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마지막 날까지 백남기 부검 영장 집행 시도...결국 무산

홍완선 경찰서장 "영장 미집행에 따른 모든 책임은 투쟁본부에"

  장례식장 입구로 향하는 경력과 이를 저지하기 위해 연좌한 시민지킴이들 [사진/ 정운 기자]

경찰이 백남기 농민 부검 영장 시한 마지막 날까지 영장 집행을 강행하려 했지만 유족과 시민의 격렬한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25일 오후 3시 영장 집행을 위해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경찰은 유족 측 법률대리인과 두 차례 협의 끝에 부검 영장 집행을 철수한다고 밝혔다. 오후 5시 45분 홍완선 종로경찰서장은 장례식장 근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영장에서 제시한 제한 사항 취지를 고려해서 유족과 부검 관련한 협의를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유족이 영장 집행을 거부했고 소위 투쟁본부에서 경찰의 정당한 법 집행에 대해 실력을 행사해 저지한 점이 유감”이라며 “영장 집행을 못 해서 발생하는 모든 책임은 투쟁본부 측에 있다”고 강조했다.

  기자 브리핑 가진 홍완선 종로경찰서장 [사진/ 정운 기자]

  기자 브리핑 하는 홍완선 경찰서장 뒤 "부검절대반대!" 피켓 들고선 시민 [사진/ 정운 기자]

홍 서장은 “경찰의 부검 영장 집행은 국가 법절차에 따른 정당한 절차고 사인을 둘러싸고 불필요한 논란이 있는 만큼 의학적 판단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고 부검 영장 필요성을 주장했다. 영장 시한 만료일은 25일 밤 11시 59분까지지만 야간집행으로 인한 안전사고를 우려해 강제 집행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홍 서장은 영장 재청구 가능성에 대해선 “돌아가서 협의해야 할 문제고 신중히 검토해서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영장 공개를 할 것이냐는 물음엔 “(영장 공개는) 부검을 집행하는 현장에서 공개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오후 6시께 영장 집행을 위해 온 형사 100여 명과 9개 중대 800명 등 1000여 명의 병력은 철수했다. 시민들은 환호했다. 경찰은 지난 23일에도 부검 영장 집행을 위해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오후 6시 10분, 경찰 철수 뒤 기자 브리핑을 가진 백남기 투쟁본부 [사진/ 정운 기자]

백남기투쟁본부는 곧바로 브리핑을 열고 “길고 긴 30일이었다. 오늘도 기적같이 수많은 시민이 모여서 백남기를 지켰다”며 시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투쟁본부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이제 검찰과 경찰이 영장 청구를 포기해야 한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부검이 아니라 특검 추진과 철저한 책임자 처벌”이라고 밝혔다. 투쟁본부는 “지금까지 11개월간 사실상 조사를 회피한 채 부검에만 득달같이 달려들었던 검찰에게도 맡길 수 없다”며 특검 요구를 분명히 했다.

유족 백도라지 씨는 “여러분의 힘으로 경찰 손에서 아버지를 지켜냈다. 전국에서 분향소를 지켜주시고 마음 보내준 국민께 감사드린다”며 말문을 열었다. 백 씨는 모든 책임을 투쟁본부 측에 돌리겠다는 경찰의 말에 “가해자가 돌아가신 분을 놓고 욕되게 한 것도 모자라 책임까지 투쟁본부 측에 넘기고 있는데 오늘까지도 경찰은 반성을 모른다”고 꼬집었다.

유족 측 법률대리인 단장을 맡은 이정일 변호사는 “유족은 부검 절차 위한 협의에 응할 수도 없고, 강제 부검에 대해서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전달했다”고 밝혔다.

  경찰의 부검 영장 집행 저지를 위해 모인 시민들 [사진/ 정운 기자]

한편 경찰의 부검 영장 집행 저지를 위해 시민들은 오후 3시를 전후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속속 모였다. 700여 명의 시민들은 “우리가 백남기다. 강제 부검 절대 안 돼. 살인 정권 물러나라”를 외쳤다. 노동계, 종교계, 시민단체 인사는 가장 맨 앞에서 경찰과 대치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 노회찬, 이정미, 윤소하 정의당 의원과 윤종훈 무소속 의원도 모여 힘을 보탰다.

경찰이 철수했지만 시민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매일 저녁 7시에 했던 촛불집회도 예전과 같이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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