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미중시대의 개막, 한국외교의 ‘모멘텀’을 기대한다

[워커스 인터] 촛불정부의 외교 방향

  2017년 4월 7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주석이 첫 번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출처] 신화망 중국어판

미중 간 비즈니스 정치

올 초 모두의 예상을 깨고 취임한 도널드 존 트럼프. 그는 부동산 기업인 트럼프기업 전 회장이자 비즈니스맨으로 유명하다. 트럼프는 취임사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천명했다. 그래서 또 다른 미국식 일방주의의 조짐도 읽혔다. 하지만 최근 연방수사국(FBI) 국장인 제임스 코미를 전격 경질해 논란이 불거지면서 트럼프의 미국 내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벌써 38%밖에 안 되는 국정 지지도가 이를 증명한다. 당장 내년 중간선거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만약 미국의 정치제도 특성상 중간선거에서 패배한다면 트럼프의 공약은 꽤 많이 후퇴할지도 모른다.

트럼프정부의 대외정책에는 그가 살아온 비즈니스 인생의 경험이 상당 부분 투영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4월 6일과 7일, 플로리다 주 팜비치에서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의 결과는 트럼프 본인이 애초 공언한 대중국 압박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것이었다. 아울러 틸러슨 국무장관은 “상호존중에 기초, 양국 간 차이를 관리하고 협력 분야를 증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언급했다. 총론에서 포괄적인 합의를 이뤘지만, 여전히 각론에서는 차이를 보인다는 의미다. 정상회담 직후 중국은 대북한 여행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고, 트럼프는 시진핑 주석과의 전화통화에서 “중국이 대북 영향력이 강한 줄 알았는데, 실제 사정은 좀 다른 것 같다”라며 중국의 처지를 대변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보도도 나왔다.

아직은 심증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미중관계는 중국이 미국의 적자를 메꿔주고 국내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나가는 한편, 미국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안보적 과실을 중국에 안기는 방향으로 나갈 공산이 크다. 이렇듯 동북아 국제정치가 비즈니스화하면서 미중관계가 협력 위주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미중 간 협력이 고조되면 한반도에 가해지는 압력이 줄어든다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미중 간 협력이 고조될수록 주변 국가를 담보로 한 양자 간 거래가 이뤄질 가능성 역시 점증한다. ‘상대적 만족도’를 느낀 대기업의 담합으로 막심한 피해를 보는 중소기업 같은 처지로 내몰릴 수 있다.

중국은 변할 것인가

일단 중국은 표면적으로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대북 압박의 선봉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대북 제재를 강화한 일련의 조치들은 이미 중국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물밑에서는 북한을 달래면서 미국과의 대화도 주선할 것이다. 김정은 체제의 성립과 동시에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최근 몇 년간 중국 인민대중의 대북 이미지는 급격히 나빠졌다. 급기야 엘리트 계층마저 북한에 대한 불만을 공공연하게 내뱉는 경우도 잦다. 중국 지식인 가운데 한국과 더 가까워지고, 북한과는 더 멀어지자는 주장도 종종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말 그대로 볼멘 소리에 그칠 뿐, 현실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중국의 북한에 대한 감정변화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중장기적으로 자세히 들여다봐야 할 부분임이 분명하다.

중국 지도부에선 여전히 지정학적 고려를 우선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래서 급격한 대북정책 변화가 있을 것이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지난 박근혜 정부는 지나치게 중국 역할론에 의존해 오히려 원만한 대중국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이는 사드 배치 문제로까지 파급됐다. 설사 앞으로 추가 핵실험 등 북한의 도발이 있다고 해도, 중국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역시 중국을 끊임없이 다자간 회담에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당장은 중국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힘들지라도, 악화될 대로 악화된 중국의 감정을 우리가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날이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대화를 할 것이냐, 이대로 같이 자폭할 것이냐?” 그네들의 주장을 정말 심각하게 들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2017년 5월 14일 새벽,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 화성12호가 발사되고 있다. [출처] 사월망 중국어판

북한의 벼랑 끝 대화 요구

5월 14일 새벽 북한은 ICBM에 준하는 화성 12호를 성공적으로 쏘아 올렸다. 마침 중국의 일대일로 정상회담이 있던 날이었다. 왜 하필 중국의 기념일과도 같은 날에 무력시위에 나선 것일까? 북한 역시 미국과 중국의 공동압박 전선이 형성되는 것에 불안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날의 무력시위는 중국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출한 것이고, 동시에 미국에는 좀 더 밀도 있는 대화에 나서라는 요구였다. 핵과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이래 북한체제 제1의 목표는 북미 간 직접대화를 통한 체제보장이었다. 허나 미국에 북한은 그저 말썽꾸러기에 지나지 않았고, 국제정세 역시 북한에 애정(?)을 쏟을 만큼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북한의 벼랑 끝 대화 요구의 역사는 이렇게 30여 년이 됐다. 조만간 3대 정권에 걸쳐 벼랑 끝에서 보낸 긴 시간이 결실을 볼지도 모른다. 철저하게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북한의 행태는 말썽꾸러기라고 볼 수 없고, 마냥 비합리적인 결정이라고도 볼 수 없다. 벼랑 끝이 바로 김씨 삼대 정권의 ‘생존’ 그 자체였음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앞으로도 벼랑 끝에서 한 손에는 핵을, 다른 한 손에는 미사일을 들고 끊임없이 외칠 것이다. “대화를 할 것이냐, 이대로 같이 자폭할 것이냐?” 그네들의 주장을 정말 심각하게 들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바람직한 촛불 정부의 외교 방향

