 되었다. 구조조정이 내가 주식을 보유한 기업의 주가를 높일 수 있는 한, 노동자계급은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 소식을 달가워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과 가계의 금융적 포섭은 단지 노동자계급의 부를 금융자본에 이전시킬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적 권력관계를 이데올로기적으로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셈이다. 한국에서는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자본시장에 대한 규제가 풀리고, 뮤추얼 펀드와 증권화의 도입 등 각종 제도가 정비됨으로써 이러한 ‘금융적 포섭’이 전면화 될 수 있었다.

2) 개인과 가계의 ‘금융적 포섭’ (Ⅱ) : 신용과 수탈

이자 낳는 (가공)자본의 확대와 더불어 오늘날 개인과 가계의 ‘금융적 포섭’을 주도하는 또 다른 요인은 소비자신용이다. 20세기 후반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전개된 금융화는 소비자신용의 폭발적인 성장을 수반했고, 개별적인 대부업자 대신 은행에 의한 공식적인 가계대출이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금융시장 개방 압력에 따라 많은 개발도상국들 또한 이와 유사한 경로를 따랐고, 그 결과 선진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들 사이에서 지난 몇 십년간 가계부채 규모가 급증했다.(Debelle, 2004; Dos Santos, 2009; Girouard et al., 2007; Karacimen, 2013; Lapavitsas, 2014) 노동자계급이 소비재를 구입하기 위해 할부신용을 이용하거나, 급전이 필요해 전당포나 고리대와 같은 사적 금융을 이용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왔다. 그러나 서구를 중심으로 개인과 가계가 글로벌 자본시장에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개별 대부업자 대신 은행에 의한 공식적인 가계대출이 급증한 것은 1970년대 이후부터이다. 이전에는 ‘이자 낳는 자본’이 주로 산업자본에 대부하여 잉여가치의 일부를 전유하였다면, 이제 노동자계급에 대부하여 임금소득의 일부를 전유하게 된 것이다.(Dos Santos, 2009; Lapavitsas, 2009) 은행이나 금융기관은 과거 정책적 제한에 묶여 있기도 했지만 담보가 없는 소비자들에게 신용만으로 대출해주는 행위를 꺼려왔다. 특히 상환불능의 위험이 높은 빈곤계층에게는 신용대출의 문이 열리지 않았었다. 그러나 ‘증권화’ 기법을 통해 대부자가 대출의 위험을 투자자에게 전가할 수 있게 되면서, 신용부도 위험이 높은 빈곤계층에까지 신용대부가 확산될 수 있게 되었다.

소비자신용의 확대는 단지 금융시장의 제도적 변화와 은행의 행태변화만이 아니라, 1970년대 선진국을 중심으로 자본축적의 구조적 위기에 직면하여 자본축적의 동학과 지배양식이 변형된 것에 기초하고 있다. 노동억압적인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실질임금이 정체되고 각종 사회보험이 해체되면서, 가계는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를 통해 임금소득을 보완하거나, 대출을 통해 주거, 교육, 건강 등의 사회적 재생산 활동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13 특히 사적 소비신용을 통한 소비수요 자극은 임금을 인상하는 방식에 비해 신자유주의 체제에 훨씬 유리한 것이었다. 이러한 방침은 “1) 자본주의 생산과정에서의 소득의 발생을 침해하지 않고, 2) 자산소유자의 이해를 침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소유권의 시세 등귀로 그 이해를 특히 유망하게 하며, 3) 신용공여의 증대를 통해 은행부문에 새로운 영업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4) 나아가 자산소유자 사회라는 신자유주의의 복음과 이데올로기적으로 완전하게 일치하거나 실천하게”(크뤼거, 2011: 326)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재생산 영역의 금융화는 과거 복지국가 체제에서 사회적 권리로 제공되던 필수적 서비스들이 상품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본가 계급에게는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이 열린 셈이었다. 페데리치는 이처럼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많은 재생산 활동들이 이제 자본축적의 직접적인 장소”가 된 현실을 일컬어 복지국가의 후퇴를 넘어 “재생산의 금융화”라는 개념을 제시한다.(Federici, 2014: 233)

소비자신용을 통해 대출을 받은 노동자계급은 자본가처럼 잉여가치의 일부가 아니라 임금소득이나 저축의 일부를 이자와 수수료로 지급하게 된다. 마르크스는 이를 “생산과정 그 자체에서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는 본원적인 착취와 나란히 이루어지는 부차적인secondary 착취”(마르크스, 2010b: 832)라 불렀다. 한편 라파비차스는 이처럼 임금소득으로부터 얻는 금융적 수익의 추구를 생산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본원적인 착취 과정과 구분하여 ‘금융적 수탈financial expropriation’로 개념화 하면서, 소비자신용을 통한 가계소득의 직접적 수탈을 당대 금융화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로 규정한다.(Lapavitsas, 2009: 126-128) 이에 따라 금융기관과 노동자 간의 비대칭적인 사회적 관계를 고려했을 때, 당대의 금융화는 “금융시스템의 고전적인 약탈적 전망의 부활을 의미”(Lapavitsas, 2011: 621)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금융적 수탈을 라파비차스처럼 금융자본이 유통시장에서의 제로섬 게임을 통해 사회적 부를 전유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다소 협소한 시각이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소수의 수중에 사회적 자본이 집중되는 것은 단지 유통영역에서 신용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태가 아니라,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통해 사회적 생산력이 자본가의 부와 권력으로 전유되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일반적인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때 자본주의적 신용제도는 소수에 의한 사회적 소유의 획득을 더욱 발전된 형태로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14 즉, 우리는 수탈을 “노동자와 사회전체성원의 생활수단 및 생산수단을 빼앗아가는 과정으로, 착취와는 달리 직접적인 노동 밖의 시공간에서 발생하는 모든 빼앗김을 총괄하는 개념”으로 폭넓게 규정할 수 있으며, 현 시기 신용제도의 발전 및 투기소득의 극대화와 더불어 단지 자본주의의 발생기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안에서 지속”되고 있는 수탈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곽노완, 2010: 164-168)

당대 금융화를 특징짓는 소비자신용은 비록 광범위한 수탈에 기초하지만, 이것은 전통적인 고리대와는 전혀 다른 동학에 따라 작동하고 있다. 전통적인 고리대가 생산영역의 외부에서 노동조건을 소유한 소생산자에게 대부하여 그의 소유권을 수탈한다면, 현대적인 대부업은 저렴한 금리로 자본을 조달한 후 이를 노동자계급에게 높은 이자로 대부하는 이자 낳는 자본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소비자신용 기관은 대출을 한 후 이러한 채권을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증권화 하여 글로벌 자본시장의 투자자들에게 판매한다. 애초에 노동자에게 대부를 해줬던 은행이나 대부업체 등은 더 이상 채무상환의 연체나 부도에 대한 리스크를 짊어지지 않아도 되며, 그러한 리스크는 이제 전 세계의 투자자들에게 분산·이전된다. 이러한 증권에 대한 투자자는 대부분 다른 금융기관들이지만 노동자계급의 저축도 직간접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채무자들이 정상적으로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는 것에 대해 금융기관만이 아니라 노동자계급도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지게 된다.

오늘날 가계와 개인의 필수적인 노동력 재생산 활동들이 임금소득을 보완하거나 대체하는 부채를 통해 이루어지면서 재생산 영역에서의 수탈이 더욱 더 확대되고,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에게 높은 수익을 안겨주는 추가적인 원천이 되고 있다. 특히 노동의 유연화와 ‘상시 구조조정’을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조건 하에서 소비자신용의 주요한 타깃은 임금소득을 통해 노동력의 재생산을 수행할 수 없게 된 ‘과잉인구’들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대적 과잉인구로서 산업예비군의 존재는 자본축적에 필수적인 조건이자 결정적인 특징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대적 과잉인구는 잠재적인 노동력으로서 끊임없이 (재)생산되어야만 한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잉인구는 자가-증식하는 자연발생적인 특징이 아니라 고도로 역동적인 사회적 관계”(Soederberg, 2014: 4)이며, 자본축적의 동학과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 복지국가 체제에서 노동력의 재생산 비용을 일정부분 조세에 근거한 사회보험으로 보조했다면, ‘사회적 위험의 개인적 책임’을 원리로 삼는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빈곤계층들은 필수적인 생존과 노동력 재생산 활동을 신용대출을 통해 개별적으로 떠맡는다.

