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조끼 입고 성역 들어가기

“그 조끼는 위험합니다”


한 선배가 노조 조끼를 입어 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을 때 가장 먼저 시선이 걱정됐다. 노조 조끼 위에 구호가 적힌 ‘몸 (대)자보’까지 걸치면 사람들은 어떻게 쳐다볼까. 노조 조직률이 10% 남짓이지만, 얼마 안 되는 노조마저 배타적인 시선으로 보는 게 한국 사회다. 머리띠, 노조 조끼, 몸 자보까지 두르면 정권과 보수 언론이 앞장서 질색하는 강성 노조도 떠오른다. 불편한 시선은 어느 정도 감당 가능한 일. 하지만 자존심과도 같은 조끼를 벗어야 하는 굴욕도 겪어야 한다. 그저 노조 조끼를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아예 입장조차 할 수 없는 곳들이 있었다. 노조 조끼를 입고 일을 한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고, 해고까지 당한 사연도 있다. 그래서 더욱 노조 조끼는 투쟁하는 노동자의 상징이 된다. 노조 조끼를 ‘투쟁 도구’, ‘자신감’, ‘동료애’ 혹은 ‘다짐’으로 표현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이번 ‘위클리매드코리아(위매코)’는 누군가는 질색을 하고, 누군가는 자랑스러워하는 노조 조끼를 입고 대한민국의 ‘성역’에 당당히 들어가기였다.

정치하지 말라는 국회

남색 노조 조끼에 글자가 새겨진 몸 자보를 걸쳤다. 매쉬 소재인 민소매 몸 자보는 화려한 형광 연두색. 앞판엔 ‘노동 3권 보장’이, 뒤판엔 ‘전교조 사수’가 적혀 있었다. 조끼에 몸 자보를 겹쳐 입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국회다. 수많은 목소리가 모이는 곳. 그리고 그런 목소리를 하나하나 존중한다고 국회의원들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하지만 이번에 경험한 국회는 오히려 정치를 금하는 곳이었다. 국회를 뜻하는 영어 단어는 ‘assembly’다. ‘assemble(모으다)’에서 파생된 이 단어처럼 국회는 민의를 모으기 위해 존재한다. 입법 기관 국회의 역할은 시민의 지지를 얻은 법안을 통과시키고 반대자를 설득하는 것이다. 잘 듣고 잘 말하는 게 중요하다.

국회는 정문부터 노조 조끼를 막았다. “정치적인 문구가 새겨진 피켓과 조끼를 금한다”는 게 이유였다. 왜 국회에서 정치적인 문구를 금하는지에 대해선 대답하지 못했다. 1인 시위도 국회 철문 밖에서만 할 수 있다고 했다. 출입문을 지키는 국회 경비대 소속 의경은 규정이 그렇게 돼 있다고만 반복할 뿐이었다. 결국 다시 꺼내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국회 의원회관 앞에서 다시 노조 조끼를 입었다. 의원회관 식당에서 밥도 먹고 오후 1시부터 시작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논한다는 경제 세미나도 들으려고 했다. 출입 관련 서류를 쓰고 출입증을 받았다. 하지만 방호원(국회 건물 내부 보안 책임)이 제지하면서 들어갈 수 없었다. 방호원은 국회청사관리규정을 언급했다. 국회청사관리규정 제5조는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청사에서 행진 또는 시위를 하거나 벽보·깃발·현수막·피켓 기타 표지를 부착 또는 사용하는 행위’를 금한다고 돼 있다. 방호원은 몸에 붙인 자보 역시 피켓에 속한다고 말했다. 조끼 탈의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출입을 할 수 없다며. 결국 여성 방호원이 따라붙었다. 방호원은 화장실까지 쫓아와 감시를 했다. 조끼 탈의가 끝나자 후련하다는 듯이 돌아갔다.

