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조선업 산증인…A부터 Z까지 사라지는 게 한스럽다”

대우조선해양을 보라 2부 - 진격의 양 부장이 말하는 조선업 오디세이

대우조선노동조합 양병효 고용안정부장은 총고용 보장 요구 카드를 꺼내든 이유를 구호를 앞서는 정책의 구체성에서 찾았다. 이를 설명하면서 최저시급 1만원과 아파트 경비원 얘기도 했다.

“총액제에서 총고용제로 바꾸는 것은 패러다임의 전환이 될 것입니다. 최저시급 1만원으로 높이자고 하는데 구호는 좋다 이거예요. 근데 실제로 그렇게 되면 현재 제가 받고 있는 연봉도 시급으로 환산하면 만원이 되지 않는 걸요.”

구호나 선언으로 제도를 만들 때 엉뚱하게 피해를 보는 사람들 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로 경비원, 청소원을 꼽았다. 그는 과거 아파트 자치회장으로 있으면서 주민들로부터 관리비 인상을 설득해 경비원과 청소원의 고용을 유지했던 적이 있다.

“시급 올라가고 나서 아파트 경비원, 청소원들 많이 잘려나갔어요. 시급 올리는 게 문제라는 게 아니라요. 정작 임금 인상에는 민감하면서도 그 돈을 우리가 내야 한다고 생각할 때 관리비 500원 내는 것도 부담스러워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얘기하고 싶은 거죠.”

그러면서 덧붙인 얘기는 제도를 만들 때 피해를 보완하고 방지하는 등 체계적으로 이를 수립하지 않으면 그것이야말로 포퓰리즘이 아니겠냐는 것이었다.

사실 총고용 보장 요구 외에 양 부장이 가장 많이 한 이야기는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과 무궁무진한 잠재력, 그리고 30년 가까이 한 업종에 몸담으며 느낀 조선업에 대한 고언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을 보라 2부는 한 조선 노동자의 땀과 눈물과 회한이 담긴 이야기, 한국 조선업의 오디세이라 할 수 있다. 아래 글부터는 양병효 부장을 화자로 설정해 최대한 그의 표현을 살렸다.

조선업은 클러스터 산업, 해양플랜트 시행착오는 훗날 ‘보약’될 것

사실 중국 조선업의 기술력은 크게 우려해도 되는 수준이 아닙니다. 예전에 노르웨이에서 중국의 기술력이 한국을 10년 안에 따라 잡을 것이라고 한 게 지난해였어요. 그러나 지난해 한국과 중국의 조선업 기술격차는 다시 10년으로 벌어졌습니다. 노르웨이에서는 앞으로 중국이 한국의 기술력을 언제 따라잡을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밝혔습니다.

그 원인은 숙련공에서 찾을 수 있지요. 일본은 과거 조선업이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이를 사양산업으로 판단하고 우수한 기술이 몸에 베인 숙련공들을 직장에서 내보냈습니다. 그 결과 규모에서나 질적으로 한국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경쟁력이 후퇴했어요.

일례로 몇 년 전 미쓰비시중공업에서 2조원짜리 해양플랜트를 2건을 수주했는데 이는 일본 조선업황을 고려할 때 기적적인 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해양플랜트를 건조할 준비를 갖추지 못한 이 회사는 해양플랜트 1기 만드는데 예상 비용 1조원을 두 배 가까이 초과하는 2조9000억원을 들여 겨우 하나를 완성했습니다. 앞으로 마저 남은 플랜트 하나를 완성해야 하는데요. 이 때문에 수주를 유치한 CEO는 애물단지 하나를 들여놨다는 지탄을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원인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이는 조선업은 전후방 산업의 연관관계를 잘 따져봐야 하는 클러스터 산업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해양플랜트만 하더라도 인력, 설계, 용접, 배관기술 등 기술은 물론 인력까지 갖춰야 할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아요. 컨테이너선이나 LNG선을 만드는 데에도 이런 각각의 클러스터들을 갖춰야만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분야별 산업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해양플랜트 산업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은 기술력 확보를 위한 시행착오로 봐야 합니다. 과거 국내 상선 기술도 이런 학습과정을 거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전 분야별 클러스터를 갖출 수 있었습니다. 큰 고비만 넘기면 국내 조선업이 해양플랜트 분야에서도 확고부동한 세계 1위의 경쟁력을 다져나갈 수 있습니다.