소비자신용이 정기적인 임금소득을 대체하거나 보완함에 따라 단지 자본에게 새로운 수익처가 제공되는 것을 넘어, 사회적 권력관계가 접합되고 격론하는 형태에 일정한 변형이 일어난다. 기본적으로 계급관계에 기초한 이러한 권력관계는 국가의 정책적 지원 하에 소비자신용 시장에서의 교환과 계약의 영역으로 전치된다. 소비자신용을 통해 개인들은 자본가-노동자의 관계가 아닌 채권자-채무자의 관계를 맺게 되고, 금융기관으로부터 채무자로서의 규율(금융 이해력 증대, 계약의 준수, 상환 의지 등)을 강요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규율권력은 작업장에서의 직접적인 통제나 국가의 강제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자율, 신용등급, 연체수수료, 파산과 구제절차 등과 같은 추상적이고 순수하게 기술적인 요소들을 통해 부과된다. 이에 따라 신용의 사회적 권력은 중립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빈곤계층에게는 낮은 이자율의 신용을 제공하거나 그들의 채무를 일부 탕감해주는 것이 유일한 해법으로 제시된다. 이처럼 소비자신용은 자본-임노동 관계에 기초한 사회적 권력관계를 교환 영역에서의 자발적인 계약관계로 전치시킴으로써 그것이 계급에 기초한 착취적 관계라는 점을 은폐하는 정치적 효과를 수반한다.(Soederberg, 2014: 4)

3) 권력의 테크놀로지로서 금융화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은 금융화가 노동자계급에게 자산증식과 공적 신용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시키는 ‘금융의 민주화’ 과정이라기보다 자본축적의 확대를 꾀하는 착취와 수탈의 과정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증권화와 파생상품 개발 등의 금융혁신은 개별 자본의 경쟁을 강화하고 수익성 극대화를 강제함으로써 착취 강화에 기여하는 한편, 저소득층을 포함한 상이한 계층의 가구들에게까지 금융을 확장시킴으로써 금융시장 특유의 위험성을 금융기관으로부터 개인과 가계로 이전시킨다. 그로 인해 가계의 대차대조표 상에서 부채만이 아니라 자산의 동시적 증대가 나타난다. 즉, 가계의 금융화는 가계의 지출과 소득 모두의 자본화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단지 개인의 금융투자 확대나 부채의 증대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금융화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계가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매하는 경우 이 거래는 대차대조표 상에서 자산(주택)과 부채(은행 대출)의 증대로 기입된다. 이때 은행이 이 대출채권을 증권화 하여 다른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경우, 이 투자자는 최초대출자의 소득흐름(대출금 상환)으로부터 투자수익을 얻게 된다. 즉, 이 투자자는 자신의 임금소득 일부를 금융증권에 투자함으로써 임금을 현금이나 저축이 아닌 ‘가공자본’의 형태로 전환시킨다.

  금융을 통한 투자자와 채무자의 매개


이처럼 개인과 가계의 일상적인 경제적·사회적 재생산 활동이 금융에 의해 매개됨에 따라 가계의 삶은 시장 리스크에 취약해진다. 또한 자본가는 물론 노동자계급까지 부를 금융자산의 형태로 소유함에 따라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노동자계급의 이해는 자본가의 이해와 일치하게 된다. 그리하여 당대에 이르러 기업과 금융기관은 물론 개인과 가계까지 금융시장의 사건들에 촉각을 기울이면서 리스크 관리의 실천에 몰입하게 되었다. 이는 금융적 포섭을 통한 착취와 수탈의 강화에 더해 개인들의 경제행위의 패턴과 사회적 행동이 자본시장의 규범에 따라 규율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금융을 특징짓는 리스크 평가와 측정, 관리의 실천은 단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권력관계를 재생산하고 조직하는 권력의 기술이다.(Sotiropoulos et al., 2013: 57) 이는 금융이 단지 양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질적인 차원의 사회적 변형을 포함하며, 경제적 현실인 동시에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현실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마르크스가 가치의 양적 변동만을 이론적 대상으로 삼은 고전파 정치경제학을 비판하면서 ‘가치 형태의 형성 자체’에 착목했듯이15, 오늘날 자본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가 더 이상 화폐나 생산수단이 아니라 자본에 대한 소유권으로서 금융증권의 형태를 취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당대의 경제적 경험에서 자본은 “‘증권화된’ 사회적 관계”(Sotiropoulos et al., 2013: 53)로 물화되어 나타난다. 마르크스의 물신주의 분석에 따르면, 자본주의적 관계는 일상적인 차원에서 그 자체로 가시화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상품형태를 취한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자본의 순수한 형태는 독특한 상품으로서 금융증권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이런 증권들의 가치는 변동성이 매우 크고 그 자체로는 청구권에 불과하지만, “가치들(가격들)의 차원은 그것을 통해 표현되는 자본주의적 권력 관계만큼이나 현실적”이다. 금융증권은 금융화 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권력 관계가 그것을 통해 재현될 수밖에 없는 특정한 형태”(Sotiropoulos et al., 2013: 141)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본의 가치화는 자본주의 경제에 관한 특정한 재현에 기초하며, 이러한 재현은 자본의 순환을 조직하는 데 있어서 효과적이다.”(Sotiropoulos et al., 2013: 53)

일반적인 상품과 달리 금융상품의 가치(가격)는 생산과정 이전에 결정되며, 가격이 사전에 평가(자본화)되지 않으면 시장에서 유통될 수 없다. 그런데 이는 어느 정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믿음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 금융증권의 가격을 결정하는 현재 소득 흐름, 기대가치, 금리, 리스크는 모두 불변하는 객관적 기초가 없으며, 궁극적으로 미래에 생산될 잉여가치의 전유에 대한 기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증권 가격으로서) 자본의 가격은 아직 물질화되지 않은 자본주의적 착취의 예상된 결과들에 대한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해석에 기초한다.”(Sotiropoulos et al., 2013: 54) 이러한 예측 과정은 미래의 잠재적 사건으로서 계급투쟁을 사전에 ‘리스크’로 수량화하여 평가하는 절차에 다름 아닌데, 잉여가치 착취의 조건은 작업장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자계급의 저항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자본의 회로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금융은 자본주의적 현실에 대한 특정한 해석에 기초하여 자본주의적 권력관계를 조직하고, 자본주의적 권력관계의 재생산에 필요한 특정한 행위와 전략들을 요청한다. 예컨대 기업의 미래전망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 따른 주식가격의 재산정은 미래의 기업 가치를 다시 평가하는 기술적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것은 기업이 미래에 실현될 잉여가치의 생산을 확대시켜야 하며, 따라서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고 노동자계급의 저항을 관리해야 한다는 ‘자본의 명령’을 의미한다. 즉 리스크 관리 실천으로서 금융은 자본주의적 권력관계를 조직하는 권력의 테크놀로지로서 기능한다.

리스크의 관리만이 아니라 리스크를 어떻게 측정하고 평가할 것인지, 또한 무엇을 리스크로 규정하고 상품화할 것인지 또한 궁극적으로 사회적 권력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오늘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증권들의 상대적 가치는 달러-월스트리트 체제와 초국적 자본이 지배하는 지구적 금융·생산네트워크에 의해 비교·평가·조직된다. 예컨대 현재의 소득흐름은 민간기구인 국제금융표준위원회가 제정한 국제회계기준(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에 따라 평가된다. 리스크는 국제결제은행(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이 규정하는 적정 자기자본비율과 VaR(Value-at-Risk) 등 각종 통계학적 평가를 기초로 관리되며, 민간 금융기관과 신용평가기관들이 부여한 등급에 따라 평가된다. 즉, 리스크 평가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기술적 절차가 아니라 그 자체 정치적 실천이다. 지배적 자본은 신용의 조달비용(이자율)이나 장래 기대가치에 대한 신용평가 등 금융정책과 제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직함으로써 자산의 ‘현재 시장가치’를 키우고 자산을 증식하곤 한다.(지주형, 2011: 93-97)

무엇을 리스크로 규정해 상품화할 것인지 또한 자본축적의 동학 속에서 사회적 권력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모기지와 증권화를 통한 주택의 금융화, 기간시설의 증권화를 통한 사유화16, 파생상품을 통한 날씨 예측과 탄소배출권 등의 거래, 증권화를 통한 휴대폰 보급 등 금융혁신 기법을 통한 금융의 확장은 궁극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소득과 자산은 물론 공공재의 수탈을 겨냥한다. 이는 금융혁신을 통해 더 이상 기업 이윤의 일부가 아닌 노동자계급의 소득과 자산을 직접적으로 전유하려는 시도들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노동자계급은 더 많은 신용을 얻을수록 소득흐름의 창출을 위해 더 많은 미래의 시간을 자본의 통제에 내맡겨야 하며, 더 많은 금융상품에 투자할수록 수익성 증대를 위한 자본의 규범에 자신의 이해를 일치시켜야만 한다. 즉, 미래소득의 청구권이자 리스크의 상품화된 형태인 금융증권은 단지 미래의 가격변동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를 특정한 방식으로 재현하면서 현재를 규율한다.

