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조가 죽어야 그들이 산다

하도급 구조에서 나오는 검은돈 건설노조가 감시

검은돈은 존재해야 한다

수사 기관은 왜 ‘공갈’이라는 혐의를 씌우며 건설노조의 활동을 불법으로 몰아가려는 걸까. 노조는 1차 공안 탄압의 숨겨진 의도를 ‘검은돈’에서 찾았다. 실제로 건설 산업은 ‘비리의 온상’이라고 불린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비자금을 수월하게 조성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건설업계의 검은돈 추문은 여간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백석근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은 “건설업계는 지금껏 비자금으로 생존해 온 곳”이라며 “노동조합이 다단계 하도급 구조 등에 문제를 제기하며 활동할수록 비리나 유착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수사 기관도 건설업계와 관련한 검은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곳이다. 지난 2011년, 강희락 전 경찰청장이 함바(건설 현장 식당) 브로커에게 억대 금품을 받아 챙긴 일명 ‘함바 비리’ 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으로 강 전 청장은 3년 6개월간 수감 생활을 했다. 양성철 전 광주경찰청장도 함바 브로커로부터 청탁을 받고 대기업 임원에게 로비를 벌여 유죄가 확정된 바 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도 지난 2013년, 건설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1심에서는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1년 2개월로 감형을 받았다. 같은 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건설업자로부터 별장에서 성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에 시달리며 취임 6일 만에 사퇴했다. 하지만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영철 건설노조 토목건축분과위원장은 “정부나 기업, 수사 기관의 입장에서 건설업계는 결코 투명해져서는 안 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각종 커미션을 상납받고, 일당 노동자들 인력이나 건설 장비 비용을 조작해 공사비에서 비자금을 만들어 낸다”며 “하지만 고용 보험으로 건설 인력이 드러나게 되고, 노조가 현장 감시 활동을 벌이니 노조 존재 자체가 위험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공의 적

건설 경기의 하락과 건설노조 조직 확대 역시 정부와 건설업계의 긴장 요소 중 하나다. 건설산업연구원이 지난 5월 발표한 〈향후 국내 건설 경기 하락 가능성 진단〉 자료에 따르면, 올해 국내 건설 수주가 전년 대비 약 20%가량 급락할 전망이다. 연구원은 “국내 건설 수주의 하락세는 올 하반기 이후 본격화할 전망이며, 향후 2~3년간 하락세가 지속할 것”이라며 “국내 건설 수주의 급락과 향후 2~3년간의 하락세 지속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방안 마련과 시행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건설 물량 감소는 곧 건설 노동자들의 일자리 난을 의미한다. 그중에서도 일용직 노동자들이 대부분인 토목건축분과 소속 조합원이 직격타를 맞게 된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일명 ‘노가다’라고 불리는 일당쟁이 건설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으면 어떻게 되겠냐”며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않았다면 건달이나 하층 계급으로 살았을 사람들이다. 잃을 게 없어 투쟁도 전투적이지 않나. 정부와 건설업계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영철 위원장도 “IMF 시기가 건설 노동자들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다. 많은 사람이 노숙자로 전락했고, 서울역 노숙자 중 30%가 건설 노동자였다”며 “만약 그 시기 노조로 조직돼 있었으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겠나. 현재는 노조 조직 규모가 그 당시와 비교가 안 된다”고 말했다.

확실히 건설노조는 꾸준히 조직 확대를 꾀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해 2만 명 정도 늘었다. 타워크레인분과는 전국 타워 크레인 기사 중 75%(2,500명)가량이 노조로 조직돼 있다. 이를 바탕으로 타워크레인분과는 2003년부터 중앙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형틀 목수 등 일용직 노동자로 구성된 토목건축분과도 조합원이 1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올해부터 사용자 단체와 집단 교섭을 진행해 전국 단체 협약을 만들어 나간다는 계획이었다. 건설기계분과도 1만 5천 명, 전기분과도 2천 명의 조합원이 가입해 있다. 전체 건설노조 조합원은 총 3만 명가량으로 집계된다.

조합원의 확대는 투쟁력 강화로 이어졌다. 노동계의 집회 현장에서 건설노조와 공권력이 충돌하는 사례도 잦아졌다. 이영철 위원장은 “민주노조 운동에 있어 시기마다 투쟁을 책임지는 연맹이 있다. 지금은 건설노조가 투쟁 동력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며 “건설 노동자들의 특성이 분노도 많고 격렬하다. 집회 현장에 가면 지도부도 통제를 못 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로서는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건설노조 공안 탄압이 시작된 시기도 지난해 11월, 민중 총궐기 집회 직후부터다.

