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을 말아먹는 ‘비열한 무기’들

[워커스 24호/이슈]

바야흐로 파업의 계절이다. 9월 23일 금융노조 파업을 시작으로 같은 달 27일,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성과연봉제 저지를 내걸고 파업에 들어갔다. 철도와 서울지하철, 도시철도, 부산지하철 노동자들이 열차를 멈췄고, 서울대병원 등 병원과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공단 노동자들이 일손을 놨다. 거기다 10월 10일에는 화물연대까지 파업에 돌입하며 물류와 교통이 멈춰 섰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고 찜찜하다. “난 지하철 불편한 거 못 느꼈는데.” “나는 자가용 타고 다녀서 몰라.” 지인들의 반응도 하나같이 뜨뜻미지근하다. 한 택시기사는 “파업이 옛날 같지 않다”고 소회했다. 물류대란, 교통대란, 업무마비 등으로 시끌벅적해야 할 파업기간에 세상은 왜 이리 잘만 돌아갈까. 도대체 무엇이 파업의 위력을 이토록 쭈글하게 만들어버리는 걸까. 왠지 노동자 파업을 가로막는 ‘비열한 무기’들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다.

  사진/정운 기자

복고의 귀환, 긴급조치 발동

정부가 또 다시 고릿적 무기를 꺼내들었다. 공공부문 파업에 이어 현대차까지 파업을 예고하자 ‘긴급조정권을 발동하겠다’며 엄포를 놨다. 왠지 유신시절 ‘긴급조치’가 떠오른다. 그렇다. ‘긴급조정권’은 노동계의 ‘긴급조치’와 같다. 옛날 옛적 군부쿠데타 시절 만들어진 제도다. 노동부 장관이 ‘긴급조정’을 공표하면 즉시 쟁의행위는 불법이 되고, 30일간 쟁의행위가 금지된다. 이를 어기면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거기다 중앙노동위원회가 강제로 중재재정을 내리면, 이는 단체협약과 같은 효력을 갖게 된다. 그야말로 ‘노동3권 무력화 만능키’다.

긴급조정권의 마지막 기록은 2005년 대한항공 노조 조종사 파업이다. 송영섭 금속법률원 변호사는 “긴급조정권은 파업 자체를 봉쇄하는 제도”라며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 때 긴급조정권 발동된 후 조합원 복귀율이 급등하는 등 파업 무력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무슨 연유로 느닷없이 긴급조치를 꺼내든 걸까. 송보석 금속노조 사무차장은 “현대차에서 임금피크제가 무산되는 등 민간부문에서 노동개악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공공부문만큼은 밀어붙여야 했다. 따라서 ‘긴급조정권’으로 공공부문에 엄포를 놓은 측면도 있다. 앞으로도 공공부문을 겨냥해 긴급조정권을 발동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직권중재’ 가고 ‘필수유지업무’ 왔다

긴급조정권과 비슷한 과거 유물로는 ‘직권중재제도’가 있다. 긴급조정권이 파업을 ‘사후 봉쇄’하는 것이라면, 직권중재제도는 파업을 ‘사전 봉쇄’하는 무기다. 직권중재는 철도, 지하철, 은행, 병원 등 필수공익(필공)사업장으로 지정된 곳에 적용됐다. 정부가 직권중재제도를 휘두르는 탓에 철도노조는 파업 제약 및 구속, 해고, 손배소송에 시달려 왔다. 학계와 법조계를 비롯해 ILO까지 나서서 폐기를 요구했던 제도다. 결국 노사정은 2006년,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직권중재제도를 2008년부터 폐지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직권중재가 사라진 대신, ‘필수유지업무제도’가 도입됐다. 필공사업장 파업 시, 최소한의 인원을 유지해 업무가 중단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다. 이를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 폭탄을 맞아야 한다. 게다가 노동법에서 금지하는 파업 시 대체근로도 필공 사업장에서는 가능하다. 아무리 많은 노동자가 파업에 참여한다 한들, 기차와 지하철은 칙칙폭폭 잘만 굴러간다는 말이다.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에 치인 격이다.

