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갈치고 앉아 있네

10년 만의 공안 탄압이다. 정부가 정조준한 곳은 이번에도 건설노조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이어진 1차 건설노조 공안 탄압. 그리고 올해 2016년 2차 공안 탄압까지. 세월은 지났지만 양상은 비슷하다. 노동조합 활동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는 것. 그리고 건설노조의 활동 자체를 폭력 집단과 유사한 모습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건설노조를 수사망으로 끌어들이는 키워드는 같다. ‘공갈’과 ‘협박’. 노조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구속과 수배는 줄줄이 이어진다. 과연 노조와 수사 기관 중 ‘공갈’을 치는 이들은 누구일까.

  정운 기자

공안 탄압의 시작

2003년 가을. 경찰이 대전과 천안, 경기 서부 지역 건설노조를 상대로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원청사와 단체 협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협박이 있었는지 파악하겠다는 것이었다. 원청 관리자들과 노조 간부들이 줄줄이 경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대전 지역 건설노조 간부 6명이 전원 구속됐고, 천안 지역에서도 간부 2명이 구속됐다. 경기 서부 지역 건설노조에서는 간부 12명이 구속돼, 노조가 명동성당에서 298일간 농성을 했다. 검찰과 경찰은 노조가 원청사를 협박해 금품을 갈취했다고 주장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건설 현장에서 노조가 산업 안전 미비점을 고발하겠다고 협박해 원청 관리자들이 겁을 먹고 금품을 주었다’는 주장이었다. 노조 간부들에게 적용된 죄목은 ‘공갈죄’였다.

검경의 주장은 건설노조에 ‘공갈 협박 조직’이란 이미지를 덧씌우기 충분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에는 상당한 왜곡이 있었다. 현장의 산업 안전 문제를 고발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기본적인 역할이었다. 그리고 원청 관리자가 주었다는 ‘금품’은 전임비(노조 전임자 임금)였다. 전자와 후자 모두 노동조합 활동의 일부분이었다. 그렇다면 그 두 가지 사건을 불법으로 엮을 만한 ‘협박’이 존재했을까.

당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인권운동사랑방 등 7개 법률, 인권, 노동 단체들은 ‘지역건설노조공안탄압진상조사단’을 꾸려 노조와 원청, 경찰과 검찰 등을 상대로 진상 조사 활동을 벌였다. 경찰 수사가 진행된 현장 8곳의 원청 관리자 증언과 노조 및 검경의 증언을 수집했다. 진상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원청 관리자 중 협박을 당했다고 증언한 이는 없었다. 모두 “노조로부터 협박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말했고, “회사가 협박한다고 끌려다니지 않는다”, “본사의 승인을 얻어 단체 협약을 체결했다”, “본사 법규팀에서 단체 협약을 놓고 검토했고, 전임비를 주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등의 증언이 나왔다. 심지어 “벌써 시나리오가 다 짜여 있었고 공갈 협박 및 금품 갈취라는 결론으로 (수사를) 끌고 갔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공안 탄압 과정

그렇다면 수사 기관은 왜 경기 서부와 대전, 천안 지역을 겨냥했을까. 김호중 경기 중서부 건설지부 사무국장은 “건설 현장 중 전국 최초로 단체 협약이 체결된 곳이 바로 경기 서부 지역”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2000년 이후, 경기 서부를 시작으로 수도권 지역과 대전, 광주, 부산까지 동일한 내용의 단체 협약이 체결되기 시작했다.

이영철 건설노조 토목건축분과위원장은 “1988년 서울건설일용노조가 창립한 후 2000년 이전까지는 임금이나 노동 조건보다는 고용 문제가 중요했다”며 “노조 활동이 구직에 맞춰지다 보니 소규모 인맥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며 조직화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건설노조가 본격적인 조직화 사업에 뛰어든 건 2000년이다. 당시 국제건설목공노련(BWI)이 한국 건설노조에 조직화 사업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김호중 사무국장은 “BWI가 보기에는 금속, 공공, 건설이라는 3대 노조 중 한국에서는 건설이 가장 약하다고 생각했을 거다. 전투력은 있으나 조직화가 안 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라며 “성장 과정에 있는 노조라 BWI에서 조직 활동가를 파견해 본격적인 조직화가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건설노조는 ‘구직’의 범위를 넘어서 법과 제도 준수를 위한 활동들을 벌여 나갔다. 그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광범위하게 조직됐다.

