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차도살인계

[워커스 정세] 반세계화는 독점자본의 세계화에 대한 반대

한미FTA를 놓고 미국에 얼마나 더 수출하고 얼마를 덜 수입했는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현재 회복세에 있다 손 치더라도 아직도 전 세계에서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이 횡행하고 있다. 세계자본주의가 아직도 불황의 터널을 헤매고 앉았는데, FTA를 한다고 그 동안 안되던 무역이 활성화 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미몽과도 같다. 또한,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핵심 기술 특허가 미국 기업에 집중되어 있어서 제품을 팔면 팔수록 더 많은 로얄티를 미국 기업에 지불해야 한다.

게다가 글로벌 공급체인으로 원산지 규정도 흐릿해져 교역량으로 경제효과를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가령, 미국 애플사의 아이폰은 미국산 제품이 아니다. 아이폰 부품은 여러 국가의 부품 제조사들로부터 조달받아 대부분 대만 기업인 폭스콘의 중국 공장에서 조립되기 때문에 중국산이다. 이 아이폰을 미국에 팔아도 중국의 수출물량으로 잡힌다. 하지만 이윤의 대부분은 애플사로 들어가고 폭스콘에 돌아가는 것은 제조원가의 3.6% 정도로 알려져 있다.

[출처: 자료사진]

이런 사정은 한미FTA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미국 자동차 수입액은 2011년 3.5억 달러에서 2016년 16.8억 달러로 5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미국 차의 한국시장 점유율도 9.6%에서 18.1%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런데, 한국 땅에 미국 자동차가 많이 굴러다니는 것을 본적이 없다. 대부분 외제차는 도요타 같은 일본차 아니면, BMW나 폭스바겐 같은 독일차다. 그렇게 많이 수입되었다는 미국 자동차는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알아보니, 도요타, BMW, 폭스바겐 상표를 달고 굴러다니는 차들이 대부분 미국산 자동차다. 미국 공장에서 만들어져 한국으로 수출된 차다.

이처럼 글로벌 공급체인, 현지 공장과 원산지 규정, 특허권료 등 많은 쟁점을 뒤로 하고 수출입 물량을 가지고 비교하는 경제효과는 별무소용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한미FTA를 경제적으로 성공한 FTA라면서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제대로 살펴보자.

한미FTA 때문에 대미 수출이 증가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3월 15일 낸 <한·미 FTA, 상호 윈윈(win-win) 효과 시현>에 따르면, 한미FTA가 체결된 2012년 이후 5년 동안 대미 수출 증가는 자동차(12.4%), 자동차부품(4.9%), 반도체(4.2%) 등이 이끌었다. 특히 2016년 전체 수출 중 24.1%가 자동차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 자동차의 미국 관세는 4년간 유예되어 2.5% 관세를 2016년 1월 1일자로 없앴다. 즉, 자동차 대미 수출에서 한미FTA 효과가 나타난 것은 2016년 이후 고작 1년간이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자동차 수출 증가분도 한미FTA의 치적으로 당연히 포함되었다(아이러니 하게도 자동차 관세가 철폐된 첫 해인 2016년에는 2015년보다 자동차 수출이 11%나 줄었다).

반도체와 IT 제품의 경우도 이미 미국에서는 비관세 제품이었기 때문에 한미FTA와는 관계없는 비수혜 품목이다. 한미FTA 발효 1년인 2013년 3월, 정부는 한미FTA 수혜품목과 비수혜 품목을 구분해, 수혜품목이 14% 이상 수출이 증가했다고 치적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이를 구분해서 공표하지 않았는데, 비수혜 품목의 수출 성장세가 그 이후에 더 높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미FTA의 대미 수출 증가 효과는 사실 거의 없다. 미국이 지난해부터 금리인상에 나선 것처럼, 몇 년 전부터 미국의 소비수요가 조금씩 살아나면서 수입량이 늘어나고 있다. 2011년 미국의 수입액은 2조 2,070억 달러였는데, (한미 FTA가 발효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수입액은 연평균 2조 2,653억 달러로 이전보다 2.6% 늘었다. 한국은 그 보다 약간 높은 3.4% 수준이며, 그나마 한미FTA와 상관없는 비수혜 품목의 수출 증가세로 이뤄졌다.

“65억 vs 6조 5,000억”… 지재권료, 400배에서

1,000배까지 더 지불해 그럼에도, 정부는 한미FTA 이후 미국과의 상품교역에서 계속 흑자를 봤다고 강조한다. 대미무역수지는 2011년 116.4억 달러에서 2016년 232.5억 달러로 흑자가 늘었다. 이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한미FTA의 숨겨진 진실은 서비스 교역 부문에 담겨 있다. 한국의 대미(對美) 서비스 수입은 자유무역협정 발효 후 평균 9.2% 증가했고, 이것은 주로 지적재산권(42.3%), 통신서비스(38.8%)의 수입 증가에 기인한다. 2015년도를 놓고 비교해 보면,
서비스 교역에서만 한국은 140.9억 달러(약 16조원) 적자다. 이중 가장 큰 부분은 여행 서비스로 67.2억 달러 적자다. 미국 여행을 간다고 관세가 부과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행 서비스는 한미FTA와 직접 관련이 없다. 문제는 지적재산권 사용료다.

