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길 강요당하는 어떤 죽음

[워커스 이슈(3)]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출처: 사계]

서울교통공사 무기계약직 노동자 K씨가 자살한 지 3개월이 지났다. 자살은 흔히 사회적 타살로 독해하곤 한다. 하지만 이번 죽음은 유서가 없고, 수사에서의 특이점도 없다는 이유로 이유 없는 죽음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K씨를 둘러싼 조각난 키워드들을 모아보면 그의 죽음도 하나의 그림으로 맞춰진다. ‘은행대출, 연이은 공채 낙방, 타지 생활, 불안정한 일자리, 월 160만 원의 임금’이라는 조각들이다.

2017년 11월 16일 오후 8시 40분 경. K씨는 전세로 살던 서울 강동구 마천동의 2평 원룸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K씨의 동료들은 그날 저녁 출근하지 않은 K씨의 집을 찾았다. 문밖에서 전화를 거니 안에서 희미한 진동 소리가 들렸다. 동료들은 경찰을 대동해 문을 강제로 개방했다. 문 틈 사이로 사망한 K씨가 보였다. K씨는 유서도 쓰지 않았다. 죽음을 알리는 이렇다 할 사인도 보내지 않았다. 경찰은 그가 살던 방과 휴대폰 등을 뒤졌지만 별다른 죽음의 이유를 찾지 못했다.

서른여섯 살의 그는 여러 번 직장을 옮겼다. 반도체 업체를 다니다 서울교통공사의 자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처우는 턱없이 낮고, 일상적 인력 부족에 몸과 영혼이 털리는 직장이었다. 그러다 2016년 10월 서울교통공사의 차량 검수팀 안전업무직으로 입사했다. 전동차를 점검하고 정비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오전 9시 출근에 오후 6시 퇴근하는 경로도 크게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마다 자격증 책이나 공채 준비 서적을 잡았다. 동료들에게도 공무원이 되거나 공사 공채로 입사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시가 연봉 3,300만 원이라고 홍보했던 일자리는 기대와 매우 달랐다. K씨의 월급은 160만 원 정도였다. 자녀가 있어 가족수당을 받는 직원은 170만 원 정도를 받았다. 혼자 서울에서 살기엔 부족한 돈이었다. K씨는 그 작은방을 구하기 위해 은행에서 4천만 원을 대출받았다. 원금과 이자 상환에 대한 부담이 컸다. 입사 동기에게 가끔 털어놓는 그의 고민에는 언제나 생계의 어려움이 있었다. 그는 조합비 1만원이 아쉽다며 노조도 탈퇴했다.

불안한 현재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오직 공부였다. 그에게 공부는 익숙한 일이었다. 사망 후 집을 찾았던 동료들은 작은 방안에 각종 자격증 시험과 인적성 검사 시험서적이 가득했다고 말했다.

그의 죽음을 두고 여러 말들이 오갔다. 그는 서울지하철 무기계약직이었다. 사망 당시, 서울지하철 무기계약직 정규직 전환 과정은 진통을 겪고 있었다. 일부 정규직들은 비정규직을 향해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폭언을 뱉어냈다.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무기계약직들이 인간의 도리로 할 수 없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어렵게 시험을 쳐서 들어온 공채 출신들이 ‘정규직 역차별’을 당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처음 아들의 소식을 듣고 지방에서 올라온 유족은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산재 인정과, 업무직의 정규직 전환 등을 요구하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내 아들이 비정규직이라 죽었다’ ‘비정규직이 뭔데 사람이 죽어야 하나’며 K씨의 부모는 한탄했다. 업무직들을 대표해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던 업무직 협의체는 유족과 뜻을 함께하고 서울교통공사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러한 내용이 언론에 퍼지자 서울교통공사와 서울시는 11월 21일 해명자료를 냈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16일 발생한 공사 직원의 자살이 정규직화 협상과 관련되어 있다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K씨가 죽기 며칠 전 점심시간이었다. K씨는 함께 일하는 동료이자, 정규직 전환 논의 소식에 밝은 동료에게 상황이 어떻게 돼 가냐고 물었다. 지지부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이대로 물 건너가는 거냐며 지나가듯 말했다. 노조탈퇴 후 노조 일을 묻는 건 처음이었다. K씨의 동료는 당시 어려웠던 상황을 그대로 전달했다. 위태위태하긴 하지만 두 세 번의 협의가 남았다고. 하지만 사측에서 유보적으로 나올 수도 있어 이 말도 믿을 건 못 된다고.

