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과 사측이 함께 만들어낸 ‘쌍용차 공권력 투입’

[쌍용차 진압의 비밀⓶] “경찰이 전진하면 구사대가 엄호했다”

[편집자 주] 쌍용차 77일 옥쇄파업이 일어난 지 10년. 여전히 120명의 노동자는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이들 중 79.1%가 우울증에 시달린다. 2009년 옥쇄파업 참가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유병률은 1990년 걸프전에 참전한 군인의 유병률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이들의 불안 심리와 트라우마는 9년 전, 파업 당시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부터 비롯됐다. 노동자들의 외상은 계속 드러나는데도, 문제를 일으킨 공권력에 대한 처벌은 없다. 지난해 구성된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의 활동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과연 이번에는 9년 전의 진상을 밝혀낼 수 있을까. <참세상>은 쌍용차 폭력 진압의 주역이었던 조현오 전 경기지방경찰청 청장이 2009년 발간한 ‘쌍용자동차 사태 백서’를 통해 경찰 스스로 기록한 당시의 불법적인 진압 작전들을 살펴봤다.

[출처: 미디어충청 자료사진]

경찰이 2009년 쌍용자동차 옥쇄파업의 공권력 투입 계획을 사측과 함께 모의한 정황이 드러났다. 경찰은 사측 관계자와 매일 만나 공장 내부 등을 분석했고, 공장을 직접 장악하면서부터는 사측 구사대, 용역과 함께 농성 조합원들을 공격했다.

참세상이 입수한 경기지방경찰청의 ‘쌍용자동차사태 백서(2009)’에 따르면 경찰은 7월 20일 공권력을 전격적으로 투입하기 전 사측과 함께 작전 계획을 함께 세웠다.

6월 말 기점으로 ‘돈독’해진 관계

경찰과 사측의 관계는 6월 말부터 급진전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공장에 공권력 투입 대책을 준비하면서부터다. 백서에 따르면, 경찰의 자료 요구 등에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던 사측은 6월 23일부터 본격적으로 사내 진입을 시도하게 되는데 경찰은 이를 “진입 자체보다 액션을 통해 공권력 투입 분위기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파악했다. 그리고 6월 26일, 사측이 사내 진입에 성공하자 경찰은 이들과 손을 잡고 정보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 나가기 시작했다.

백서는 또한 사측과의 신뢰관계가 구축된 것에 대해 “6월 말부터 정보경찰이 공권력 투입 대책을 수립하면서 사측에 동원 중대별 안내요원 선정을 요구하고, 공장 내부 사정에 정통한 직원들과 접촉하면서 내부 도면을 연구하는 등 공권력 투입이 임박했다는 입장을 전달하자 사측이 태도의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공권력 투입으로 사태가 해결될 것이라는 소문이 사측 직원들 사이에 퍼지면서 잔뜩 고무되어 경찰과의 돈독한 신뢰관계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부터는 사측도 경찰에 최대한 협조해 나가면서 사태 해결을 위한 힘을 모을 수 있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외부세력 차단’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사측과 경찰이 서로 도운 시기도 이 때다. 6월 26일과 27일 벌어진 사측과 노조 간의 큰 충돌에서 경찰은 ‘외부세력’을 원인으로 꼽고 이들을 차단하는데 집중했다. 경찰은 백서에서 “주요 출입구의 출입자 통제는 시설관리권자인 사측에 일임하고, 공장 울타리 경계근무를 실시하여 울타리를 넘는 출입 행위 위주로 차단 근무를 하였다”고 밝혔다. 이어 “외부세력 개입이 차단된 결과, 농성 노조원의 세력이 약화되었고 결국 사태 해결의 밑바탕이 되었다”라고 평가했다.

