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열사가 나왔구나’

[워커스 르포] 전례 없는 직장폐쇄 10개월, 노동자를 절벽으로 미는 갑을오토텍

열사의 빈소가 있는 아산 참요양병원은 후미진 동산 위에 있었다. 택시 기사는 폐건물처럼 보이는 곳에 날 떨구고 사라졌다. 주위를 살펴보니 열사의 얼굴이 박힌 현수막들이 보였다. 장례식장 입구엔 다녀간 사람들, 비록 오진 못했지만 멀리서 추모를 전하는 이들의 소속과 이름이 적힌 띠들로 빼곡했다. 대선 기간 문재인 캠프도 찾아오고, 대선이 끝나고는 이정미 정의당 의원도 다녀갔다. 이들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우리 사회의 적폐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전하고 떠났다. 이 죽음은 사회적 죽음이었다.


동생, 동료, 동지 김종중 열사가 되다

상주는 열사의 둘째형이다. 큰형은 소식을 모르고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5월 13일 찾아간 열사의 빈소엔 상주와 사촌형이 와 있었다. 말이 없는 상주 대신 사촌형을 통해 열사에 대해 들었다. 김종중 열사는 살가운 사촌 동생이었다. 명절 때마다 얼굴을 비추던 사촌 동생을 최근 1년 간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어쩌다 통화가 되면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들려 ‘데모 중이구나. 몸 조심해라’하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유족은 노조에 장례 절차를 위임했다. 유족은 단순히 개인적 죽임이 아닌, 사회적 반성을 촉구하는 죽음으로 남길 바랐다.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 김종중 열사는 지난 4월 18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틀간 출근 투쟁을 하지 않아 지인이 찾아가보니 목을 매단 채 죽어 있었다. 불법 직장폐쇄 8개월차였다. 동료들은 나중에서야 열사의 지난 말들을 곱씹으며, 그가 절박한 신호를 보내왔다는 걸 깨달았다. ‘안 끝나서 죽겠다’ ‘돈도 떨어지고 너무 힘들다’는 말들은 서로가 으레 하는 말들이었으니까. 따로 유서는 없었다.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이렇게밖에 못해서. 살자고 노력했습니다’라는 짧은 말을 메신저 프로필에 남겼을 뿐이다.

열사는 23년간 갑을오토텍에서 승합차에 들어가는 ‘콘덴서’라는 자동차 부품을 만들었다. 갑을오토텍지회의 출석부는 그의 성실함을 보여준다. 직장폐쇄 기간 함께 생활한 이용섭 갑을오토텍지회 조합원은 “투쟁에 한 번도 안 빠지던 형님이셨죠. 사람 많은 데서 하는 투쟁도 솔선수범해서 나갔고요. 사측에서 극단적으로 나오는 것에 충격을 많이 받을 정도로 워낙 착한 사람이었어요”라며 열사의 죽음이 아직 실감나지 않는다고 했다. “저들만 잘 살겠다는 기업의 만행 때문에 이런 죽음이 나온 겁니다. 갑을오토텍 조합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노동자를 대표해서 한 사람이 희생한 겁니다.”

지난해, 열사는 함께 살던 동거인과 음식점을 개업했다. 모아둔 돈, 카드 대출로 가게를 시작했는데 갑작스럽게 직장폐쇄가 벌어지는 바람에 7월부터 공장에 묶여 버렸다. 월급도 안 나오니 경제적 역할을 할 수도 없었다. 지난 2월 교섭을 재개하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돈 문제, 장기간 투쟁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는 가족과의 관계를 어렵게 했다. 열사만 그런 건 아니다. 부부 간, 가족 간 불화를 겪고 있는 조합원이 부지기수다. 사측은 열사의 죽음을 가정사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불법 직장폐쇄 때문에 생겨난 일이었다.