금융자산의 가치가 이처럼 사회적 권력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정치적이고 자의적인 결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금융상품의 형태를 취하는 자본은 자본주의적 현실에 대한 물화된 재현이며, 그것이 구성하는 이미지와 관념들, 인식들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자의적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관계 자체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금융)상품의 물신주의는 주관적 환상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관계가 현상하고, 나아가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한 필연적 외양이다. 금융자산의 리스크 평가와 측정, 그리고 이를 위한 사회적 사건들의 양화(quantification)는 가공자본의 축적과 거래를 위해 필수적이며, 이러한 절차 없이는 어떠한 금융상품도 거래될 수 없다. 즉, 여기서 “물신주의는 단순히 자본주의적 현실에 대한 신비화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계급착취의 재생산에 적합한 사회적 행동들과 전략들 내에 기입되어 있다.”(Sotiropoulos et al., 2013: 141)

이런 관점에서 리스크는 단지 금융자산의 가격을 결정하는 기술일 뿐만 아니라, 리스크에 기초하여 금융시장의 참가자들을 통치하는 권력의 기술이기도 하다.17 금융자산의 가격 결정은 금융시장 참가자들의 상이한 리스크 평가와 기대에 근거한다. 각각의 참가자들은 금융상품의 리스크에 대한 상이한 평가를 기초로 거래를 수행하는데, 만약 모두가 미래의 가격에 대해 동일한 기대를 가진다면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한편 기업, 국가는 물론 노동자계급에 이르기까지 금융시장에 참가하는 개인들은 각각 상이한 ‘위험 특성risk profile’을 가진 개체들이기도 하다. 기업과 국가가 발행한 채권은 그들의 개별적인 특성에 따라 상이한 가격을 부여받으며, 노동자계급에 대한 신용대출은 그들에 대한 개별적인 ‘신용등급’의 부여를 통해 이루어진다. 즉, “금융시장은 시장의 참가자들을 리스크에 기초하여 정상화한다. 시장은 리스크들을 식별하고, 분산하고, 참가자들에게 할당한다.”(Sotiropoulos et al., 2013: 161) 예컨대 오늘날 경제적 삶에서 가장 중요한 규범 중 하나인 ‘당신의 신용등급을 관리하라’는 언명은 리스크에 기초한 개별화와 정상화(normalization)의 기술을 잘 보여준다. 과다채무나 연체로 신용등급이 하락한 개인들, 즉 ‘신용불량자’들은 특정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공익을 해친 것은 아니지만 금융기관의 리스크 평가에 기초하여 ‘비정상’ 인구로 분류된다.

이처럼 특수한 개별화의 원리에 따라 개인들을 정상화하는 금융시장의 통치술은 다른 한편 이들 ‘인구’ 전체의 질서와 조직화의 문제를 제기한다. 즉, 푸코가 18세기 경제학에 의해 “사법적·정치적 개념에 입각해서가 아니라 일종의 관리와 통치의 기술적·정치적 대상으로 지각”(푸코, 2011: 112)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하는 인구의 관리와 조절(regulation)의 문제 말이다. 푸코에 따르면 근대적 권력의 기술은 규율권력만이 아니라 인구를 대상으로 하는 안전권력의 동시적 작용을 통해 작동한다. 규율권력이 정상/비정상의 규범에 따라 구체적인 개인들을 개별화하고 규율한다면, 집합적 요소로서 인구를 대상으로 하는 통치성은 “일련의 분석과 특수한 배치를 통해 현실의 요소들이 서로 맞물려 작동”하게 하는 “조절”의 기술이다.(푸코, 2011: 85) 이런 의미에서 금융시장의 참가자들(인구들) 또한 리스크에 기초하여 개별적으로 규율될 뿐만 아니라 금융시장에서 전체적으로 서로 맞물려 작동하게끔 조절되고 관리되어야 한다. 예컨대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들의 몇 퍼센트는 특정 시기에 부도가 날 것이라 기대되며, 특정한 수의 모기지 계약은 연체될 것이라 기대된다. 정부와 금융기관은 이들 기업과 개인을 개별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통계적인 정상성의 수준에서 관리하고 조절한다. 이런 점에서 금융화는 금융시장의 참가자들을 개별적으로 규율하는 동시에 전체적으로 조절하는 권력의 기술이다.(Sotiropoulos et al., 2013: 165-166)

  두 가지 유형의 금융적 통치술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금융화는 자본축적의 동학인 동시에, 금융적 세계의 맥락에서 발전되어 온 특정한 권력의 기술이기도 하다. 금융화는 자본의 가장 물신화된 형태로서 금융증권을 통해 자본주의적 현실을 조직·재현하며, 우리는 이데올로기적으로 규정되고 해석된 리스크의 관점에서 자본관계를 표상하고 경험한다. 그러나 주류 담론은 금융을 중립적인 자원이나 수단으로 간주하면서, 금융이 자본주의적 현실을 새롭게 주조하는 자본의 권력이라는 점을 은폐한다. 이들은 금융을 사회적으로 가치 있게 운용할 수도 있다는 ‘금융의 민주화’론을 내세우는데, 이에 따르면 우리는 금융적 수단들을 탐욕스러운 금융엘리트의 수중에서 빼앗아 민주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경제성장은 물론 자유를 증진시킬 수 있다.(쉴러, 2013) 이에 대해 이단적 접근들은 금융화에 따라 채권-채무의 네트워크가 확장되면서 신용의 사회적 권력이 확대되고, 채권자인 금융자본이나 신용의 창출자인 국가가 채무자를 빚진 죄인으로서 직접적으로 예속화한다고 비판한다.(그레이버, 2011; 라자라토, 2012) 이러한 입장은 금융화를 사회적 권력관계 속에서 파악함으로써 금융이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라 개인들을 지배하는 권력의 메커니즘임을 올바로 지적한다. 그러나 화폐와 금융의 동학이 정치적 대립 이상이며, 추상적인 자본의 동학 역시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한다. 이는 금융화의 정치적 함의가 경험적 수준에서 금융자본가 분파의 지배나 법률적이고 계약적인 채권-채무 관계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은 중립적 수단이나 국가권력의 지배도구가 아니라, 무엇보다 자본주의적 권력관계를 재생산하고 강화하는 권력의 기술이다. 다시 말해, 금융은 자본의 정치학이다.


3. 한국사회의 금융화와 개인과 가계의 ‘금융적 포섭’

금융화는 1970년대부터 서구 선진국을 중심으로 전개된 자본주의의 구조적 변형과정이지만, 한국사회에서는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대내외적 모순이 폭발하면서 신자유주의적 금융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는 자본과 금융이 단순히 시간과 공간을 넘어 확장될 수 있는 추상적인 흐름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 따라 상이한 양상으로 실현되는 ‘사회적 절차들social processes’임을 의미한다.(Sotiropoulos et al., 2013: 139) 금융적 자본 또는 금융상품은 자본의 가장 순수하고 물신화된 형태이지만, 자본의 동학은 계급투쟁의 구조적인 효과로서 각각의 사회구성체에서 고유한 시간성과 맥락을 가지고 전개된다.18 즉, 금융화로의 이행은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 주요한 제도적 발전과 경제적 전략들, 국가의 규제와 정책에 기초하며, 금융에 관한 지식(담론)들과 금융혁신을 통한 금융상품의 개발 등을 전제한다. 한편 자본주의 국가는 일정한 영토 내에서 재생산을 수행하는 사회구성체에 위치하는 동시에 국가 간 체계 속의 국가이기도 하다.(백승욱, 2006: 37; 틸리, 1994) 따라서 자본축적은 개별 사회구성체 내에서의 자본과 노동의 관계, 자본가간의 경쟁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수준에서의 국제적 분업과 해외자본과의 경쟁에 의해 조건 지워진다. 그런 점에서 한국 자본주의의 금융화는 미국 중심의 금융세계화 전략 및 국제 통화제도·금융관계의 연관 속에서 선진국과는 상이한 경로로 전개되었다. 나아가 국가의 거시적인 경제운용 전략 및 사회질서의 질적 변형을 함축하는 금융화가 개인들의 일상적 삶의 형태까지 재조직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제행위 패턴 및 합리성, 규범과 윤리의 보급 등 광범위한 문화적 변동을 필요로 했다.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1960년대 이후 유지되던 한국사회의 경제적 질서 및 그에 동반된 사회적 실천의 체계는 ‘발전국가의 위기’라는 진단을 통해 문제시되었다. IMF와 미국 재무부는 물론 국가 수장과 언론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의 새로운 사회경제적 질서는 금융자유화와 금융적 수익성의 원리에 따라 재조직되어야 한다고 앞 다투어 천명했다. 위기 극복을 위한 일련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단지 부실기업의 처리가 아니라 이러한 사회개혁의 총체적 원리를 지시하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 자본시장 활성화와 소비자신용 육성이 정책적으로 추진되고, 금융적 수익추구의 논리가 산업전반을 지배하고, 주주가치 중시 및 금융적 투명성과 재무성을 중시하는 경영논리가 기업에 도입되었다.(유철규, 2000, 2008; 조복현, 2004, 2007; 지주형, 2011) 특히 자본시장 활성화와 소비자신용 육성정책은 가공자본으로서 금융상품의 거래와 유통을 활발하게 하는 한편, 개별 기업만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에 대한 대부를 통해 부와 소득을 전유하는 ‘금융적 포섭’의 핵심적인 계기들이었다.

