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100년] 단종 낙태가 이뤄진 그곳, 한센인이 ‘증인’으로 섰다

소록도에서 열린 한센인 단종·낙태에 대한 국가손해배상 소송

“마취 안 했으니깐 그렇게 아팠겠죠. (침묵) 낙태수술 하는 데 한 시간 반, 두 시간 정도… 그 뒤에 하혈을 많이 했어요.”

오래된 기억을 더듬는 목소리는 고요했다. 종종 침묵이 행간을 채웠다. 침묵 속에 발음되지 않은 비명이 스며있다.

국립소록도병원 별관 2층 소회의실이 ‘특별법정’으로 꾸려졌다. 이곳은 과거 병원 본관으로 한센인 단종 낙태 수술이 이뤄졌던 곳이다. 서울고법 민사30부(부장판사 강영수)는 지난 20일, 한센인 단종 낙태에 대한 국가손해배상 소송을 소록도에서 진행했다. 피해자들은 ‘증언’하기 위해 과거 바로 그 장소에 증인으로 섰다.

오전 재판정에 선 ㅈ 씨는 50년 전 기억을 꺼내야 했다. 23살 봄, 소록도에서 있었던 일이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 아이를 가졌다. 소록도에선 아이를 가지면 낙태해야 한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 들키지 않기 위해 압박 붕대로 배를 꽁꽁 감쌌다. 하지만 몇 달째 월경하지 않는 그녀를 같은 방 사람들이 알아챘다. 그렇게 낙태를 하게 됐다. 마취도 없이, 의사 면허도 없는 이가 수술을 집도했다. 하혈을 심하게 했다. 그러나 어떠한 치료도 받지 못했다. 한 달 뒤, 그녀의 남편도 정관수술을 받았다.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낙태와 정관수술을 받았지만 부부가 함께 사는 ‘부부사’는 배정받지 못했다. 부부사 수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1년 뒤에야 부부사에서 함께 살 수 있었다.

“여기서 살려면 무조건 낙태 수술해야 해요. 돈이 없으니 나가서 살 수 없잖아요.”

ㅈ 씨는 재판장에서 몇 차례 이 말을 반복했다. 그러나 ‘여기서 나가 살 수 있는 곳’도 일반 사회를 칭하는 게 아니다. 한센인 정착촌으로의 이주를 뜻한다. 그곳도 돈이 있어야 갈 수 있는 것이다.

이날 재판정엔 과거 정관수술을 집도한 의사도 증인으로 섰다. 과거 소록도병원에서 근무한 김인권 여수 애양병원 원장은 단종·낙태수술이 불가피했음을 강하게 주장하며 “(소록도 내) 예산은 환자를 위한 거지 환자 외 아동을 위한 예산이 아니었다. 아이를 키울만한 예산, 인력, 시설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들에게 많은 피해를 준 건 사실이나 그로써 우리나라가 한센병 청정 지역이 됐다”면서 “피해보상은 해야 하나 당시 일을 지금 잣대로 측정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정형외과 의사이지만 당시 어쩔 수 없이 배워서 했다. 목적은 딱 하나다. 환자를 위해서 정의감을 가지고 했다.”면서 “정관 수술 안 하고 내몰렸으면 그 환자는 밖에서 먹고 살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록도에서 의식주는 해결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 섬 가장 깊숙한 곳에 한센인이 있었다

오후 2시부터는 현장검증이 이뤄졌다. 재판부와 변호인들은 소록도 마을주민 이남철 씨(68세)의 안내로 한 시간가량 한센인의 한이 서린 현장을 둘러보았다. 이 씨 또한 한센병력자로 50년째 소록도에 살고 있다. 재판부가 처음 발을 디딘 곳은 사망한 한센인의 시신 해부가 이뤄졌던 검시실. 방 한가운데에 검시대가 있고 벽면엔 빛바랜 상아색 서랍장이 있다. 이 씨는 “90년대 초까지 해부실로 사용됐다. 1996년까지는 이곳 선반에 낙태한 태아 표본을 포르말린액 속에 담은 유리병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소록도 마을주민 이남철 씨의 안내로 현장검증이 이뤄지고 있다. 재판부와 변호인들이 한센인의 시신 해부가 이뤄진 검시실에서 이 씨의 설명을 듣고 있다.
이어 검시실 바로 옆에 있는 감금실로 향했다. 이 씨는 감금실을 “유일하게 소록도에서 담장이 있는 건물”이라고 소개했다. 감금실은 혹독한 강제노동을 견딜 수 없어 도망쳤던 이들을 강제수용했다. 이곳을 나오는 이들에겐 정관 절제 수술이 자행됐다. 감금실은 30년 전 폐쇄됐다.