비정상적 고용 구조의 정상화, 조선업 기술력 유지 위해 중요

해양플랜트 산업 초기 모 기업에서 드릴십 하나를 건조하는데 500억 규모를 수주하면 300억 정도가 남았다고 합니다. 모두 직영이었고 자그마한 규모로 시험적으로 했을 때에 이 정도 케파를 이뤄냈다는 겁니다. 해양플랜트가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고, 고부가가치 산업임은 분명하다는 얘기죠.

이것이 지금의 걷잡을 수 없는 문제를 낳은 이유는 우선 수요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초창기 한 해에 5건을 수주하던 것을 거제의 경우 연간 20건의 사업을 따냈죠. 의도한 건 아니지만 삼성과 대우가 자연스럽게 각각 이를 절반씩 진행하게 됐습니다.

이런 와중에 조선 3사의 무분별한 제살 깎아먹기식 덤핑 수주 경쟁이 발생했습니다. 납기를 맞추려다보니 인력도 가릴 것 없이 투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량팀 역시 일은 넘치는데 사람은 없다보니 고육지책으로 만들어낸 아이디어였죠. 물량을 맞춰야 되다보니 물량팀이 생겨난 겁니다.

제가 이 일을 시작한지가 어느덧 28년이 되었습니다. ‘6GR’ 자격증도 그 때 얻었어요. 파이프용접에서 그보다 더 높은 인증은 없죠. 그런데 지금 대부분 유입되는 인력들은 그라인더에 대해서 잘 몰라요.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야 되는데 막막하죠. 선박을 만드는 대부분의 인력을 파견직보다 처우가 열악한 일용직으로 투입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입니다. 조선업의 기술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지금의 비정상적인 고용구조는 바꿔야 합니다.

해양플랜트 초기 발주처도 조선소도 막막하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발주처로부터 받은 플랜트 도면은 설계라기보다는 아이디어 스케치에 가까웠죠. 이것에만 의존해 모든 제조 과정을 마무리해야 했어요. 일괄적인 공사 수주 형태인 ‘턴키’ 방식도 문제였습니다. 과정상의 오류에 대한 수정과 책임은 국내 조선사들이 모두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죠.

프로젝트를 발주하는 그들도 이를 수행하는 조선사도 해양플랜트에 대해서 잘 몰랐다고 보면 됩니다. 플랜트라는 게 상선을 만드는 일과는 또 달라서 다양한 면을 고려했어야 하는데 이에 대해 실기했다고 봐야죠.

해양플랜트 프로젝트 하나당 고용효과, 대기업 하나와 맞먹어

기가 막힌 건 중국과 일본도 한국만큼 해양플랜트를 해내지 못한다는 겁니다. 현재 해양플랜트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나라는 사실상 한국밖에 없어요. 중국은 기술력의 부재를 선주에게 자금을 직접 지원해주는 방식으로 메우고 있어요. 때문에 발주처에 건조비용을 줘가며 수주를 유치하는 중국은 기술력에서 그만큼 정체를 겪을 겁니다.

사실상 조선업이 빈사 상태나 다름없던 일본은 엔저 호황을 노리는 아베노믹스를 바탕으로 이제 도크 시설 투자를 재개하고 있어요. 하지만 한국을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어요. 지금의 위기만 버텨낸다면 대한민국 해양플랜트 산업은 여전히 세계 1위입니다.

해양플랜트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입니다. 해양산업이 생선만 잡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건 누구나 다 아실 것입니다. 해양 분야에서는 파생, 연관 산업이 무궁무진합니다.