유례없이 길어지는 직장폐쇄에 “말려 죽이려나보다”

최근 지회 조합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기운이 없다. 동료의 죽음에 지난 열 달 간의 직장폐쇄 가 불법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8일 대전지법 천안지원은 갑을오토텍지회가 불법 직장폐쇄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소송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일반적으로 힘의 우위에 있는 사용자에게 쟁의권을 인정할 필요는 없으나, 근로자 쪽의 쟁의행위로 노사 간 힘의 균형이 깨지고 오히려 사용자 쪽이 현저히 불리한 압력을 받는 경우에는 사용자의 쟁의권(직장폐쇄)을 인정하는 것이 형평에 맞다”고 판단했다. 인용을 확신하고 있던 조합원들은 ‘멘붕’에 빠졌다. 박종국 갑을오토텍 부지회장은 “지난 2월부터 회사와 교섭을 하고 있지만, 박당희 전 대표이사는 사표 쓰고 나가고, 사업총괄이 위임받아 하느라 뭐 하나 합의하는 것 없이 횟수만 늘어나고 있다. 법원 판결을 통해서라도 공장에 복귀하는 투쟁을 기획하고 있었는데 어그러졌다. 10개월 동안 급여를 못 받은 조합원들이 걱정이다. 이제 장투 기금도 끝나는데 걱정이 많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조합원들의 상황은 시한폭탄 같다. 조합원 A씨는 불면증으로 7개월 째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그가 먹는 약엔 우울증 치료제도 포함돼 있다.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조합원들이 한 둘이 아니다. 노조는 전 조합원 대상으로 심리치료를 하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것 자체가 고통스럽다는 조합원들 때문에 하지 못했다.

A씨는 직장폐쇄가 있기 전 23년 타던 차를 정리하고 새 차를 샀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악랄한 노조파괴는 2015년에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대비할 시간도 안 주고 사측은 공장을 멈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 차를 안 샀을텐데 더 환장하겠어요. 죽은 종중이도 모르고, 아무도 몰랐죠. 깨부수다 안 되니까 말려 죽이려고 했나 봐요.”

2015년 9월에 입사한 B씨는 일한 날보다 일하지 못한 날이 더 많다. B씨 또래의 몇몇 젊은 조합원은 편의점, 주유소 등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충하고 있다. 택배 상하차 일을 하는 조합원도 있다. 가처분 기각 판결 이후 조합 내에선 앞으로 6개월은 더 싸워야 한다는 흉흉한 소문도 들린다. B씨의 한 가지 바람은 더 이상 죽는 사람 없이 마무리 되는 것이다. 옆에서 지켜본 동료들이 위태해 보인다고 했다.

직장폐쇄는 2014년 사측에 의해 작성된 ‘Q-P 전략 시나리오’의 수순이었다.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이 주도하고,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자문한 노조파괴 전략은 ‘파업 유도-> 직장폐쇄-> 경비 용역 투입-> 관리직 대체 근무-> 공권력 투입 요청’으로 이어졌다. 시나리오에 따른 노조파괴 작전이 펼쳐지자 사람들은 이를 ‘신종 노조파괴’라고 불렀다. 2015년 1월 사측은 특전사, 경찰 출신을 채용해 어용노조를 만들었다. 그해 6월부터 어용노조는 사측의 용병이 돼 노조 파괴 전면에 나섰고 각종 폭력을 불사했다. 지게차를 동원해 위협하고 갈고리, 칼 등의 흉기를 사용해 지회 조합원들을 집단 구타해 뇌출혈 등의 중경상을 입혔다. 결국 기업노조 조합원들의 이력이 밝혀지며 회사를 나가는 것으로 합의했다. 법원은 헌법상 단결권을 유린했다며 박효상 당시 대표이사에게 실형 10월을 선고했고, 형이 확정되며 10개월을 복역했다. 박 전 대표는 지난 15일 만기 출소했다.

그 사이 회사는 다른 전략을 준비했다. 2016년 7월, 대체 생산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돌연 직장폐쇄에 들어갔다. 대체 생산 전략도 Q-P 시나리오에 중 하나다. 대체 생산을 위한 신규 인력들은 정체가 탄로 나는 바람에 회사를 나가게 됐지만 14개 협력업체들과의 공모, 현대기아차의 묵인으로 대체 생산이 가능했다. 지난해 근로감독관과 해당 협력업체들을 찾아간 갑을오토텍지회는 ‘(현대기아)자동차, 4개의 큰 공조회사가 시켜서 했다’는 답을 들었다.