건설 경기 하락과 노조 조직력의 확대는 건설사에도 큰 부담이 된다. 노조의 임금 인상 및 노동 조건 개선, 안전 시설 확충 등의 요구는 곧 비용 상승으로 직결된다. 전재희 건설노조 교선실장은 “어느 회사를 가더라도 건설노조 조합원을 고용하면 비용이 더 든다고 한다”며 “건설사로서는 공사비가 상승하기 때문에 노조를 탄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갈 협박범이 되는 방법

수사 당국은 건설노조 표적 수사 논란을 부인하고 있다. 건설업계 부정 부패를 수사하는 것일 뿐 노조 활동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는 주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노조 탄압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노조 활동 여부를 떠나 특수한 이해관계 때문에 정상적인 의사 결정 자체가 왜곡되는 게 많다. 합법적인 집회는 법에 보장되지만, 무작정 타워 크레인에 오르거나 하면 손실이 발생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큰 주안점은 건설업계의 유착과 비리다. (노조 관련한 것은) 여러 항목 중 하나로, 색깔론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노조는 수사 당국이 일상적인 노조 활동까지 불법으로 엮어 노조를 표적 수사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정부는 건설노조의 조합원 채용 요구와 노조 전임비, 단체 교섭에서 압박, 집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의 고소 고발 행위 등 일상적인 노조 활동을 모두 문제 삼고 있다.

그중 조합원 채용 요구 부분은 이번에 처음 공안 탄압의 빌미가 됐다. 하지만 조합원 채용 요구의 경우, 건설 현장의 특성상 필연적인 부분이며 불법 행위라고 간주하기도 어렵다. 대법원은 일시적 실업 상태나 구직 중인 사람도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하고 있다. 건설노조는 초기업 노조이며, 동시에 일용직 노동자들이 다수 가입돼 있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고용 기간이 짧은 건설 현장 특성상 노조가 구직 상태의 조합원들을 위해 사용자에게 교섭을 요구하고 협약을 체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노조 활동”이라며 “정부는 현장에서 노조 활동을 이유로 조합원들이 채용에서 배제되는 문제는 전혀 감안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임비(타임 오프)의 경우, 일용직 노동자들에 대한 법적 제도적 규정이 존재하지 않아 노사가 자율적으로 합의해 온 부분이다. 단체 교섭상의 압박이나 고소 고발의 경우도 노사가 공통으로 활용해 온 압박 카드다. 오히려 노사 관계에서 회사가 손배 가압류 및 해고, 징계 등으로 노조의 숨통을 죄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권두섭 원장은 “단체 교섭은 노사가 멱살만 안 잡았을 뿐, 서로의 약한 부분을 협박해 양보를 이끌어 내는 과정”이라며 “판검사들이 단체 교섭 자체를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7월 6일 건설노조 총파업

법의 판단은 노동자들에게 언제나 불평등하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현장을 고소 고발 했던 타워 크레인 노동자들은 공갈 협박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각종 인명 사고를 일으킨 건설 현장은 벌금 또는 무죄로 범죄가 무마된다. 건설노조에 따르면 2009~2013년까지 5년간 2만 380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중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리거나 약식 기소를 한 사건은 96.9%에 달한다.

이 같은 불평등을 가리기 위해 정부는 건설 노동자들에게 ‘공갈 협박범’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운다. 김호중 사무국장은 “건설 노동자들이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 있다. 이들이 노조를 조직하는 것 자체에 토를 달기는 어려운 분위기”라며 “귀족 노조라고 때려잡을 수는 없으니, 극단적인 이미지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탄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 제정 요구 또한 번번이 가로막힌다. 건설 현장에 사고가 터지면 정부와 국회는 건설 노동자 복지 법안을 쏟아 내지만 법안 통과까지는 까마득하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건설 기계 노동자 퇴직 공제 부금 등 민생 법안도 후퇴될 조짐이다.

건설노조는 오는 7월 6일 총파업에 돌입한다. 이들은 △〈건설근로자고용개선등에관한법률〉 개정 △적정 임금제 도입 △직접 시공 전면 도입 등 18대 건설 현장 민생 관련 대정부 요구안을 내걸었다. 건설노조의 총파업은 지난 2014년 이후 2년 만이다. 공안 탄압의 직격타를 맞고 있는 건설노조 타워 크레인 분과도 1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무기한 전면 파업을 결의한 약 2,700명의 타워 크레인 노동자들은 오는 6일, 서울에서 열리는 건설노조 총파업 집회에 결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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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솔, 윤지연 기자/사진 김용욱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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