신자유주의적 금융화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한국사회는 후발 자본주의국가로서 사회 내의 자본을 통제하여 수출대기업에 집중시키는 ‘선별금융’ 정책을 통해 경제성장을 추구해 왔다. 해외자본의 유출입이나 외국인의 국내 증권시장 투자 등은 정책적으로 규제되었으며, 민간저축을 동원하기 위해 기업이 아닌 가계에 대한 대출은 엄격히 통제되었다. 즉, 국가는 자본흐름을 통제하기 위해 금융적 자본의 유동성과 자율성을 높이는 자본시장과 소비자신용의 발전을 전략적으로 제한했다. 그 결과 개인들의 금융 행위는 습관적이고 제도적인 강제저축의 형태를 띠었으며,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와 대출은 위험하거나 부도덕한 것으로서 가급적 기피되었다. 은행의 문턱이 높아 급전이나 목돈이 필요한 서민들은 사적 신용네트워크인 ‘계’나 전당포 등을 이용해야 했다. 그러나 금융적 축적을 위해서는 개인과 가계를 금융시장의 참가자로 적극 끌어들여야 했고, IMF 위기를 계기로 개인들의 금융투자와 신용대출은 정책적으로 적극 추진되고 권장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개인과 가계를 금융적 회로에 편입시킨 ‘금융적 포섭’은 금융적 수익성의 원칙에 따른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 등 일터에서의 변화를 넘어 노동자계급의 경제적·사회적 재생산 활동을 금융적 수단에 의존하게 하는 ‘재생산의 금융화’를 추동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상생활의 세계는 단지 개인들의 상호대면적인 교류와 활동의 영역인 것만이 아니라, 자본축적의 동학 속에서 다양한 사회적 실천이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권력의 장소로 나타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중단 없는 축적(확대재생산)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생산조건의 재생산’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데, 자본축적을 확대·지속하기 위한 생산조건의 재생산은 생산수단만이 아니라 노동력의 재생산 및 생산관계의 재생산까지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잉여가치의 원천인 노동력의 생물학적·사회적 재생산은 물론 노동력의 ‘품질 관리’와 순응적 태도의 주입이 필수적으로 요청되고, 자본주의 국가는 개별 자본가들을 대신해 이러한 역할을 떠맡는다.19(르페브르, 2005; 브뤼노프, 1992; 알튀세르, 2007)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경제적·사회적 재생산 형태는 자본축적의 구조 및 국가의 노동력 관리 전략과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20 대략 1960년대부터 1990년대 후반에 이르는 산업적 축적 시기에 노동자계급의 경제적·사회적 재생산은 안정적인 직장을 기반으로 소득을 창출하고, 이를 필수적인 소비재 구입과 주택마련·등록금 마련·경조사 등 사회적 재생산을 위한 저축으로 분할해 활용하는 형태가 지배적이었다. 국가와 자본권력의 우위 하에 노동억압적인 체제가 유지되면서 저임금·장시간 노동체제가 지배적이었으나, 산업화 시기 소비재부문 중심으로 노동생산성이 급격히 상승해 1980~1990년대에 이르면 자본주의적 소비양식과 소비문화가 정착하는 토대가 되었다.(정건화, 1991)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와 억압은 안정적인 일자리 제공과 소비양식의 대중화를 통해 이데올로기적으로 관리될 수 있었다.

이처럼 산업적 축적 시기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기반으로 ‘소득->소비->저축’으로 이어지던 재생산 형태는 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고용 없는 저성장’ 체제가 정착하고, 자본시장 활성화와 소비자신용 육성 정책이 추진되면서 단절적인 변형을 겪게 되었다. 저금리 시대에 저축은 비합리적인 경제적 행위로 간주되었고, 주식투자나 펀드투자 등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가 부의 증식과 ‘대박’을 가능케 해줄 새로운 수단으로 떠올랐다. 은행들은 기업대출에서 가계대출로 수익구조를 돌려 주택담보대출을 급격히 늘렸으며, 신용카드사와 대부업체들은 대출이 편리하고 합리적인 행위라는 점을 적극 광고했다. ‘부자 되기 열풍’이나 ‘재테크 문화’는 금융시장에 대한 열광과 성공신화들을 앞세워 투기적 삶의 태도와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심리를 요란하게 전파했다. 그리하여 개인과 가계의 일상적인 재생산 활동의 형태가 ‘소득을 통한 저축의 추구에서 금융자산의 소유와 투자’로, 그리고 ‘사적 신용의 활용에서 금융기관 대출에의 의존’으로 변형되었다.

금융화를 통해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와 신용화폐 활용의 기회가 확대되었지만, 그 경제적 성패는 계급적으로 차별적인 양상을 띠었다. 중·고소득층 가계는 부채를 동원해 주택 등의 자산을 사들이는 ‘빚테크’를 통해 부를 증식하고, 금리생활자의 안락한 지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IMF 위기 이후 실업과 실질소득 저하의 위험에 처한 노동자계급은 사실상 금융투자를 통해 임금소득의 부족분을 보완하는 한편, 각종 대출을 통해 경제적 생존은 물론 주거, 교육, 건강 등의 사회적 서비스를 해결해야만 했다.(김도균, 2013; 최철웅, 2015) 즉, 중·고소득층이 ‘대출->자산증식->불로소득 증가’의 꿈을 달성했다면, 노동자계급과 빈곤층은 대출을 통해 소비수준을 유지하고 불안정한 소득흐름을 대출금 상환에 집중시키는 ‘대출->소비->소득->상환’의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무리하게 빚을 내 자산을 구입한 중·고소득층 또한 주식시장 붕괴나 주택가격 하락 등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 것은 마찬가지였다.

요컨대 금융화는 개인과 가계에 추가적인 소득 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그들의 경제적 운명을 금융시장의 성패에 의존하게 만든 모순적 과정이었다. 금융시장을 특징짓는 변동성과 손실의 위험은 이제 개인들에게 온전히 전가되었으며, 개인들은 스스로 금융지식과 신용관리 기술을 익혀 금융적 리스크를 관리하고 전반적인 생애위험에 대비할 것을 요청받고 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비롯해 2003년 한국의 신용카드 대란 등 금융위기가 과거의 금융기관이나 기업을 대신해 가계부문에서 촉발되고 있는 현실은 이러한 모순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금융화로의 전환 이후 개인과 가계의 ‘금융적 포섭’에 대한 제도적 틀이 정비되고, 규제가 풀린 은행 및 금융기관이 기업 대신 가계부문을 주요한 수익처로 삼게 되자 가계부문의 금융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2000년대 이후 저축률의 급격한 감소, 그리고 개인과 가계의 금융자산 보유 규모 및 금융부채의 동시적 증대를 통해 쉽게 확인된다.

  연도별 개인순저축률 및 시중은행 가중평균 정기예금금리
자료: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먼저 개인의 순저축률은 1991년 24.2%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꾸준히 감소해 2002년에는 0.4%까지 떨어졌다가, 이후 4% 내외에서 소폭 변동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저축률의 급격한 감소는 통상 2000년대 이후 지속된 저금리 기조에 의한 것으로 설명되곤 한다. 시중은행의 정기예금금리는 1996년 9%p에서 1998년에는 13.39%p로 올랐다가, 이후 꾸준히 하락하여 2000년대 후반부터는 3%p 수준에 머물고 있다.(<그림 2.3>) 그러나 금리하락의 추세에 비해 저축률의 하락폭과 추세가 더욱 급격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개인들이 단지 금리수준에 반응하여 저축수준을 조정했다기보다 2000년대 이후 저축을 대신하여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를 늘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IMF 외환위기 이전에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예금금리 수준이 높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축률이 높았던 것은 대안적인 투자처가 마땅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부분의 개인과 가계가 여유자금을 저축의 형태로 운용했음을 의미한다.

2000년대 들어 가계가 저축을 금융증권에 대한 투자로 전환함에 따라 가계의 금융자산이 증대되고, 특히 금융자산의 구성에서 주식과 보험 및 연금의 비중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표 2.2>를 보면 개인부문의 금융자산 총액은 한국경제의 성장에 따라 꾸준히 증가하여 1990년에 196조 원에서 1999년에는 1,000조 원을 돌파했고, 2010년에는 2,184조 원을 기록했다. 금융자산 중에서는 금융기관 예치금의 비중이 가장 높은 데서 알 수 있듯 한국의 가계는 대부분의 금융자산을 현금 및 예금 형태로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자산 예치금의 비중은 현금 및 예금 비중은 2001년 61.9%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 점차 하락하여 2010년에는 45%로 떨어졌다. 반면 보험 및 연금자산의 규모는 1990년대 이후 꾸준히 증가하여 2010년에는 24.4%로 증가했다. 이는 IMF 경제위기 이후 실직, 질병, 은퇴, 고령화 등 생애주기 상의 위험이 증가함에 따라 민간보험과 연금에 대한 금융수요가 크게 늘었음을 보여준다.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부터 2001년에 이르기까지 주식시장의 침체로 인해 11.4%에서 6.6% 수준으로 하락했다. 그러나 2002년 이후 주식시장의 활황에 힘입어 2007년에는 20.1%까지 증대했다.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14.7% 수준으로 다시 하락했으나 이후 2010년에는 18.8%로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수익증권의 비중은 외환위기 직후 자금이 투자신탁회사로 이동하는 바람에 1998년에 12.8%까지 증대하였으나 대우회사채 사태로 환매가 급증하여 2000년에 6.5%로 급감하였다. 이후 투자신탁회사의 구조조정으로 2003년에 3.6%까지 감소하였으나, 2004년 「자산운용법」 제정으로 펀드자산으로 자금이 이동하기 시작하여 2008년에는 9.7%까지 증가했다.(한국금융연구원, 2014: 49) 이를 통해 2000년대 이후 대체로 현금과 예금의 비중이 줄고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가 늘고 있으며, 주식과 펀드의 경우에는 금융시장의 흐름에 따라 변동 폭이 매우 크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개인과 가계의 금융투자가 증대했다는 것은 단지 자산구성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가계의 소득이 점차 금융적 축적의 회로로 편입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앞서 금융화를 채권과 주식 등 이자 낳는 가공자본의 축적이 증대되는 경향으로 규정하였는데, 개인과 가계의 금융투자는 금융화를 더욱 촉진시키고 확대시키는 주요한 기제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 연기금, 보험사, 펀드회사 등의 금융기관들은 개인과 가계의 투자자금을 보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글로벌 자본시장에 투자하여 수익을 추구한다. 따라서 개인과 가계의 투자행위는 본인의 동기나 의도와 무관하게 전지구적인 금융화의 동력으로 활용되고 있다. 오늘날 개인들은 일상적인 투자행위를 통해 금융화의 ‘능동적인 참여자’이자 ‘인지하지 못한 생산자'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개인 금융자산의 보유 비중 (단위 : 조원)
출처 : 한국금융연구원(2014)