공권력 투입 계획 수립도, 작전 수행도 함께 했다

‘외부세력’을 일정 정도 차단한 경기청은 7월 1일부터 경기청 수사과장, 평택경찰서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수사본부를 평택경찰서에 설치하고 공권력 투입을 위한 세부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경찰은 백서에서 “정보 경찰은 사측과 농성장 내부 협조자를 통해 파악한 농성장 내부 구조, 출입문 폐쇄 여부, 위험물 위치와 잔류량, 농성장 내 잔류 인원 및 노조원 심리상태, 생활 환경 등을 종합해 공권력 투입 계획을 수립했다”고 적시하고 있다. 또 “도장공장은 면적이 매우 넓고, 내부가 미로처럼 복잡해 사측에서 제공한 도면을 보아도 한눈에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라며 “담당 정보관들이 사측 직원과 매일 접촉하며 도장공장 내부 도면을 이해하기 쉽게 재구성하고, 출입문 개수와 폐쇄 여부, 재질 등을 파악해 나갔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경찰은 실제 7월 20일 ‘공권력 전진배치’를 감행했다. 이후 7.21 영신측문 확보, 7.24 로디우스 차체공장 확보 등 단계적으로 공장 내부를 확보해 나갔다. 8월 5일에는 “도장 2공장 외 전 지역을 확보하고 최후통첩으로 사태를 해결하였다”는 작전 일지가 적혀져 있다.

특히 8월 5일엔 경찰력을 대폭 확대해 총공세를 퍼부었다. 전날 12개 부대였던 경찰경력은 28개 부대로 2배 이상 늘어났고, 특공대도 4개 제대가 투입돼 조립 3, 4팀 옥상, 도장1공장 등을 장악했다. 사측의 구사대와 용역도 경찰과 함께 농성 조합원들을 공격했다. 파업조합원들의 목소리로 옥쇄파업 77일간의 이야기를 담은 ‘해고는 살인이다(2010)’는 “6시 20분경 차체2팀 옥상에 경찰이 사다리를 들고 전진했고 경찰 양 측면에서는 구사대가 새총을 쏘며 경찰을 엄호했다. 경찰과 구사대가 대놓고 합동작전을 편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같은 경찰의 총공세는 조현오 당시 경기경찰청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승인 받은 것이다. 조 씨는 8월 5일 새벽, 강희락 경찰청장으로부터 “위험하니까 작전하지 마라”는 지시를 들었지만, 청와대에 직접 연락해 허가를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결국 경찰의 총공세 등에 파업조합원들은 치명타를 입었고, 8월 6일 ‘쌍용자동차의 회생을 위한 노사합의서’가 발표됐다.

경찰은 또 7월 20일부터 24시간 채증체제를 유지한다. 파업 77일 동안 평택서 채증자료는 총 정사진 25500장, 동영상 565개에 달한다. 경찰은 이같은 채증자료의 판독에서도 사측에 도움을 요청했다. 백서는 “파업기간은 물론 사태해결 이후에도 쌍용자동차 관계자의 협조를 구해 판독을 계속, 총 101명을 판독해 수사본부에 통보, 이 중 51명을 사법처리(구속 25, 불구속 26)토록 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경찰이 나서 교섭 타결 압박…노조 상대 심리전 나서

7월 11일 사측이 내부용으로 돌린 메일 내 경찰 관련 언급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 메일은 파업자를 어떻게 압박할지 구체적 방법을 담은 것으로 ‘수면가스를 이용한 파업자 진압계획’이 포함돼 논란을 일으킨 자료다. 이 중 ‘경찰 헬기 1시간 간격으로 순회 비행으로 심리적 압박감 배가시킴. 야간에도 실시해 수면방해’는 사측과 경찰이 미리 헬기 운용 계획을 공유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경찰이 백서에서 밝힌 ‘심야시간대를 선택해 선회 비행하면서 헬기에 장착된 서치라이트를 이용하여 노조원들을 비추는 등 실제 진입하는 착각을 불러 일으켜 불법시위용품을 소모하도록 하고 농성 노조원들에게 긴장감과 심리적 압박을 가하여 이탈을 유도했다’라는 설명 또한 이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백서에 따르면 경찰은 파업자들을 압박하며 노사협상을 재촉하기도 했다. 경찰은 백서에서 “7월 30일부터 8월 2일간 노사 간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루었던 교섭이 갑작스레 결렬된 이유가 공장 내 이XX 기획부장 등 소수 강경파에 의한 것이었음을 확인하고 보고하여 8월 5일 경기청장이 기자회견 시 이를 적절하게 활용함으로써 협상이 급진전되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밝혔다.

또 노사 협상이 결렬될 때마다 “농성노조원뿐만 아니라 쌍용차 전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 10만 명 이상의 생존권이 직접 위협받는 상황”이라며 노조를 압박했고 “노조의 불법 점거농성을 해소키 위한 진압작전 실시” 등을 주장하며 공권력 투입 분위기를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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