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퇴진운동은 어디로 가고 있나

- 조선일보 발 ‘보수정권 재창출’ 프레임과 촛불의 향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아주 잘 짜진 각본에, 훌륭한 감독이 연출한 가장 드라마틱한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각종 기획설과 음모론이 난무하는 것도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 만들기 1등 공신인 조선일보에 의해 시작되고, 한겨레, 경향, JTBC가 받쳐준 것도 상식적이지 않다. 살아 있는 현재 권력인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를 상대로 수없이 많은 내부제보자가 등장하는 것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또한 이번 사건의 ‘스모킹 건’ 역할을 한 JTBC의 ‘최순실 PC 보도’에서 최순실 PC의 유입경로가 불투명하다는 것도 배후세력이 있다는 의심을 부추기는데 한몫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세력이 기획했든, 배후가 누구든, 지금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대부분 상황이 조선일보의 프레임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일보는 아니, 조선일보만이 이 국면을 관통하는 거대한 프레임을 갖고 있다. 정치적인 의도를 숨기지도 않고, 수구세력과의 절연을 통한 보수의 재구성, 나아가 ‘보수정권 재창출’을 위한 것임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출처: 정운 기자]

조선일보에서 시작된 최순실 게이트

조선일보는 4.13 총선 전부터 청와대의 전횡과 친박의 선거농단을 지속해서 문제시해 왔다. 청와대와 친박의 선거파행에 대해서 연일 각을 세웠고 보수정치의 위기를 경고해 왔다. 결말이 예고된 대로 4.13 총선은 새누리당의 대패로 끝났고, 다음날 조선일보는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의 오만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내보냈다. 이대로라면 ‘보수정권 재창출’은 물 건너가고 보수정치의 고난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조선일보는 이 시점부터 중대한 결심을 한 모양인데, 박근혜 정권에서 금기시한 최순실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기 시작했다. 조선일보가 최순실 사건을 취재하기 시작한 것이 총선 직후인 4월부터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 상자가 열린 첫 번째 운명의 날은 7월 18일이다. 이날 조선일보는 신문 지상을 통해 우병우 처가와 넥슨의 땅 매입 사건을 폭로했고, 같은 날 TV조선을 통해서는 친박인 최경환, 윤상현, 현기환의 선거개입 녹취록을 폭로하면서 청와대와 친박을 상대로 대공세에 나섰다. 나아가 7월 26일 TV조선은 미르재단 설립에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이 개입했고, 재벌들이 500억 원 가까이 돈을 모았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연이어 다음날 TV조선은 최초로 차은택의 이름을 올리며 막후 실력자로 거론한다. 또 8월 2일에는 K스포츠재단을 최초로 무대에 등장시키며 이 배후가 모두 같은 사람일 것이라 예상했다. 사실상 최순실이라는 이름만 빼고 사건의 줄기는 다 내보인 셈이다.

청와대는 조선일보가 기득권 부패세력이라며 극렬하게 반발했고 역공에 나섰다. MBC는 8월 18일 다른 기자(조선일보)의 SNS 내용을 입수했다며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우병우 수석 감찰 내용을 보도한다. 그러자 청와대는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조선일보 기자에게 기밀을 누설하는 등 국기를 문란했다며 이석수 감찰관과 조선일보 기자까지 압수수색하고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친박 김진태 의원은 8월 29일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이 대우조선에 2억 원대 초호화 향응을 받았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조선일보를 부패 기득권 세력으로 낙인찍는데 거들었다.

청와대의 반격에 조선일보가 주춤하자 한 달 후, 이번에는 한겨레신문이 나섰다. 한겨레신문은 9월 20일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인 최순실씨가 K스포츠재단 설립과 운영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K스포츠재단 이사장 자리에 자신이 단골로 드나들던 스포츠마사지센터 원장을 앉혔다”고 보도했다.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박근혜 정권의 비선실세 의혹의 전면에 등장한 순간이었다. 또한, 9월 27일 한겨레신문은 국민감정을 자극한 최순실과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갑질 사건을 보도하며 국민적 공분을 모았다.

