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 세모녀법’이 가난한 사람을 죽이고 있다

주무부처 쪼개지면서 ‘새로운 방식’의 수급 삭감 발생

서울 성북구에 사는 정아무개 씨는 지난해 11월 주민센터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7월부터 10월까지 주거급여가 과다하게 지급되어, 과지급된 부분을 매달 주거급여에서 삭감하겠다는 것이다. 기초생활수급비로 살아가는 정 씨에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지난해 7월, 정부는 ‘송파 세모녀법’이라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아래 기초법)을 개정했다. 정부는 이번 개정으로 수급비도 오르고 복지 사각지대에 있던 이들도 수급비를 받을 수 있게 됐다고 홍보했다. 개정 이전에는 복지부가 급여 지급을 총괄했으나, 개정 후 각 급여별로 담당 부처가 쪼개졌다.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는 복지부가, 주거급여는 국토부가, 교육급여는 교육부가 담당하게 됐다. 담당 부처뿐만 아니라 급여별 계산도 달라졌다. 과거엔 급여가 최저생계비 중심으로 책정됐지만, 개정법에선 ‘중위소득’을 중심으로 계산된다.

  2014년 2월, 생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던 송파 세 모녀가 자살했다. 자살 전에 그들이 집주인에게 남긴 봉투. [출처: 서울지방경찰청]

즉, 기초법 개정으로 급여별 담당부처가 바뀌던 작년 7월부터 정 씨의 주거급여가 잘못 계산된 것이다. 정 씨는 개정 전엔 주거급여 11만 원, 생계급여 38만 9290원으로 총 49만 9290원을 받았다. 그런데 7월부터 10월까지 주거급여는 11만 4000원, 생계급여는 43만 7460원으로 총 55만 1460원이 입금됐다. 정 씨는 기초법 개정으로 수급비가 오른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자신의 수급비 또한 오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정 씨는 개정으로 수급비가 오르기는커녕 깎이는 경우였다. 제대로 계산하자면, 주거급여는 2만 7070원으로 기존보다 8만 원 가량 깎인다. 여기에 생계급여 43만 7460원을 합하면 그는 46만 4460원을 받게 된다. 생계급여가 올랐음에도 주거급여가 대폭 삭감되면서 개정 전보다 총 3만 4830원 깎이는 셈이다. 하지만 정 씨는 이번 개정으로 자신이 얼마 받게 되는지 미리 통보받은 적조차 없었다. 늘 그랬듯, 통장에 입금되는 대로 받았을 뿐이다. 그런데 정 씨는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받아야 하는 수급비보다 더 많은 수급비를 받아 챙긴, 부정수급자가 되어 있었다.

주무부처 쪼개지면서 ‘새로운 방식’의 수급 삭감 발생

정 씨는 시민사회단체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 된 일이지 알 수 있었다. 이는 LH강북사업소에서 정 씨가 살고 있는 곳을 ‘시설’로 잘못 입력하여 발생한 일이었다. 이의신청하려고 하자, 구청과 국토교통부(아래 국토부)와의 핑퐁 게임이 시작됐다. 구청은 주거급여는 국토부 담당이니 국토부에 문의하라고 했다. 반면, 국토부는 급여 결정은 보장기관이 하니 구청에 문의하라고 했다. 기초법 개정으로 주무부처가 쪼개진다고 할 때 우려했던 일이 정 씨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이들은 복지부에도 문의했다. 복지부는 ‘보장기관(구청)에서 생활상의 어려움 등을 고려해 확인할 수 있으니 보장기관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답했다. 이를 토대로 정 씨는 이의신청서를 작성했다. 정 씨를 지원한 빈곤사회연대는 “환수조치가 되면 수급자가 받는 급여액은 최저생계비 이하가 된다”면서 “이는 기초법의 원칙인 최저생활보장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정 씨의 사례는 지방생활보장위원회 심의에 올랐다. 그 결과 올해 3월, ‘주택조사 오류에 의한 주거급여 과잉지급분 반환은 면제한다’는 결정을 최종적으로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시민사회단체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정 씨는 다행히 환수조치를 면하게 됐다.

빈곤사회연대는 정 씨와 같은 사례가 더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 서울시, 국토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이들은 △LH사업소에서 잘못 입력한 수급자 통계 △주거급여 과지급으로 환수조치가 확정되거나 진행 중인 가구 통계에 대한 자료를 요구했다. 그러나 복지부와 서울시는 이를 국토부로 이송했고, 국토부는 ‘정보부존재’로 이를 처리했다. "국토부는 주거급여 주택조사 전담 기관으로, 요청한 자료는 보장기관인 지자체 확인을 통해 알 수 있는 자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어떠한 자료도 받지 못했다.

정 씨의 경우, 환수조치는 면했으나 또 다른 문제가 남아있다. 바로 기존 수급비보다 급여액이 깎인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행기 보전액’을 시행하고 있다. 이는 개정으로 급여가 감소한 경우, 그만큼의 금액을 한시적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 씨는 과거 급여보다 3만 4830원이 적은데 이 ‘마이너스(-)’가 ‘제로(0)’가 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 이듬해 생계급여가 2만 원 오른다면 정 씨는 1만 4830원을 ‘이행기 보전금’으로 받게 된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생계급여가 2만 원 오르면 정 씨의 수급비도 그만큼 올라야 하는데, 그의 수급비는 개정 전 수준에 묶여 있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정 씨 수급비는 삭감됐다. 사실상 '이행기 보전액'을 통해 눈 가리고 아웅하는 행정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가난한 이들을 ‘가난’에서 구하지 못했다

이번 개정에서 정부가 강조했던 또 다른 한 가지는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다. 부양의무자엔 수급권자의 1촌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사위, 며느리)까지 포함된다. 까다로운 부양의무자 기준은 이제까지 빈곤층들이 수급권을 박탈당하는 주된 이유였다. 시민사회단체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기는 악질적 제도라며 부양의무자 폐지를 주장해왔다. 폐지 없이는 400만 명에 달하는 빈곤의 사각지대를 사실상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정안에서도 부양의무자의 부양능력을 판정하는 소득 기준선이 과거 297만 원(4인 가구 기준)에서 485만 원으로 조금 완화됐을 뿐, 여전히 유지됐다. 이러한 완화가 가난한 이들의 삶을 얼마나 구할 수 있었을까.