이번 철도 파업에서도 대체근로의 문제는 여실히 드러났다. 미숙련 인력이 무리하게 현장에 투입돼 출입문 취급 미숙 등의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승객이 다치는 사고도 발생했다. 대학생과 취준생을 비롯해 특전사까지 대체인력으로 총 동원됐다. 심지어 대체인력 확보를 위해 코레일과 군대가 MOU협정까지 맺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자영업자도 일손 놓으면 감옥간다

자영업자라고 방심하진 말자. 장사가 안 돼 일손을 놓는 것도 처벌대상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주야장천 ‘자영업자’라고 주장하는 화물노동자들이 지난 10일 파업에 들어갔다. 그러자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이를 거부하면 화물운송 종사자격을 취소한단다. 파리 날리는 치킨집 사장에게 “빨리 치킨을 튀기지 않으면 영영 장사를 못하게 만들겠다!”고 엄포 놓는 격이다. 화물노동자로서는 분노가 폭발할 만하다. 박원호 화물연대 본부장은 결국 기자회견 자리에서 “우리더러 ‘개인사업자’라면서, 장사가 안 돼 차를 세우겠다는 개인사업자에게 어떻게 업무개시 명령을 내리나. 이럴 거면 노동자로 인정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격분했다.

원래 업무개시명령은 국민의 생명 및 건강을 다루는 의료인(의사, 약사 등)들에게 적용되던 제도다. 그런데 2003년 화물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물류대란이 일어나자, 정부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을 개정해 화물노동자에게도 이 제도를 적용해 버렸다. 만약 업무개시명령을 거부한다면? 화물운송 종사자격 취소를 비롯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돈으로 장난치기

치졸하고 쫀쫀한 것으로 치면 ‘무노동 무임금’을 따라올 것이 없다. 파업 기간 임금 지급을 막아, 노동자들을 굶주리게 만드는 방법이다. 199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하면서, ‘파업 결의’는 ‘배곯을 각오’가 됐다. 이번 공공부문 파업에서도 ‘무노동 무임금’이 노동자들에게 꽤 큰 고민거리였다. 조상수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파업 2주차 때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연금, 건강보험 공단 노동자들은 파업기간 동안 임금 전액이 손실돼 고충을 겪고 있다”고 털어놨다. 결국 공공부문 일부 사업장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전면파업’에서 ‘간부파업’ 등으로 전환해야 했다.

코레일의 경우 ‘무노동 무임금’을 무기삼아 가정 파괴에 나서기도 한다. 코레일은 파업 4주차를 맞은 지난 17일, 파업에 가담한 노동자의 임금명세서를 뽑아 각 가정에 보냈다. 그것도 특급우편으로.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은 “유례가 없던 일”이라며 분노했다.

‘자영업자’라고 예외는 없다. 정부는 파업에 참여한 화물노동자에게는 6개월간 유가보조금을 주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화물노동자들이 운송업체와 체결한 위수탁관리계약서 또한 가관이다. ‘단체행동을 했을 경우, 화물노동자와 하청업체가 대형 운송업체에 현금 1억 원을 즉시 줘야 한다’는 내용까지 들어가 있다. 심동진 화물연대 전략조직사업국장은 “업무 중단 시 자동계약해지, 손해배상 등 온갖 나쁜 조항들이 통상적으로 다 들어가 있다”고 설명했다.

코에 걸면 불법, 귀에 걸면 더 불법

정부는 노동자가 단체행동에 나서기만 하면 득달같이 불법 딱지를 붙인다. 노동자들이 단체로 숨만 쉬어도 불법이라고 우길 기세다. 이번 철도 파업 때도 정부와 코레일은 ‘불법’타령을 해댔다. 코레일이 먼저 성과연봉제를 포함한 임금체계 개편안을 놓고 보충교섭을 하자고 했고, 그래서 노조는 교섭을 했고, 하지만 이견이 발생해 교섭이 결렬됐다. 이후 무려 한 달간 노동위원회에서 조정회의를 했지만 또 결렬됐고, 결국 쟁의권을 확보해 파업에 나선 것인데, 도대체 어느 대목에서 불법이라는 것인지, 노동자들은 그저 억울하기만 하다.

2008년 알리안츠생명의 성과연봉제 저지 파업이 목적과 절차에 있어 정당한 파업이라는 대법원 판례도 버젓이 나와 있다. 하지만 이기권 노동부 장관은 “(철도파업의) 절차는 정당했지만 목적은 부당하다”는 희대의 어록을 남겼다.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은 “목적에 문제가 있으면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런 주장은 듣도 보도 못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코레일은 파업 4주차 기준, 19명의 노조 지도부를 업무방해로 고소 고발했고, 182명을 직위해제했다. 사측은 지난 2013년 철도 파업 당시에도 ‘불법파업’을 운운하며 198명을 고소했다. 하지만 업무방해로 기소된 4명의 철도노조 지도부에 대해 법원은 ‘무죄’ 판결을 내렸다. (워커스 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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