다시 10월이 되어 이번에는 JTBC가 바통을 넘겨받았다. JTBC는 “회장님(최순실)의 취미가 대통령 연설문 고치는 일”이라는 고영태의 증언을 공개한다. 이에 국회는 10월 15일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불러 사실관계를 따져 물었으나, 이 실장은 “중세시대에나 있는 일”이라며 사실을 부인했다.

두 번째 운명의 날인 10월 24일, JTBC는 최순실 태블릿 PC를 보도하면서 최순실 국정농단의 실체를 가감 없이 드러내기에 이른다. 다음날 25일 TV조선은 최순실 동영상을 최초 공개하며 비선실세가 최순실이라는 것을 사실상 확인시켜 줬다.

“언론 vs 부패한 권력”

조선일보는 우선 ‘청와대 vs 조선일보’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일부 언론의 대결이나 지배층 내부의 권력다툼이 아니라, ‘언론 vs 권력’ 즉, 권력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역할로 부패한 권력과 투쟁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증거로 이번 사건에 조선일보뿐 아니라, 최순실이라는 이름과 정유라의 이화여대 갑질 사건을 처음 터트린 한겨레신문, 최순실의 독일법인을 보도한 경향신문 그리고 최순실 PC를 입수해 특종한 JTBC 등 이번 사건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모든 언론이 앞장서서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비리를 들춰내고 파헤쳤다는 것이다. 이것이 조선일보의 첫 번째 프레임이다.

물론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최순실 취재를 시작한 것이 4월부터라고 하니 벌써 6개월도 더 전부터 취재해 왔다. 9월 20일 한겨레신문이 K스포츠재단이 최순실이 설립한 것이라는 보도를 통해 언론지상에 처음 최순실을 언급한 것보다도 최소 2개월도 더 전에 이미 조선일보는 최순실이 배후라는 것을 다 꾀고 있었다.

이진동 TV조선 사회부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7월초에 김종 차관, 국가브랜드, 늘품체조 건을 썼다. 그리고 7월 중순에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을 썼다. 그 다음으로 준비하고 있던 게 이화여대 건이었다. 하이라이트는 문화융성사업이라고 봤다. 그 많은 예산을 최순실이 짜고 그게 실제로 반영되고 집행됐기 때문이다. 국가를 흔드는 문제라고 봤다. 그래서 뒤쪽에 배치를 했다. 마지막에 최순실을 꺼내려고 했다.”라고 밝혔다.

청와대가 공세를 취하자 조선일보는 ‘청와대 vs 조선일보’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질까 두려워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조선일보는 그 이후 두 달 동안 우병우나 미르재단 등 관련 단어조차 언급하지 않고 자성 모드에 들어갔다. 하지만 동시에 ‘언론 vs 권력’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 다른 언론사에 취재 소스를 공개하며 대신 나서도록 독려했다. 한겨레신문이 우병우 취재에 몰두하자 그곳이 핵심이 아니라며 미르재단을 취재하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9월 20일 최순실 단독보도 이후, 한겨레신문 선임기자는 조선일보가 미르재단에 대해 최초 보도를 하고 ‘잃어버린 고리’에 대한 물증까지 확보해 놓은듯하지만 침묵하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조선일보에 보도를 권하기도 했다.

또한, JTBC가 최순실 PC를 보도한 10월 24일 바로 다음 날 TV조선은 최순실 영상을 공개함으로써 비선실세가 최순실임을 의심의 여지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동영상이 촬영된 것은 7월 중순이며 무려 3개월을 기다린 끝에 동영상을 공개했다.

이 사건의 보도를 시작한 시점인 7월부터 조선일보는 최순실 게이트의 거의 모든 줄기와 내용을 다 파악하고 있었고 파장이 어떻게 번질지도 예상하였다. 다른 언론사와 협업을 했으나 그조차 ‘언론 vs 권력’의 구도를 만들려 했던 조선일보의 의도대로 진행되었다.