서울 신당동에 사는 이아무개 씨는 올해 봄, 사위 소득이 높다며 수급비가 삭감됐다. 사위 소득이 474만 원, 딸 소득이 77만 원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딸 부부는 서울에서 보증금 1억 원에 월세 110만 원의 집에 살고 있어 월세 지출이 컸다. 또한, 세 살 된 자녀를 키우는 중이라 육아에 많은 돈이 쓰이고 있었다. 부부 모두 40대라 자녀 성장을 대비해 저축도 절실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 씨의 경우, 사업 실패로 딸이 40세에 결혼할 때까지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했을 뿐더러 결혼 전까진 딸이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해왔다. 즉, 전형적으로 딸의 결혼으로 ‘부양의무자’ 소득이 높아진 경우였다. 이런 상황에서 직계 혈족도 아닌 사위 소득이 높다고 하여, 부양비를 달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이 씨는 부양받을 수 없다고 소명서를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재도 수급비는 계속 깎이고 있다.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김아무개 씨(59세, 장애 4급)도 작년 7월, 아들의 ‘월급 인상’으로 수급자에서 탈락했다. 수급 탈락으로 김 씨의 유일한 소득은 장애 수당 4만 원이 됐다. 종종 전단지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소득이 일정하진 않다. 그의 아들은 구미에서 월세로 원룸에 거주하며 공장에서 일한다. 한 달에 250만 가량 벌지만, 과거 사업 실패로 발생한 채무를 상환 중이라 아버지를 부양할 수 없다. “네 월급 때문에 수급에서 떨어졌다고 하더라”는 아버지의 말에 아들은 “도무지 도와드릴 수 없다. 미안하다”라고 답할 뿐이었다. 결국 김 씨는 기초법보다 부양의무자 기준이 완화되어있는 ‘서울형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신청했다. 서울형 기초생활보제도의 생계급여 최대치는 20만 5000원이다.

이러한 기초법은 얼마나 사람 목을 조이는가. 지난 6월 13일, 국민일보엔 수급자인 아버지와 ‘같이 살아선 안 되었던’ 한 청년의 죽음이 보도됐다. (관련기사▷ 26세 청년의 죽음… 그가 갈 곳은 없었다)

보도에 따르면, 사망한 이 씨는 2014년 10월부터 아버지의 임대아파트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이 씨는 공황장애로 인해 근로 능력이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해도 한 달을 버티지 못할 정도였다. 반면, 이 씨 아버지는 중증장애인으로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인연금으로 매월 78만 원가량 받고 있었다. 이 씨는 전입신고를 하면, 정부에서는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정받는 자신 때문에 아버지 수급비가 깎이거나 박탈될 것을 염려해 전입신고는 하지 않은 채 함께 살고 있었다. 이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주가 지난 뒤인 작년 3월 말에야 전입신고를 했다. 그러나 SH공사는 ‘아버지와 같이 살았다는 증거가 없다’며 임대아파트 계약 기간이 만료된 지난해 9월, 이 씨에게 퇴거하라고 했다. 이 씨가 이에 불응하자, SH공사는 결국 올해 4월 법원을 통해 강제퇴거 집행을 요청했다. 퇴거의 압박 속에 이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정부의 셈법과 가난한 이들의 셈법은 다르다

정부는 4일, ‘맞춤형 개별급여 시행 1년’을 맞이해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개정을 통해 전체 수급자 수가 132만 명에서 167만 명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신규 수급자는 47만 명가량 늘었으며, 수급가구 월평균 현금급여액은 40.7만 원에서 51.4만 원으로 증가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기초법에 따라 급여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을 ‘수급권자’라고 한다. 이는 법률상 부여된 권리임에도, 현실에선 누릴 수 없었다. ‘수급권자’가 ‘수급자’가 되기 위해 통과해야 할 문은 너무 좁다.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선 제 몸을 깎아야 한다. 가족(부양의무자)을 없애야 하고 일할 수 없는 몸임을 서류로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증명에도 돈이 든다. 그 돈조차 없이 가난한데도, 증명하지 못한 가난은 가난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또한, 개정으로 자신이 얼마 받는지조차 제대로 안내받지 못했다. 통장에 찍힌 돈이 어떻게 셈해 지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정부의 셈법대로라면 수급비도 오르고,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로 기존에 수급자가 되지 못한 이들도 수급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의 셈법과 가난한 이들의 셈법은 왜 이리 다른가. 정부는 가난한 이들의 삶이 나아졌다고 하는데, 가난한 이들은 여전히 ‘가난으로 죽겠다’고 비명 지른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 죽었다. 기초법 개정 전, 사람들은 ‘송파 세모녀법’이라고 불리는 이 법으로는 송파 세 모녀를 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시행 1년, ‘송파 세 모녀’는 여전히 이 법으로 구할 수 없다. 여전히.
덧붙이는 말

강혜민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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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동진

    금수저로 배운사람들의 특권이겠지요` 지 배부르고 지딸 지아들 잘되면 그만 이니까~아직도 썩은 세상입니다.그런 국회의원 나도 할수 있답니다.싸울수 있지요~언제 우리나라는 밑바닥도 활개는 아니더라도 목소리 가볍게 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