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사회로의 약속, 우리는 그 날이 생생한데

[워커스 르포]구의역 참사 2주기… 시민과 지하철 노동자는 안전하십니까?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세 청년 ‘김 군’이 떠난 지 2년이 흘렀다. 그의 가방에는 손때 묻은 펜치와 장갑, 마스크가 있었다. 함께 들어있던 컵라면과 나무젓가락에 부모는 오열했다. 빡빡한 업무 탓에 그 소박한 식사마저 챙기지 못하고 그는 목숨을 잃었다. 2인 1조 근무 매뉴얼은 규정에만 있었고, 시간제한과 그에 따른 패널티 부과, 인력 부족에 따른 압박은 김 군에게 그대로 전가됐다. 사망 다음 날이 생일이었던 김 군의 사연은 압축된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의 서사였다. 시민들은 슬픔과 분노를 노란색 포스트잇에 적어 구의역에 붙였다.

벌써 2년이 지났지만 지하철 노동자들은 아직 그때의 분노를 삭이지 못한 채 매일 서울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한다. 서울교통공사(전 도시철도공사)가 100% 출자해 만든 자회사 도시철도엔지니어링(도시철도ENG) 소속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지하철 역사 내 소방시설, 위생과 급수시설, 냉방, 환기시설을 점검하고 유지 보수하는 일을 한다. 구의역 사망재해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진상조사단) 2차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나치게 적은 인원’으로 ‘규정에 따른 업무를 수행하기도 어려운 상태’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안전의 외주화’를 멈추라고, 구의역 참사 이후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가 했던 약속을 지키라며 싸우고 있다.


운이 좋아 이번 겨울을 무사히 넘겼다

유독 한파가 잦았던 이번 겨울, 지하철 내 시설들도 추위에 속수무책이었다. 항상 물이 차 있는 스프링클러는 곳곳에서 얼어 터졌다. D역사의 경우 소화전도 터지고, 스프링클러도 터지는 바람에 일주일간 물을 빼고 보수에 들어가야 했다. 지하철 보수 규정상 48시간 이내에 보수 공사를 처리해야 하지만 사고가 이런 사정을 봐주는 것은 아니다. 작업자는 잠을 자면서도 화재가 안 나기를 바라며 속앓이를 했다. 물을 잠가둔 상태에서 화재가 날 경우 대형 참사는 불 보듯 뻔했다. 지하철 소방시설을 보수하는 도시철도ENG 노동자들은 애초 설계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동파가 염려되는 곳에 보온재, 열선을 설치해야 하는데 안 돼 있어요. 지하는 따듯하니까 역사엔 보일러가 없죠. 그런데 승강장이 얼 거라는 판단을 못한 거죠. 현장의 목소리를 못 들어서 그런 거예요.”

이런 설계상의 문제가 발생한 것은 고용체계 탓이 크다. 승강장 스프링클러 설계에 자회사 소속 노동자의 의견이 반영될 리 없다. 간접고용은 이런 식으로 위험을 낳았다. 진상조사단도 이 점을 지적했었다. 2016년 12월 ‘2차 진상조사 결과 시민보고회’에서 진상조사단은 인력 부족으로 시민 안전이 위협받는다며 대규모 인력충원과 함께 직영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진상조사 당시 도시철도ENG는 도시철도 5678호선 157개 역사와 6개 차량기지, 청사 등의 소방시설, 위생 및 급수시설, 냉방·환기시설, 난방(차량기지, 청사) 등을 점검하고 유지, 보수 하는 업무를 공사로부터 위탁받아 수행 중이었다. 평균 4.2개의 역사를 1명의 소방인원이 유지, 점검, 보수까지 처리해야 했다. 냉방·환기의 경우엔 1명이 7개의 역을 책임져야 했다. 인력이 부족하니, 2인 1조 규정은 무용지물이 됐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고가 터지면 노동자가 덤터기를 쓰지만 이조차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서울도시철도공사가 발주한 용역 연구에서조차 인력 부족이 문제가 됐다. 2016년 12월에 나온 연구 결과는 “현재 도시철도 ENG는 환기를 제외한 3종 과업 모두 적정인원보다 적은 인원을 유지하고 있어 (노동자들이) 업무진행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고 밝혔다.

