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꽃길 100리’ 행진에 나서며

[기고]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와 함께하는 사회적 행진

2011년 벽은 우리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 벽은 너무나 높고 두터워 감히 오르거나 무너뜨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회사와 싸워서 언제나 이길 줄 알았던 노동조합은 쉼없이 투쟁을 했지만 청와대와 국정원, 검경, 그리고 현대차 원청이 가세한 민주노조 파괴의 벽은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뜨거웠던 3개월간 직장폐쇄 역시 계획된 시나리오였다.

현장에만 들어가면 다시 현장을 재정비해서 투쟁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노조 파괴 프로그램은 잔혹하리만큼 노동자들을 이리저리 갈라놓았다. 해고자와 비해고자, 라인을 잡은 자와 못 잡고 허드렛일을 하는 자. 징계를 받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 게다가 금전적 차별은 투쟁기간 동안 생활고를 겪은 조합원들에게 어두운 전망과 어용으로 넘어가면 편하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관리자들의 당근과 채찍이었다.

회유와 협박에 넘어간 동료들은 처음에는 미안하다고 했다. 다음에는 노조도 너무하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너도 편하려면 괜시리 힘쓰지 말고 편히 살라고 했다. 배신감은 극에 달했고 현장 내 차별은 더욱 강화 되었다. 사측은 수백 건의 고소고발을 통해 수많은 징계자들을 만들었다. 그것도 노조파괴 매뉴얼에 있었다. 해고자들은 돌파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몇 번이나 고공농성도 해봤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공장 안은 매일 같이 전쟁터였고 그 속에는 수많은 한광호가 있었다. 몇 만 원 월급 계산을 하기 위해 수십만 원어치 파업을 하고 징계를 받아야 하기도 했다.

2011년에 높아만 보이던 벽이 낮아진 건지 아니면 우리가 좀 더 큰 건지는 모르지만 어느 땐 회사가 만만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 맞으니 내성이 생긴 건지도 몰랐다. 그러나 우리가 진실을 향해 불의의 벽을 넘어서려고 할 때마다 경찰과 검찰은 우리의 발목을 붙잡았고 노동부는 그 벽을 더욱더 높여주고 공고히 만들어 주었다. 시시비비가 붙으면 같은 사건에 같이 멱살을 잡아도 교묘하게 우리만 처벌 받게 만들었다. 심지어 완벽한 증거가 있는 몰래카메라, 체불임금마저도 기소할 수 없다고 검찰은 버텼고, 노동부는 법원의 판단으로 회사가 지배개입한 제2노조가 무효임을 판단했는데도 행정적 처분은 하지 않고 제2노조의 껍데기만 바꿔 다시 제3노조를 만드는 것을 용인했다.

이런 잔인한 자본의 벽 앞에서 한광호 열사는 죽었다. 한광호 열사는 생전에 투쟁에 앞장서 몇 번이나 징계를 당했지만 그럼에도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이었지만 내색 한번 없었다. 6년여 간의 극한의 투쟁은 조합원들을 병들게 했다. 분노한다는 것은 나를 조금씩 태워버리는 일이다. 슬퍼하고 눈물짓는 것은 나를 더욱 고립되게 만들었다. 오늘 하루 공장 문에 들어갈 때 투쟁을 포기하고 싶기도 했고, 배신자들이 낄낄대며 관리자들과 죽이 맞아 죽는 모습을 보면 때려치고 싶기도 했다. 그냥 가만히 있고 싶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죽는다. 그러기에 아주 작은 것이라도 우리는 해야만 했다. 열사는 그냥 가만히 있고 싶은 우리에게 싸울 수 있는 힘을 주고 갔다. 그 힘으로 꼭 벽을 넘으라고 그 벽을 넘어 뜨리라고 하며 열사는 그 벽 앞에서 죽었고 우리는 열사를 딛고 오늘 다시 저 흉악한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의 벽을, 자본과 권력의 담을 넘는다.

그 높다란 담을 향해 6월 13일 월요일 다시 길을 나서기로 했다. 서울시청 광장에 설치했던 분향소를 한광호 열사 죽음의 원흉인 현대자동차 본사 앞으로 옮기는 꽃상여 100리길이다. 분향소 하나 차리는데 벌써 50여명의 노동자 시민들이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장례도 치루지 못한 지난 90여일 정말 수많은 눈물과 고통이 또 함께 했지만 멈출 수가 없다. 또 어떤 동료를 잃고 눈물 흘리지 않으려면 여기서 끝을 보아야 한다. 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 현대차 본사가 유성기업 노조 파괴를 조종했다는 것은 이미 만천하에 알려지기도 했다. 그 진실이 사실이 되고, 그에 따른 사회적 응징이 있어야만, 다시는 헌법을 유린하며 노동자들의 권리를 함부로 짓밟지 않겠다는 약속이 있어야 우리는 한광호 열사의 장례를 치를 수 있다. 100리길 첫날엔 국회도 들리기로 했다. 명백한 헌법 유린 행위인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할 것이다. 이 기나긴 100리길에, 이 눈물의 꽃상여길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시기를 호소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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