고용효과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상선 하나를 만드는 데 200여명의 인력이 3~6개월 동안 투입된다면 해양플랜트의 경우 프로젝트 하나에 보통 1~2년, 최대 3년까지 1000여명의 인력이 투입됩니다. 프로젝트 하나가 대기업 하나와 맞먹는 거죠.
시설이 있는 한 해양플랜트는 포기할 수 없는 분야입니다. 플랜트산업이라는 게 석유시추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요. 크레인 중량톤수는 시설만 따져도 한국이 모든 면에서 세계 1위입니다. 쓰지 않는다고 이게 어디로 사라지는 게 아니잖습니까.

중국의 추격? 일본도 우리 따라잡으려면 3년은 더 걸려

일본이 이제 막 해양플랜트를 하려고 도크를 파고 있는데요. 한국을 따라잡으려면 3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시설을 만들고는 있지만 이를 담보할 인력도 기반도 없습니다. 프로젝트 하나를 만들려고 해도 이를 가능케 하는 기반시설과 하청까지 인력체계가 있어야죠. 아까 해양크레인이 지나가는 풍경을 보셨겠지만 그냥 바다위로 배가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길이 있어야 하고 통행을 제어하는 관제가 있어야겠죠. 산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후방, 연관 산업을 제어하는 컨트롤타워가 있어야죠. 대한민국 정부는 이 점에 있어서 매우 취약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란 경제제재가 풀리면서 한국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이란을 방문하는 등 해외 세일즈를 하고 있지만 중국은 돈이 없다고 하는 이란에 직접 선박 건조비용을 지원하면서 중국으로 물량을 돌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런 선박금융에 대한 시도가 첫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이와 동시에 수백여 개에 달하는 조선업체를 50여개 안팎으로 줄이는 통폐합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산업 유치를 위해 돈을 줘가며 이런 생산 설비들을 유치했지만 지금은 신창타이(뉴 노멀, 저성장) 성장통을 겪고 있죠. 우리 조선업체 물량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겁니다.

다만 중국은 군이 보유한 기술력이 막강합니다. 이것이 민간에 이양되는 순간 국내 산업뿐만 아니라 세계 제조업이 올킬 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지적도 있지만 이는 아직 요원한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조선업을 살리기 위한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국내 조선업은 그야말로 훅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시설은 갖췄으니 준비는 돼 있습니다.

예전에는 국내에 더 이상 조선소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없어서 중국으로 많은 조선업체들이 건너갔지요. 지금은 그 조선소에 더 이상 일이 없습니다. 미국 오바마 정부도 세무조사 등을 압박하면서 애플의 공장을 미국으로 유치했지요. 한국이라고 못할 게 없습니다.

현대중공업이 원래 진해만에다가 조선소를 지으려고 했는데 지금 그곳에 STX가 있죠. 아마 현중도 당시 군산에 땅을 구하지 못했다면 중국으로 이전했을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 업체가 해외에서 프로젝트를 따내면서 여섯 척 중에 세 척은 현지에서 작업해달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기술 이전을 노리는 것인데, 그렇더라도 기술을 옮겨가지 못합니다. 인력이 있나요, 교육체계가 있나요. 상선, LNG선, 플랜트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업황이 어렵다고 해서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썩힐 수는 없습니다. 조선업 역시도 살아남는 자만이 모든 것을 독식하는 치킨게임에 돌입한 상황입니다.

정부도 조선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는 인식 확립해야

대기업 직영 노동자들이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일자리를 나누고 이를 바탕으로 원하청 노동자들이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에 맞서면 중국에 넘어가 있는 물량을 능히 국내로 이전할 수 있습니다. 이걸로 어려운 시기 2년을 잘 버틴다면 조선업 1위 자리는 무리 없이 지켜낼 수 있습니다.