노후화되거나 부품이 단종된 설비가 교체되지 않아 시민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 역시 간접고용체계에 주요 원인이 있다. 보수 작업은 도시철도ENG 노동자들이 하지만 설비의 공급과 교체 권한은 공사에 있어 자재가 필요할 때면 공사에 요청하고, 승인받고 지급까지 받아야 하는 등 여러 절차를 밟아야 한다.

‘삽질’이 계속되는 이유

도시철도ENG가 수행하는 몇몇 작업은 시쳇말로 ‘삽질’과도 같다. 역사 내 대합실 물청소를 하면 바닥 유도등에 물이 찬다. 물이 차면 누전이 돼 자동으로 불이 꺼진다. 그때마다 자회사 직원들이 출동해 이를 고친다. 물청소 때마다 바닥 유도등을 해체해 물을 빼내고, 말리고, 수리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청소 노동자는 그들 본연의 업무인 청소를 할 뿐이고, 이들은 자신에게 맡겨진 용역 과제를 수행할 뿐이니 억울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자회사 노동자들에게 합리적인 방법을 제안할 권한은 주어지지 않는다.

도시철도ENG 노동자들은 산업재해에도 노출돼 있다. 윤동익 도시철도ENG 사무처장은 “인원이 부족하니 2인 1조로 작업하는 것도 어렵고, 작업 환경도 열악해 어두운 곳에서 넘어지거나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종종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런 부상에도 산재를 청구하는 사람은 드물다. 윤 사무처장은 “작업 현장이 천장 속 등 좁고 어두운 곳이 대부분이라 튀어나온 물체에 찢기거나 허리 부상도 잦다. 안 그래도 조 단 위로 움직이는데 내가 쉬면 동료가 그만큼 더 힘들다는 생각에 스스로도 (산재처리를) 꺼리고, 공사에 찍힐까봐 그냥 개인이 알아서 치료한다”라고 설명했다.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이 위태하다는 것을 서울시가 모를 리 없다. 구의역 참사 이후 발 빠르게 안전사회로의 대전환을 선언했던 서울시였다.

약속의 시작

구의역 참사 이후 서울시는 빠르게 대책을 발표했다. 2016년 6월 7일 구의역 참사에 대한 서울시 입장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90도로 허리를 굽히고 사과를 거듭했다. 박 시장은 ‘위험의 외주화’를 언급하며 시민의 생명, 안전과 직결된 업무에 관해서 직영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참사의 정확한 원인을 알고 있었다. “외주화 속 원청-하청 간의 갑을관계로 인한 무리한 작업지시, 열악한 하청업체의 노동조건에서 오는 무리한 노동 강도,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면서도 부족한 임금, 다단계 관리 감독으로 인한 관리자의 책임의식 부재, 이 모든 것 안에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생명은 고려되지 않았다.”

사실 박 시장의 2014년 재선 공약은 ‘안전특별시’였고, 그 중 ‘안전지하철’은 핵심 정책이었다. 지하철 안전을 강조하며 당선된 시장은 여러 대책을 주문했다. △민관합동 진상규명 위원회 구성을 통한 사고경위 및 원인 분석 △책임자 처벌 △시민의 생명·안전과 직결된 업무, 위험한 업무의 외주화에 대한 단계적 직영화 △외주화 형태로 운영되는 모든 안전 분야에 대한 전수조사 △공사 퇴직자와 신규채용자 간의 불합리한 임금테이블 전면수정 △지하철 안전 시스템 혁신 등이다.

도시철도ENG 노동자들은 박 시장의 이날 연설문을 프린트해 가지고 다닌다. 형광펜으로 그은 시장의 말이 이들에겐 동아줄이고 지푸라기다. “박원순 시장님의 말대로만 하면 되는데, 그대로만 하면 되는데…. 큰 사고가 있어야 우리 말에도 귀를 기울일까요?” 도시철도ENG 노동자들이 2년 동안 관계자들을 쫓아다니면서 호소한 것은, 새로운 요구도 아닌 그저 세상 밖으로 뱉은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약속

2016년 11월 9일 서울특별시, 서울메트로, 서울특별시도시철도 공사와 서울지하철 3개 노조는 2017년 통합공사 출범을 앞두고 직급체계, 근무형태, 임금 및 처우를 협의했다. “시민안전과 직결되는 안전 핵심업무는 직영화를 추진하되, 세부사항은 노사 간 별도 합의한다”는 안이 나왔다. 업무직 및 자회사 직원의 처우를 언급하며 근속대비 정규직 수준으로 개선하고 그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2017년 5월 21일 제19회 노사정대표자협의체 회의에선 조금 더 진전된 안이 제시됐다. 안전분야 직영전환 대상은 역사의 소방설비·전기·환기·냉방으로 한다는 합의가 도출됐다.

