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회장 아니었음 때려치웠다”

평화로운 오체투지

북을 한 번 치면 절을 시작한다. 먼저 무릎을 꿇고 양팔과 두 다리를 쭉 뻗어 땅에 바짝 엎드린다. 고개는 푹 숙여 이마까지 땅에 붙인다. 몸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아 있다. 양쪽 팔꿈치와 양 무릎, 이마. 오체투지는 신체의 다섯 부분을 땅에 던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북소리가 다시 들리면 일어서 걷기를 시작한다. 오체투지는 불교에서 절하는 방법의 하나다. 우리말로는 ‘배밀이’다. 배를 바닥에 대고 기어가는 일이라는 뜻이다.


오체투지를 결심한 노동자들은 뭔가를 보여 주고 싶은 사람들이다. 대기업과 정부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불법 해고 칼날을 휘두를 때 오체투지를 감행한다. 오체투지에 과감함이 필요한 이유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종교에서 오체투지가 경건한 의식이었다면 노동자에게 오체투지는 “삶의 바닥이 얼마나 처참한 것인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108배, 삼보일배 등이 최고의 다이어트 운동법으로 꼽히는 데엔 이유가 있다. 엎드렸다, 일어섰다 몇 번 하다 보면 현기증이 난다. 무릎보호대, 아대 등으로 관절을 보호해 보지만, 찰과상을 막을 뿐이다. 휴식 시간이 중요한데 1시간 정도 배밀이를 하고 나면 10분 정도는 널브러져 쉰다.

2014년 크리스마스이브부터 5일 동안 오체투지를 한 유흥희 기륭전자 분회장의 경험담을 들어 봤다. 대방동 기륭 본사부터 청와대까지 가는 코스. 흰 저고리와, 흰 바지를 입고 한 발 한 발 뗐다. 분노가 밀려왔다. 꼬리 자르고 도망간 사장에 대한 분노, 비정규직을 확산하는 정부에 대한 분노, 견디기 힘든 추위 등이 그녀를 괴롭게 했다. 그 분노로 사흘을 버텼다. “분회장 아니었음 때려치우고 싶었다”는 심정. 오체투지에 결합하는 사람들을 보고 나머지 이틀을 더 했다. 그녀는 시민들 반응이 다른 집회 시위 때와 달랐다는 점을 성과로 들었다.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뀔 때도 횡단보도를 다 못 건넜지만 클랙슨을 울리는 차는 없었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을 눈빛으로 응원하고, 직접 응원의 말을 건네기도 한다.

경찰은 평화롭지만 시민의 눈길을 끄는 이 집회 시위 방식이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기륭전자 오체투지에 “민복을 입고 단체로 오체투지를 하는 건 저항”이며 “민란”이라고 규정한 다음 집회 신고를 반려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정리 해고를 반대하며 오체투지를 할 땐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엎드려 있는 사람을 그대로 들어 올려 내팽개쳤다. 당시 구급차까지 탔던 한 노동자에 대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평화로운 오체투지 준비도 법정에 설 각오는 필수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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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솔 기자/사진 정운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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