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기일을 앞두고, 그가 감옥에서 나왔다

[워커스 르포] 삼성에 맞선 3990일의 싸움, 353일 만에 출소한 이재용



2월 5일 월요일

딸의 기일을 한 달여 앞두고 그가 감옥에서 나왔다. 무려 433억 원을 뇌물로 빼돌린 자였다. 딸 유미를 사망케 하고도 이를 은폐하려던 자였다. 유미처럼 희귀병으로 죽어간 노동자만 118명. 수많은 사람을 죽여 놓고도 그는 사과 한마디 없었다. 책임도 없었고 처벌도 없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는 버젓이 감옥에서 걸어 나왔다. 고작 353일 만에. 2월 5일. 황상기 씨는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다시 피켓을 들었다. A4용지로 급하게 출력한 피켓에는 ‘이재용 풀어준 정형식 재판부는 판사 자격 없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기자회견 내내 소란이 일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사람들이 욕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인생 낙오자 새끼들이라고, 개새끼들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마음이 다치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황상기 씨는 마음에 쌓이는 울분을 꾹꾹 눌러 담은 채 마이크를 들었다. “판사가 아무런 판단 없이 삼성전자 최고 권력 실세에 면죄부를 줬습니다. 삼성이 저지른 수많은 잘못은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황 씨의 옆자리에 있던 김시녀 씨도 마이크를 잡았다. 그의 딸 혜경 씨는 삼성 LCD 공장에서 일을 하다 뇌종양을 얻어 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엄마 이재용이 풀려나면 어떡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불안해하던 혜경이의 목소리가 자꾸만 어른거린다. “왜 재판부는 삼성 앞에만 가면 작아집니까.” 결국 김 씨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감옥에서 석방된 날. 황상기 씨는 강남역 삼성전자 본관 앞 농성장에서 밤을 보냈다. 딸 유미가 백혈병으로 투병한 600여 일. 삼성본관 앞 천막농성을 한 853일. 그리고 유미가 죽은 후 삼성을 상대로 싸워왔던 지난 3990일. 피해자와 유족들의 지옥 같은 시간은 끝이 없는데, 그의 죗값이 고작 353일간의 구금이라니. 백만 번을, 천만 번을 곱씹어 봐도 분명 억울하고 분통한 일이었다.

2월 10일 토요일

닷새 만에 다시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속초에서 서울까지, 그리고 지하철로 광화문역까지. 그날 저녁,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이재용 석방을 규탄하는 첫 번째 촛불집회가 열렸다. 열일을 제치고서라도 참여해야 하는 자리다. 날이 풀렸다지만 해가 떨어지니 뼛속까지 아리는 추위가 덮쳐온다. 이백 명이 채 안 되는 사람들이 시멘트 바닥에 스티로폼 방석을 깔고 앉아 구호를 외친다. 황 씨는 네 번째 발언자로 무대에 올랐다. 버스 안에서 꾹꾹 눌러왔던 억울함이 터져 나온다. “우리는 더 이상 검찰과 법원을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다시 직접 나서서 사법부와 삼성을 개혁해야 합니다.” 마이크를 내려놓은 뒤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가보다. 황 씨는 기자에게 지금까지 삼성이 저지른 위법 행위들을 늘어놓았다. 법원 공소장에 채 적시되지 못한, 무수한 사회적 사건이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용산 참사와 제주 강정마을, 서해바다 기름유출 사건, 과천 철거민 생존권 문제까지. 삼성이 얽히지 않은 곳도 없고, 삼성이 책임을 진 곳도 없다고 했다.

딸의 죽음도 그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그의 딸 유미의 죽음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다. 직접 삼성 직업병 피해를 거론하기까지 했다. 황 씨는 지난 2016년 12월 6일을 절대 잊을 수가 없다. 그 날 이재용 부회장은 국회에서 열린 재벌청문회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한 의원이 이재용에게 물었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 씨를 알고 있나.” 이재용이 “네”라고 말했다. 의원이 또 다시 물었다. “삼성은 황유미의 죽음 앞에 500만원을 내밀었다. 알고 있나.” 이재용이 대답했다. “아이 둘을 가진 아버지로서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이재용은 거듭 강조했다. 모든 일에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없도록 철저히 하겠다고.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그는 책임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삼성 직업병 문제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 “2014년 5월에도 권오현 사장은 언론사 앞에서 죄송하다고, 직업병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어요. 하지만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았죠. 삼성은 그런 식이예요. 언론플레이만 하려고 들어요.” 그래서 이재용이 감옥에 갇혀 있던 353일 동안에도, 황 씨는 강남역 천막 농성장을 지켰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속초에서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고 농성장에서 밤을 보냈다. 그렇게 흐른 시간이 벌써 858일이다.