노조 조끼는 칼, 유해 물질만큼 위험하다

다음 장소는 청와대 인근이었다. 청와대 근처 분수대를 산책하기로 했다. 청운동 주민센터에서 내려 입구를 향해 갔다. 그런데 선글라스를 낀 서울경찰청 기동대장에게 붙들렸다. 1인 시위를 하러 가느냐고 물었다. 1인 시위 목적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몸 자보를 입었으니 1인 시위가 가능한 자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동대장은 옷에 정치적인 문구가 있으니 1인 시위가 아니라면 벗으라고 했다. 이야기는 쳇바퀴처럼 돌았다. 기동대장은 자신이 “윗분의 안전을 생각해야 할 사람이기 때문에 윗분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어떤 상황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과잉 충성이라고 지적했지만 그는 굽히지 않았다. 그에게도 근거 법령이 있었다. 〈대통령등의경호에관한법률〉 5조 3항. 그는 그 조항을 주문처럼 반복해서 외우기 시작했다. 마치 로봇 같았다. 해당 조항을 요약하면 ‘경호 업무를 하는 사람은 경호 목적상 불가피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만 경호 구역에서 질서 유지, 교통 관리, 검문검색, 출입 통제, 위험물 탐지 및 안전 조치를 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 ‘상당한 이유’는 자의적 해석이 충분히 가능했다. 기동대장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산책 중 갑자기 청와대를 향해 서 있을 경우 주위에 있는 시민이 선동될 수 있다고 했다. 실랑이를 하다 조끼를 벗어 가방에 넣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조끼를 가방에 넣는 것조차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 상상의 나래가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나 보다. 그는 조끼를 ‘위험물’이라고 했다. 칼, 유해 물질 같은 위험물은 가방에 넣고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천 쪼가리가 무슨 위험물이라고….” 뜨악한 표정의 기자를 보며 그는 더욱 기세등등하게 협박했다. 이곳은 특정 경비 구역이기 때문에 그 안에선 가방도 뒤질 수 있다고 했다. 특정 경비 구역 안에서 불심 검문이 공공연하다는 말이었다. 그럼 돌아서 가겠다는 기자에게 그는 “어디로 돌아가더라도 불심 검문에 걸려 출입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와 작별을 하고 경찰이 경비를 서고 있는 골목길로 돌아 들어갔다. 하지만 노조 조끼를 입지 않은 기자를 불심 검문하는 경찰은 없었다.


노조 조끼 입은 자, 한 발도 못 들어간다

마지막 권력 기관 법원은 어떨까. 대법원은 이미 노조 조끼 정치를 금지했던 선례가 있다. 지난해 6월 25일, 이주노조가 노조 인정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주노조 조합원들은 이주노조 합법화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 회견을 마치고 법원을 들어서려 했다. 하지만 곧바로 법원 보안 요원에게 막혔다. 함께 있던 변호사가 근거 조항을 묻자 〈법원조직법〉 55조 2항을 댔다. 법원 보안 요원이 어떤 경우 실력 행사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노조 조끼를 입는 것은 법정의 존엄과 질서를 해치는 행위를 하거나 하려고 하는 경우이기 때문에 제지가 가능하다는 주장이었다. 노조 관계자, 시민 단체 활동가, 변호사가 달라붙어 한참 실랑이를 했다. 대체 노조 조끼가 어떤 법원 질서를 해친다는 것인지 물었지만 납득할 만한 대답은 없었다. 판결 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결국 조합원들은 조끼를 벗고 들어갔다. 합법 판결로 다시 웃게 됐지만 그 씁쓸한 표정들을 지울 수 없다.

조끼를 벗는 일은 지고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법원이 노조 조끼를 벗으라고 지시한 일은 그때만이 아니었다. 2014년 쌍용차 노동자들에게도, 2013년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에게도 노조 조끼를 벗으라고 명령했다.

대법원은 1990년대부터 법정 질서를 강조해 왔다. 법정 소란 행위를 ‘법치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 ‘국가의 법질서를 근본으로부터 무너뜨리는 파괴 행위’ 등으로 규정하고 전국 법원에 질서 유지 지시문을 내리기도 했다. 노조의 기를 죽여 법정의 질서를 확립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반발만 더 키울 뿐이다. 대법원의 권위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이미 바닥에 떨어졌다.

고등법원도 대법원만큼 노조 조끼에 대한 규제가 심한지 확인해 봤다. 지난달 30일, 서울고등법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파기 환송심 속행 공판을 방청하기로 했다. 각오를 하고 들어갔지만 경비 중 누구도 기자를 막지 않았다. 검문소에는 무려 3명의 경비가 있었지만, 중요한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어 노조 조끼를 막을 여유는 없어 보였다. 여유롭게 통과한 고등법원. 도대체 법원이라는 곳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같은 원칙을 적용한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일까.

