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 이수진을 듣다

[워커스11호_고급ZINE] “불편할지라도 모든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개입하는 것”

하림 / 음악가이자 화가 그리고 기획자. 자기만의 음악색이 또렷한 보헤미안 뮤지션. 한국의 히피라는 호칭이 붙는다.
이수진 / 설치 작가. 공간과 장소를 품는다. 버려지거나 가려진 공간과 틈새를 살피고 질문을 던진다.



  사진 정운 기자


사라진 이야기와 공간을 들여다본다. 국가와 사회 시스템이 일방적으로 사용하고 버린 장소에 새로운 이야기를 불어넣는다. 설치 작가 이수진은 삶을 품었던 장소와 공간을 스쳐 지나가지 않는다. 그곳의 사회적, 경제적, 역사적 맥락을 살피고 귀를 기울인다. 2012년 도하 프로젝트(금천구 독산동 441-6번지, 육군 도하 부대가 주둔했던 곳에 예술가들이 자신들만의 특별한 생태계를 만들어 간 프로젝트)의 기획자와 참여 작가로 인연을 맺었던 하림이 이수진 작가를 만났다.

하림(하)2012년 도하 프로젝트를 통해 이수진 작가를 알게 됐는데, 작업실은 처음이다. 금천예술공장에 온 지 얼마나 됐나.
이수진(이)  맞다. 도하 프로젝트에서 처음 만났다. 그 이후 금천예술공장은 서울문화재단에서 하는 레지던스인데, 2014년 선정돼 들어왔다. 한 번 연장돼 올해로 2년째다.

      레지던스에 들어와서 지내는 생활은 어떤가. 상대적으로 국가의 보호를 받는 예술가가 된 것 아닌가.
       작가가 영원히 지원받는 건 없다. 그 프로젝트의 기획에 따라서 지원받는 것들이 있고 그 기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결국 0이 된다. 지원금이나 정기 공모 사업을 통한 국가 기금, 레지던스라는 제도적인 공간을 지원받기도 하지만 그 시절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간다. 이런 공동체 현장, 도시 공간의 틈으로 들어갈 때 그 장소에서 상호 작용 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많다. 그래서 공간에 대한 큰 욕심은 없다.

       주로 ‘장소’라는 키워드를 마음에 품고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 같다.
         맞다. 도하 프로젝트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도하 때 작품으로 삼은 공간은 폐허가 된 군부대였다. 한국은 자본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는 나라다. 동시대 권력의 작동 방식과 자본의 문제로 인해서 정체된 공간, 그 자본의 흐름에 의해서 버려지거나 개발이 유보된 빈 공간이 있다. 이런 장소들이 틈이라고 생각했다. 자율성을 제한하는 사회 시스템의 틈새로 봤다. 틈을 통해 바라볼 수 있는 실존적인 문제를 담고 싶었다. 우리가 사는 곳 중에 장소가 아닌 곳이 없다. 삶을 담는 몰드로서의 장소를 바라보고 그곳에 대한 리서치가 아니라 생명력을 대입하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자본이나 세상 돌아가는 시스템의 부조리함으로 생명력을 잃어버린 것인가. 그 틈을 본인의 시각으로 생명력을 부여하는 작업 같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장소 자체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장소, 공간, 결국은 삶을 있는 그대로 품고, 사는 것에 대한 맥락이 장소에 있다. 1980년생인데 그 시대에 잠실 인근 주공 아파트에 살았다. 고등학교 이후에는 분당이라는 신도시를 체감했다. 그런 장소를 경험한다는 게 사람을 형성시키고 그 사람의 가치관, 인식 체계, 행동 체계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장소가 담고 있던 특정한 상황이 개인적 차원, 사회적 차원도 있다. 공간이 생산되고 사라지는 데 자본, 권력, 미디어의 주입이 작용하고 있다고 봤다. 공간의 차원에서 역으로 발견하고 이걸 통해서 알아 갔다.

      이수진 작가의 작업은 요즘 세상에 문제가 되고 있는 곳의 틈을 찾아가서 들여다본다.
         장소를 다룰 때 그곳의 현상, 상황을 파악하고 그것에 맞는 예술적 실천을 보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냉정하게 바라보는 눈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직접 가는 예술의 형태도 필요하지만 시간을 두고 냉정하게 보는 태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미디어와 뉴스도, 그 현장에 직접 가 본 사람들도 객관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뉴스에 의해서 누군가의 서술을 통해 보는 것도 한계가 있다. 작가 스스로가 그 안에서 행위, 예술로서의 특정한 행위가 개입되면 모든 관계들을 쳐 내고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본다. 훨씬 더 깊은 시각이 거기에서 나오지 않을까.

      작업을 통해서 보편적으로 보여 주고 해결하고 싶은 결론은 무엇인가.
         실존에 대해 개인적인 관심이 있다. 실존하는 존재들을 다시 재해석하는 것, 실존하는 존재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다. 그것으로 시선을 돌리는 건데, 관심 있어 하는 공간은 다수의 시선으로부터 소외된 장소다. 많은 사람이 보려 하는 화려하고 아름답고 깨끗한 것도 아니고 개발의 논리에 맞는 비싼 것들이 아니다. 사람들이 무서워하거나 피하거나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공간들. 옥인동 한옥, 폐 군부대 등이 그랬다. 통의동에 있는 보안 여관도 그중 하나다. 1920년대 지어진 여관인데 이곳에서 건물과 건물 사이의 틈을 바라봤다. 이도 저도 아닌 장소에 관심이 많다.