기관투자가를 통한 제도화된 투자행위의 옹호자들은 뮤추얼펀드와 연기금이 대중들에게 자본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광범위한 소유권의 실현을 가능케 한다고 주장한다.21 그러나 실제로 연기금의 투자자들에게 돌아가는 소득의 양이나 통제력을 고려하면 이는 과장된 진단에 불과하다. 연기금에 대한 투자는 자본에 대한 실질적인 소유권이나 통제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수익의 일부를 받을 수 있는 권리만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펀드나 연기금의 투자가 실패해서 발생한 손실은 투자자들에게 온전히 귀속된다. 기관투자가들은 고수익을 추구하면서 주식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외환시장이나 파생상품 등 고위험 금융수단들에 대한 투자에 적극 나서는 경향을 보인다. 그로 인해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투자금액의 대대적인 손실을 야기하곤 한다. 국내의 펀드 투자자들 또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상당한 투자손실을 입고 펀드투자에 대한 열풍이 한풀 꺾인 바 있다. 기관투자가를 통한 대중투자는 ‘소유의 민주화’나 ‘고수익의 실현’이라기보다 금융시장의 위험이 대중들에게 전가되는 것을 함의하는 셈이다.(파르네티, 2002; Harmes, 2001)

2000년대 이후 특징적인 현상은 가계부문의 금융자산 보유만이 아니라 가계부채의 규모 또한 동시에 증가했다는 점이다. 금융기관에 의한 기업대출과 가계대출의 비중 차이를 보면, 1998년에는 기업대출이 예금은행 총 대출의 72%를 차지하고 가계대출은 28%에 지나지 않았으나, 2000년에는 기업대출과 가계대출이 각각 65%와 35%, 그리고 2005년에는 각각 50%로 가계대출의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그림 2.4>) 이후 2013년까지 가계대출의 비중은 총 대출의 42%~4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비은행부문 대출까지 포함한 총 가계대출의 잔액은 1997년 211.2조 원에서 2002년 464.7조 원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인 이후 꾸준히 증가하여 2013년 이윽고 1,000조 원을 넘어서게 되었다.

  예금은행의 기업 및 가계대출 추이
자료: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특히 가계 신용공급의 주체가 기존의 비은행 예금수취기관(상호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 농협 등 상호금융기관)에서 은행과 신용카드사와 같은 여신전문금융회사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외환위기 이전에 가계의 신용공급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5년 26.%, 1997년에는 26.3% 등 30%를 넘지 못한 반면 비은행 예금수취기관의 비중은 1995년 34.4%, 1997년 35.3%로 은행을 앞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에는 은행의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여 2002년 말 처음으로 50%를 넘어선 이후 2006년 말에는 59.5%로 최고수준에 도달했다. 신용카드사가 포함된 여신전문금융회사의 신용공급 잔액은 1998년 24.2조 원으로 전체 가계신용 중 13.2%에 불과했으나, 2002년에는 102.4조 원에 이를 정도로 성장해 24.3%를 차지했다. 그 결과 비은행 예금수취기관을 제치고 은행에 이어 두 번째로 중요한 신용공급주체로 떠올랐다.(한국금융연구원, 2013: 85-93) 이는 과거 제2금융권이나 사금융을 통해 제한적으로 공급되던 가계대출이 은행을 통한 공식적인 대출로 전환되고, 그 결과 가계소득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동학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공적 금융에 접근할 수 있는 혜택은 주로 담보능력이 있는 중·고소득층에게 집중되었고, 저소득층은 높은 이자를 물고 신용카드사나 대부업의 신용대출을 이용해야 했다.

  가계신용 잔액추이
자료: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이 기업대출 대신 가계대출을 적극 늘리면서 가계대출에 대한 이자와 수수료 수익이 은행의 주요한 수익처가 되었다. <그림 2.6>을 보면, 국내 일반은행의 이자수익은 1996년 기업대출 8.7조 원, 가계대출 2.4조 원으로 기업대출에 대한 이자수익이 가계대출보다 3.5배가량 높았으나, 2002년에 이르면 가계대출에 대한 수익(12조 원)이 기업대출에 대한 수익(10조 원)을 앞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후 2008년까지 가계대출에 대한 이자수익은 기업대출에 비해 꾸준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으며, 2008년에는 22조 원에 달해 10년 만에 6배가량 급증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에는 은행의 신용카드 수수료 수입 또한 1998년 1.6조 원 규모에서 2000년대 중반 5조 원 대 규모로 크게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2000년대 이후 기업대출에서 수익을 내기 어려워진 금융기관이 가계의 임금소득을 이자와 수수료 형태로 전유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내 일반은행의 이자수익 추이
자료: 금융감독원 은행경영통계


4. 금융적 매개와 금융적 헤게모니의 구성

금융화는 자본의 순수한 형태로서 이자 낳는 가공자본, 즉 금융증권의 막대한 생산과 유통에 기초한다. 금융증권들은 미래의 잉여가치에 대한 청구권으로서 자본주의적 현실을 특정한 방식으로 주조하고 재현하는 한편, 자본축적의 관점에서 미래의 잠재적 사건들을 ‘리스크’로 규정하고, 측정하고, 평가한다. 금융적 축적의 원리에 따라 사회적 관계를 재편성한 이러한 과정은 새로운 경제적 현실을 재현하는 일련의 담론들과 법률체계, 제도, 기구 등 다양한 장치들, 증권화와 신용평가 기법 같은 금융테크놀로지들의 매개를 통해 구체적인 사회적 현실로서 효과적으로 구성되고 정착될 수 있었다. 요컨대 경제적 현실은 담론적인 매개를 통해 구성되고 정착되며, 다양한 담론적 실천들이 경합하는 과정에서 특정한 담론이 경제적 현실을 포괄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획득함으로써 지배적인 ‘경제적 가상economic imaginary’을 수립한다. 그리고 이러한 담론들은 “복잡하고 다양한 경제적인 실천들을 새롭게 배치하고 질서지우며, 그것을 설명하고 분석할 수 있는 규칙과 원리를 제시”한다.(서동진, 2009: 36-37; Jessop, 2004)

IMF 외환위기를 야기한 경제적인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기존의 경제모델의 한계를 극복하고 안정적인 성장과 번영을 가져오기 위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정부, 금융기관, 기업, 개인 등 경제적 주체들은 어떤 전략과 목표를 가지고 새로운 경제 질서를 만들고 적응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경제적 현실을 재현하는 다양한 진단과 처방의 목록으로 구성된 담론들이 출현해 경합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헤게모니적 지위를 차지한 ‘경제적 가상’에 따라 일련의 하위담론, 제도, 테크놀로지 등이 개발되고 실현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전적으로 우연적이고 자율적인 담론 내적 법칙에 따라 지배적인 경제적 가상이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세계와 실천이 담론적으로 구성되는 것은 분명하나, 담론적 구성물의 사회적 효력의 여부는 실제적인 사회적 권력관계와 맥락들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페어클럽의 균형 잡힌 실재론적 접근에 따르면 “우리는 텍스트 상으로 사회세계를 특정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우리 표상이나 해석 내용이 그 구성내용을 변화시키는 일에 효력을 지니는지 여부는 다양한 맥락 요인들에 달려 있다. 이는 사회적 실재들이 이미 존재하는 방식과 누가 그 실재를 구성하고 있는지 등을 포함한다.”(페어클럽, 2012: 34~35) 물론 금융화와 관련하여 그러한 사회적 실재들은 근본적으로 자본축적 및 자본주의적 권력관계에 다름 아니다.