버티컬 용접이라고 아십니까. 예전에는 어마어마한 높이의 선박을 A, B, C 3층으로 나눠 세 명의 용접사가 작업을 했다면 지금은 곤돌라를 활용해서 1명의 용접공이 빠른 속도로 이를 해냅니다. 설비 자동화 못지않은 기계화 용접이라고나 할까요.

직경 5미터나 되는 거대한 파이프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를 용접사가 직접 몸을 움직이면서 용접했다면 지금은 어떨까요. 그렇습니다. 파이프를 돌려서 빠른 속도로 깔끔하게 용접작업을 끝냅니다. 바로 이런 공정 기술력을 보고 유럽에서 경탄을 금치 못하는 거죠.

장비, 기술, 훈련 3박자가 모두 갖춰져 있는데 우리가 지금 이걸 포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유럽이 과거 리벳이라는 공법을 통해 선박을 건조했다면 일본은 용접을 통해서 그 패러다임을 바꿨고 한국은 용접기술을 시스템화, 고도화해서 다른 나라에서 따라잡지 못하는 플러스알파를 이뤄냈습니다. 해양플랜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설계와 제작공법에 대한 기술을 확보하면 보통 프로젝트 하나에 2조원이 투입되는데 그중 5000억 원을 이문으로 남길 수 있습니다. 이 역시 인력과 기술연구로 해낼 수 있습니다. 한국은 초창기 시행착오를 많이 겪으면서 이에 대한 예방주사를 맞았습니다. 산업의 백년대계를 바라보는 정부의 투자가 아쉬운 대목인데 놓칠 수 없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는 인식의 확립이 필요합니다.

기록과 기술 축적의 소중함,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우리 조선업이 기록과 기술 축적의 소중함을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배 하나를 만드는 데 100여개의 공정 기술이 필요하다고 칩시다. PC에 한 사람이 매뉴얼화해서 정리하는 데만도 1년이 걸리는 소중한 노하우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프로젝트 하나 끝날 때마다 이걸 쉬운 말로 버립니다. 기술 유출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이로 인한 손실도 만만치 않습니다.

언제는 이러한 문제 때문에 이미 해봤던 것인데 데이터가 없어서 과거 같은 프로젝트를 했던 인력의 기억에 의존해서 처음부터 다시 했던 적도 있었고요, 이런 문제가 빈번해지자 한 업체에서는 담당자가 노하우를 그대로 버려서는 안 된다며 따로 모아뒀던 시방서 등을 다시 찾아와 이를 바탕으로 무리 없이 일을 진행했던 적도 있습니다.

잠수함 등을 구축한 율곡 사업 때도 그랬고, 대우에서도 유람선을 만들 때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모두 한 번 하고 그칠 프로젝트라고 생각했지만 얼마 후 또다시 똑같은 프로젝트가 들어왔고 흩어진 인력들 기술력 재조합한다고 또 1년을 허비했지요. 사실상 무에서 유를 창조한 건데 기록 보존, 노하우 축적에 대한 신중한 고려가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요즘에는 더욱 심해져서 해외로 기술 유출되면 안 된다고 사진도 못 찍게 하는데 최소한 우리 스스로 노하우를 꼭 쥐고 있을 방편은 마련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자료도 인력도 부서도 기술력을 지키기 위해 유지하고 보수해야 하는 겁니다. 부서 통폐합 역시도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미친 짓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라고나 할까요.

알파고와 이세돌의 차이, 조선업은 몸으로 기억하는 삶의 전체

87년 노동자 대투쟁 세대, 기술산업 세대… 우리를 부르는 이름은 다양합니다. 감히 말하건대 열정과 혁명이 있던 세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제 5, 6년만 있으면 열정이 있던 한 세대가 사라집니다.

우리는 조선업의 A부터 Z까지 다했었습니다. 현장에서 관리까지, 노조에서 대정부투쟁까지 안 해본 게 없습니다. 청춘의 시간과 돈과 열정을 모두 조선업에 쏟아 부었습니다. 월급 10만원 받아가면서도 타자기, 마이마이 자비로 구해다가 노하우들을 기록하고 녹음해가면서 일을 배웠습니다. 투자라고 해야 할까요. 이런 문화라고 해야 될까요. 조선업은 우리들에게 생명과 같은 말입니다. 이것을 후예들에게 물려주고 싶은데요.