“2선 후퇴-거국중립내각 그리고 평화”

결국 가장 많은 정보와 정세 변화와 파장에 대해 가장 많은 시뮬레이션을 해 봤을 조선일보는 중요한 국면마다 가장 기민한 대처를 하게 된다. 사실상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모든 프레임을 혼자서 다 짜고 이끌어갔다. 조선일보는 10월 24일 JTBC의 최순실 PC 보도 직후 10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공개 사과한 그다음 날 “부끄럽다”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이른바 ‘조선 가이드’라고 불린 이 사설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치권의 대응 프레임을 제시한다. 박 대통령의 퇴진이 아닌 2선 후퇴와 새누리당 탈당, 거국중립내각의 구성이다. 실로 기민하면서도 강력한 대응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이후 조선일보는 이 틀을 그대로 유지한다. 최소한으로 사태를 수습하려 하는 청와대는 물론, 어제 말과 오늘 말이 다르고 하야, 퇴진, 탄핵, 2선 후퇴 등 방향을 잡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야당에 대해서도 거국중립내각을 압박하기에 이른다. 청와대가 김병준 총리내정자를 지목하고 나서도 조선일보는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총리지명 철회와 2선 후퇴를 압박하고, 야당에는 거국중립내각을 수용하라고 양쪽을 모두 호령한다.

또한, ‘박근혜 즉시 퇴진’을 요구하는 거리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국정공백을 메우고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질서 있는 대응을 해야 하며, 대통령의 2선 후퇴와 거국중립 내각이 유일한 수습방안이라고 설득했다. 이를 위해 거리의 시민과 민주당을 분리하고, 거리의 시민과 민주노총 등 사회단체를 분리하고, 민주당과 사회단체를 분리했다. 이른바 ‘3분 전략’을 유효적절하게 관철했다.

이미 문재인과 민주당에 대해서는 ‘운동권 정당’이라는 주문을 걸어 장외투쟁을 계획하거나, 다소 과격한 발언을 하거나, 민주노총 등 노동사회단체와 연대하려고 하면 어김없이 ‘운동권 정당’이라는 딱지를 붙여 왔다. 민주당을 국회 안에서 제도적인 역할 이상 할 수 없도록 강력한 주문을 걸어 놓은 것이다. 또한 민주노총 등 이른바 ‘조직대오’에 대해서는 폭력적인 ‘기득권 집단(노조)’으로 규정, 박근혜 퇴진을 열망하며 거리로 나온 시민들과 분별 정립하게 하는데도 성공했다. 조선일보는 항상 ‘질서’와 ‘평화시위’, ‘시민의식’을 강조함으로써 거리에서의 움직임이 급진화하는 것을 방지하며, 사회운동세력이 앞서나가는 것을 봉쇄했고, 시민과 결합하는 것을 막았다. 그 결과 박근혜 퇴진운동을 거리의 문화제로 대체해 버렸고, 퇴진이 아니라 2선 후퇴에 머물도록 압박하는 수단 이상 발전하지 못하게 촛불집회의 정치적 성격을 제한했다. 100만 명이 퇴진 시위에 나섰어도 경찰청장이 감사 인사를 올릴 법한 일이 된 것이다. 이처럼 조선일보는 거리로 나온 대중까지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로 조절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 왔다.

만약 거국중립내각이 성립되고 대통령이 2선 후퇴를 한다면 조선일보에 촛불집회는 그 자체로 의미 없는 일이 된다. 그렇게 되면 국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평화적으로’ 시위할 것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라고 할 것이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는다면, ‘조직대오’에 의해 선동된 국정문란 세력들의 불법적 시위라고 매도하며 몰아붙일 게다. 민주당이 촛불과 함께한다면, 더 이상 민주당 같은 ‘운동권 정당’을 신뢰할 수 없다며 국정에도 참여하지 말라고 선동할 것이다. 평화로운 100만 촛불은 대통령 2선 후퇴를 압박하는데 까지만 가장 유효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보수의 재구성과 정권 재창출”

그렇다면 조선일보는 애초에 왜 이런 사단을 만들면서 박근혜 정권을 이토록 궁지에 몰아넣은 걸까? 앞서 조선일보는 자신의 정치적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고 했다. 목적은 단 한 가지다. 보수 정권을 재창출해야 하는데, 지금의 새누리당과 친박, 박근혜 정권으로는 가당치 않기 때문이다.