한국은행이 밝힌 대미 지식재산권 수지는 32.5억 달러(2011)에서 51.8억 달러(2012), 58.7억 달러(2013), 50.5억 달러(2014), 66.8억 달러(2015), 49.3억 달러(2016) 적자로 한미FTA가 시행되자마자 적자 폭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스마트폰 등 전자장비 관련한 특허권료(로얄티)로 전체 지적재산권 사용료의 74%가 넘기 때문에 수출을 많이 하면 할수록 지적재산권 사용료가 눈덩이처럼 커진다.

한미FTA 발효 직전인 2011년 8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 10개 국책연구기관이 공동으로 펴낸 <한미FTA 경제효과 재분석>에는 서비스 교역을 분석하면서 지적재산권 보호기간 연장에 따른 추가 비용만을 계산했다. 2016년까지 5년 동안 매년 평균 64.7억 원을 추가 지불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실제 지적재산권 사용료로 매년 평균 55.4억 달러(약 6.5조원) 적자가 났다. 예상치인 65억 원보다 1000배나 많은 6조5000억 원을 지불했다. 2011년 32.5억 달러에 비해 매년 23억 달러(2.7조원)씩 추가 지불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예상치 보다 400배가 많다.

그러나 정부는 상품교역에서 258억 달러 흑자(2015년)를 봤기 때문에 그깟 특허권료는 더 줘도 괜찮다는 식이다. 하지만 제조업 영업 이익률이 채 10%가 안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순이익은 30억 달러(3.5조 원)도 되지 않는다. 그저 사용 허락만하면 원재료나 기타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특허권료로 두 배나 더 많은 66.9억 달러를 미국에 지불하고도 이것이 남는 장사라고 우길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한미FTA가 겨눈 칼끝의 방향

한미FTA 발효로 국내 79개의 법령과, 규칙 등을 제개정했다. 대부분 규제를 완화하고 미국식으로 바꾸는 내용이다. 한미FTA 물론 모든 FTA는 체결 이후 교역확대라는 경제적 효과보다도 각자 국내 자본의 규제를 철폐하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 가령, 한미FTA가 발효되기 전까지 정부는 노동시장 규범을 국제 수준에 맞추고 적응해야 한다며 노동유연화를 더 확대 강화해 왔다. 한미FTA가 발효되고 나서도 이를 계기로 규제프리존 특별법을 만들려 하고, 일반해고와 성과연봉제를 법률개정 없이 노동부 지침으로 바꾸고, 파견업종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뤄졌다.

규제가 완화되고 시장이 개방되어 외국자본이 내국민 대우를 받더라도 그 나라 특유의 규범과 관행이 존재한다. 물 건너 있는 미국의 대자본보다 가까이 있는 한국 재벌이 규제 완화와 FTA를 더 크게 반길 수밖에 없다. 누가 뭐래도 한국에서 민영화의 최대수혜자는 재벌이며, 시장개방과 노동유연화, 규제완화 등 모든 정책에서 최대수혜자는 재벌이다. FTA도 예외는 아니다. 한미FTA는 래칫(ratchet, 역진방지) 조항이 있어 한번 개방한 시장, 민영화한 부문은 되돌릴 수가 없다. 또 국내에서는 반발 때문에 결코 하지 못했던 영리병원 허용과 원격의료, 의료보험 개편 등도 한미FTA를 통해 경제특구와 신금융서비스 도입이라는 우회로로 이를 실현 시킬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이것은 비단 미국 자본에만 길을 열어 준 것이 아니라, 한미FTA를 핑계로 한국 재벌에게 숟가락을 쥐어 준 것이다. 손자병법에 있는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이는(뜻을 이루는) 차도살인계(借刀殺人計)’가 바로 한미FTA다.

반세계화는 독점자본의 세계화에 반대한 것

“한미FTA가 되면 경제주권을 다 뺏기고 미국 식민지로 전락한다”는 말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틀렸다. FTA를 민족문제로, ‘한국 대 미국’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은 교역량이나 수익 같은 FTA의 양적인 것만을 문제 삼는다. 그리고 한미FTA가 무엇을 겨누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프랑스에서는 르펜 같은 극우주의가 반세계화를 자국중심주의로 치환시켰고, 노동자의 일자리를 지키자며 보호무역주의와 인종차별주의를 조장해 왔다.

미국은 이미 자본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법제화된 곳이다. 미국화 한다는 것은 미국에 유리하게 바꾼다기보다 자본, 특히 미국과 한국의 대자본에 유리하게 바꾼다는 것이다. 한미FTA에서 ISD(투자자-국가소송제도)를 특히 우려했던 것도 미국뿐 아니라 한국 대자본의 장악력이 확장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미FTA는 미국의 경제종속국이 되거나, 재벌이라는 매판자본이 나라를 팔아먹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가령, FTA발효 이후 한국의 대미 직접투자는 57.2억 달러(2012년)에서 129억 달러(2016년)로 120% 넘게 상승했지만, 미국의 대 한국 직접투자는 36.7억 달러(2012년)에서 38.8억 달러(2016년)로 별로 증가하지 않았고, 액수도 한국보다 훨씬 적다. 게다가 대부분 미국 직접투자는 한국의 대자본 즉, 재벌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점도 주목해서 봐야 한다.

한미FTA는 이처럼 미국과 한국 대자본의 이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본 규제를 완화하고 노동유연화를 확대하는 방편으로, 국내법과 자국내 반발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한미FTA가 존재한다. 이는 미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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