현장에 있었던 우리들도 조선업에 대해서 10년 정도를 내다보고 긴 호흡에서 이를 살려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국가라면 조선업을 백년대계는 아니더라도 20~30년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플랜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도면을 4B연필로 그리던 때부터 3D 오토캐드로 설계하는 과정까지 현장에 있었습니다. 제도샤프 때도 캐드가 처음 나왔을 때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 일이 결코 단순노동이 아닙니다.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합니다. 저희들에게 조선업은 몸으로 기억하는 삶의 전체입니다. 캐드로는 데이터를 입력해 3차원으로 설계할 수 있다지만 이게 정확히 무엇을 뜻하지는 지는 컴퓨터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연필로 그리던 때부터 시작한 세대지만 머릿속으로 상상해서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직관과 이유로 작업을 합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이런 지혜를 이제 빨리 물려줘야 합니다.

배 한 척 만드는데 그날 기온 따라 시간마다 다르고 비철, 철 용접하는 방법이 각각 다릅니다. 햇볕이 내리 쬐니까요. 철판이 더울 때는 50mm까지 늘어납니다. 이에 맞춰서 작업을 해야 합니다. 수치로 따지면 무척 거대해보이지만 비율로 따져보세요. 반도체 공정보다 더욱 세밀한 공정이 바로 배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크레인 하나 움직이는 데도 거대한 땅을 기계처럼 관제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해양크레인도 트랜스포터도 마찬가지죠. 하늘에서 보아야 비로소 라인이 바로 보입니다. 조선업은 이러한 개념을 체득해야 하는 산업입니다.

시계열에 따라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시스템으로 배 한척이 만들어집니다. 사람이 라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이 기술이 달리니까 자본과 노동으로 이를 극복하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국내 조선업 기술력을 따라 잡을 수 없습니다.

유럽이 경악한 한국 노동과 자본의 승리, 정부는 도와준 게 없다

일본이 선대방식으로 배를 만듭니다. 유럽에서 국내 조선업을 견제하기 위해서 도크를 만들지 못하도록 했는데 현대중공업이 블록을 옆으로 밀어내는, 삼성은 앞으로 밀어내는, 대우는 뒤로 끌어내서 건조를 마치는 기술을 도입했죠. 도크로 규제를 할 때 해양 크레인 기술로 이를 극복했습니다. 유럽에서는 허를 찔린 겁니다. 노르웨이 사람들이 실제 국내 조선소에서 이 기술이 시현되는 걸 보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자본과 노동 스스로 생존전략의 차원에서 난관을 이겨냈습니다. 정부는 도와준 게 없습니다. 조선업을 노동집약산업으로 본 게 패착의 원인입니다. 숙련공을 필요로 하는 노동기술집약형 산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 불과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정밀화, 자동화에 가까운 시스템화를 요하는 작업입니다. 그러면서도 고용효과도 만만치 않은 산업입니다. 결국 사람의 손끝에서 이뤄지는 산업이라서요.

노동기술집약형 산업을 노동집약형 산업으로 오판하고 중국으로 산업의 무게추가 옮겨 갈 것으로 판단한 정부의 잘못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라도 이 점을 인식하고 조선업이 사양산업이 아닌 위기 후에도 한국이 세계시장을 주도해나갈 첨단산업이라는 이해를 밑바탕으로 지원을 다각화해야 합니다.

조선업은 사실 IMF 때 더욱 득을 본 산업인 게 사실입니다. 환차익이 있으니까요. 환율이 800원에서 1500원으로 솟구치는 동안 1조원짜리 프로젝트가 2조 5000억 원짜리 프로젝트 로 뛰기도 했었습니다. 잘 나갈 때 멀리 봤으면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유비무환이라고 여유가 있을 때 멀리 보고 미리 준비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자본의 투자와 노동의 땀으로 이만한 기술력을 확보했고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습니다. 그 전에도 물론 그랬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제대로 해준 게 없습니다. 선박금융만 해도 그렇고, 지금까지 구조조정을 지지부진하게 이어온 것도 그렇습니다.

