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커스 가비(1887-1940) - 흑인 모세

[워커스] 힙합과 급진주의

“래퍼가 되고 싶으면 맬컴, 가비, 휴이를 공부해.” 미국 힙합계에서 가장 좌파적인 듀오인 데드 프레즈의 가사다. 언급된 이름들은 각각 이슬람민족(NOI) 출신 설교자 맬컴 엑스, 세계흑인지위향상협회(UNIA)의 설립자 마커스 가비, 흑표범당(BPP)의 공동 설립자 휴이 뉴턴을 가리킨다. 데드 프레즈의 조언은 인종과 정치성향에 관계없이 래퍼라면 누구나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세 흑인 지도자들은 랩 가사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난 휴이와 맬컴이 절반씩, 킹 목사를 조금 더해 가비와 섞은 사람이지.” 최근 도끼 등 한국 래퍼들과 함께 곡을 발표한 인스펙타 덱의 예전 가사다. 그는 힙합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그룹인 우탱클랜의 멤버로 그룹 최고의 명곡들을 빛낸 전설적인 래퍼다. 세 사람의 삶과 사상을 몰라도 힙합 음악을 즐기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래퍼가 자기 정체성을 설명하는 가사의 의미를 모른다면 그가 뱉은 다른 가사들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커스 가비는 저 셋 중 가장 옛사람이다. 그는 자메이카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마치고 인쇄공으로 일했고, 중남미 국가들과 영국을 둘러보며 억압받는 흑인들의 모습을 관찰한 후 자메이카로 돌아와 UNIA를 결성했다. 1916년 뉴욕으로 건너온 그는 강의를 열고 할렘에 UNIA 지부를 출범시키면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제복을 입고 군대처럼 행진 하는 가비와 UNIA 회원들의 당당한 모습은 북미와 카리브해 연안의 흑인들을 매료시켰고, 가비 자신이 평생 밟지 못한 아프리카에서도 지지자들이 생겨났다. 특히 1919년 출범한 해운회사인 블랙 스타 라인은 아프리카로 돌아가자는 가비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그는 흑인을 이끄는 모세였고, 훗날에는 세례자 요한 같은 선지자로 추앙됐다.

  Marcus Garvey, 1922 [출처: 위키피디아]

가비의 주장은 명쾌하고 원대했다. 백인 에게 평등을 구걸하지 말고 흑인 스스로 힘을 길러 백인에 맞서자는 것이었다. 멸시받는 소수임에도 부를 축적해 금융의 힘으로 전쟁을 좌우하며 옛 이스라엘 땅으로의 귀환을 꿈꾸던 유대인이 흑인의 본보기였다. 세계 각지의 흑인들도 경제적 힘을 기른 후 아프리카로 돌아가 자신들을 보호해 줄 강력한 흑인 정부와 군대를 건설해야 할 것이었다.

그는 동시대의 흑인 급진주의자들을 끌어들인 공산주의에도 끌리지 않았다. 공산주의는 가장 무식하고 편견에 가득 찬 백인 계급에게 정부를 맡기자는 위험한 이론이며 백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일 뿐 흑인에게는 해롭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가비의 노선이 항상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시민권 운동을 이끌던 또 다른 범아프리카주의 사상가 두보이스가 통합 대신 분리를 내세우는 가비를 ‘미치광이거나 배신자’라고 혹평하자, 가비는 두보이스가 ‘백인 소유의 검둥이’이자 백인 피가 섞인 ‘흑인 잡종’이라고 응수했다. 1922년 가비는 인종적 순수성 보존과 흑백 분리라는 자신의 주장에 동의하는 KKK와 협상을 시도했다.

KKK 지도부는 가비가 현명하고 책임감이 있다고 칭찬했지만 다른 흑인 지도자들은 경악했다. 이외에도 논란은 넘쳐났다. 무능하거나 부패한 사람들이 가비의 사업에 엮여 있었고, 에드가 후버가 이끄는 수사국은 호시 탐탐 그의 약점을 노렸다. 결국 그는 보유하지 않은 배를 선전해 돈을 모금한 혐의로 기소돼 5년형을 선고받았고, 블랙 스타 라인은 막대한 손실을 떠안고 폐업했다. 그는 2년 동안 복역한 후 사면 받았으나 자메이카로 추방됐고, 이전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1940년 런던에서 사망했다.

“우리를 일깨우려 해서 추방되었지”

가비와 마찬가지로 자메이카에서 뉴욕으로 건너온 디제이 쿨허크가 창조한 힙합에서는 늘 가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우탱클랜의 리더 르자가 “가비는 우리 자신과 조상에 대한 지식으로 우리를 일깨우려 해서 추방되었지”라는 가사를 썼을 때 그는 자신도 가비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아이티의 혁명가 투생 루베르튀르나 노예 반란 지도자 냇 터너도 종종 언급되지만, 가비야말로 흑인을 일깨우고 그들에게 자부심을 불어넣은 최초의 지도자로 많은 랩 가사에 등장한다.

존경받는 힙합 듀오 블랙 스타는 그 중에 서도 조금 더 특별하다. 가비의 해운회사에서 팀명을 따온 이들의 유일한 앨범에는 가비의 사진과 가비의 증손녀가 전하는 추천사가 실려 있고, 피부색에 대한 긍정적 해석, 흑인 사회와 힙합계에 만연한 폭력성에 대한 성찰, 개인의 자각과 흑인의 자결권처럼 가비의 주장과 맥을 같이하는 가사들이 가득하다. 이들이 2000년 경찰에 의한 흑인의 총격 사망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수십 명의 래퍼들을 규합하면서 ‘하나의 신, 하나의 목적, 하나의 운명’이라는 가비의 구호를 인용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배우로도 알려진 멤버 야신 베이는 관타나모 수용소의 인권 침해를 알리기 위해 고통스런 강제급식을 직접 체험했고, 다른 멤버인 탈립 콸리는 월가 점령 시위와 퍼거슨 시의 흑인 시위에 앞장서 참여했다. 여성혐오적 가사를 쓰지 않는 극소수의 래퍼에 속하는 콸리는 트위터를 통해 매일같이 인종주의자들과 싸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할렘의 가비 강의 수강생 중에는 그곳에서 한국인 민족주의자들과 교류하던 베트남 출신의 노동자 호치민도 있었다. 자칭 ‘아프리카 임시 대통령’ 가비가 흑인도 아시아의 일본인들처럼 힘을 기르자고 주장하던 때 상하이의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에게 맞서기 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우고 미국에서 활동하던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로부터 100여 년 후인 2017년 대통령이 탄핵된 다음 날 광화문에서는 일본인 프로듀서가 만든 야신 베이의 곡이 한국 힙합 그룹 가리온의 랩과 함께 한국 민주주의를 위한 축가로 울려 퍼졌다. 꼭 래퍼가 되려는 게 아니더라도 가비를 공부해 보는 게 어떨까?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워커스 3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