20일 저녁 유족은 미루고 있던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K씨의 죽음 5일째 되는 날 공사 관계자가 찾아왔다. 유족을 포함해 업무직 협의체, 구의역 참사 이후 진상조사를 함께한 변호사 등은 유족의 요구를 제시했고 공사는 개인적인 죽음이라며 일체의 지원을 거부했다. 노조의 힘도 못 받는 상황에서 유족은 일체의 요구를 포기해야겠다 싶었지만 업무직협의체와 변호사의 설득에 다시 한 번 힘을 내보겠노라 말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공사 관계자는 따로 유족을 불러 합의했다. 다음날 유족은 빈소를 정리하고 내려갔다. K씨의 죽음은 평소의 그만큼 조용하게 묻혔다.

끊이지 않았던 죽음

통합공사인 서울교통공사 출범하기 전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는 기관사의 자살이 큰 문제였다. 기관사 첫 사망이 나온 2003년부터 지금까지 9명의 기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책은 끊임없이 나왔다. 2003년부터 기관사의 정신 건강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고 죽음을 예방하기 위한 각종 대책이 나왔지만 자살은 멈추지 않았다. 정작 중요한 대책들은 막대한 예산 때문에 시행조차 되지 않았다.

강호원 전 5678서울도시철도노조 사무처장은 “매번 달라지는 출근 시간, 하루에도 두세 번씩 반복되는 열차교대 시간에 대한 강박, 거의 전 구간이 지하터널인 환경, 이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 계속되는 소음과 진동 등이 기관사를 힘들게 한다. 거기에 상명하복식의 강압적인 조직문화는 기관사들로 하여금 숨을 쉴 수조차 없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1인 승무제는 기관사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거론되곤 했다. 5, 6, 7, 8호선은 1인 승무체제로 운행된다. 기관사 한 명이 열차고장 및 사고 시 관제보고, 승객 안내방송, 고장 조치 등을 모두 해야 한다. 조금만 불편해도 민원이 바로 접수되기 때문에 빠른 조치를 해야 한다는 압박도 있다. 노조는 10여 년 전부터 2인 승무 도입을 요구해왔지만 막대한 예산이 발목을 잡았다.

사측의 억압적 노무관리 역시 기관사 자살을 키웠다. 2005년 9월 임명된 음성직 사장은 에너지 절약을 이유로 99% 수동운전을 시켰다.

안전하지도 않고, 기관사들로서는 신경 쓸 일이 많아지는 조치였다. 강호원 전 처장은 “수동운전 특성상 더 많은 브레이크를 쓰게 돼 에너지 절약 효과는 거의 없었다”며 “단지 직원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사측은 기관사에게 엄격한 출퇴근시간을 요구했고 지각에 대해선 특별 관리에 나섰다. 기관사들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호소하며 병가를 내면 복귀를 종용했다. 승객이 우선이라는 서비스를 강조하다 보니 민원 역시 크게 늘었다. 1인 승무 체계에선 감당 못할 스트레스였다.

2012년 3월 사망한 이 모 기관사(43세)는 2011년 4월 ‘5678호 출입문을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해 승객 중 1명이 문에 끼였고, 나머지 고객은 하차하지 못함에 대한 항의’를 받은 후 운전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을 호소했다. 그해 대학병원 정신과에서 ‘공황장애(우발적 발작성 불안)’ 진단을 받았는데 통원 치료에도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다음해 2월 전직 신청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 헬스장을 다니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야간근무를 마친 뒤 지하철역에서 투신자살했다.