자본은 말이 안 통하고 관료들은 묵묵부답입니다. 내부에서 소통하지 못하고 아무런 수를 쓰지 못하면 국내 조선업도 세월호처럼 침몰하고 맙니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자본은 노동계 요구에 꼼짝 않습니다. 관료는 언론의 기사 하나에 흔들립니다.

남동임해공업지대의 운명, 조선업 3년 성패에 달렸다

조선업은 산업연관성이 커 각 분야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는 건 말씀 드렸죠. 우리는 남동임해공업입니다. 조선소 하나 무너지는 게 공장 하나 문 닫는 게 아니라 이와 관련된 남동임해공업 전체가 무너지는 일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앞으로 3년 남았습니다.

조선업대표자회의, 조선업노조연대회의 같은 데 나가면 회사별로 온도차가 있습니다. 한 차례 구조조정을 거치며 삼호, 한라 등을 품에 안은 현대중공업은 상대적으로 여유롭고, 삼성중공업은 점령군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죠. 대우조선해양은 당사자니까 급합니다. 당장 인력들이 구조조정을 받아들여야 하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치에 있습니다. 10년 전부터 이런 얘기들은 있어 왔지만 이제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노동과 산업적 관점에서 모두 들여 봐야 하는 문제입니다. 사내하청과 물량팀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습니다. 정규직 노조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야만이 조선업의 다음을 도모할 수 있고 후배들에게 소중한 자산을 물려줄 수 있습니다.

정규직이 사내하청 문제에 요만큼 양보하면 효과는 이만큼 커집니다. 정규직 노조가 사내하청 문제에 대안을 제시하는 대전환이 이뤄지면 정책에 있어서 고용이 빛을 발하게 되고 사회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시간 예치제, 총고용 보장 요구 등은 획기적 대응이고 실현 가능한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함께 맞는 비와 같지요. 명분도 크고, 다른 당사자들에게는 또 커다란 과제를 안겨줄 것입니다. 물론 이 같은 제안이 선언과 독단에 그쳐서는 더더욱 아니 될 것입니다. 모든 구성원의 동의가 필요하고 플랜에 맞게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금속노조, 현장, 민주노총 등과 합의해서 추진해야 할 과제이지요. 다만 논의 자체가 파급력 강한 이슈가 될 것은 분명합니다. 가능성을 보고 전선을 구축하고 토론을 해나간다면 시사점 있는 성과를 이룰 것입니다. 정규직 노조의 양보는 최초의 시도가 아닐까요. 대우조선노조에서 촉발된 논의가 금속노조로도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조선업의 백년대계를 본 플랜이 학계에서도 확산됐으면 좋겠고, 노동과 정부, 자본이 조선업의 미래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에 현재 해양플랜트설계과는 해양대학교 하나밖에 없습니다. 상선을 연구하는 조선공학과는 다르죠. 조선업, 이대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 때문에 조선업종노조연대에 정책연구소를 만들고 그 해법을 찾고자 했습니다. 조선, 해양, 플랜트 모두 놓칠 수 없는 과제이자 열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제가 이 일을 시작한 지가 벌써 29년을 내다보고 있고요. 이렇듯 20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한 조선업의 A부터 Z까지 알고 있는 베테랑들이 남해안 조선업의 주축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불과 몇 년 후에 산업현장을 모두 떠나게 됩니다. 이 소중한 기술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물려줘야 하는데 업황은 좋지 않고 이 같은 고용 구조로는 기술을 전수하는 것도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일을 가르쳐줄 준비는 다 돼 있는데 말입니다.
덧붙이는 말

이채훈 기자는 울산저널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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