100만 민중총궐기가 있기 하루 전인 11월 11일 조선일보는 논설위원 칼럼을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하기에 이르다. “보수가 나라를 벼랑 위에 서게 한 세력과 동일시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보수 전체의 몰락을 막기 위해선 수구와 진정한 의미의 보수가 구별되고, 갈라서야 하는 것이다. 절연을 통해 대한민국 보수가 새롭게 정립돼야 할 시점이다.” (<가짜 보수와의 결별>, 조선일보, 11월11일자)


조선일보는 데스크 칼럼을 통해서 보수 전체의 공멸을 막기 위해서는 수구세력과 절연하고 새로운 보수를 정립하자고 한다. 이를 통해 불가능해 보였던 ‘보수정권 재창출’이라는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가자는 것이다. 어버이연합이나 일베와 같은 수구세력과의 단절, 유신잔당세력과의 분리 및 북한 또는 동북아 관계의 재편을 통한 새로운 동북아 시대를 여는 것으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합리적인 보수 세력의 형성과 규합을 시도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사회에서 그나마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보수는 재벌이다. 정치적으로 남북 간 군사적 대립을 지속하고 동북아의 긴장을 강화하는 것은 대자본의 입장과 상반될 수밖에 없다. 어느 순간 예고 없이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어제 한 말과 다르게 오늘 사드 배치를 발표함으로써 대중국 관계를 긴장시키는 정부에 대해 재벌 스스로 위기의식을 가지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다음 정권은 내 손으로 만든다”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또한 4차 산업혁명과 동북아시대를 연호하며 ‘제3 개국론’을 설파하고 있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행보도 심상치 않아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시장 친화적이고 이명박 식으로 표현하면 비즈니스 프렌들리하며, 절차적 민주주의에 합리성을 부여하는 보수로 재구성하려고 하는 것이다. 조금 거칠게 말하면, 전근대적 헬조선에서 현대적 헬조선으로의 변화를 추동할 세력을 재구성한다고 할 것이다.

이를 고려한다면, 조선일보가 이야기하는 ‘질서 있는 퇴진’의 모든 과정은 보수의 재구성과 관련이 있다. 박근혜의 즉시 퇴진에 따른 조기 대선과 그에 따른 혼란도 혼란이지만, 보수를 규합하고 재구성해 낼 시간을 가질 수 없으므로 박근혜의 즉각 퇴진은 해서 안 되는 일이다. 조선일보가 제시한 대로 2선 후퇴와 거국내각이 받아들여지면 곧바로 거국중립내각 구성, 개헌 논의, 대선 등의 과정에서 보수 세력을 재구성하고 이를 통해 정권 재창출까지 밀어붙일 공산이 크다. 거국내각 구성에 새누리당 또는 친박 세력의 인정 여부, 개헌의 내용을 통한 이념의 재정립, 정당의 구성(또는 당 통합)과 후보 추대과정까지 정국의 주도권을 유지한 채 일사불란하게 이를 이루려고 할 것이다.

이도저도 없는 무능한 야당

이처럼 조선일보의 프레임은 분명하다. 첫째, 이번 사건은 언론 대 권력의 싸움으로서 부패한 정권에 맞서 언론이 권력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는 점이고 둘째, 현재 사태는 박근혜의 2선 후퇴와 거국내각의 성립으로 정국을 안정시키고, 평화로운 행진을 통해 이를 압박해야 한다는 점 셋째, 수구세력과의 결별, 척결을 통한 보수의 재구성이다. 이러한 일련의 계획은 지난 4월 총선 이후 다음 대선에서 보수정권을 재창출할 가능성이 확연히 멀어졌다는 데에 대한 불안감이 반영된 과감한 결단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문제는 이번 사태의 배후에 어떤 세력이 도사리고 있는가 하는 점 보다, 조선일보 외에 어떤 언론, 어떤 세력도 현재 사태에 대한 “질서 있는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소 6개월 동안의 취재 결과 최순실과 관련된 대부분의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던 조선일보와의 프레임 싸움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쉽지 않은 일은 분명한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좌충우돌하는 세력이 바로 민주당 등 야당이다.