      폭력적으로 버려진 공간에 대한 작업을 한다는 것인가.
      가리봉 쪽방촌 작업을 할 때, 결국 그곳에 어떠한 방식으로 접근할 것인가, 어떻게 다시 바라볼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시선이 많아지면 또다시 시스템을 바꿀 힘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미학적 차원의 접근 방식이기도 하다.

        미학적 차원으로 접근했을 때 해소가 됐나.
         즐겁다. 이런 작업을 통해서 스스로도 한 장소 한 장소가 스터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곳에 액션을 가하면서 상호 작용을 겪는다. 작가와 장소와의 상호 작용이 있다. 내가 달라지기도 하고, 서로 맥락을 주고받으며 교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스토리를 교류하게 하면서 발생하는 부분들이 있다.

        최근 작업이나 대표적으로 소개하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작년에 아랍에미리트와의 작가 교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많은 상황을 리서치하고 그것들로 인해서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아랍에미리트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외국인이 많고 이주노동자가 70%인 국가더라. 그곳에서 매일매일 살아가며 돈을 벌고 일을 하면서 반복적인 노동 행위로써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10년, 20년, 30년간 같은 일만 반복하며 이루어지는 작업을 하는 게 장인의 모습 같기도 하고, 숭고해 보였다. 반복되는 일을 통해서 정직한 삶에 정당한 것을 얻는, 20세기 근현대 역사에서 주류가 될 수 없는 존재 방식이다. 일상에서 쉽게 보이는 매일 일어나는 삶의 형태일 수도 있지만 주류가 될 수 없었던 평범한 소시민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반복되는 것이다. 매일매일 손으로 뭔가 짜내는 행동을 공간성으로 확대시켰을 때 나올 수 있는 것을 생각했다. 시선으로부터 소외된 사물과 개인 공간에 대한 리서치를 하고, 그 안에서 나올 수 있는 요소들을 공간에 대한 방식으로 새로운 장소로 재구성하는 작업이었다.
6월에 금천예술공장 오픈 스튜디오 전시에서 곧 선보일 작업도 있다. 공동체를 대하고 공동체 안에서 예술가와 상호 작용 안에서 만들 수 있는 것을 살폈다. 그래서 발견한 건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식용 식물을 각 집에서 키우면서 그걸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근처의 노동자들이 쉴 수 있는 유일한 마당이 여기(금천예술공장 앞마당)인데 여기에 식물을 심어 놓고 재배하고 경작하는 시도를 해 보려 한다. 6월 중순에 오픈할 예정이다.

        설치 미술을 이해하기 쉽지 않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 개념들을 우리가 모두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 설치가 답을 쉽게 내주는 작업은 아니라고 본다. 이 작가는 어떻게 봐 줬으면 좋겠나.
         관객의 맥락에서 파악해 주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들도 남의 작업 교과서 보고 읽는 것처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도 있지만 사실은 본인이 자라 온 맥락과 사고 체계에 의해서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 보는 사람들의 방식대로 읽어 주는 대로 느끼면 되는 것 아닐까 싶다.

        그 과정 중에 이 작가만의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면. 이를테면 나는 사랑이다. 우주적인 사랑, 옳고 그름의 판단이 없는 사랑 같은.
         개입이다. 어떠한 형식이든 개입하는 것. 사회와 예술은 사이가 좋을 수 없다. 특정한 장소를 직접 다루는 작업은 지역 기반의 돈이 쏟아지고 있다. 예산이 쏟아지는 것인데, 그게 어떻게 보면 응하는 입장에서는 마치 지역 특산품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비판적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것과 떨어져서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려면 그렇게 작가를 동원하는 행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불편할지라도 모든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된 개입의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발적인 공동체를 만드는 것.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도울 수 있다. 누군가 동조하는 시각이든 불편한 지적이든 일단 자발적인 생각이 개입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조금 멀리 봤을 때 어떤 생각을 작업으로 전하고 싶나.
       지금 계획하고 있는 것들이 몇 가지 있긴 하지만 거친 생각 단계다. 큰 틀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재현해 낼 수 있는가이다. 또 나와 상호 작용 한 장소에 대해 또 다른 특정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거다. 그래서 자기가 머물렀지만 돌아갈 수 없는 장소, 보지 못하는 장소에 대해서 재현하는 것을 연습하고 있다.

      본인 자체가 작업으로 살아가고 있다. 장소 집착적 예술가.
         내 주제다. (웃음)

        도하에서 작품 다 하고 태웠다. 대부분 작업하고 끝나면 어떻게 하나.
         폐기한다. 그 프로젝트가 끝나면 사진만 남기고 떠난다. 그렇지 않은 작업도 있지만 내 설치 미술은 그 장소가 아니면 안 된다.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전시 끝나면 아깝겠다는 말을 듣지만 그 안에서 뭔가를 이루어 내고 사라지는 그 과정에 익숙해졌다. 기억만 남고 사진만 갖고 간다. 결국은 일시적인 거다.

       음악도 듣고 사라진다. 음악적인 미술 같다. 굉장히 유목적이다.
         이 공간 자체가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맞다. 유목의 관점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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