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을 찾아서

[워커스13호] 시평

안타까운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19세 비정규직 청년이 홀로 스크린 도어를 정비하다가 구의역에서 죽었다. 그런가 하면, 내달 생리대 가격을 인상한다는 발표가 나자 저소득 청소년들은 “생리대 살 돈이 없어요”라는 사연과 고백을 SNS에 올렸다. 세월호,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 등까지 묶어 생각해 본다면, 죽은 자는 죽은 게 아니고 산 자도 살아 있는 게 아니다. 이제 더 이상 노란 리본과 포스트잇으로 애도와 추모를 하고 지나갈 수는 없다.

약간 물러서서 현실을 바라본다면 당장 큰 문제는 정부의 ‘사람 자르는’ 구조조정이다. 지금 거제도에서는 최대 2만 명이 해고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또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비용은 최대 100조 원이라는 말도 떠돌고 있다. 정부의 구조조정 방침에 대해서 조선업종노조연대는 소위 ‘조선소 상용직 노동자들의 총고용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총고용’ 대상에서 조선소 하청 노동자 중 약 50%를 차지하는 소위 ‘물량팀’(집단 외주 인원) 노동자는 제외된다. 조선업종노조연대 소속 사업장, 다시 말해 노동조합이 있는 대형 및 중형 조선소에는 사내 하청 업체 ‘본공’(하청 업체 직접 고용)과 물량팀 노동자의 비율이 엇비슷하다. 하지만 나머지 조선소의 경우 생산직은 거의 100% 하청 노동자이며 그중 80% 이상이 물량팀이다. 이런 구조에서 ‘총고용 보장’은 큰 의미가 없다. 노동자의 고용 조건이 정규직, 사내 하청 본공, 물량팀 등으로 분할된 현실에서 물량팀 비정규직 노동자를 제외하는 것은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물량팀 고용을 폐지하고 모든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실현이 어렵다. 그렇다면 어떤 실질적인 해결책이 있을까? 얼마 전 민주노총 구조조정 기획 토론회에 토론자로 나온 이김춘택 ‘거제통영고성 조선소하청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 활동가에 의하면, 노동 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외에는 대안이 없다.

그런데, 이 노동 시간 단축이 잔업 줄이고 특근 안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즉, 조선 산업 전체 차원에서 현재의 주 40시간 노동을 주 24시간으로 전환하는, 임시적이고 특별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 시간 시스템 자체를 바꿔서 정규직이든, 사내 하청 본공이든, 물량팀 노동자든 간에 동일하게 주 24시간으로 단축해서 일하자는 주장이다. 이러면 모든 노동자가 주 3일을 일하게 된다.

물론, 이렇게 산업 및 제도 차원에서 노동 시간을 줄이더라도 줄어든 임금은 국가에서 보전해 줘야 한다. 현재 법정 근로 시간이 주 40시간이라 해도 실제로는 주 50시간 이상 노동하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주 24시간으로 노동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현재 임금 총액의 50% 이상이 보전되어야 한다. 사회 전체의 일반적인 노동 시간 단축이라면 당연히 자본 측이 그것을 부담해야 하지만 지금의 경우에는 국가가 임금 보전을 해야 한다는 것. 나는 이김춘택 활동가의 제안이 올바르고 적실하다고 여긴다.(워커스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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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 구조조정 , 사내하청 , 조선업 , 물량팀 , 구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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