야당은 처음부터 혼란에 혼란을 거듭했다. 자신이 주도한 정국도 아니면서 역풍이 불까 전전긍긍해 했고, 하야나 퇴진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거국중립내각 얘기를 꺼냈다가 청와대가 이를 받으면서 오히려 이 얘기를 주워 담느라 고민해야 했다. 이도 저도 아닌 스탠스를 계속해서 가져갔다. 어제는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얘기해 놓고, 오늘 와서는 시민단체와 비상시국기구를 구성한다고 한다.

최대의 실수는 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이나 다름없는 새누리당을 자신의 정치 파트너로 인정한 점이다. 11월 14일 여야는 특검에 합의한다. 10월 24일 이후 최초의 여야합의인데, 문제는 이 합의 주체가 새누리당이라는 점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부역자로서 책임을 물어도 시원치 않을 상황에서 이후 거국중립내각에 이런 정당이 참여하는 것을 막을 수조차 없게 만들었다. 야당 특히 민주당은 말로는 질서 있는 퇴진, 단계적 퇴진을 얘기하면서도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현 상태를 유지하는 데만 급급할 뿐이다.

퇴진 못하면 이용당하는 국면, 퇴진 관철해야

바둑 격언에 ‘유가무가는 불상전’이라는 말이 있다. 두 집이 나서 살아 있는 돌과 집이 없는 돌은 서로 싸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집이 없는 쪽이 반드시 진다는 말이다. 조선일보는 중요한 모든 정보를 갖고 프레임을 짜왔고 현 국면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세력들은 그저 앵무새처럼 박근혜 퇴진을 외칠 뿐이며, 광장에 더 많은 사람을 모으는 것으로 현재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

1,500개 단체로 구성된 비상국민행동도 100만 촛불집회를 성사시켰으나 그 어떤 정치적인 주도력도 형성하지 못했다. 박근혜 하야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하야와 퇴진을 관철하기 위한 행동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고, 다른 무엇보다 광장에 더 많은 대중이 모이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퇴진시킬 수 있는지, 퇴진 이후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중적인 공유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조선일보가 컨트롤하는 ‘평화시위-문화-축제-시민의식’ 프레임에 갇히게 되었다.

87년 6월 항쟁은 전두환 군사독재에 맞서 대통령을 직접 선거로 뽑는 개헌을 이루고, 이후 노동자 대투쟁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그러나 지금은 조선일보라는 보수신문이 ‘보수정권의 창출’을 목표로 정세를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의 2선 후퇴와 거국중립내각이라는 신속한 수습방안, ‘조직대오’와 시민의 분리, ‘운동권 정당’이라는 비판으로 민주당의 발을 묶어 놓고 ‘평화시위’와 ‘시민의식’을 얘기하면서 촛불집회의 급진화를 막고 대통령 퇴진을 위협하지 않도록 관리해 왔다. 이런 조선일보의 손을 따라 돌을 두게 되면, 그 결과는 바로 ‘보수정권의 재창출’로 귀결될 뿐이다.

[출처: 김용욱 기자]