째려보는 건지 살펴보는 건지

취재 중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노조 조끼와 몸 자보를 입고 있었다. 일반 시민이 어떤 눈으로 보는지 알고 싶었다. 노조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야 주변의 기류만 봐도 알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교사가 된 친구에게 축하한다고 했을 때, 친구는 아버지 때문에 절대 전교조엔 들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노동 관련 기사를 쓰는 것을 알고 지레 한 말이었다. 노조에 대한 혐오는 언론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보수로 분류되는 주류 언론은 노조에 대해 부정적인 프레임을 덧씌웠다. 이기적이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강성 노조, 노조 중 일부에게만 혜택이 쏠린 귀족 노조, 제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밥그릇 노조.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녀 보니 시민들은 한번 보고 지나치기 바빴다. 난 그들이 조금 더 오래, 조끼에 쓰인 글을 읽어 주길 바랐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남을 오래 쳐다보는 건 예의가 아니다. 어쩌면 내 뒤에서 내 등을 쳐다봤을 수도 있겠다. 혹시 동행인의 영향이 있을까 봐 혼자도 있어 봤다. 혼자여서 그런지 신경이 곤두섰다. 어버이연합이나, 재향군인회 회원들이 뒤통수를 치면 어떡하나 걱정도 조금 했다. 우려했던 일은 없었지만 노인들이 인상을 쓰고 쳐다볼 때가 종종 있었다. 몸 자보의 글자가 잘 안 보여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목적에 따라 눈도 다르게 찌푸리는 법이다. 왜 인상을 찌푸리시는 거냐고 물어보기도 뭣해 그냥 그러고 말았다.

2011년 한복 거부한 신라호텔, 2016년은?

2011년, 신라호텔이 한복 입은 디자이너의 출입을 막아 논란이 됐었다. 당시 직원이 한복 디자이너의 출입을 막은 이유는 지금 들어도 웃음이 난다. ‘위험한 옷’이라는 것. 풍성한 한복 치맛단 안에 무기라도 숨겼다고 상상했던 걸까. 노조 조끼를 위험한 옷 취급하는 사람들과 비슷한 관점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신라호텔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신라호텔 출입에 도전하는 건, 국회와 청와대보다 더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했다. 고급 호텔에서 노조 조끼 때문에 쫓겨난다면 정신적 충격이 심할 것 같았다. 돌계단을 오르고, 가파른 언덕을 지난 다음에야 호텔의 입구가 보였다. 서늘한 저녁이었지만 땀이 줄줄 흘렀다. 회전문을 돌려 신라호텔에 첫걸음을 뗄 수 있었다. 로비를 지키는 경비들이 노조 조끼를 입고 땀범벅인 나를 눈으로 스캔했다. 나는 신라호텔에 가면 그 유명한 망고빙수는 못 사 먹더라도 한 잔에 1만 8,000원 하는 커피 정도는 사 먹고 와야지 마음을 먹은 상태여서 동행한 선배와 카페를 찾았다. 한 경비원이 카페에 가는 우리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왔지만 그뿐이었다. 제재 같은 건 없었다. 동행인의 만류에 커피는 사 먹지 않았다. 와인을 구경하다 2천만 원이 넘는 가격을 보고 아무거나 건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로비 소파에 몸을 묻고 시간을 때웠다. 그날 우린 간단한 치맥을 하며 신라호텔이 정신 차린 것 같다고 웃고 말았다.

또 다른 부의 상징, 강남의 신세계백화점을 찾았다. 우리 동네 백화점은 1층만 명품관이 있는데 이 백화점은 층마다 명품관이 있었다. 화려한 물건들이 진열돼 있었지만 단번에 시선을 끄는 건 내 형광색 민소매다. 직원도 고객도 쳐다봤지만 그 시선이 불편하진 않았다. 그중엔 오래 쳐다보며 글자를 읽으려는 사람도 있었다. 몸 자보의 목적이 선전이라면 성공한 셈이다.

노조 조끼와 몸 자보는 생각보다 편했다. 품도 넓고 넉넉해 활동복으로 이만한 옷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들 그렇게 작업복을 입는다. 자신의 활동 목적, 소속을 표시하기 위해 입는 옷들도 있다. 노조 조끼와 몸 자보 역시 노동자의 요구와 활동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목적이다. 노조에 대한 색안경을 벗고 그 문구를 살펴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다. 노동 3권은 보장해야 하고, 부당 노동 행위는 중단해야 한다. 이번에 출입이 제한된 곳은 모두 주요 권력 기관이었다. 노동자에게 ‘성역’은 아직 많다.(워커스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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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호텔 , 노조조끼 , 조끼 , 위클리매드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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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솔 기자 / 정운 사진기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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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호

    이런 좋은 기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