한센인 부모와 그의 자녀가 경계선 도로 양쪽에 서서 서로 바라보아야만 했던 수탄장(愁嘆場)도 방문했다. 부모와 자식은 한 달에 한 번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병원 측은 바람을 통해 아이가 감염될 수 있다며, 바람 부는 방향에 따라 매번 자리를 달리 배치했다. 이 씨는 “사람들은 ‘탄식의 장소’라고 하여 수탄장이라고 하지만, 우리에겐 탄식이 아닌 ‘통곡의 장소’다”라고 말했다.

차를 타고 이동해 주민들이 사는 마을로 들어갔다. 소록도 주민이 사는 마을은 평소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차를 타고 산길을 올라가면 만령당이 있다. 이곳은 한센인 유해를 나무 상자에 담아 보관하는 납골당이다. 1937년 일제 강점기 때 세워진 만령당은 정동쪽(일본)을 향해 있다. 만령당 내부 장소가 협소해 유골함은 화장장에 1년간 보관했다가 합동추모제를 지내는 매년 10월 15일에 이곳으로 옮겨온다. 만령당에 10년간 모셨던 유골은 만령당 뒤켠에 있는 봉분에 뿌려진다. 이 봉분은 소록도에 단 하나 있는 무덤이다. 하나의 무덤 위에 매년 수십의 혼이 눕는다. 그렇게 지난 시간 동안 만령당에 쌓인 유골함은 1만1천 개. 소록도에서 죽음은 가파른 속도로 누적된다.

만령당에서 굽이친 산길을 오르고 오르면 자혜의원에 닿는다. 국립소록도병원의 전신으로 1916년 세워졌다. 위치는 장소의 의미를 일깨운다. 섬의 입구에서 가장 멀고 깊숙한 곳. 한센인은 섬 가장 깊숙한 곳에 가려진 존재여야 했다.

<b> “사법부, 우리를 버리지 않는 현명한 판단 해주길” </b>
현장검증 후 오후 재판이 이어졌다. ㅂ 씨도 1960년대에 소록도에서 정관수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이와 결혼하여 부부사에 입주하기 위해서였다. 정관수술로 인한 허리 통증이 한 달 동안 지속됐다. 그러나 그 역시 수술 후 즉시 부부사에 입주하진 못했다. 부부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방이 나길 기다리는 동안 혼인을 약속한 이는 결핵으로 격리병동에 보내졌다. 교회를 다니는 그는 당시 삶을 성경을 인용해 회고했다. “성경에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는데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난 절망적인 삶이 됐다.”

다행히 그 뒤 ㅂ 씨는 복원 수술을 받고, 다른 이와 결혼도 했다. 그러나 위로받지 못한 고통이 여전히 꿈틀거린다. 법의 판단 앞에서 피해자는 자신의 고통을 꺼내어 보이며 이 고통을 응시해달라고 호소했다.

"비참한 질병의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살펴서 우리를 버리지 않는 현명한 판단을 해주길 바랍니다."

<b>법적 근거도 없고 강제로 이뤄진 것 vs 강제로 이뤄진 것 아니다 </b>
2007년 ‘한센인 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 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그러나 이 법은 국가폭력의 책임을 인정하고 일괄 배상하는 법이 아니었다. 피해자로 지정돼도 생활지원금 월 15만 원 받는 게 전부다. 이에 대표적 인권침해인 단종·낙태에 대해서만이라도 피해 배상과 명예회복을 받고자, 2011년 10월 한센인권변호인단은 소송을 제기했다.

이날 한센인권변호인단 조영선 변호사는 “소록도에선 단종해야만 ‘부부 동거사’를 배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단종·낙태는 법률상 어떠한 근거도 없다.”면서 “도망가더라도 강송제도로 곧 잡혀 들어왔기에 현실적으로 도망갈 수도 없었다”고 밝혔다. 조 변호사는 한센인 대부분이 고령인 상황을 살펴 법원이 조속히 판단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정부 측 박종명 변호사는 “수술을 한 의사, 간호사, 혹은 지시받은 사람은 한센인을 위해 계속 봉사했던 사람이다. 이들이 피고로 지목되고 있다”면서 “이들이 조금 미흡했을지 모르지만 불법행위를 이유로 소송에 세워질 상황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의사에 반한다’고 하나, 당시 진술을 보면 병원 측에서 강제로 끌고 갔다기보다 분위기상 어쩔 수 없이 이뤄졌다. 이는 법에서 말하는 자의에 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100년의 침묵을 뚫고서 나온 증언의 목소리. 생이 먼저 눕기 전에 이 고통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한센병은 다 나았지만 그 병과 함께 쏟아진 고통은 생생하다. 그 고통은 질환이 준 고통이 아니었다. 피해자는 고통의 가해자로 국가를 지목했다. 한센인들이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덧붙이는 말

강혜민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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