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실의 사회화에 맞서 이윤의 사회화로 나가자

[연속기고](4) ‘노동자 죽이기’ 구조조정 말고, 사내유보금 풀어야 할 때

<연재 순서>
(1) 사내유보금 곳간을 열어라
(2) 전경련 보고서 - 동아일보 보도 반박
(3) 삼성-현대차그룹 이윤축적과 노동착취
(4) 구조조정과 사내유보금
(5) 환수운동의 전망



‘구조조정’이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조선해운업을 중심으로 기업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1라운드’에 이어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조선 3사가 총 6조원이 넘는 자구안을 내놓았고 이 자구안을 토대로 조선업구조조정 2라운드에 돌입할 예정이며, 해운업도 현대상선의 용선료협상을 기점으로 2라운드를 시작한다고 전해진다.

조선 “빅3”라는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이 내놓은 자구안은 익숙하다. 추가 인력감축, 인건비삭감, 자산매각 등이 그것이다. 대우조선이 2조 5천억 원으로 가장 많고 현대중공업 2조 원, 삼성중공업 1조 5천억 원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대우조선의 경우 지난해 이미 1조 8천억 규모의 1차 자구안에 이어 7천억 정도 추가됐다. 국내 제조업 구조조정 사상 최대액수라고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제조업 구조조정 사상 최대 규모의 인력감축과 임금동결 및 삭감이 예상된다. 조선업 수주가뭄 현상이 올 하반기에도 지속할 예정이라 자구안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현대중공업도 20일부터 과장급 이상 생산직 2100여 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접수한다고 밝혔다. 생산직을 대상으로 한 희망퇴직은 1972년 현대중공업 창사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이에 앞서 사무직 과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으며, 그 규모는 500여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희망’퇴직이라고 하지만 대상노동자 누구도 ‘희망’으로 받아들이진 않을 게다. 사실상 ‘해고’다. 이미 사내하청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계약 해지’로 수없이 잘려 나갔다. ‘비핵심자산’을 매각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자구안’이라고 명명된 구조조정은 사실 ‘인력감축 및 임금동결과 삭감’이라는 ‘노동자 구조조정’임이 명백하다.


위기는 경영진이 불러왔는데 책임은 노동자가 져야 한다?

이렇게 조선 해운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것은 적자가 큰 규모로 발생했고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5년 조선 빅3의 적자규모는 8조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금의 구조조정이 겨냥하는 것은 기업경영에 불필요한 자산을 정리하고 기업구조를 합리적으로 재편하여 우량기업으로 전환하는 게 아니라, 세계경제불황에 따른 조선산업의 어려움을 핑계로 인력감축 및 임금삭감이라는 ‘노동자 구조조정’을 통한 비용절감으로 기업 이윤을 보전하려는 것이다. 위기를 핑계로 노동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손실의 사회화’다. 올해 1분기에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흑자로 전환하였으며, 인력감축과 임금동결 및 삭감에 따른 비용절감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거론되고 있다. 수주가뭄 현상이 올 하반기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다고 하지만, 경영위기임에도 자구안에 그룹차원의 지원계획이나 기업총수의 사재출연 등 책임을 지우는 내용은 전무한 것으로 알려져, 구조조정의 의도는 ‘노동자 죽이기’에 있음이 명확하다.

사실 조선 3사는 2014~15년을 제외하고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거둬 왔다. 현대중공업은 2014~15년 2년간 4조 8천억 정도의 영업손실을 기록하였으나, 이것은 2004~13년까지 10년간 영업이익 23조 4천억의 1/5에 불과하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지만 올해 1/4분기에 이미 현대중공업은 영업이익 3,200억 흑자로 전환했다. 또한 현대중공업의 실질적인 지배주주 정몽준이 2004년부터 2013년까지 현대중공업으로부터 받은 배당금만 3천억이 넘는다. 반면, 2008년과 2009년 모두 3조 원이 넘는 이익을 냈음에도 2009년 임금협상에서 기본급이 동결되었다. 한편, 수주가뭄에 시달리고 있지만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는 여전히 글로벌 수주잔량 2위다.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을 합한 조선그룹별 수주잔량은 세계에서 독보적 1위다. 그리고 2015년 말 현대중공업의 사내유보금은 14조 3천억에 달한다.

삼성중공업도 2010년 영업이익이 1조 원을 돌파한 이후 2011~13년까지 3년간 1조 원에 이르는 영업이익을 올렸다. 2015년 1조 5천억 정도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으나 이는 이전 5년간 영업이익의 1/4에 불과하다. 그러나 영업이익이 치솟는 동안 노동자들이 받은 것은 거의 없다. 구조조정의 핵심인 대우조선 역시 옥포조선소의 수주잔량은 단일조선소로는 세계1위로 2018년까지 물량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인력감축 위주의 구조조정에 대한 우려 또한 상당하다. 최근 2년간의 막대한 적자가 경영진의 무리한 해양플랜트 수주전략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대부분이란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경영진의 책임에서 지금의 조선 3사 위기가 비롯되었다. 과도하게 부풀려진 위기, 경영진의 잘못에 의해 야기된 손실을 노동자에게 전가시키는 과정이 지금의 구조조정이며, 이는 올바르지도 않고 설득력을 가지지도 못한다.

사내유보금 환수: 위기를 불러온 자에게 책임지게 하라

이러한 잘못된 구조조정에 정부와 자본은 손발을 맞춰 왔다. 20대 총선 전에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을 통과시켰고, 예정된 수순처럼 임금동결, 무파업선언, 퇴직강요, 정리해고 등이 노동자에게 강요되었다. 나아가 일반해고를 가능케 하고 취업규칙 변경을 완화하는 행정지침을 관철했다. 기업구조조정이라 일컬어진 인력구조조정에 날개를 달아줄 셈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한국판 양적완화’라며 경영진의 책임을 무마시키고 기업에 자금지원 특혜를 주는 조치까지 취하려 하고 있다. 노동부장관은 20일 “하청·협력업체 근로자의 고용안정과 생계보호에 만전을 다할 것"이라고 했지만, 이미 수많은 하청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자살하는 노동자까지 생겨나는 상황에서 하나마나한 허울뿐인 얘기를 대책이라고 내놓았다.

이제 노동자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잘못된 구조조정은 중단되어야 한다.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있는 자본에 책임을 묻고,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정부에 대해 자본에게 책임을 지울 것을 요구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조선업의 경우, 이전 몇 년 동안 쌓아왔던 영업이익을 내놓도록 요구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현대중공업의 경우 10조원이 넘는 사내유보금이 쌓여 있다. 삼성중공업의 경우에도 삼성그룹차원의 사내유보금이 215조원 정도에 이른다. 사내유보금을 포함하여 배당금을 통해 수많은 이익을 가져갔던 경영책임자가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사내유보금과 경영진에 책임지우기를 통해 출연한 돈으로 기금을 형성하여 노동자의 고용보장에 쓰일 수 있도록 하며, 하청노동자의 생계를 보호하도록 해야 한다.

“Enough is enough.” 미국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돌풍을 일으켰던 버니 샌더스의 선거구호다. 우리말로 “마이 묵었다 아이가, 고만해라” 정도일 것이다. 자본의 탐욕적 이윤추구가 중단되어야 한다는 요구다. 이제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국면을 벗어나 ‘이익의 사회화’ 국면을 열어젖히자. 사내유보금 환수는 그것의 유력한 매개이자,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