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현상은 충청남도에서 시작되었다. ‘충청남도 도민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아래 충남인권조례) 폐지안이 지난 4월 3일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도의회를 통과한 것이다. 폐지안은 1월 16일 발의된 후 2월 2일 처음으로 가결되었다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재의요청을 받아 도의회로 돌아와 또다시 가결되었다. 자유한국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충남도의회가 두 차례에 걸쳐 인권조례 폐지에 대한 확고한 의사를 밝힌 것이다.
아직 인권조례 폐지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남궁영 충남도지사 권한대행이 지난 9일, 대법원에 인권조례 폐지안 의결 무효확인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로써 인권조례 폐지 확정은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또다시 점화된 ‘동성애 찬반논란’의 시발점이 된 충남인권조례. ‘조례 살리기’에 앞장서온 ‘충남인권조례지키기 공동행동’의 우삼열 집행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충남 인권조례를 둘러싼 정치와 종교 문제를 그의 시각으로 살펴본다.
▲ 우삼열 충남인권조례지키기 공동행동 집행위원장 [출처: 비마이너] |
2012년에 충남인권조례를 발의한 것은 현재 자유한국당 소속인 송덕빈 의원이다. 당시 조례는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송 의원을 비롯한 한국당 의원 전원이 이번 폐지안 가결에 찬성표를 던졌는데, 2012년에는 어떻게 인권조례 발의와 통과가 가능했는지 궁금하다.
충남인권조례는 인권위에서 2012년에 배포한 ‘인권조례 표준안’과 거의 다른 것이 없다. 평이한 내용이고, 예산 마련에 대한 강제조항도 없고, 도 인권위원회에 강력한 힘을 실어주는 내용도 아니었기 때문에 보수진영에서도 별 부담 없이 발의했다. 더구나 조례안에는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는 않으니 발의와 제정 당시에도 특별히 논란이 되지는 않았다. 아주 조용하고 자연스럽게 통과됐다.
그러다가 갑자기 지난해 충남 지역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인권조례 폐지 청구 서명운동이 진행되었고, 이러한 움직임을 감지한 의원들이 자발적으로 폐지안을 내놨다. 이미 주민청구 절차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정치적 제스처로 폐지안을 발의했던 것이다. 보수 개신교계의 결집력이 실제로 선거에서 유의미한 수준인가?
실질적 파워가 얼마 만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치인들이 이렇게 판단하고 행동하는데 아무 근거가 없다고 볼 순 없을 것 같다. 뭉쳐서 다니는 보수 개신교회의 표를 확실하게 한국당 쪽으로 끌어올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고, 이 때문에 교회와의 결합을 정략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저는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말씀 성서에 김종필 의원님, 김용필 의원님께서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리바이벌되는 것 같습니다만, 하나님 말씀 성서 로마서 1장 26절에 보면 순리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여자를 활용하지 않고 남자와 남자끼리 부끄러운 짓을 함으로써 그분들은 큰 보응을 받으리라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그 말씀, 우리 종교단체에서 하는 이야기 중에 그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중략) 이러므로 하나님의 성서에 나와 있는 그 말 그대로 저희들은 동성연애는 반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늘 인권 조례(폐지안) 저는 분명히 찬성을 합니다.” (송덕빈 자유한국당 의원의 2월 2일 충남도의회 본회의 발언 중)
조례 폐지안 발의 이후, 반대하는 시민사회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이 때문에 한국당 의원들도 부담 있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한국당 의원들 전원이 인권조례 폐지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가능했다고 보는가.
지난 1월 29일, 충남 행정자치상임위원회에 폐지안이 처음 상정되었을 때 인터넷 생중계로 회의를 지켜봤다. 의원들이 심각하게 논의들을 하다가 회의를 잠시 중단하고 다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선 한참 후 돌아와 ‘충분히 내용을 검토해야 하므로 폐지안 논의는 보류하기로 결정했다’라며 회의를 종료했다.
그러고서는 바로 그날 상임위 회의 종료 직후, 한국당 의원총회가 열렸다. 의원총회 후, 인권조례 폐지안이 글자 하나 안 바뀌고 재상정됐다. 의원총회에서 폐지안이 두 시간 만에 결정된 것이다. 결국 폐지안은 다음날 바로 상임위에서 통과됐다.
상임위에는 한국당 의원이 6명, 민주당 의원이 2명이기 때문에 만약 한국당 의원들이 진심으로 ‘조례안이 폐지되어야 한다’라고 판단했다면 얼마든지 첫 회의에서 본회의 상정이 가능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한국당 의원총회가 폐지안 상정 결정의 분기점이 아니었나 싶다. 의원들 각자의 역량에 정책적 판단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충남도당’, 나아가 한국당의 정략적 판단에 따른 상명하복식 구조로 이 문제가 다뤄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충남 인권조례 폐지안 가결로 인해 어떤 여파가 있고, 또 어떤 여파들이 일어날 것으로 보는가.
일차적으로는 지역 인권조례들이 영향받게 될 것이다. 일단 부산 해운대구에서 인권조례 일부 조항이 ‘개악’되었고, 계룡, 공주, 부여에서도 인권조례 폐지 요구가 등장했다. 결국 부결되긴 했지만 아산시에서도 인권조례 폐지안이 본회의까지 올라갔다. 특히 아산시에선 인권조례 폐지를 요구하는 이유가 ‘인권위와 협력할 수 있다는 내용이 조례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대한민국 법질서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인권위는 엄연히 국회에서 통과시킨 법에 따라 만들어진 국가기구이다. (‘동방연’을 비롯한 단체들은 인권위가 충남인권조례 폐지에 거듭 반대 의사를 밝히자 “인권위가 동성애를 조장하는 ’나쁜 인권조례‘를 옹호하고 있다”라며 규탄하고 있다 _편집자 주)
이런 ‘반사회적’ 주장이 횡행하는 것 자체가 비극인데, 문제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확신을 가지고 이런 주장을 한다.