이 같은 노련한 프레임을 극복하는 것은 오직 하나다. 이 구도를 깨는 것은 예상치 못한 전혀 다른 새로운 세력이 등장해 판을 뒤엎거나, 통제되고 관리되리라 믿었던 상황이 자기 통제를 벗어나는 경우뿐이다.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같이 올해 11월 항쟁 이후 어떤 세력이 판을 뒤엎고 등장할지 아직은 누구도 모른다. 때문에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무조건적인 즉각 퇴진을 관철하는 것, 대통령 퇴진에 대한 대중적 결기를 확인하고 실행하는 것뿐이다. 거국중립내각이 정치권에 의해서 받아들여지더라도, 대통령이 2선 후퇴를 하더라도, 이를 거부하고 지속해서 퇴진을 관철해 나가는 것 외엔 다른 길이 없어 보인다. 조선일보의 모든 구상은 박근혜의 즉각 사퇴는 안 된다는 전제 아래 이뤄졌기 때문이며, 거꾸로 노동자 민중, 시민의 모든 전제는 박근혜의 즉각 사퇴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 비상국민행동으로 모여 있는 시민사회단체는 퇴진 이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치적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대중과 공유해야 한다. 광장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나오고 바둑판에 아무리 많은 돌을 두어도, 자기 프레임이 없는 집단, 두 집이 나지 못한 돌들은 활용당하고 사라질 뿐이다. 거국중립내각 구성에 대해 정치권과 협상할 것이 아니라면, 퇴진 이후의 정치적 목표에 대해서도 정리하고 만들어 가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은 사퇴시키지 못하면 이용당하는 그런 국면이다. 조선일보가 자신이 만든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을 버리면서까지 보수정권 재창출을 위해 가져왔던 ‘고육지계’를 이제는 우리가 넘어서야 할 때다. 100만 명이 광장으로 나오는 것이 이 국면에서 공통의 목표였다면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할 때다. 비리세력을 하나로 묶는 연환계까지 성공했다면, 이제 남은 방책은 동남풍이 불 때 화공을 펼치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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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 정권퇴진 , 촛불집회 , 박근혜 , 최순실 , 정권재창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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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철용

    최순실이 국정을 좌지우지 한 건 새발의 피.
    대한민국 프레임을 조선일보가 짜고 있으니, 조선일보가 만든 프레임을 깨고 국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도록 새 프레임을 제시하자. 놀랄만한 현실 뒤에 본질이 이렇다는 것을 널리 공유하길 바래요.

  • 김춘자

    참으로걱장되는것은 이판을 뒤에서 조정하는 세력에 조종을 당하는것만 같아 불인하고 무언가 보여지는 국민의뜻이 관철되는 나라가 돼고 모두에게 평등한 권리가 부여되고 희망을 품어두 되는 나라가 됐으먄 합니다

  • 필자가 영화를 너무 많이 보셨나봅니다.

  • '음'님께

    어느 부분이 비현실적인지 말씀 좀 해주세요.

  • 결기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이라...
    글 잘 읽었습니다.

  • 멈출 수 없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필자께서도 말씀하셨지만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이후 조선일보에서 내세운 거국내각 구성하라는 요구가 국민들에게 먹혀 들고 있습니다.
    최근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과도내각 구성후 사퇴가 43.5%로 가장 높았고, 탄핵이 20.2%, 즉각 사퇴 후 총리권한 대항이 10.2%로 조사됐지요.
    좃선이 판을 흔들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이 촛불 정국에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국민의 여론이 제각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죠.
    확실한 방향점이 없이, 통일된 지향점이 없이 이렇게 가다가는 김진태 같은 역적 놈이 말한 것이 현실화 될 수 있다는 게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요즘 애 키우는 엄마들 카페에서는 김재규가 부활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는 분들도 많으시더라구요.
    탄핵으로 가봤자 헌재에서 막힐게 분명해 보이고...
    닭그네 목가지를 비틀어서 하야시킬 기회는 왔는데 여기저기서 갈피 못잡고 좌중지란하는 형국이라서 심히 걱정됩니다.
    보수의 재결집.... 원희룡이나 남경필 같은 작자들이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겠지요.

  • 김재검

    확실한 분석이군...

  • 꼭두각시

    손핵큐ㅡㅡㅡㅡ
    오세휸ㅡㅡㅡㅡ
    이런사람 쫌ㅡㅡㅡ

  • 이재완

    박근혜를 퇴진시키고 새누리당은 퇴출시키더라도,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호를 침몰시키려는 어떠한 획책도 단호히 막아야 한다. 애국심 없는 기자들, 무책임한 언론도 오늘의 현실에 책임이 크다는 걸 알아야 한다.

  • 이재완님께

    기자한테 애국심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네요. 어떤 게 애국인지도 모르겠고요. 기자는 팩트찾아서 검증하는 직업아닌가. 물론 본질 흐리는, 잿밥에만 관심 많은 기레기 많지만 애국심 운운하는 건 아니라고 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