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LCD공장 노동자 첫 산재 인정…“희망 놓지 않겠다”

“삼성전자, 노동자 병들고 죽게 한 책임 인정하고 사과해야”

17년째 다발성경화증으로 투병 중인 삼성전자 LCD공장 노동자의 질병이 업무상 재해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삼성전자 LCD공장 노동자가 산재 인정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전자 노동자의 희귀질환(다발성경화증)이 산재로 인정된 것도 첫 사례로 기록된다.

서울행정법원(제1단독, 판사 이규훈)은 10일 오후, 삼성전자 LCD공장 노동자였던 김미선 씨가 2013년 5월 20일 제기한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4년 가까이 걸린 이번 판결은, 재판부가 두 번이나 종결과 재개를 거듭할 만큼 더디게 진행됐다.

김 씨의 소송을 함께 했던 반올림은 이번 판결 직후 “근로복지공단은 이번 판결을 겸허히 수용하고, 부당한 항소로 피해자의 고통을 연장하지 말 것”을 밝혔다. 또 “작업장 안전보건관리를 소홀히 해 노동자들을 병들고 죽게 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할 것”을 요구하며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김미선 씨는 1997년 6월, 만 17세 나이로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입사했다. 김 씨는 LCD 모듈 내 OLB공정과 TAB Solder 공정의 오퍼레이터로 3년간 일했다. 그러던 중 2000년 3월 다발성경화증이 발병해 그해 6월 퇴사했다.

다발성경화증은 중추신경계 질환으로서 인구 10만 명당 3.5명이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진 희귀질환이다. 보건복지부 산하 희귀질환센터가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등록하고 관리한다. 다발성경화증은 시력 저하, 신체 마비, 통증 등을 동반한다. 희귀질환이다 보니 그 자체로 산재로 인정받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재판부, LCD모듈 내 공정과 다발성경화증 사이 관련성 인정

하지만 재판부는 다발성경화증이 김 씨의 업무와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 측이 제출한 여러 역학연구를 통해 유기용제 노출, 20세 이전의 교대근무, 자외선 노출 부족 등이 다발성경화증의 발병 및 악화 원인으로 인정된다는 전제를 세웠다.

김 씨는 상시적으로 유기용제에 노출되는 일을 했다. 김 씨는 매일 200-300개 패널의 이물질을 제거하는 일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유기용제 IPA와 아세톤을 사용했다. 이 화학물질은 중추신경계에 손상을 일으키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김 씨가 했던 또 다른 업무인 납땜도 납, 플럭스 등의 유해물질을 사용했다.

재판부는 ‘아세톤 등 유기용제에 노출’ ‘20세 이전에 야간근무를 포함한 교대근무 수행’ ‘밀폐된 공간(클린룸)에서 야간 근무’ ‘자외선 노출 부족’ ‘과로 및 스트레스에 시달린 점’ 등 김 씨의 노동 환경이 다발성경화증의 업무 관련성을 뒷받침한다고 봤다.

또 다발성경화증의 평균적 발병 시기(38.3세)에 비해 김 씨는 이른 나이(만 20세)에 발병한 점, 지금까지 삼성전자 노동자 사이에 다발성경화증이 발병된 것으로 확인된 사람은 총 네 명인데 이는 다발성경화증의 일반적인 유병율과 비교할 때 월등히 많은 점, 원고에게 이 사건 업무환경 외에 다른 발병원인은 확인되지 않는 점 등도 함께 고려했다고 밝혔다.

한편 소송 중 관련 자료 제출에 불성실하게 임했던 사업주에 대한 쓴소리도 이어졌다. 재판부는 원고의 업무환경을 입증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관련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사업주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화학제품 공급사들은 재판부의 거듭된 요청에도 김 씨가 취급한 화학제품 성분을 밝히지 않았다. 총 13개 자료 제출을 요청했지만 한 건을 제출하면서 그것도 일부만 제공했다. 특히 삼성은 김 씨가 취급한 ‘와이어솔더(납)’에 대해 “관련 자료를 모두 폐기했다”며 아무런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 역시 삼성 LCD 생산공장에 대한 ‘안전보건진단 보고서’를 “사업장의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를 들며 제출을 거부했다.

김미선 씨를 대리한 임자운 반올림 소속 변호사는 “자료를 낼 수 없으면 말이라도 빨리 했었어야 하는데 이들이 시간을 끌면서 재판이 크게 지체됐다”고 했다.

4년 만에 웃을 수 있게 된 김미선과 반올림

오늘 판결 선고를 직접 지켜보진 못했지만 김미선 씨도 승소 판결에 기뻐했다. 김 씨는 현재 다발성경화증의 악화와 후유증으로 1급 시각 장애를 비롯해 고관절과 무릎 연골에도 심한 손상을 입었다. 김 씨는 “20대 때 시력을 잃고 젊은 시절을 다 보냈는데 이제라도 산재가 인정돼서 정말 다행”이라며 “근로복지공단의 항소가 우려되지만,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임자운 변호사는 “소송 과정에서 회사가 자료를 많이 은폐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김 씨의 업무와 병 사이의 관련을 입증하는 연구자료들이 꽤 나와 도움이 됐다”며 “이 사건에서도 지면 모든 희귀질환 피해자들은 산재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굉장히 절박했는데 승소해서 기쁘다”고 밝혔다.

임 변호사는 “현재 고등법원과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소송이 있는데 재판부가 발병 원인으로 인정한 유기용제 노출, 교대 근무 같은 유해 요인은 모든 피해자가 공통으로 겪었다”며 “하급심이다 보니 상급심에서 나온 것보다 영향력이 적겠지만 (직업병 인정 판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출처: 홍진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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