이런 점에서 금융화는 단지 금융상품과 부채의 양적인 증대만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경제적 현실을 재현하고 나아가 경제적 실천을 새롭게 배치하고 질서지운 지배적인 ‘경제적 가상’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예컨대 외환위기 이후 ‘금융적 논리’의 도입과 강화는 공공부문, 금융기관, 기업, 노동부문을 망라하는 구조조정의 원리이자 새로운 사회질서 마련을 위한 패러다임이 되었다.(지주형, 2011) 금융적 논리는 ‘재무적 건전성과 금융적 책무성의 강화’로 집약되는데, 이는 사실상 ‘리스크’의 관점에서 사회적 사건과 경제적 실천을 재규정하고 재해석하는 것이었다.22 앞서 보았듯이 금융증권들은 그 가치를 평가하는 데 있어 리스크 평가가 핵심적인데, 무엇을 리스크로 규정하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자체가 이데올로기적으로 구성되며 자본주의적 권력관계에 깊이 침윤되어 있다. 예컨대 노동자들의 파업은 어느 때고 부정적 리스크로 간주되나,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는 오히려 수익성을 높여줄 리스크 감쇄 요인으로 평가되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리스크는 단지 금융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기술인 것만이 아니라, 금융시장의 참가자들을 통치하는 권력의 기술이기도 하다. 금융화 이후 한국사회에서 노동자계급에 대한 통치원리는 안정적인 일자리나 복지서비스의 제공이 아니라 금융적 수단의 보급과 금융교육으로 정향되었다. 정부는 개인들의 경제적 삶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논리가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는 경쟁적 환경을 조성하고, 자기책임의 원리 하에 개인들의 금융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강변되었다.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와 공명하는 이러한 자기책임의 윤리는 금융투자에서는 원금 손실에 대한 투자자 책임의 원칙으로, 연기금과 보험에서는 각종 생애위험에 대한 자기책임의 윤리로, 소비자신용에서는 채무상환의 도덕적 의무로 번역되면서 소유권과 자기책임의 원리 하에 새로운 ‘개인주의’의 실천과 원리를 정착시켰다. 즉, 금융화는 단지 금융기관과 기업 활동에 대한 개입인 것만이 아니라, 국가가 시민들을 통치하는 기술이자 개별화된 개인들의 자기통치의 윤리와 기술이기도 하다. 본 연구는 이처럼 금융화가 개인과 가계의 광범위한 ‘금융적 포섭’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노동주체에 대한 새로운 정체성을 조직·표상하고, 개인들의 다양한 경제적 실천을 지배하는 실천양식과 윤리의 변형을 수반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본 연구의 구체적인 분석대상은 개인과 가계의 금융적 포섭을 매개한 다양한 행위자들(정부, 금융기관, 개인)과 그들이 생산해낸 담론들(정책담론, 경제학적 지식, 금융연구소의 보고서, 금융기관의 홍보물, 재테크 서적들), 제도와 법률들, 테크놀로지들(증권화, 신용평가 등)의 배치와 전략을 식별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담론, 제도, 테크놀로지들의 조합을 푸코의 개념을 빌어 금융적 ‘장치dispositif’들23이라 부를 수 있을 텐데, 이러한 장치들은 금융화된 경제적 현실을 재현하고 통치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매개 기능을 수행한다. 경제적 삶을 통치하는 데 필요한 담론들은 이처럼 실재하는 장치들, 기술들, 도구들 내에 등록될 때에만 실제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각각의 장치들이 대면하고 포획하는 대상들은 생명체들이며, 장치의 지배적 기능은 “전략적”인 것이다. 푸코는 이미 규율사회에서 장치들이 어떻게 실천, 앎, 담론, 훈련을 통해 순종적이면서 자유로운 신체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준 바 있다. 즉, 장치란 본질적으로 “주체화를 생산하는 기계”인 것이다.(아감벤, 2010: 33-35) 한편 아감벤은 현 단계의 자본주의에서 장치들이 “더 이상 주체의 생산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탈주체화라고 부를 수 있는 과정을 통해서 작동”한다는 사실을 덧붙인다. 예컨대 휴대폰이라는 장치에 스스로 포획된 나는 “새로운 주체성을 획득하기는커녕 그저 하나의 번호를 얻을 뿐”이다.(아감벤, 2010: 43)

요컨대 우리는 1990년대 후반 이후 고안되고 실현된 일련의 ‘금융적 장치’들의 배치와 전략을 식별함으로써, 그것이 ‘리스크 관리’의 원칙하에 어떻게 집합적인 수준에서 개인들의 금융적 행위를 특정한 방식으로 ‘조절·관리’하고 있으며, 나아가 개별적인 금융네트워크 내에서 금융적 규율을 내면화한 금융적 주체성을 형성하는지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푸코는 장치의 ‘전략적’ 기능을 주로 규율 잡힌 주체성의 생산에 국한시켰지만, 금융적 장치들이 자본축적의 동학이라는 추상적 법칙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금융적 ‘리스크 관리’의 장치들은 이질적이고 국지적인 장소들에서 우연히 발명되고 서로 연결된다기보다, 자본축적의 추상적 법칙에 따라 금융화를 추동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고안되고 배치된다. 또한 아감벤이 확장한 장치 개념을 통해 금융적 장치가 단지 주체화의 전략일 뿐만 아니라 ‘탈주체화’의 전략을 통해서도 작동한다는 점에 주목할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오늘날 증권화와 연동되어 있는 휴대폰 약정을 통해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채 금융화의 주요한 참여자로 살아가고 있다.

개인과 가계의 금융행위는 크게 저축과 대출로 구분되며, 각각의 영역은 상이한 금융적 장치들과 담론들로 구성된다. 정부기관, 은행, 펀드회사, 신용카드사, 신용평가기구, 대부업체 등의 금융적 장치들은 각각 고유한 합리성과 담론들을 동원해 개인과 가계의 금융적 행위를 중개하고, 관리하고, 활성화시킨다. 물론 금융기관 겸업화 정책으로 인해 이들 기관의 업무영역은 서로 중첩되었으며, 그에 따라 투자와 대출의 경계도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분석적 목적으로 저축과 대출 영역의 금융적 장치를 구분하여, 다음과 같이 각 장치를 구성하는 담론, 제도, 기관, 테크놀로지 등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금융적 장치의 구성


이들 금융적 장치들은 개인과 가계의 필수적인 재생산 활동을 매개하면서, 그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의 소득을 금융기관에 이자와 수수료 형태로 이전시키는 주요한 채널로 작동하고 있다. 개인과 가계는 금융적 장치의 매개를 통해 글로벌 금융시장과 직접적으로 연동되는 한편, 금융시장의 리스크를 공유하는 금융적 주체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다. 즉, 오늘날 사회화의 형태는 사회적 연대나 상호대면에 의해서가 아니라 추상적인 리스크의 거래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금융적 장치들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체성의 전략은 금융적 책무성의 도입과 자기책임화의 논리이다. 금융적 주체로서 투자자와 채무자는 신용등급, 금융지식 등 금융적 규범과 기준에 따라 평가되고 보상받는다. 노동자는 실업과 은퇴리스크를, 투자자는 투자리스크를, 채무자를 연체리스크를 스스로 관리해야 하며, 이를 위해 재무상태/신용상태에 대한 자가진단 프로그램과 각종 금융교육 프로그램이 제시된다. 금융지식과 신용도의 유지는 비단 금융적 접근성만이 아니라 시민적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필수적인 자질의 지위를 차지한다. 채무를 연체하거나 신용등급이 낮은 개인은 단지 금융기관에 대한 접근만이 아니라, 취업을 비롯한 각종 사회적 서비스의 제공에서도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리스크 관리의 실천은 단지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이거나 재테크를 위한 실용적 기술이 아니다. 자본관계의 가장 물신화된 형태로서 금융증권과 자본으로 대부된 신용화폐 자체가 리스크의 상품화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금융화를 통해 개인들 간의 사회적 관계는 필연적으로 자산소유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투자자들의 경합적 관계로, 또는 동등한 개인들 간의 채권-채무의 법률적·계약적 관계로 물화되어 현상한다. 주식투자를 하는 순간 투기성은 투자자 개인의 심리적 상태가 아니라 가공자본으로서 증권 자체의 변동성과 투기성에 의해 발현되고, 대출을 받는 순간 상환의 의무는 더 많은 잉여가치 생산의 의무에 종속된다. 이러한 개인적 실천들은 그 자체 자본축적의 원천이 되어 다시 자본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복무하게 된다. 즉, 금융화를 통해 자본주의적 권력관계는 개별화된 개인들 간의 계약관계나 원자화된 개인의 리스크 관리 실천으로 전도되어 현상한다. 우리는 금융화의 주요한 정치적 함의를 부의 집중이나 자산소유의 불평등을 넘어 바로 이러한 개인과 계급의 변증법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금융화는 당대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조직하고 재현하는 원리이자, 개인들의 ‘삶의 방식’ 자체이기도 하다.



*주

1)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마틴 울프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금융시장에 대한 적절한 규제의 필요성을 수긍했으나, 금융시장의 본원적인 효율성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금융: 필자]은 수천 명 혹은 수백만 명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을 적당한 비용에 공급하여 수많은 기업을 탄생시키고, 다양한 외부인들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여 기성 업체에 도전하도록 돕고, 자금의 재구성을 통해 위험을 분산하고, 평생에 걸쳐 큰 비용을 계획적으로 분산하도록 허용하고, 삶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보험을 제공한다.”(울프, 2009: 52)

2) 콜린 크라우치의 지적처럼 “금융위기는 은행들 자체와 은행의 행태에 관련된 것이었지만, 위기의 해법은 여러 나라에서 딱 잘라서 복지 국가와 공공 지출을 삭감할 필요성으로 재정의”(크라우치, 2012: 7) 되고 있다.

3) 금융에 관한 경제사회학과 문화경제학적 접근은 전통적인 경제와 문화의 구분을 거부하고, 문화 또는 일상에 분석적으로나 존재론적으로 우선성을 부여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문화와 경제의 관계를 새롭게 규정하려는 이러한 이론적 시도는 문화연구 진영 내에서의 이론적 자기반성과 새로운 정치적 전망에 대한 모색 속에서 등장한 것이다. 문화연구가 경제로부터 자율적인 문화적 영역에서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실천들에 주목해왔다면, 문화경제의 이론적 기획은 “문화와 경제의 탈분화 혹은 융합”(문화의 경제화와 경제의 문화화)을 주장하며, “나아가 새로운 자본주의는 문화와 경제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였다고 역설”한다.(서동진, 2011: 12) 문화연구에서 문화(정치)경제학으로 이어지는 이론적 궤적과 정치적 함의, 그리고 문화경제학이 포괄하는 다양한 연구대상과 쟁점에 관한 더욱 상세한 설명은 서동진(2011), 주은우(2013), 강내희(2015)를 참고하라.

