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500조, 누구를 위하여 돈을 굴리나

국민연금, 삼성 재벌 경영권 승계 일조

#장면 1 – 내가 낸 돈으로 나를 살해한다?

지난 6월 1일 환경운동연합, 환경보건시민센터,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등은 기자 회견을 열고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 중 가습기 살균제 사고를 일으킨 가해 기업이 다수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최대 가해 기업인 옥시에 국민연금이 861억을 투자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책임 투자 원칙에 따라 국민연금이 옥시에 진상 규명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이 외에도 가습기 살균제 유통 업체인 홈플러스의 영국 본사였던 테스코(TESCO)에 337억 원을 투자하고 있다. 또한, 국내 기업인 롯데쇼핑에 5.3%(2014년 말), 이마트 8.05%(2015년 3분기), GS리테일 7.07%, SK케미칼 12.96%(2016년 1분기)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거대 투자자로서 국민연금이 왕성한 투자를 하지만, 그에 걸맞은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게 이번 논란의 핵심이다. 물론 수익을 목표로 하는 국민연금의 입장에서 500조 원이 넘는 모든 투자 대상을 일일이 간섭할 수 없다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이런 반사회적인 사태에 대해 좀 더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왜냐하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도 국민연금에 돈을 내는 가입자이기 때문이다. 이 살균제가 1년에 60만 개씩 팔렸다고 하니 10년 동안 잠재적 피해자가 수백만 명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우리를 살해한 기업에 우리가 투자하고 있었다는 이 기막힌 현실을 생각한다면, 누구도 이 문제를 가볍게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비단 이런 갈등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가령 2013년 갑질 논란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남양유업 사태는 솜방망이 처벌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는데, 국민연금은 이런 상황에서도 2015년 1분기에 남양유업의 투자 비중을 5.02%에서 6.03%로 높였다. 이렇듯 우리가 낸 국민연금은 부조리한 사태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 기업들과도 많이 관련되어 있다.

#장면 2 – 내가 낸 국민연금으로 삼성의 경영 승계를 돕다

재벌 문제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는 종종 재벌의 경제 독식을 비판하지만, 우리가 낸 국민연금 기금이야말로 이들의 경제적 뒷배가 되는 자금줄인 경우가 많다. 심지어 작년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갈등으로까지 번졌는데, 당시 국민연금은 비상식적인 주식 거래를 해서 삼성 재벌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마중물이 되었다. 이 사건은 소송으로 번져 지난 5월 31일 법원 2심 판결이 나왔는데, 재판부는 이것이 “정당한 투자 판단이 아닐 수도 있다”고 밝혔다. 당시 삼성물산 주식을 대거 보유했던 국민연금은 이 주식을 계속 팔아 삼성물산 주가를 떨어뜨리는 데 일조했다. 그래서 삼성물산과 합병하는 제일모직이 합병 비용을 낮출 수 있도록 만들었다. 실제 국민연금은 2015년 3월 26일 삼성물산 주식 11.43%(1784만 8,408주)를 갖고 있었지만, 합병 결의일(2015년 5월 26일) 직전 거래일까지 계속 주식을 팔았다. 그래서 보유 비율을 9.54%(1490만 6,446주)로 줄였다. 그러고 나서 국민연금은 합병 후 지나치게 상승한 삼성물산 주식을 다시 사는 행태를 보였다. 즉, 합병 직전 헐값에 대량 팔았던 주식을 합병 뒤 다시 비싸게 사들인 것이다. 재판부는 이런 행태가 일반적인 투자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 짚었다. 현재 삼성물산 주식은 40%가량 하락한 상태이다. 합병 당시를 기준으로 하면 국민연금은 8000억 원 이상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엄청난 손실 규모도 규모지만, 국민이 낸 공공 기금이 사기업의 경영권 승계의 도구로 활용됐다는 점이 더 심각한 문제다. 국민연금의 기본 운용 원칙인 안정성과 수익성, 공공성 모두 지키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국민연금은 이런 원칙을 지키기 위해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의 의견을 묻고 이를 반영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당시 의결권의 자문을 맡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물론 서스틴베스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 글래루드루이스 등 국제적인 의결권 자문 기관이 모두 국민연금이 두 회사의 합병을 반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지만, 이번 2심 판결은 520조 원이 넘는 국민연금 운용과 실태에 대해 국민의 눈과 귀를 집중시켰다는 데 의미가 있다. 거의 준조세에 가까운 국민연금을 전문가만의 영역으로 둘 문제가 아님이 명확해졌다.

