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엠 구조조정, 비정규직 목소리는 묻혔다

[워커스 이슈③]기업과 정규직이 외면한 비정규직…“원하청 연대 절실”

[출처: 김한주 기자]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언제나 해고 1순위였다. GM의 군산공장 폐쇄 결정 훨씬 이전부터, 이들의 생존은 언제나 위기였다. 공장에 드리워진 그림자처럼, 각 지역 공장 정문 앞에는 언제나 비정규직노조의 농성장이 있었다. 한국지엠 군산공장 앞에는 금속노조 전북지부 한국지엠 군산비정규직지회가 974일째(2월 26일 기준) 천막 농성을 이어가고 있고, 금속 경남지부 창원비정규직지회는 106일, 금속 인천지부 부평비정규직지회도 농성을 26일째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요구는 총고용보장과 정규직화다.

공장 폐쇄 결정, 그림자 취급받는 비정규직

지난 2월 13일 글로벌GM이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내린 후 나라가 떠들썩해졌다. 정부는 20일 군산지역의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 ‘고용 위기 지역’ 지정을 추진키로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월 19일 한국지엠 협력업체 사장들과 간담회를 열고 현안 문제를 논의했다. 20일에는 한국지엠 정규직노조인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와 면담도 했다. 한국지엠지부는 글로벌GM에 군산공장 폐쇄 즉각 철회와 ISP 및 상무급 이상 임원 대폭 축소, 차입금 전액(약 3조원) 자본금 출자전환 등을 요구했다. 군산공장 폐쇄가 결정된 13일은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1심 판결이 나온 날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비정규직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정치권과 언론에서도 굳이 비정규직을 찾지 않았다.

김교명 한국지엠 군산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2015년 7월 해고를 당했다. 김 지회장은 이후 3년간 비정규직 동료들과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싸움을 했다. 지난 13일, 인천지방법원에서 전원 승소 판결이 나왔다. 한국지엠이 비정규직을 불법으로 파견했고 해고된 이들은 한국지엠 정규직 노동자라는 판결이었다. 김 지회장은 3년 만에 군산공장에 들어갔다. 매번 공장 진입을 막던 경비가 축하한다는 말을 전했다. 하지만 그날, 글로벌GM은 그가 3년 만에 돌아온 군산공장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군산공장 하청업체는 문을 걸어 닫았고, 정규직들은 짐을 싸서 공장 밖으로 걸어 나왔다. 군산공장 폐쇄 결정 다음 날, 정규직노조 한국지엠지부는 조합원 결의대회를 열었다. 정규직 판결을 받은 김 지회장도 집회에 참여하려 했으나 한국지엠지부가 이를 막았다.

한국지엠 비정규직노조 부평, 창원, 군산 3개 지회는 20일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언론에선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생존권이 위기에 놓였다고 매일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기사에서 비정규직을 찾아보긴 어렵다”며 “군산, 부평, 창원에 2,500명 가량의 비정규직이 일하고 있고, 이들이 더 큰 불안을 겪고 있음에도 그림자 취급을 받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빼앗길 것 다 빼앗긴 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황호인 부평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이 20일 부평역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시민에게 호소했다. 여전히 지엠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이 인상되자 회사는 근로장려수당을 월별로 쪼개 통상임금에 포함하겠다며 ‘최저임금 꼼수’를 부렸다. 정규직은 2002년 대우자동차 해외매각 사태 이후 처음 맞는 대규모 구조조정이지만, 비정규직에게는 그저 일상이었다.

[출처: 김한주 기자]

‘툭’ 하면 비정규직 건드렸던 지엠

한국지엠 비정규직은 2006년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당시 한국지엠은 지금과 달리 높은 생산량을 보였다. GM본사가 대우자동차 승용차 부문을 인수한 뒤 공장안정화에 주력하던 시기였다. 물량 증가로 모든 공장이 주야 2교대로 완전 가동됐다. 회사는 생산량 증가를 앞세워 도급으로 가장한 불법파견을 불러들였다. 회사가 최대 이윤을 남기기 위한 방법은 ‘외주화’였다. 2006년 외주화가 본격적으로 확대되며 부평에 비정규직 1천여 명이 채용됐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 노동 조건의 차이는 계속 벌어졌다. 비정규직은 하청업체가 바뀔 때마다 신입이 됐다. 심지어 수습까지 둬 노동 조건이 오히려 퇴보하기도 했다. 비정규직들이 해당 공정의 효율을 높이면 곧 정규직 공정으로 이관됐다. 반면 정규직이 맡던 공정이 불안하다 싶으면 비정규직이 떠안았다. 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투쟁을 시작했다.