4) 마르크스는 ‘노동의 이중성’ 개념을 통해 상품 가치의 실체를 형성하는 ‘추상노동’이 구체적이고 특수한 ‘구체노동’을 통해 현실화된다고 지적한다. 즉, ‘자본의 추상성’은 언제나 ‘구체적 노동’과의 변증법적 연관 속에서 작동한다. 상품은 동질적인 추상노동을 통해 형성된 가치의 담지체이기 때문에, 바로 그러한 한에서, 상이한 구체적 형태를 취하면서 구매자들의 이질적인 욕구들을 충족시킬 수 있게 된다. 이때 추상노동의 추상성은 단지 개별 사례들의 공통적인 속성을 관념적으로 추상해낸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노동과정 속에서 매일 매일 실천적으로 재생산되는 사회적 관계라는 점에서 ‘현실적 추상’이다.(Heinrich, 2012: 49) 이는 자본주의 사회를 특징짓는 화폐와 상품의 물신주의가 어째서 단순한 외양들의 오류나 착각이 아니라, 현실이 그러한 외양을 통해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 계기를 구성하는지 알려준다. 발리바르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물신주의는 “이러한 적극적인 ‘나타남’(착각인 동시에 현상)은 그것 없이는 특정한 역사적 조건들 속에서 사회생활이 전혀 불가능한 매개 또는 필연적 기능을 구성한다.”(발리바르, 1995: 92)

5) 이는 금융자본을 불로소득을 추구하는 기생적 사회집단으로 간주하는 포스트-케인스주의적 입장(스티글리츠, 2013; Palley, 2007)과 금융자본의 약탈성을 강조하는 일부 마르크스주의적 입장(마라치, 2013; 하비, 2014)에까지 널리 퍼져있다.

6) 예컨대 연간 수입이 100만원이고 이자율이 5%라면 이 연간수입은 2,000만원에 대한 연간 이자가 될 것이고, 2,000만원은 연간 수입 100만원에 대한 법적 소유권의 자본가치로 간주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소유권을 구매한 사람의 입장에서 연간 100만원의 수입은 자신이 투자한 자본에 대해 5%의 이자가 부가된 것으로 생각된다.

7) 예상 미래수익은 ‘미래수익 × 기대가치’로, 수익률은 ‘정상수익률 × 리스크’로 분해된다. 사업의 미래 전망이 밝을수록 기대가치가 올라가 자산가치도 올라간다. 정상수익률은 리스크가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 자산의 수익률이며, 부도 위험을 의미하는 리스크는 위험이 없을 때 1의 계수 값을 가진다. 따라서 리스크가 커질수록 수익률은 커지지만 자산가치는 하락한다.(지주형, 2011: 93)

8) 이에 곽노완은 “가공자본의 가격 = (할인기대배당금+할인기대매매차익+외국자본의 할인기대환차익) / 이자율”이라는 공식을 제안하면서, “‘가공자본’의 가격변동이 환율·이자율·미래에 대한 기대 등과 승수(乘數)적으로 결합되어 산업자본의 상품가격변동보다 신속하고 폭이 넓어 압도적으로 ‘투기적’ 성격을 갖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곽노완, 2006: 86, 101)

9)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언으로 더 이상 금으로 태환되지 않는 이상 세계화폐인 달러는 기본적으로 신용화폐이다. 신용화폐는 일반적 등가물로서 화폐와 마찬가지로 추상적인 부를 증대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신용화폐는 금과 같은 상품화폐나 국가가 발행한 법정화폐와 달리 자본축적의 순환에 긴밀하게 연관되어, 상이한 기능을 수행한다. 첫째, 신용화폐는 그 출발점에 결코 되돌아옴 없이 항상 유통 속에 남아 있는 다른 화폐형태와 달리 “항상 환금을 위해 발행 장소로 되돌아와야 한다.” 둘째, 다른 화폐들이 처음부터 사회적인 것과 달리 신용화폐는 자본가들, 그리고 금융기관들에 의해 “사회적 목적에 기여할 수 있도록 사적으로 창조된 화폐”이다. 따라서 “최초의 채무가 결제될 경우, 그 신용화폐는 유통에서 사라진다. 신용화폐는 사적 개인들의 활동들을 통해 끊임없이 창조되고 폐기된다.”(하비, 1995: 330) 마지막으로 신용화폐는 화폐상품에 직접 결부된 ‘실질’ 화폐와 달리 가공적(fictious) 가치를 지니고 유통된다. 예컨대 판매되지 않은 상품을 담보로 신용을 받은 생산자의 경우를 보자. 생산자는 상품의 화폐적 등가물을 실제 판매 이전에 획득해 노동력과 생산수단의 구매에 사용한다. 대부자에겐 판매되지 않은 상품에 의해 그 가치가 뒷받침되는 수표 한 매가 남고, 이 수표가 신용화폐로서 유통되기 시작하면 그것은 가공적 가치를 가지게 된다. 이때 그 상품거래가 예정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이 신용화폐는 평가절하 된다. 따라서 신용화폐는 자본축적에 위기를 일으킬 수 있는 잠재적 원천으로서 언제나 그 질이 보증되어야만 한다.(하비, 1995: 331, 357) 요컨대 “자본주의적 상품유통은 최종적 지불의 장소(사적 노동의 사회적 인정의 장소)”(브뤼노프, 1992: 63)이며, 신용화폐의 유통은 결코 사적 노동의 대상화된 형태이자 일반적인 부의 화신으로서 화폐의 ‘물질적’ 토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공황기에 모든 경제적 주체들이 금과 같은 확실한 화폐형태를 갈망하는 데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공황시기에 경제주체들은 전형적으로 확실한 화폐형태(금과 같은)를 추구하지만, 상품생산이 호황을 맞고 교환관계가 급증할 시기에는 신용화폐의 수요가 생기게 된다.”(하비, 1995: 337)

10)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에서 ‘이자 낳는 (가공)자본’의 자율성과 지배력 증대는 포스트-케인스주의적 분석처럼 개별 자본분파로서 금융자본의 자율성 및 주도력 증대와는 구분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이자 낳는 자본’의 운동은 자본축적의 동학을 일컫는 것이며, 경험적으로 구분되는 특정 사회집단의 행위(불로소득 추구)를 일컫는 것은 아니다.

11) 그 결과 1980년대 이후 서구 선진국을 중심으로 전체 금융자산의 가치총액이 GDP보다 더욱 빠르게 증가하고 증권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뒤메닐·레비, 2006; 윤종희, 2015)

12) 1980년대 이후 금융화는 주주가치 극대화 및 노동억압적인 신자유주의의 교리와 결합하여 전 세계적인 생산시설의 지리적 재분배, 인수·합병을 통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노동조합 탄압과 노동유연화 정책 도입 등을 강제했다.(맥낼리, 2011; 박승호, 2015; 본펠드, 1999; Brunhoff, 2003; Moseley, 2003)

13) 이는 미국 가계의 저축과 소비 패턴을 통해 잘 드러나는데, 1980년대 이후 실질임금이 감소하고 소득불평등이 심화되는 와중에도 소득하위계층의 소비지출은 그만큼 감소하지 않았다. 소득이 줄어든 가계들이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저축을 줄이고 대신 대출을 늘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가계대출은 사회 내 대다수 계층의 실질소득을 제한하면서 동시에 전체적으로 높은 수준의 총수요를 유지해야 하는 모순에 대해 해결책을 제공해주었다.(Barba and Pivetti, 2009: 126-127)

14)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초창기의 본원적 축적 과정에서 이루어진 농노의 토지점유권에 대한 폭력적 분리를 “농촌의 생산자로부터의 토지수탈”(마르크스, 2008b: 965)이라 부른 바 있다. 이때 생산자를 생산수단과 분리시키는 수탈(expropriation)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출발점”으로서 “수탈의 관철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목표이며 궁극적으로는 생산수단을 모든 개인으로부터 수탈하는 것을 의미한다.”(마르크스, 2010a: 590) 이에 따르면 수탈은 개인적 소유물(특히 생산수단)의 박탈을 의미한다. 이는 한편으로 생산수단을 개인의 소유물에서 해방시켜 결합된 생산자들의 “사회적 소유”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지만,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신용제도를 통해 “소수에 의한 사회적 소유의 획득”이라는 대립적 형태로 나타난다. 예컨대 주식회사는 한편으로 복수의 개인에 의한 자본의 사회적 소유를 가능하게 하는 듯하지만, 사실상 이에 대한 처분권과 지배권을 대자본가의 수중에 집중시키는 이중적인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주식회사의 운영방침은 주주총회에서 다수결로 결정되기 때문에, 주식 소유의 분산에 따라 매우 적은 지분만으로도 지배적인 대주주가 되어 자본의 통제권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김수행, 2011: 262-263) 따라서 자본주의적 신용제도는 수탈을 통한 자본의 집중이 이루어지는 주요한 수단이자 장소로 기능한다.