#장면 3 – 국민연금 사회적 투자와 이에 대한 논쟁

한편, 이런 와중에 6월 1일 국민연금을 활용한 공공시설 확충 투자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담은 정부 측 용역 보고서(〈국민연금 기금의 공공 사회 서비스 인프라 투자〉)가 있었음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가 이 보고서의 존재를 정치적 이유로 의도적으로 숨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보고서는 국민연금 기금의 공공 투자가 저출산 해소 및 고용 창출 효과를 통해 국민연금 수입 증가와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결국 국민의 노후 소득 보장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주장은 더민주당의 지난 총선 공약 1호와 맞닿아 있는 것이라, 보고서 은폐(?) 여부가 정치적 공방으로 번지고 있는 형국이다. 더민주당은 지난 5월 25일 ‘양극화해소와더불어성장을위한국민연금공공투자정책 추진특별위원회’를 구성키로 한 바 있다. 더민주당은 이런 공공 투자를 통해 장기 공공 임대 주택 재고량을 현재 5.2%에서 10년 후 13.0%로 끌어올리고, 국·공립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동 비율을 현재 10.6%에서 30%로 늘리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기금을 어떤 방식으로 투자해야 경기 활성화나 일자리 창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지를 검토해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 문제와 공공 투자 확대 방안은 오래전부터 뜨거운 논란을 불러온 사안이다. 소위 신자유주의적 경제 이념에 충실한 정치 단체나 연구자는 국민연금의 이런 기금 운용이 기업의 경영권을 침해하거나 기금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반박한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은 신탁 자산이기 때문에 수익성과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인식의 차이는 국민연금의 성격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서 기인한다. 사회 투자를 위한 재원으로 봐야 할 것인지, 아니면 국민이 맡긴 노후 자금으로서 되돌려 줘야 할 신탁 자산인지에 따라 국민연금에 대한 접근법은 달라진다. 아마도 대부분 국민은 국민연금을 은행 적금과 비슷하다고 볼 것이다. 그래서 국민연금 보장 수익률이 다른 사적 연금의 수익률보다 높다는 데 의의를 두기도 한다.

그런데 국민연금이 보장하는 미래 수익이라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채권을 사고 주식과 부동산을 사서 여기서 나오는 수익의 원천이라는 게 과연 무엇일까. 은행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것이다. 우리가 은행에 맡긴 예금과 적금으로부터 이자 수익을 받을 수 있는 건, 은행이 이 돈을 생산과 소비에 대출해 줘 대출 이자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 은행은 기본적으로 예대마진(대출 이자에서 예금 이자를 뺀 이자 차액)을 통해 먹고산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생산과 소비가 침체해 대출해 줄 곳이 마땅치 않다면 이 예대 마진이라는 것도 점점 사라질 것이고, 돈을 맡긴 사람이 가져갈 이자 수익도 점점 줄어들 것이다. 지금 같은 불황의 시대, 세계적으로 초저금리 상태가 오래 지속하면서 은행 예금 이자가 굉장히 낮아졌다는 건 모두 아는 사실이다.

국민연금도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국민연금을 단순히 신탁 자산으로만 바라보는 입장도 편향된 시각임을 지적할 수 있다. 국민연금 수급자가 받을 미래 돈은 미래 사회의 경제적 번영이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사회적 투자에 대한 논란에서 우리가 주목할 핵심은 바로 이점이다.

공교롭게도 이 세 가지 사건이 동시에 터져 나오면서 국민연금이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국민연금의 기금 고갈 문제, 수익률 하락, 위험 투자 비중 확대 등 이미 오래전부터 국민연금은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그런데 논의는 대부분 국민연금 수급과 손실, 기금 고갈 문제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근본 취지가 국민의 노후 생활 보장임을 재확인한다면, 이제 소득 보장에만 몰두했던 우리의 일차적인 인식을 넓혀야 할 것이다. 설령 약속된 연금만큼 받는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의식주 비용에 대부분을 소비할 수밖에 없다면, 우리의 빈곤한 노후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연금 문제는 돈을 어떻게 잘 굴려 불릴 것인가에만 집중될 순 없다. 다른 사회 정책과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더욱이 지금과 같이 불황이 깊어지고 장기화하는 시대, 사회 재생산의 문제를 외면해선 국민연금이 보장하는 행복한 노후 생활은 실현 불가능할 것이다.

이런 시대적 전환의 와중에 아직도 재벌 승계의 쌈짓돈으로 쓰이는 국민연금의 후진적 행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이러다간 약속한 소득마저도 되돌려 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이 사안을 역으로 확대해 재벌에 대한 사회적 통제로 발전시키는 방법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늙어서 마주할 미래의 경제적 평등과 번영은 재벌의 경제적 독식을 해소하는 것과 결코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워커스13호)
덧붙이는 말

송명관 참세상연구소(준). 《부채 전쟁》을 함께 지었고 참세상 주례 토론회를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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