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샘, 현대카드, 르노삼성’…문제는 기업과 고장난 시스템

“여성에겐 모든 기업이 한샘이다”

최근 기업 내에서 발생한 성폭력에 대해 기업의 책임과 시스템 점검을 요구하는 여성단체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등 18개 단체는 10일 오전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여성에겐 모든 기업이 한샘이다’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들은 용감한 여성들의 고발이 줄을 잇고 있지만 악랄한 기업은 이를 은폐하기 급급하고, 성폭력 고발 시스템은 고장 났다고 규탄했다.

참가자들은 “최근 굴지의 기업 한샘과 현대카드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은 기업에서 여성노동자가 어떻게 성적으로 대상화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며 “우리를 분노하게 한 것은 위와 같은 사건이 기업 안에서 고용 여부 결정권을 쥔 상사에 의해서 자행되었다는 것과 함께 이를 책임져야 하는 기업의 사후 조치가 무책임하며, 피해자에게 또 다른 피해를 양산하고 있는 점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샘 성폭력 피해자의 용감한 증언으로 다시 한번 여성들이 일터에서 겪는 성폭력 피해를 확인했으나, 기업과 사회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합당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은커녕 오히려 그 피해 책임을 피해 당사자에게 되묻는 악랄한 여론몰이에 분노한다”고 밝혔다.

직장 내 성폭력이 비정규직, 낮은 직급, 저연령의 여성에게 주로 일어나지만, 고연령과 관리직을 포함해 권력 관계가 형성되는 모든 일터에서 발생한다는 점도 지적됐다.

나지현 전국여성노조 위원장은 “직장 내 성폭력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며 “몇 년 전 조직한 5, 60대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가장 처음 제기했던 문제는 고용불안이 아닌 성희롱이었다”고 회상했다. 나 위원장은 “여성 고용률에서 20대 다음으로 4, 50대가 늘고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취업하게 된다”며 “비정규직이고 간접고용으로 용역회사에 불안하게 일을 하다 보니 성희롱을 당해도 저항하지 못하고 있다가 노조가 생기면 그제야 싸우게 된다”고 토로했다. 여성의 노조 조직률은 5% 미만으로 알려져 있다.

직장 내 성희롱은 노동권 침해다

참가자들은 성희롱은 여성 노동자 개인의 인격을 훼손하고, 불이익처우와 퇴직 등 고용상의 위기를 불러오는 심각한 노동권 침해라고도 주장했다. 대표적 사례로는 르노삼성 성희롱 피해자가 겪은 따돌림과 업무배제, 저성과 유도 등이 꼽혔다.

‘남녀고용평등및일가정양립에관한법률’(고평법) 14조 2항에 따르면 ‘사업주는 고객 등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자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성적인 언동 등을 통하여 근로자에게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 등을 느끼게 하여 해당 근로자가 그로 인한 고충 해소를 요청할 경우 근무 장소 변경, 배치전환 등 가능한 조치를 취하도록 노력하여야’하고 ‘사업주는 근로자가 제1항에 따른 피해를 주장하거나 고객 등으로부터의 성적 요구 등에 불응한 것을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이익한 조치를 해선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10일 '여성에겐 모든 기업이 한샘이다'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권박미숙(오른쪽)

하지만 이 같은 법을 위반한 삼성에 대해 법원과 고용노동부는 4년째 판결을 미루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에서 활동하는 권박미숙씨는 “1차 책임자인 기업, 관리 감독해야하는 국가까지 총체적으로 고장 난 시스템을 보여주고 있는데 한샘 사건으로 다시 한번 확인됐다”며 “정의로운 처벌이 꼭 필요하고, 이 사건 통해 우리가 일하는 노동환경 현실 바꾸기 위한 근본적 대책까지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권박미숙씨는 “여성이 일하는 환경과 남성 중심 기업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장기적인 플랜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 9일 국회에서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성희롱 발생 시 사업주의 조치의무를 강화하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우려는 여전하다. 개정안은 직장에서 성희롱이 발생할 경우 누구든지 사업주에 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사업주의 피해자 보호조치 및 가해자 징계 조치를 의무화하며, 피해 근로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금지하는 동시에 벌칙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적녹보라의제행동센터장은 “가해자와 피해자 개인에 대해 조처를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닌 여성노동자를 대하는 노동구조와 기업의 노동통제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영 센터장은 “성폭력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신고하면 내부고발자의 위치로 가야한다”며 “조직 내 어떤 구조가 비리를 만들었는지 파헤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오늘 모인 여성단체들은 잇달아 나오는 직장 내 성폭력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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