15) 마르크스에 따르면 고전파 정치경제학은 자본주의적 생산 조건 하에서 상품의 가치가 그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내용이 왜 그런 형태를 취하는지, 즉 왜 노동이 가치로 표시되고 노동생산물의 가치량이 그 노동시간의 길이에 따라 측정되는지에 대해서는 경제학은 아직 한 번도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다.”(마르크스, 2008a: 144) 그리하여 마르크스는 상품형태 자체에 대한 분석을 통해 사적 노동의 생산물이 가치나 상품의 형태를 취하고, 화폐로의 전환을 통해서만 사회적 인정을 받는 것을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고유한 특성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모든 인간의 노동이 동일하다는 사실은 이들 노동에 의한 생산물이 모두 똑같이 가치로 대상화되는 물적 형태를 취하며, 시간의 길이를 기준으로 한 인간노동력 지출의 척도는 노동생산물의 가치크기라는 형태를 취하며, 마지막으로 생산자들의 노동이 사회적 규정성을 확인받는 생산자들 간의 관계는 노동생산물들 간의 사회적 관계라는 형태를 취하게 된다.”(마르크스, 2008a: 134) 우리는 상품의 외관을 아무리 뜯어봐도 거기에서 ‘가치’의 실체를 발견할 수 없으며, 그것이 사회적 총 노동의 일부임을 인정받았기에 상품으로서 교환된다는 사실도 알 수 없다. 우리는 상품을 교환할 때 그것이 인간노동의 대상화된 가치의 담지자임을 의식하기 때문이 아니라, 교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결과적으로 서로 다른 노동을 등치시키게 된다. “그들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면서 그렇게 행한다.”(마르크스, 2008a: 137) 이를 통해 인간 자신들이 맺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사회적 관계는 그 자체 천부적인 사회적 속성을 지닌 사물과 사물 사이의 관계라는 환상적 형태를 취하게 된다. 마르크스는 이를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 생산되는 순간 이들에게 달라붙는 것으로서 상품생산과 불가분의 것인 ‘물신숭배’라 부른다.(마르크스, 2008a: 134-135)

16) 사회적 재생산 영역의 금융화는 사회적 권리로 제공되던 필수적 서비스들이 상품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본가 계급에게는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교리 하에서 공공 서비스들의 사유화(privatization)가 거세게 진행되었는데, 특히 기간시설(infrastructure)에 대한 증권화는 대형 헤지 펀드와 투자가들에게 새로운 ‘골드러시’를 불러왔다. 고속도로, 발전소, 수도시설, 공항 등 장래에 수익흐름이 예상되는 자산들에 대한 증권화는 그러한 기간시설의 공급이 갖는 준-독점적 성격 때문에 장기간의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해주는 것으로 간주되었다.(Leyshon and Thrift, 2007: 101) 더욱이 그러한 기간시설에 대한 투자는 정부의 직간접적 보호를 받기에 손쉽게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으며, 운영상 적자가 발생하더라도 세금을 통해 보조되곤 한다. 반면 사회적 서비스의 상품화로 인해 가계는 더욱 더 화폐형태의 소득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소비지향적인 문화와 행태가 공공적 영역에까지 확산되기에 이른다.

17) 이는 권력의 기술로서 리스크 개념을 중심으로 마르크스의 가공자본에 대한 분석과 푸코의 인구 통치성 분석이 유용하게 결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푸코에겐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분석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의 틀로는 여전히 한계가 있기도 하다.(Sotiropoulos et al., 2013: 165) 이에 우리는 이하에서 푸코의 통치성 분석을 금융시장의 분석에 한정하여 활용한다.

18) 알튀세르에 따르면 “자본-노동의 모순은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이 모순이 그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구체적인 역사적 정황들과 형태들에 의해 항상 고유화”(알튀세르, 1997: 123)된다. 이러한 모순의 복합적 결정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알튀세르가 제안한 개념이 ‘사회구성체’이며, 역사적으로 형성된 계급 상호간의 관계의 총체로서 구체적인 하나의 ‘사회구성체’는 경제적 토대인 하부 구조와 법적·이데올로기적 관계인 상부구조와의 총체로 구성된다. 이때 경제적 토대인 하부구조와 법률적, 문화적인 관계들인 상부구조의 관계는 “생산양식(경제적인 것)에 의한 최종층위에서의 결정과 다른 한편으로 상부구조들의 자율성과 고유한 효력”(알튀세르, 1997: 130)으로 규정된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의 적대적 계급관계를 구성하는 생산양식 내에서의 모순은 ‘결정적’인 모순이긴 하나, ‘유일하게 결정적인’ 모순은 아니다. 구체적인 정세 속에서 모순은 단순하게 표현되지 않으며 언제나 ‘과잉결정’된 모순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이러한 건축학적 은유와 모순의 복합적 결정에 대한 인식이 상부구조의 ‘상대적인 자율성’과 토대에 대한 상부구조의 피드백(feedback) 등을 사고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유용하지만, 여전히 ‘묘사적’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상부구조의 ‘기능’과 ‘작용’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선 생산조건의 재생산이라는 관점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확신에 이르게 되고, 그에 따라 건축학적 은유로 표현되는 ‘토픽의 문제설정’에서 ‘재생산의 문제설정’으로 넘어가게 된다.(알튀세르, 2007: 232)

19) 그리하여 ‘재생산’ 개념은 마르크스주의의 정치경제학적 분석틀과 비판적 문화연구의 분석틀이 접합될 수 있는 주요한 교차점에 위치한다. 강내희에 따르면 “일상적 삶의 방식으로서 문화의 작동을 살펴보는 일이 사회적 총체성 이해의 핵심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범한 문화연구가 마르크스주의 문화연구로 다시 태어난 것은 마르크스주의 내부에서 이런 이데올로기 개념이 수립되어 문화를 새롭게 이해하는 길이 열렸기 때문”(강내희, 2015: 26)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사회 분석은 “자신의 도구들로부터 분리되고, 자신의 물질적 노동조건들을 오직 고용자와 맺은 ‘계약’과 결부시켜 생각하며, ‘자유로운’ 노동 계약의 (법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외양 속에서 노동시장에서 상품처럼 팔리는 노동자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묘사와 분석이라 할 수 있으며, 일상에 대한 분석을 경시한다는 일각의 비판과 달리 “마르크스주의는 실로 전체로서 일상생활에 대한 비판적 지식”(Lefebvre, 2014: 168)이라고 할 수 있다.

20) 그러나 한국사회의 노동력 재생산 형태에 관한 기존 연구는 주로 가사노동, 돌봄노동 등 재생산노동의 여성화(강이수 외, 2015; 신경아, 2014)나 복지의 시장화(신경아, 2013), 노동력재생산 구조의 변화를 반영하는 노동력가치의 변화에 대한 실증분석(정건화, 1991)에 초점을 맞추어, IMF 위기 이후 그것이 자본축적 구조의 변화와 더불어 금융화 된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주목한 연구는 드문 편이다.

21) 심지어 피터 드러커는 기관투자가의 엄청난 권력을 목격한 후 연기금의 진짜 소유주들인 노동자계급이 사회적 권력을 장악할 것이라는 기이한 전망(연기금 사회주의의 출현!)을 내놓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국민연금의 주식보유 확대에 대해 2004년 새누리당의 유승민 의원이 “국민연금이 주식을 사서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면 정부가 연기금을 통해 기업을 지배하는 '연기금 사회주의'가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은 바 있다.(“'연기금 사회주의' 논란 재점화되나”, 서울경제 2015.8.7.)

22) 예컨대 이제 기업의 전반적인 활동은 “운영 리스크, 상품시장 리스크, 인풋 리스크, 세금 리스크, 법률 리스크, 규제 리스크, 그리고 금융리스크” 등 7개 범주의 “리스크들을 조사하고, 발생확률을 (따로 또 같이) 평가한 후, 다음 단계는 기업가치에서 특정 리스크의 효과를 평가하는 것”(츄, 2009: 135)으로 규정된다. 이러한 리스크의 범주화와 평가의 원리는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를지언정 기업만이 아니라 공공기관, 금융기관, 시민단체, 가계의 경제운용 등 모든 경제적 주체로 확장될 수 있는 형식적 원리로 기능한다.

23) 푸코는 생명체를 통치하고 포획하는 모든 것들, 즉 “담론, 제도, 건축상의 정비, 법규에 관한 결정, 법, 행정상의 조치, 과학적 언표, 철학적·도덕적·박애적 명제를 포함하는 확연히 이질적인 집합”으로서 이런 요소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일컬어 ‘장치’로 규정한다. 이에 따르면 자본주의적 발전은 감옥, 정신병원, 판옵티콘, 학교, 고해, 공장, 규율 등과 같은 “장치들의 거대한 축적과 증식”으로 정의될 수 있다. 아감벤은 장치를 더욱 일반화해 “생명체들의 몸짓, 행동, 의견, 담론을 포획, 지도, 규정, 차단, 주조, 제어, 보장하는 능력을 지닌 모든 것을 문자 그대로 장치”로 규정한다. 따라서 펜, 글쓰기, 문학, 담배, 컴퓨터, 휴대전화, 언어 등도 모두 장치로 이해된다.(아감벤, 2010: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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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화 , 신용 수탈 , 가공자본 , 증권화 , 금융적 헤게모니 , 문화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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