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의 노동정책 너머를 꿈꿀 때

[참세상 기획] 문재인 100일을 말한다(1) 노동

[편집자 주] 문재인 정부 취임 100일, 촛불 시위에 힘입어 출범한 정부에 대한 기대는 어디쯤 머물고 있을까요? 참세상은 ‘문재인 100일 말한다’는 기획으로 각계 사회운동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싣습니다. 정부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운동진영의 과제를 주목한 이번 기획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연재순서]
노동 | 김혜진(철폐연대)
한반도 | 배성인(한신대)
의료, 복지 | 강동진(포럼 사회복지와노동)
교육 | 이현(전교조 참교육연구소)
문화 | 박선영(문화연대)
언론 | 권순택(언론연대)
여성 | 한국성폭력상담소
정치 | 이광일(성공회대)


[출처: 박다솔 기자]

문재인정부 100일이 지났다. 당선된 이후 스승의 날에는 ‘기간제교사의 순직인정’을 지시했고, 인천공항에 찾아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정책’을 선언했으며,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또 산재사망시 원청업체와 발주자에 대한 처벌 강화를 약속했다. 신임 고용노동부장관은 쉬운 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 완화라는 두개의 지침을 폐기하겠다고 했다. 문재인정부 100일 기자회견에서는 ‘노조 조직률 제고 위해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며, ‘부당노동행위를 강력한 의지로 단속·처벌할 것’임을 천명했다. 그 동안 노동자들이 요구해왔던 많은 목소리가 정부의 입장으로 발표되면서 기대감도 높아진다. 문재인정부 100일, 노동자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게 되었을까?

문재인정부의 노동정책은 일자리 정책

문재인정부의 노동정책은 ‘일자리’에 방점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일자리 100일 계획]을 발표하면서 100일간 추진할 일자리 관련 정책들을 제시한 바 있다. 한국사회는 양질의 일자리가 감소하고 저임금근로자가 확대되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간의 격차 등이 심각할 뿐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산업과 고용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비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전제이다. 그런 점에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정책의 최우선순위에 두고 ‘성장-일자리-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복원해가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기업과 기존 주력산업에 의존해왔던 성장전략을 극복하고, 양질의 일자리 확대를 위해 ‘공공부문이 마중물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정부도 ‘일자리’에 집중하며 ‘고용율 70%를 달성하겠다’고 했다. 불안정한 일자리를 늘려서 가족구성원 모두가 일하게 되면 노동자들의 생계 유지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단시간노동과 파견허용대상 확대 등 불안정한 일자리를 늘리는 데 주력했다. 그리고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이라는 미명 아래 정규직의 노동조건을 떨어뜨리려고 했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과 저성과자 해고지침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정책의 결과 비정규직은 늘어나고 노동자들의 권리는 더욱 침해되었으며, 안정적인 일자리가 줄어들어 체감실업률은 높아졌다. 그리고 박근혜정부는 무너졌다. 문제는 ‘일자리의 수’가 아니라 ‘불안정한 일자리’와 ‘노동자 권리의 침해’였지만 오로지 ‘일자리 확대’로만 접근하면서 현실은 악화되기만 했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문재인 정부는 ‘아래를 끌어올리는 정책’을 택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개선과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등이 그를 위한 수단이었고 정부는 ‘공공부문’을 ‘마중물’로 삼고자 했다. 정부가 사용자인 공공부문에서 이 정책은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그러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대와 희망도 높아진다. 그런데 문제는 공공부문이 아니라 민간영역이다.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한다 하더라도 일자리 창출의 효과는 1.8%에 불과하며 결국 민간영역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저임금 노동자들의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공공부문과는 달리 민간부문에서는 노동자들의 권리가 진척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기업과 정규직 노동자 모두에게 양보를 요구

문재인정부는 민간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첫째로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와 ‘창업’ 활성화로 일자리를 창출하고자 한다. 신설된 중소벤처기업부가 그 역할을 전담하게 될 텐데, 이를 위해 금융과 세제지원, 창업자원 자금 지원, 그리고 지역 특화 일자리 창출사업으로 광주형모델의 확산과 사회적경제 활성화방안을 마련하였다. 두 번째 방안은 민간부문의 일자리의 질을 높이기 위해 차별관련 제도를 개편하고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하며, 비정규직 남용 방지를 위해 사용사유 제한제도를 도입하고, 고용부담금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인상하고, 근로감독관을 증원하기로 했다.