2013년 1월 사망한 황 모 기관사(40세)도 열차 사고와 이에 따른 사측의 악랄한 대응 때문에 힘들어했다. 2012년 9월 한 승객의 가방이 문에 끼인 채 열차가 출발해 스크린도어 장애물센서 고정 브라켓이 가방과 충돌해 고장을 일으켰다. 가방이 찢어져 해당 승객에게 격렬한 항의를 받았다. 사측은 고객에게 소정의 금전보상을 하는 한편 H기관사에 대해서는 경위서를 제출토록 하고 “스크린도어 센서 교체비용을 변상해야 한다”는 식으로 압박했다. 이와 함께 전체 기관사들에게 이 사고를 본보기 교육 자료로 활용하며 당시 CCTV영상을 돌려보기도 했다. H기관사에게 특별 교육을 실시하며 “기관사 자질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비난했다.

바뀐 것들과 바뀌지 않은 것들

서울교통공사 업무직들의 압박 속에 지난해 말 정규직 전환 노사 합의가 이뤄졌다. 서울교통공사와 서울시 지하철 3개 노조는 “2017년 12월 31일 기준 무기업무직을 대상으로 서울시 ‘노동존중특별 서울 2단계 발전 계획 중 무기계약직 전면 정규직 전환 계획’에 따라 2018년 3월 1일자로 일괄 정규직(일반직)으로 전환”하는 데 합의했다. 대상 인원은 1,288명. 무기업무직 입사년도 또는 전환년도를 기준으로 3년 이상인 업무직은 7급으로 임용하되, 3년 미만인 업무직은 ‘7급보’라는 한시적 직급으로 묶었다. 이들은 근무기간이 3년이 지나면 7급으로 임용된다.

한편 일부 정규직들은 “무원칙한 시정과 공개채용제도를 유명무실하게 하는 특혜성 정규직 전환에 대한 절차상 부조리와 역차별적 요소에 대해 법률적 문제제기는 충분히 가능하다”며 헌법소원 청구인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입사 4년 차 미만의 공채 출신 정규직이 다수였다. 그렇게 모인 정규직 400여 명과 일반 시민 120명은 결국 지난 2월 19일 헌법소원을 냈다.

지하철 기관사들의 자살 예방 대책은 여러 테이블에서 논의됐다. 2003년 서울도시철도노조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도시철도 승무 노동자 정신건강 관련 연구를 진행했고 노동자들의 우울 증상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노-사- 정이 각각 추천한 외부 인사들도 구성된 ‘서울시지하철최적근무위원회’는 2인 승무 시범 실시 등이 포함된 권고안을 발표했다. 2014년엔 ‘기관사 근무환경 개선단’이 구성돼 양 공사와 서울시, 외부전문가가 참여한 가운데 6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시 도시교통본부는 장시간 근로를 줄이기 위한 개선책을 발표했다. 2016년 8월, ‘기관사 사망 근본대책 마련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꾸려져 약 10개월간 기존 대책의 실효적 이행방안을 제시하고 추가적인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나섰다.

수많은 권고에 따라 지난해 3월 서울시는 기관사 104명을 충원해 2인 승무 시범 운영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계획은 예산 부담 때문에 시작도 못하고 좌초됐다. 인턴을 뽑아 2인 승무 테스트를 실시하기도 했지만, 실효성도 없고 주먹구구식이라 기관사들은 진절머리를 쳤다. 그 사이 전문가들은 1인 승무를 유지하는 대신 노동 강도를 고려해 체력단련비를 월 30만 원 가량 지급하는 방법을 내놨다. 지난 2012년, 한 기관사가 공황장애를 스스로 극복하려다 결국 목숨을 끊은 사건은 그렇게 잊혀졌다.[워커스 4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