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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란해질 때마다 꺼내는 외부 세력론

7월 18일, 강신명 경찰청장이 기자 간담회에서 “외부 개입설에 대해 확인 중에 있다”면서 ‘외부 세력’의 기준에 대해서는 “성주군민 아닌 사람이라고 정의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해당 기사가 나온 후, 내 주민등록증을 꺼내 봤다. 서울특별시 은평구…. 청장님의 기준에 따르면 나는 사드 반대 투쟁에 함께할 권리가 없는 사람이었다. 동양시멘트, 한광호 열사, 하이디스, 콜트콜텍…. 연대하고 저항할 권리를 주민 등록 등재 여부로 판단해 보니 나는 아무래도 활동을 쉬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충남 태생이니 아산에도 공장이 있는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 투쟁은 함께해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성주 출생이고 초·중·고를 (성주에서) 나왔는데 (타지로) 간 사람은 현재 성주군민으로 보기는 어렵지 않겠느냐. 더 엄격하게 말하면 주민등록에 등재 안 된 사람”이라는 청장님의 엄격한 기준에 따르면 한광호 열사 투쟁도 불합격이었다. 억울했다. 연대하기 위해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주소지를 옮겨야 하는 건가.

  사진/홍진훤

곤란해질 때마다 꺼내는 외부 세력론

“사내 하청 노조의 불법 투쟁 배후 세력으로 사노위(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공동추진위원회), 노건투(혁명적사회주의노동자당건설현장투쟁위원회), 비없세(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다함께(노동자연대 다함께) 등이 추정된다.”

2013년 7월 18일, 현대차 희망버스에 대해 경총이 낸 보도 자료의 일부다. 2010년 7월 대법원은 현대차 사내 하청 노동자 최병승에 대한 불법 파견을 인정하며 회사가 최병승을 직접 고용 관계에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그 후로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도 현대차는 불법 파견 노동자들을 정규직화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두 노동자는 거대 재벌에 맞서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라며 고공에 올랐다. 현대차 희망버스는 280일째 고공 농성 중이던 두 노동자를 응원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현대차 울산공장으로 출발한 버스였다. 4천여 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함께했다. 그중 주민 등록이 울산광역시에 등재돼 있던 사람은 얼마나 됐을까.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현대차 사내 하청 노동자는 도급이 아니라 파견이기 때문에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사내 하청 노동자 전체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끔찍했을 것이다. 그것이 가져올 파장이 두려웠을 것이다. 단순히 현대차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안산, 인천 등 무수히 많은 공단은 이미 불법 파견 업체들이 성행하고 있었고, 한국은 대공장이 앞장선 불법 파견으로 뒤덮여 있었다. 불법의 천국, 그 선봉에 선 현대차가 이제 와서 전체 사내 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 현대차에 맞선 사내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 고공 농성, 전 사회적 연대 희망버스까지.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한, 해결할 생각도 없었던 현대차는 곤란해졌다. 외부 세력론이 스윽 나왔다.

“밀양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밀양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 합리적인 문제 해결을 가로막고 있는 외부 세력은 지금 당장 추방되어야 한다.”

2013년 10월 8일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발표한 대도민 호소문에 적힌 내용 중 일부다. 한전은 2013년 10월 1일 호소문을 발표한 후에 공사를 재개하겠다는 약속을 뒤집었고, 9월 30일 장비를 투입하고 새벽에는 경찰 병력과 함께 한전 직원들을 투입했다. 정부와 한전, 경찰은 합동 작전으로 밀양 송전탑 경과지를 침탈했다. 3천여 명의 경찰이 마을을 점령했고, 밀양 주민들은 곳곳에서 차단당했다. 통행 금지, 불법 체포, 표적 수사, 공권력의 폭력 행사, 농성장에 생필품 반입 금지, 의료 지원 통제, 주민에 대한 모욕과 조롱…. 주민 등록 소재지가 밀양시임이 분명한 ‘내부 세력’은 고립됐고, 한전 직원들은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드나들었다. 경찰을 피해 송전탑 공사를 막으러 가기 위해 주민들은 새벽마다 산을 올랐고, 경찰에 의해 끌려 나왔다. 경찰의 폭력에 무수히 많은 주민이 실려 나갔다.
10년의 싸움. 주민들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한전은 밀어붙였다. 공사가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대안도 있었고, 주민들 반발도 컸던 사안이었다. 아직도 송전이 시작되지 않은 상황으로 봤을 때 논의할 시간도 많았다. 하지만 국가와 한전은 주민들을 고착시키고, 무력으로 제압하는 방식을 택했다. 다급해진 주민들은 옷을 벗었고, 구덩이를 팠고, 몸에 사슬을 묶었다. 밀양 주민들의 절박한 저항에 곳곳에서 많은 사람이 달려들었다. 그렇게 송전탑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절규가 울려 퍼지고,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시민들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곤란해진 저들은 또다시 외부 세력론을 꺼내 들었다.

경계를 넘어 공명하는 우리의 연대

사드를 둘러싸고 외부 세력 논란이 한참이다. 기자들은 ‘보도 지침’을 받고, 보수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갈등을 증폭시키고, 사건을 정치화하려 한다’며 외부 세력 비난 칼럼을 써 댄다. 신이 난 경찰은 전담 수사팀을 편성했고, 현장 검증까지 하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사드 배치에 주민들이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니 사람들이 사드 배치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쟁점에서 사라졌다. 정치적으로 활용하지 마라며 들고나온 외부 세력론이 그 정치적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외부 세력론은 언제나 저들이 적절하게 활용해 온 매뉴얼이다. 어떤 법이든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적용하고 어떤 제도든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활용하는 저들이, 무언가를 집행하고, 관철하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이를 막거나 중재해 낼 뾰족한 수는 없다. 언론과 경찰도 저들의 이해를 위해 가동된다. 그러나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저항하는 이들의 몸부림은 이에 맞서는 어떠한 공명을 만든다. 그 공명은 사회적으로 울려 퍼져 저들이 준비한 기재들을 무력화하고, 또 다른 저항을 불러온다. 그 순간 저들은 그 힘을 빼기 위해, 그 저항을 막기 위해 외부 세력론을 꺼낸다.
누군가의 입장에서 연대는 외부 세력의 난동이지만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이다. 우리 사회의 균형을 맞추는 돌멩이 하나이며, 덜어진 평형수를 채우는 물줄기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 사드에 반대하는 성주 주민들은 국회까지 올라와 한국에 사드는 필요 없다고 외치고 있다. 곳곳에서 이들과 함께하려는 마음이 생겨난다. 외부 세력론 따위로는 이 흐름을 막을 수 없음이 확인되고 있다. 저들이 또 무슨 수단을 들고나올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무엇으로도 성주 주민들과 함께하려는 마음, 전쟁 위협을 부추기는 전쟁 무기를 거부하는 마음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말

오진호-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집행위원. 노동과 사회 운동의 접점이 늘어나기를 바라며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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