2017년 마지막 날, 서울지하철 무기업무직을 전면 정규직(일반직)화하는 노사합의서가 나왔다. 서울시 ‘노동존중특별시 서울 2단계 발전 계획’에 따라 서울교통공사와 서울지하철노조, 5678서울도시철도노조, 서울메트로노조는 서울교통공사 내 무기업무직을 일괄 정규직(일반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방, 전기, 냉방, 환기 직영전환은 별도로 노사합의한다’는 내용이 기타 사항으로 끼워졌다. 합의 과정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업무직이나, 도시철도ENG 노동자들은 배제됐다.

조원기 도시철도ENG노조 위원장은 “노사합의 다음 날 ‘다음에 별도 합의하기로 했습니다’라는 문자가 왔다. 당사자를 배제한 합의라는 것도 문제지만 업무직과 분리해 처리한다는 직고용을 무기한 방치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 위원장은 “공사 직원들도 부족한 설계인원 가지고는 죽어도 일 못 한다고 하는데, 이 설계인원을 또 다시 수정하지 않은 건 우리보고 일하다 죽으라는 것밖에 안 된다”고 했다.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이들을 ‘도시철도ENG의 정규직’이라고 호명했다. 그의 발언에 도시철도ENG 노동자들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며 분노했다. 지난 2월 26일 열린 서울시 교통위원회 회의에서 김태호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도시철도ENG 노동자에 대한 공사 직고용 약속을 지키라는 한 위원의 지적에 “저분들은 ENG의 정규직이다. 성격이 좀 다르다”고 답변했다. 도시철도ENG의 직영화 논의가 어느 정도 진척됐느냐는 질문에는 “‘모회사에 이렇게 들어오는 것보다 자회사에 있더라도 모회사에 준하는 처우가 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저쪽(도시철도ENG)에서 주셔서, 노사협의가 진행 중이고 지금 처우개선책과 동등한 보수 안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도시철도ENG노조 윤동익 사무처장에 따르면, “우리의 첫 번째 요구사항은 여전히 소방, 냉방, 환기업무의 공사로의 직고용”이라고 했다. 김태호 사장은 서울시의 정규직화 사업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이들을 2년 동안 방치하면 안 된다는 지적에 결국 “(1~4호선의) 직급이나 보수, 처우 이런 것들이 3월 1일 자로 정해지고,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 명확해지면 처우를 개선해 (공사 정규직과) 동등한 대우를 하든가, 직고용한다든지(하겠다)”라고 말했다. “최대한 빨리 방안을 찾을 수 있게 하겠다”라고 덧붙였지만 논의를 마무리 짓기 위해 으레 하는 수사였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2배로 늘었다

지난 4월 1일부로 1~4호선 용역 노동자들이 도시철도ENG로 전환됐다. 1~4호선 용역노동자들 역시 같은 안전 업무를 하고 있기에 직영화 대상이었다. 사측에선 용역계약이 만료되니 우선 도시철도ENG에 전환한 다음, 논의를 이어가자고 했다. 도시철도ENG노조는 “커진 규모를 핑계로 영원히 자회사에 주저앉히려는 것”이라며 1~4호선 외주용역 안전핵심업무분야의 노동자들을 교통공사로 직영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소용없었다. 여러 차례 부족하다고 지적된 5~8호선 소방설비·전기·환기·냉방 분야의 인원이 기준이 된 것도 문제다.

지난 4월 중순, 도시철도ENG 소속이 된 1~4호선 노동자들을 만났다. 한 노동자는 “20명 TO라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13명으로 조정됐다. 필요한 소방점검은 거의 못 하고 있고, 유지보수 위주로 일을 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 하고 있고, 이 외의 것은 방치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6·13 지방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공약들은 다시 나부낄 것 이다. 최근 박원순 시장은 다른 두 후보를 제치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됐다. 그는 또 어떤 약속을 내놓을까. 지하철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시장에게까지 닿으려면 사고가 나지 않고선 불가능한 것인지, 노동자들은 참담하기만 하다. <워커스 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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