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진정한 평화란 무엇일까

[양규헌 칼럼] 노동자 민중과 평화와의 거리

4.27판문점회담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치열한 외교 전쟁이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한반도 정세는 외교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상황으로 북·중·미 헤게모니 쟁탈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중·일 정상이 일본에서 만나고 북·중은 중국에서 만나고 북측에서는 북·미가 만나는 분주함이 역사적으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주변국들의 주도권 싸움 속에 특히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측과 미국의 행보는 상상을 초월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불과 40일 만에 중국 시진핑 주석을 만나고 미국 폼페이오 장관 역시 40일 만에 북측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면 한반도를 둘러싼 주도권 쟁탈전의 기류가 빠르게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청와대]

이러한 한반도 정세 속에 미국은 이란과 핵협정 파기를 선언함으로써 중동과 유럽을 뒤흔들며 동북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폭력을 유발하고 있으며 이는 성동격서 전략으로 보인다. 핵협정파기 선언 바로 다음날 이란과 이스라엘은 4차 중동전쟁 이후 최대의 무력으로 충돌했다. 제국주의 강국들은 절대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으며 미국은 자국의 이해를 위해 전쟁도 불사한다는 사실이 목격된 것이다. 이럼에도 북핵을 포기하면 동북아가 비핵화 되고 전지구상에 평화가 공존할 것 같은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며 한반도 비핵화도 현재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 북측이 비핵화 약속을 지킨다고 해도 가장 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미국의 핵무기와 한미연합 군사훈련, 동북아 안정이란 명목으로 한반도를 종횡무진 하는 미국의 핵 함정, 항공기에 탑재한 핵은 어떻게 할 것이며, 러시아와 중국이 보유한 핵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가장 많은 핵무기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이 비핵화를 떠들어대는 철면피들의 주장은 자신들의 탐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며 강대국들의 탐욕이 지속되는 한 진정한 평화는 갈 길이 멀다.
 
역사적으로 진행되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비핵화에 대해 극소수 세력을 제외하고는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으며 전쟁을 찬성하는 사람도 없고 나아가 평화를 싫어할 사람은 더더욱 없다. 그렇다면 우리들에게 평화란 무엇일까?

평화는 긴장 없는 상태만이 아니라 정의가 실현되는 것

스위스의 사회학자인 장 지글러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가 건설될 때에 평화가 실현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평화는 긴장이 없는 상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말한다. 국제적인 평화는 국가 간의 갈등·분쟁·전쟁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지만 국가적인 평화는 노동자 민중의 정치·사회·경제의 안녕과 안정을 꾀하는 것이다. 현재 한반도 상황이 국제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평화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고 하겠으나 노동자, 민중의 삶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판문점회담 이후 남북 간 화해분위기는 향후 한반도 평화와 통일전략으로서도 유효하며 매우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지 않는 이유는 노동자 민중의 처지가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평화의 반대개념은 전쟁이고 폭력이며, 여기에 구조적으로 자리하는 억압까지 포함된다. 나아가 만연하고 있는 배제와 차별도 평화를 해치는 근원이다. 따라서 진정한 평화가 되기 위해서는 생존의 안정이 정착되고 갈등이 소멸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들에게 평화는 비정상적인 고용형태가 정상화되고 일자리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상회복되고 사회적 약자에게 기본권이 보장되고 노동할 자유와 실업자에게도 생존이 보장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는 것이다. 갈등이 존재하는 한 저항과 싸움은 필연적이다. 계급 간 갈등과 제도적 장치에 따른 폭력은 평화가 아니라 삶에 대한 치열한 전쟁이다. 생존이 불안정한 상태를 평화라고 얘기할 수 없다. 강자들은 평화를 바라지 않는다. 나아가 평화는 양자간·계급간 힘의 균형이 잡힐 때, 제국주의를 비롯한 사회적 강자들은 평화를 받아들이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첨예한 계급대립이 지속되는 자본주의에서 평화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직접정치의 장을 펼치고, 생존과 관련된 공동요구를 걸고 단결과 투쟁을 강조하는 것이다. 노동자 민중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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