2월 13일 화요일

김시녀 씨가 춘천에서 올라왔다. 오늘은 강남역 반올림 농성장에 이어말하기 손님이 오는 날이다. 이상하게 딸 혜경 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김 씨는 혜경 씨가 최근 발가락 수술을 받아 함께 오지 못했다고 했다. 추운 겨울 농성장에서 핫팩을 대고 있다가 화상을 입은 탓이다. 모녀는 언제나 껌딱지처럼 붙어 다녔다. 뇌종양 수술을 받은 혜경 씨는 혼자 걷지도, 먹지도 못했다. 그래도 모녀는 일주일에 한번 휠체어를 끌고 서울로 상경해 천막 농성장에서 밤을 보내곤 했다. 이재용이 석방된 지난 5일에도, 김 씨는 혼자서 서울행 버스를 탔다. 그는 버스에서 내내 불안에 떨었다. 딸을 집에 혼자 두고 온 것도, 이재용 2심 판결도 모든 것이 불안했다. 딸 혜경 씨는 며칠 전부터 잠을 잘 자지 못해 입술에 물집이 두 개나 생겼다. 어느 때보다 예민해 보였다. 처음에는 동생과 싸워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엄마에게 이야기하라고 타일렀다. 그제야 혜경 씨가 울먹거리며 털어놨다. “엄마, 나는 이재용이 나올 것만 같아.” 그날 이재용이 풀려났다. 고등법원 앞에 있던 김 씨는 집에 있는 혜경 씨 생각에 눈앞이 아득해졌다.

핸드폰 액정 화면에는 이미 혜경 씨가 남긴 부재중 전화 두 통이 찍혀 있었다. 무너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혜경 씨가 ‘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옆에 있으면 안아주기라도 할 텐데, 달래고 위로하고 쓰다듬어 줄 텐데. 춘천 집에서 혼자 악을 쓰고 있을 딸을 생각하니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재용이 수감돼 있는 동안 모녀는 늘 불안했다. 매번 이재용 재판을 쫓아다녔다. 죗값을 치르지도 않고 풀려날까봐 노심초사했다. 그러다가 험한 꼴도 당했다. 지난해 8월 이재용 결심공판 전날. 두 모녀는 방청권을 얻기 위해 법원 앞에서 밤을 지새웠다. 그들이 법원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태극기부대 사람들의 욕설이 시작됐다.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했어요. 돈 얼마나 받았냐면서요. 참다 참다 혜경이가 ‘아줌마 우리 돈 받고 온 거 아니에요’라고 말 한마디 하니까 ‘병신이 여기를 왜 왔느냐’고 욕을 해요.” 욕설은 밤새 이어졌다. 귀를 틀어막고 있는 딸을 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이튿날 빈손으로 법원을 빠져나오면서, 울면 지는 거라고 이를 악 물었지만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김시녀 씨도 한혜경 씨도 그날 마음을 너무 많이 다쳤다.

혜경 씨는 언제나 사람들 앞에서 “저는 삼성에서 일을 했어요. 그것은 정말이에요”라고 버릇처럼 이야기했다. 딸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김 씨는 나중에야 알았다. 지난해 11월 법원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으로 사망한 고 이윤정 씨의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하지만 혜경 씨는 아니었다. 2010년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지만 결과는 불승인. 2011년 제기한 소송은 2015년 대법원 패소로 끝났다. 그래서 혜경 씨는 자신도 똑같이 삼성 직업병 피해자라는 것을 호소하려 했다. “제가 항상 혜경이한테 이야기해요. 네가 앞서 싸웠기 때문에 다른 노동자들의 산업재해가 증명이 된 것이라고. 장애인들의 싸움으로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생긴 것처럼, 네가 길을 연 것이라고요.”