이듬해 4월 GM 부회장 프레데릭 헨더슨이 방한해 “GM대우(한국지엠)는 매년 30%라는 놀라운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며 자랑을 늘어놨다. 다음 달, 한국지엠은 ‘생산성 15% 향상 계획’을 발표하며 비정규직 300명을 해고하겠다고 발표했다. 대규모 채용은 1년 만에 대규모 정리해고로 돌아왔다. 경영실적과 상관없이 이미 외주화로 해고가 비일비재하던 현장이었다. 비정규직들이 외주화 반대 투쟁을 벌이기 시작하자 사측은 폭력을 행사했다. 2007년 1월 부평공장의 한 노동자는 관리자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코뼈가 함몰되는 폭행을 당했다. 이 사건으로 대규모 집회가 촉발하고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참다못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07년 9월 노조를 설립했다. 한국지엠이라는 지붕 아래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노조라는 두 집이 생겼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GM은 직격탄을 맞았다. 당시 한국지엠은 쉐보레 크루즈, 스파크 등을 주로 생산하고 있었다. 이 차종은 세계 시장에서 각광을 받았고, GM위기 구출에도 역할을 했다. 하지만 GM은 한국지엠에서 소형차 물량을 의도적으로 빼버렸다. 곧 한국지엠이 현금 유동성 위기에 갇히자 사측과 정규직노조는 고용안정 협약서를 체결했다. 비정규직을 우선 해고해 비용을 줄이자는 내용의 협약서였다. 이에 따라 부평공장 비정규직 1천 명이 해고됐다. 당시 부평공장 전체 비정규직 2,300여 명 중 절반가량이 잘려나간 셈이었다. 황호인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지회장은 “부평공장을 살려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며 “정규직노조는 여론을 타며 비정규직을 내몰았다. ‘비정규직만 물러나면 살 수 있다’는 정규직의 기대 심리가 위기 때마다 있었다”고 말했다.

지엠 비정규직 투쟁을 위한 여론화 작업이 필요했다. 부평비정규직지회는 공장 밖으로 투쟁을 넓혔다. 한강대교 아치 농성을 벌이고, 한 달간 부평역 CCTV 철탑 고공농성도 벌였다. 절박한 투쟁 끝에 비정규직 복직 합의가 이뤄졌지만, 사측은 이를 노조 와해로 이용했다. 노조 활동에 덜 적극적인 조합원만을 추려 복직시키는 한편, 복직자들을 회유해 노조 탈퇴를 이끌었다.

창원공장 상황도 좋지 않았다. 2006년 3월, 창원 비정규직 노동자 2명이 해고자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50m 굴뚝에 올랐다. 2005년 9월 핵심 하청업체 폐업으로 비정규직 100여 명이 집단 해고된 까닭이다. 당시 노동부는 창원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843명 전원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한국지엠의 대응은 한결같았다. 회사는 물대포를 꺼내고 공장 정문에 컨테이너로 벽을 쌓았다. 굴뚝 농성에 연대하러 온 노동자, 시민들이 공장 진입을 시도하자 세제가 섞인 물대포를 거침없이 쏴댔다.

지난해 12월 창원공장의 인소싱 추진은 이번 한국지엠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됐다. 한국지엠은 창원공장 물량 축소로 비정규직 공정을 정규직으로 이관했다. 외주를 직영화해 고용을 안정시키는 인소싱을 비정규직 해고에 활용한 것이다. 정규직 노조는 물량축소에 따른 구조조정을 걱정하며 인소싱에 합의했다. 인소싱으로 2개 업체가 폐업했고, 비정규직 65명이 해고됐다.

