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세계여성의 날…현장이 보여준 한국의 젠더 현실

“여성폭력 근절 없이 미래도 없다”

“한 여학생이 교복 입은 자기 사진을 누가 ‘은꼴 게시판’에 올려 처벌을 요청해도, 공무원이 ‘그건 현행법으로 안 되는데요’라고 한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언론은 성폭력 사건을 재연, 삽화로 보도해 호기심, 관음증만 유발한다.”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

“관계의 특수성을 배제한 채 국가가 피해자에게 가해자 처벌을 할 거냐고 묻는다. 국가가 책무를 내버린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한 주변인은 이혼하면 먹고 살기 힘들다고 (가정폭력을) 감내한다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가한 한 청중)


[출처: 한국여성의전화]

3.8 세계여성의날을 기념해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민우회 등 6개 단체가 7일 오전 광화문 변호사회관에서 ‘현장의 목소리로 젠더 폭력 근절 정책을 밝히다’ 토론회를 열었다. 각 여성단체와 시민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 현행 제도의 문제와 대안을 모색했다.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상임대표는 ‘여성폭력근절기본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3년 기준 가정폭력 발생률은 45.5%로, 2가구당 1가구꼴로 발생했어도,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1.3%에 불과했다”며 “이는 가정 보호와 유지를 최우선 가치로 삼은 국가 가정폭력 대응정책이 낳은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행 법 제도는 국가가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처벌할 거냐고 묻는다”며 “가해자 처벌을 피해자에 맡기는 건 관계의 특수성을 배제한 채 국가가 책무를 내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국가가 성폭력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집적하는 것은 행정편의적 조치라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인) 쉼터에 생활하는 사람은 어느 미용실 갔는지, 어느 약국을 갔는지, 어떤 슈퍼에서 뭘 샀는지 정보가 집적된다”며 “영국은 피해자의 (과거) 성 이력을 받기 위해 법원의 허가를 받는다”고 했다.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대표는 “일상에선 이주여성이란 말보다 다문화가족이란 말로 얘기한다”며 한국인과 결혼하지 않은 이주여성의 사각지대를 강조했다. 그는 “전체 다문화가족 중 이주여성은 30% 수준”이라며 “이주여성은 성폭력을 당해도 체류 기간 때문에 피해 사실을 말하지도 못한다”고 지적했다.

배복주 장애여성공감대표도 “장애여성은 장애와 성별이 교차하고 공존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이들이 겪는 차별과 폭력의 경험은 복합적”이라고 호소했다. 또 “장애여성은 젠더 폭력을 비롯한 다양한 폭력에 노출돼, 스스로 통제권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단체 발제에 이어 청중의 다양한 의견도 이어졌다. 익명을 요구한 A씨는 성폭력 가해자의 강한 처벌보다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강한 처벌보다 피해자가 사회 시스템을 신뢰하게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직도 피해자는 자신이 당한 피해가 성폭력인지, 맞는다면 어디에 호소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에서 입법 전에 성폭력 교육 과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청중 B씨는 “젠더 폭력 피해자들이 지속 가능한 삶을 살기에 힘들다”며 “주변을 보니 이혼해서 먹고 살기 힘들다고 감내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 “성 소수자가 노동에서 배제되는 것도 젠더 기반 폭력”이라며 성 소수자 인권이 젠더 영역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토론회를 진행한 여성단체는 이날 오후 1시 광화문 광장에서 3.8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젠더 폭력 근절을 위한 대책을 촉구했다.

[출처: 한국여성의전화]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한국은 여성에 대한 폭력의 공식적 정의와 국가 기본방침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며 “여성 폭력 대응 정책은 피해 여성을 성 평등 관점이 아닌 보호와 지원의 대상으로만 취급한다”고 말했다.

또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우리는 여성이 성별, 장애, 이주경험 등을 이유로 권리를 제약받거나 위협에 노출되지 않는 사회를 요구하며, 한 사람의 존재가 어떤 편견 없이 그대로 존중받는 사회를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는 8일엔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8일 오전 11시 서울시청엔 제33회 전국여성대회가 열리고, 오후 1시 서울 종로 보신각 일대에선 ‘2017 페미니스트 광장’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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