현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인 것으로 보인다. 말 그대로 제도적 압박 혹은 지원을 통해서 민간부문에서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만들어내려는 것인데, 그것만으로 민간대기업의 협조를 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저성과자 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등 양대지침을 폐기하며 노동계를 달래서 노사협력에 나서도록 하는 한편, 대기업에게는 임금체계 개편 등을 통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줄여줄테니 대기업도 협력하라는 의도도 내비치고 있다. 정부가 중심대기업과 조직된 노동자 모두에게 ‘비정규직을 위해서’라는 이데올로기로 양보를 끌어내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문재인정부 노동정책의 한계

문재인정부의 노동정책은 매우 순조롭게 집행되고 있다. 다만 이것이 올바른 방향인가에 대해서는 더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의 저성장과 노동의 불안정성은 매우 근원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기업 중심의 하청계열화, 비정규직 확산의 제도화, ‘효율성’ 중심의 공기업 구조조정 등이 지금의 왜곡된 고용구조를 낳고 있으며, 기업 이윤 중심의 정책적 선택이 자본과 노동의 힘의 불균형을 초래했다. 생계비에 못 미치는 최저임금, 노동의 위계화와 불안정성, 그리고 단결권의 침해, 재벌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헬조선’이라고 불릴 만큼 왜곡되고 심각한 현실의 문제는 제대로 개선될 수도 없다.

그런데 문재인정부는 비정규직 고용형태를 근원적으로 바꾸려고 하지는 않는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정책에서도 자회사 정규직, 혹은 무기계약직 형태로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을 유지하려고 하며, 특정한 이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방식으로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기간제법과 파견법을 그대로 둔 채, ‘생명·안전업무 정규직화’라는 매우 좁은 정규직화 기준을 이야기한다. 개별기관에 정규직화를 떠넘기고 기관들은 ‘비용’과 ‘효율성’ 논리를 여전히 들이댄다. 최저임금은 생활할 수 있는 임금을 받아야 하는 ‘권리’인데도 중소영세사업장 문제를 이야기하며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고, 더 심각한 것은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미명 아래 차별을 제도화하고 합리화할 가능성도 보인다는 점이다.

문재인정부는 재벌대기업 중심으로 왜곡된 산업구조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깊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대응과 ‘부당노동행위 강력처벌’ 등의 카드를 꺼내고 있지만 그것으로 무소불위의 재벌권력을 제재하기는 어렵다. 특단의 재벌규제 없이 설득으로 일자리를 만들거나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할 수는 없다. 단기이윤에 매달린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정규직 제도를 인정함으로써 비정규직을 늘리고자 하는 재벌대기업의 욕구를 승인하면서, 설득으로 비정규직 사용 제한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매우 순진한 생각이다. 게다가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내놓고 있는 ‘창업’과 ‘사회적경제’도 ‘지원’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시장을 독식하는 재벌을 규제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노동자들을 주체로 세우지 않고, 대상화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더라도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 힘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기업을 강제하기는 어렵다. ‘100일 기자회견’에서 문재인대통령은 노조 가입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했지만 ILO결사의 자유 협약을 아직도 비준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가로막고 있는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나 원청의 사용자 책임과 관련하여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손배가압류를 없애는 문제에 대해서도 소극적이다. 산별협약이나 지역협약 등 미조직노동자들에게까지 권리의 실효를 확대하는 대책도 마찬가지로 진척이 없다. 노동자 스스로 권리의 주체가 되는 정책은 진전되지 않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노동정책을 뛰어넘는 권리의식과 조직

문재인정부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지금의 여러 정책은 자유주의 정권인 문재인정부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조금은 노동조건이 개선되고 조금은 조직률이 높아지고 조금은 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방향의 정책이 지속되면 과연 노동자들의 삶은 달라질 것인가? 설령 노동조건이 조금 개선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위계화되어 있다면, 권리가 없는 비정규직이 제도적으로 용인되고 있다면, 그리고 여전히 기업의 권력이 노동조합의 힘을 넘어서고 있다면, 대기업 노동조합이 사회적 압력 때문에 비정규직과 연대하기보다 기업에게 양보하고 있다면, 노동자들이 기업에 대한 통제력을 가질 수 없다면 지금의 ‘헬조선’은 변화될 수 없다.

그래서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문재인정부의 노동정책을 뛰어넘는 권리의식과 조직이다. 위기의 시대, 노동자들이 정부에게 어떤 정책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노동자들이 조직되어 단결하고, 급진적인 요구를 통해 자신의 힘을 확인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정치적 힘을 갖춰나가는 것이다. 촛불을 통해 새 정부가 조금 더 나은 노동정책을 선택하도록 강제했다면 이제는 그것을 뛰어넘어, 노동자들의 권리가 온전하게 보장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의 힘을 키워야 할 때이다. 그것의 출발은 광범위한 조직화이다. 조직화를 가로막는 각종 악법과 나쁜 제도를 바꾸기 위해 함께 싸워야 하며, 더 많은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서 더 많은 힘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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