2016년 가을 우리 사회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직격탄을 맞았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전국적으로 시민들의 촛불이 타올랐다. 기나긴 탄핵정국과 초유의 ‘탄핵 결정’도 이어졌다. 통수권자의 부재는 ‘코리아 패싱’이란 기상천외한 표현까지 언론에서 만들어 낼 정도로 한국의 외교안보를 사지로 밀어붙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10일 새 대통령이 선출됐다는 것이다. 짧은 기간 주변 열강 정상과의 연쇄 통화와 특사단 파견 결정 등이 신속하게 이뤄졌다. 하지만 우리의 갈 길은 아직 멀다. 국가의 주요 외교안보 정책을 기획하고 실행할 사령탑들이 아직 인선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 주요 외교라인이 안정되려면 최소 두세 달의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이 시간 동안 우리는 과연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우선 큰 틀에서 국가의 새로운 외교 노선을 확립해야 한다. 우리의 국가역량은 경제력이나 군사력의 수준에서 보더라도 어엿한 중견국가이다. 2013년 5월, 팟캐스트 13회 윤여준 편에 출연한 연세대 문정인 교수는 한국의 생존전략으로 크게 4가지 방안이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균형(balancing) - 미국에 동조해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고 균형을 가하는 것 △편승(bandwagoning) - 중국의 부상에 편승하여 중국 중심의 세계체제 속에서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 △독자생존(standingalone) - 강대국 세력의 입김에 휘말리지 않고 말 그대로 독자생존의 길을 추구하는 것 △현상유지(status-quo) - 종전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이익은 중국에서, 안보적 이익은 미국으로부터 취하는 것이다.

문정인 교수는 당시 이 네 가지 전략 모두 한계가 있다면서 ‘유럽식 동북아 안보 다자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그가 주장한 방안도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위험이 크더라도 가장 확실한 길은 역시 독자생존 뿐이다. 전략적인 차원에서 한동안 한미동맹의 유지를 적극 고려해야 하지만, 차츰 주권국가로서의 면모를 되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작권의 회수’와 안보 차원에서의 정기적인 ‘한중전략대화’의 개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는 2013년 6월, 한중이 합의만 했다가 정례화하지 못한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중국의 외교담당 국무위원 간의 전략대화를 보다 확대해 양국의 외교부, 국방부, 통일부 등 유관기관의 장까지 모두 포괄해 연 1회 이상 개최하는 방안이다. 그동안 한중 간 전략대화는 차관급에서 장관급까지 소폭 발전해왔으나, 대체로 단발성에 그치고 말았다. 한미동맹의 기본 틀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중국과 더욱 긴밀한 소통을 할 수 있는 정기적인 채널을 구축하는 것은 중요하다. 또 이 카드는 사드 배치 문제의 출구가 될 길잡이로 활용할 수도 있다.

미국에는 향후 자주국방의 의지를 명확히 표시할 필요가 있고, 중국과는 통일시대 준비를 위한 밀도 높은 대화를 할 기회를 창출함으로써 양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의 협상 레버리지를 올려야 한다. 사드 운영비 분담을 요구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어야 하고, 사드 배치와 관련해 중국의 무례한 간섭에 다시 휘말려야 할 정도로 우리의 국가역랑은 보잘 것 없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제 북한은 남한 주도의 ‘통일의 대상’만이 아닌 ‘평화공존’의 대상으로도 관점의 대전환을 이뤄야 한다

둘째, 대북정책에 있어 새로운 ‘비전 제시’와 이에 대한 ‘국내적 합의’가 필요하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로 인해 당분간 남북 간 대화는 물꼬를 트기 어렵게 됐다. 과거 정부마다 북핵 문제의 해법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모두가 ‘통일’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에 심각한 결함이 존재한다. 물론 통일은 반드시 이뤄야 할 한반도의 숙제다. 우리가 평소 북한과의 대화가 어려웠던 것은 좌우 진영을 가리지 않고, 북한을 통일의 대상으로만 삼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은 생각보다 견고하고 경제적으로는 상당 부분 중국에 의존하지만, 북한의 민생도 외부와의 접촉 없이도 잘 견뎌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제 북한은 남한 주도의 ‘통일의 대상’만이 아닌 ‘평화공존’의 대상으로도 관점의 대전환을 이뤄야 한다. 남북관계의 특수성뿐 아니라, 일반적인 국가로의 인정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한반도를 함께 살아가는 주역임을 복기하자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고립시켜야 할 대상이 아닌 올곧은 상대로 인정할 때 소통도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새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차원이 다른 실질적인 수준의 ‘쌍방향 소통’과 ‘평화공존’ 병행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어떨까? 한 정부에서 발표되고 정권교체에 따라 즉시 폐기되는 정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성향의 정부가 집권해도 그 정책기조를 이어받을 수 있도록 투박한 명칭이라도 지속가능성에 목표를 둔 정책적 ‘모멘텀’을 기대한다.[워커스 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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