▲ 충남도의회에서 충남인권조례 폐지안이 발의되자, 성소수자단체 등 인권단체들이 지난 1월 25일 자유한국당사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출처: 비마이너] |
그러한 ‘확신’의 기반에 ‘성경’이 있다. 인권조례 폐지를 주장하는 보수 개신교에서는 ‘성경에서 죄로 규정한 동성애가 인권조례, 나아가 인권위의 비호 아래 확산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 위원장은 개신교 목사이기도 한데, 기독교인으로서 이러한 현상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
동성애를 ‘죄’로 보는 구약의 율법을 지키자는 이야기를 지금 개신교 목사들이 해야 하는가?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우리는 개신교 목사지 유대교 랍비가 아니지 않나. 예수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다. 그리고 몸소 그 삶을 살았다. 예를 들어 예수가 삭개오(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로, 유대인들로부터 세금을 걷어 당시 이스라엘을 식민지배 하고 있던 로마에 이를 전달하던 ‘세리‘였다. 당시 ’세리‘는 식민 로마의 부역자이자 민족의 배신자로 낙인찍힌 사람이었다._편집자 주)의 집에 들어갔을 때, 삭개오가 세리를 그만둔 후에서야 그의 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거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는 오히려 삭개오가 유대사회에서 ‘한 자리에 있을 수 없는 자’로 여겨지고, 혐오의 대상인 때에 사랑의 행위를 통해 그 고정관념을 깼다.
이런 면에서 예수의 제자인 개신교인들도 어떤 대상을 이분법적으로 쉽게 정죄하고 악으로 규정해선 안 된다. 수많은 폭력의 기제가 있는 사회와, 교회 안의 수많은 문제에 대해서는 눈 감고, 반성도 없으면서 사회적 소수자를 이렇게 공격하는 것은 굉장히 이중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이런 경향이 폭발적으로 진행된다고 보는가.
내부적 결속을 다지기 위함이다. 정치 세력화 과정에서 혐오 기제가 사용되는 것이 하나고, 또 하나는 교회의 꺾인 성장세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6~70년대 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교회가 가난한 사람과 사회적 약자에게 위로가 되고, 그들이 종교적 카타르시스를 통해 괴로움을 중화하는 공간이 되어온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성장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80년대 후반 민주화 운동과 87년 개헌 등으로 민주주의가 크게 성장하면서 ‘합리성’이 중요한 가치가 되었고, 신앙에 있어서도 이러한 지점들이 요구되었지만, 교회는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는 데 실패했다. 목회자 중심의 통제적/권위적/독단적 목회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교회가 전달하는 메시지의 내용이나 교회 권력 체계 구성, 운영 방식 등이 시대적 변화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
사회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그래서 교회가 어떤 방식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품어야 할지 유연하게 고민하거나 소통하려 하지 않은 채, 독단적인 메시지만 제시해왔다. 교회가 사회의 일부라는 생각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단절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제는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정말 위험할 수 있다.
이 위험성을 교회만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사실은 교회도 이미 이 위험성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 성소수자 반대 활동을 할 때 교회 이름이 빠지고 시민단체 이름이 들어간다. 결정적인 순간에 교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긴 하지만, 결국 교회 이름을 걸고 이런 활동하는 것이 부담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거다.
‘반동성애’ 활동하는 사람들은 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으며, 자신들의 행위가 반헌법적이라는 것을 수없이 들었을 것이다. 또한, 자신들이 주장하는 ‘반대 논리’가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것인지도 잘 알 것이다. 그들 주장에 따르면 죄인 중의 죄인은 결혼하고도 아이를 낳지 않고 있는, 그래서 이 나라 ‘인구감소’에 일조하는 30만 쌍의 이성애자 부부들이고, 심지어 결혼조차 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교회가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어긋난다’라며 이들을 격렬히 비판하고 죄인 취급하는가? 왜 유독 ‘동성애자’들에게만 창조 섭리 기준을 들이대며 ‘반대’한다는 것인가. 결국 자신들이 가진 혐오에 종교의 외피를 씌워 전파하는 것인데, 이걸 합리적 사고로 수정하기는커녕 점차 강화만 시켜가고 있다. 퇴로를 스스로 막은 채 혐오에 몰두해 있는 모습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동반연’에서는 모든 후보에게 ‘동성애를 지지하는지, 인권조례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지’ 질의하겠다고 밝혔다. 충남인권조례지키기 공동행동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후보들에게 인권조례에 대한 입장을 공식질의할 예정이 있는가.
아직 공식적으로 논의된 바는 없지만, 인권조례에 대한 입장을 분명 후보들에게 요구해야 한다고 본다. 헌법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공직에 선출돼서는 안 되지 않나. 헌법 정신 수호에 대한 의지를 후보들이 당당하게 밝힌 후 선출되어야 하고, 증오와 혐오에 기반을 둔 후보가 당선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인권조례를 없애라고 하는 주장이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이는 헌법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다. 인권조례는 헌법 제10조를 구체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권조례에 ‘악’을 덧씌워서 없애려는 전략은, 잠시 한 지역에서 (인권조례가) 폐지된다 한들 결코 끝에는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사회의 진보를 교회가 막아선다면 결국 도태되고 고립되는 것은 교회이다. 보수 정당 역시 종교를 정치 세력 유지에 동원하려는 시도를 멈춰야 한다. 이를 계속 밀고 간다면 어마어마한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기사제휴=비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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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참세상 제휴 언론 비마이너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