노조가 법 제도 준수 투쟁을 벌이기 위해서는 원청과의 단체 협약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건설근로자의고용개선등에관한법률〉 등 각종 노동 관계법은 건설 원청 업체의 사용자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다단계 하도급 건설 현장에서 건설 노동자들의 체불 임금과 산업 재해 보상, 고용 보험, 퇴직 공제 등을 책임져야 할 사용자는 원청 업체였다. 이에 따라 노조는 원청과 단체 협약을 체결하기 시작했지만 검찰은 이를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일용 노동자와 직접 근로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원청을 상대로 한 단체 교섭은 법적 근거가 없으며 협박이 이뤄진 것이라 단정했다.

건설노조 공안 탄압은 이후 2006년까지 이어졌다. 충남 건설노조 하청 업체 조합원이 부당 해고 투쟁을 벌인 뒤 해고 수당을 지급받은 것도 금품 갈취와 공갈죄가 적용됐다. 검찰이 노조의 산업 안전 고발 사건을 무혐의 처리하며, 역으로 노조를 무고죄로 처벌하는 사례도 있었다. 대구 경북 건설노조 파업 당시에도 지도부에 금품 갈취와 공갈죄의 혐의를 씌웠다. 이듬해 법원은 파업 지도부에 대해 “원청 단체 협약 체결과 전임비 지급 요구는 정당하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2003년부터 3년간 공안 탄압으로 구속된 건설노조 간부는 28명에 달한다.

2016년 공안 탄압

10년 만에 돌아온 건설노조 공안 탄압의 키워드 역시 ‘공갈’이다. 지난해 11월, 사법부는 건설노조 타워 크레인 분과 간부 5명을 공갈 협박 혐의로 구속했다. 올해 6월 2일 열린 1심 선고에서 서울남부지법은 이들 5명을 포함한 총 15명의 노조 간부 전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정민호 건설노조 부위원장과 김명욱 서경 타워 지부장은 각각 징역 3년과 2년의 실형을, 이외 13명은 집행 유예 선고를 받았다.

검찰과 경찰, 재판부는 노조의 ‘조합원 채용 요구’를 정당한 조합 활동이라 볼 수 없으며, 회사의 경영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합법적인 집회를 열어 단체 교섭을 거부하는 회사를 압박한 것, 그리고 현장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실을 고발하는 노조 활동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노조의 일련의 활동들은 사용자에게 겁을 주는 행위이며, 사용자 의사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것이었다.

올해 5월에는 경찰청이 ‘건설 현장 불법 행위 특별 단속 기간’을 선포했다. 경찰청은 조합원 고용 요구와 건설 현장의 집회 및 시위, 사측의 이권에 개입하는 행위 등을 ‘떼쓰기 식 집단 불법 행위’라고 규정했다. 전국 관서별로 284개의 부정 부패 수사 전담팀을 꾸리고, 1,316명의 인원을 편성해 특별 단속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서울과 경기 등의 건설 현장에 대한 내사도 진행했다. 노조는 이후 건설 노조 전체를 타깃으로 한 광범위한 공안 탄압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재희 건설노조 교선실장은 “경기도 시흥경찰서 명의의 공문에 따르면, 경찰은 타워 크레인뿐 아니라 토목건축 부문의 임단협 문제도 수사 대상으로 엮고 있었다”며 “건설 기계 쪽도 조사할 것이라는 움직임이 포착된 상황이라 타워 크레인과 토목건축, 건설 기계 등 건설노조 전반으로 탄압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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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솔, 윤지연 기자/사진 정운 기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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