군산공장 1차 하청 노동자 수는 2006년 1,651명에서 2016년 209명으로 줄었다. 부평공장이 1,693명에서 438명으로, 창원이 966명에서 721명으로 감소한 것과 비교했을 때, 군산은 비정규직 ‘박멸’ 수준이었다. 군산공장은 2012년부터 물량이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2013년에 하청 비정규직 약 200명이 해고됐고, 2014년에 약 400명, 2015년에 700명가량이 빠져나갔다. 700명 중 500명은 정리해고로 일자리를 잃었고, 200명은 신규채용됐다. 신규채용은 사직서를 써야만 응할 수 있었다. 당시 군산비정규직지회는 불법파견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중이었다. 따라서 사직서도, 신규채용에도 응하지 않았다. 신규채용에서 탈락할 때 지급되는 위로금 1천만 원도 받지 않았다. 같은 시기, 정규직노조는 2교대를 1교대제로 바꾸는 데 합의했고, 군산공장은 비정규직 대량해고 추진에 박차를 가했다. 2015년 10개였던 군산공장 하청업체는 현재 한 개만 남아있다. 2015년 군산공장 정리해고 사태로 군산비정규직지회 조합원 8명이 해고됐고 지금까지 천막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출처: 김한주 기자]

실패 반복한 지엠 투쟁의 역사…필요한 것은

군산공장 폐쇄를 비롯한 한국지엠의 구조조정은 잘 짜인 ‘시나리오’였다. 한국지엠군산비정규직지회에 따르면, 군산공장 원·하청 노동자들은 2015년부터 한 달에 1주일 정도만 일했다.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정규직, 비정규직 임금이 90% 넘게 보전됐다. 임단협에 따른 성과급도 정규직은 연 1천만 원, 비정규직은 700만 원이 꼬박 지급됐다. 김교명 지회장은 “회사는 노조가 투쟁할 거리가 없도록 만들었다. 현장 노동자들은 구조조정 당해도 부평, 창원공장으로 갈 수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2018년 들어 부평과 창원공장에서 비정규직 약 130명이 해고됐다. 해고하는 마당에 일자리를 늘릴 리 없었다. 그렇게 지엠이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갑자기’ 터뜨리니 노동자들은 짐을 쌀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군산공장은 신차 투입, 수출 판로가 없는 한 폐쇄로 갈 것”이라며 “군산이 신형 크루즈를 생산하는 데 한 달에 몇 백 대밖에 못 판다. 내수 유지가 안 된다. 군산공장 전체 노동자 2천 명에게 임금을 줄 수 없는 형편이다. 문제는 확대 구조조정이다. 향후 3~4년 안에 정년퇴직자만 3,500명에 달한다. 정년퇴직자 보내고 신규채용하지 않으면 4~5년 후에 창원공장까지 폐쇄할 수도 있는 그림이 나온다. 비정규직을 우선 해고하고 이를 전체 구조조정으로 확대하는 방식의 기획된 시나리오”라고 전했다.

황호인 부평비정규직지회장, 김교명 군산비정규직지회장, 진환 창원비정규직지회 사무장 모두 지금은 원·하청 연대가 가장 절실하다고 말한다. 20일 부평공장 앞 집회에서 만났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비정규직, 사무직, 부품사, 함께 살자”라는 몸자보를 입고 있었다. 군산비정규직지회는 ‘비정규직이 더 이상 정규직의 방패막이 될 수 없다’는 현수막을 달았다. 진환 사무장은 “현장에선 비정규직 해고를 인정하며 고용안정판으로 삼고 있다”며 “산업은행 지원, 자구책, 공기업화 등 여러 대책이 제기되지만, 대책에 앞서 근본적 문제는 비정규직 포함 노동자의 고용안정, 노조 할 권리, 생존권이다. 하지만 누구도 이를 얘기하지 않는다. 노조로 모여야 현장을 변화시키고 기업, 산업까지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지엠은 글로벌GM의 자회사다. 글로벌GM은 2016년 94억 달러(약 10조 원), 2015년 96억 달러의 순이익을 봤다. 지난해 38억 달러 적자를 봤지만, 이는 미국 법인세 인하로 인한 이연법인세 자산의 일회성 손실 73억 달러가 반영된 탓이다. 지난해 4분기 글로벌GM 매출은 377억 달러(40조 원)로 시장 예상치 356억 달러를 넘어섰다. CNBC 등 외신들은 호실적이라 평가했다. 그 와중에 GM은 한국지엠을 상대로 1조5천억 원 규모의 ‘고리대’ 장사를 했다. 그리고 한국지엠은 비정규직의 생존권을 위협하며 구조조정을 확대하고 있다. 하청업체는 이 기회를 틈타 비정규직 조합원을 탄압하는 기획을 세우는 중이다. 초국적자본 GM자회사 한국지엠-하청업체라는 착취구조에 맞선 비정규직들의 지난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워커스 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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