다시 3월 6일

2월 17일 설날연휴. 반올림 농성장에는 두 명의 지킴이가 상주할 예정이라고 했다. 텅 빈 강남 도심 속 천막농성장이 쓸쓸하지는 않을까. 늦은 오후, 농성장 비닐 천막을 찾았다. 두 명의 지킴이와 한 명의 반올림 활동가가 기자를 맞이한다. 벌써 노숙농성 3년차. 농성 전문가가 돼 버린 그들에게도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농성장 안에서 난로 하나에 의지해 버텼다. 그 마저도 온도가 떨어지면 잘 작동하지 않아, 미니 난로와 핫팩을 동원해 난로를 녹여가며 겨울을 났다. 기온이 올라갔다고 하지만, 여전히 천막 사이로 서늘한 외풍이 스며든다. 그 때 천막을 걷는 소리가 들린다. 또 한 명의 지킴이가 농성장 안으로 들어온다. 그는 고향집이 아닌 농성장을 찾아 아버지께 한소리 들었노라며 웃는다. 뒤를 이어 이종란 반올림 노무사가 농성장 안으로 들어온다. 집에서 잔뜩 싸가지고 온 명절 음식을 꺼내 고향에 내려가지 못한 지킴이에게 건넨다. 신입 노무사 한 명도 빵 봉지를 들고 농성장을 찾았다. 삼성 직업병 피해자가 농성장에 도시락과 컵라면 박스를 전달하고 사라진다. 텅 빈 도심 속 작은 농성장이 북적거린다.

2월 20일. 반올림 농성 867일차. 이 날은 삼성지회 노동자들이 농성장에서 만두 뷔페를 차리는 날이다. 출장 뷔페 이름은 ‘그럴 만두 하지’다. 올해가 마지막이겠거니, 하며 만두를 빚은 것이 벌써 3년 차다. 오랜만에 혜경 씨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메뉴 중 하나인 ‘재용이 실형살 만두’를 먹고 있었다. 수술한 발가락은 많이 아물었다고 했다. 그에게 지난 5일 많이 속상해 했다는 얘길 들었노라 말했다. 갑자기 혜경 씨의 얼굴이 구겨진다. 고개를 떨궜다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다. 울음이 터지려나보다. 화제를 돌리려고 아무말 대잔치를 하는 기자에게 혜경 씨가 힘주어 이야기 한다. “꼭 다시 들어가게 될 거에요.”

그 날, 삼성 옴부즈만이 3월 중으로 반도체 생산라인 종합 진단 결과에 대한 첫 보고서를 발표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옴부즈만은 지난 2016년 6월, 삼성전자와 반올림, 가족대책위위원회가 합의해 설치한 기구다. 언론에서는 삼성전자가 화학물질 정보 공개 범위를 넓히고, 안전보건 자료의 보관 기간을 늘릴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하지만 피해자와 유족들은 섣불리 기대를 품을 수가 없다. 이종란 반올림 노무사는 “1년 이상을 허송세월을 하다 뒤늦게 연구팀을 꾸렸다. 공개적인 소통이 이뤄지지 않아 어떻게 조사가 이뤄졌는지 알지 못한다”며 “3~4월 중 협상 당사자인 반올림과 가대위의 의견 청취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늦게나마 제대로 결과가 나오길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현재 삼성이 직업병 피해자를 상대로 진행하고 있는 자체보상위원회 역시, 보상수준 등 대부분의 사안이 비공개로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삼성은 여전히 반올림과의 직접 교섭은 거부하고 있다.

반올림 농성장 한편에는 지난해 5월, 문재인 대통령과 황상기 씨가 나란히 서명한 정책협약서가 펼쳐져 있다. 천이 누렇게 바래질 때까지도 약속한 협약은 이행되지 않는다. 고 황유미 씨 사망 11주기를 맞는 3월 6일. 반올림은 다시 새하얀 방진복을 입고 거리로 나선다. 시작도 안했는데 끝이 날 리 있나. 이재용 부회장을 353일간 구금한 죄명은 뇌물공여죄. 중요한 것은 그가 아직 118명의 노동자를 사망케 한 죗값은 치르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워커스 4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