박 부지회장은 직장폐쇄에 맞선 투쟁이 사측에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직장폐쇄는 3개월을 넘어가면 안 된대요. 넘어가면 회사 리스크가 커지기 때문에 다 준비해서 ‘쇼부’를 친다는 거죠. 그런데 갑을오토텍은 대체 생산 완비를 해놨으니 계속 뭉갰던 거예요.”

하지만 대체 생산 증거들은 가처분 소송 판결에서 쏙 빠졌다. 지회는 자본의 약한 고리를 언급조차 않는 사법부를 더욱 의심하게 됐다. 최근 지회는 대체 생산의 근거들을 보완해 직장폐쇄 효력 정지 가처분 소송을 재신청했다.


부패 회사 도운 청와대 반부패비서관

새 정권이 들어서고 일주일도 안 돼 지회는 황당한 소식을 듣게 된다. 갑을오토텍 사측 법률 대리인이던 박형철 변호사가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으로 임명됐다는 것.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수사로 좌천된 경력이 부패 척결 적임자마냥 부각됐다. 그 후에 가장 악질적인 노조 파괴 사업장의 변호인으로 활동했다는 이력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이재헌 갑을오토텍 지회장은 지난 13일부터 임명철회를 요구하며 청와대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대표적 노조파괴사업장 갑을오토텍을 변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박 비서관은 “갑을오토텍 사건을 맡은 것은 문제가 됐던 이전 경영진이 기소된 이후인 지난해 봄부터였고, 변호사로서 사측에 불법행위를 하지 말도록 조언했었다”고 자신을 변호했다.

지회에 따르면 박형철 변호사는 지난해 7월부터 사측 사건들을 대리하기 시작했다. 박 변호사는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를 고소, 고발하는 각종 노조 탄압사건을 도맡았다. 노조가 지난해 7월 이전 불법 쟁의행위를 했다고 고소하기도 했다. 이번에 기각 판결이 난 직장폐쇄 가처분 소송에서도 박형철 변호사가 사측 대리인으로 나섰다.

박 변호사가 대리한 사건들은 갑을 사측이 노조쟁의행위를 불법으로 몰아가고, 법원이 이미 인정한 노사 합의 외주 용역 경비 관련 합의 내용을 부인하면서 노조를 형사고발하는 내용이었다. 지회는 직장폐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기각도 박 변호사가 제출한 증거들이 유효했다고 주장한다.

멈춰있는 공장, 식어있는 공장

주말 아산 갑을오토텍 공장은 한산했다. 지난 여름부터 올겨울까지 정문을 사수한 싸움은 2월 회사와 교섭을 시작하며 정리했다. 모든 조합원이 24시간 사수하던 정문은 이제 조를 짜 지키고 있다. 그럼에도 법원은 회사 공장에 천막을 치고 경비실을 점유하며 건물 안팎에 투쟁구호가 담긴 현수막을 설치하는 쟁의행위를 계속할 의사가 분명해 보인다며 업무 복귀 의사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지회는 노골적으로 사측 논거를 수용하는 사법부 때문에 참담한 심정이다. 천막, 현수막 설치는 노조의 일반적인 조합활동이다. 하지만 법원은 노조의 정당한 활동을 포기하는 것이 직장폐쇄의 선결 조건이라고 한다. 한 조합원은 “사측 법률대리인의 주장이 헌법 위에 있다”며 씁쓸하게 말했다.

새 정권이 들어서고 대통령의 민생 행보가 연일 집중 조명받고 있다. 직장폐쇄 10개월, 한 명의 열사가 나오고 400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위태롭게 버티고 있다. 400명뿐 아니라 그 가족, 비슷한 처지의 노동자들 역시 이 상황을 지켜보며 괴로워하고 있다. 노조 파괴에 맞서 온몸으로 버티는 시간이 늘어만 간다. 노동의 가치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싸움을 배제한 낙관은 아직 너무 섣부르다.[워커스 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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