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하는 젊은 페미니스트, 확장을 꿈꾸다

‘민주노총, 페미니즘을 외치다’ 청년여성 집담회에 70여 명 참가

노조 활동가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젊은 여성 노동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우연한 계기로 노조활동을 하게 된 이들은 노조라는 ‘새로운 세상’에 페미니즘은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주최로 28일 오후 7시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창비 50주년 기념홀에서 열린 ‘민주노총, 페미니즘을 외치다’ 청년 여성 집담회엔 약 70여 명이 몰렸다. 학생, 노조활동가, 프리랜서 등이 각자의 고민과 기대를 안고 이 자리에 참석했다.

사회를 맡은 정나위 민주노총 선전차장은 “오늘 자리에 앞서 ‘모두 존경합니다. 오늘도 생존’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서로의 생존을 응원하며 오늘 집담회를 시작해보고자 한다”라며 “청년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민주노총 내 페미니즘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김다민(공공운수노조 영화산업노조), 김민지(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 지회), 우지영(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지부), 임종린(화학섬유연맹 파리바게트지회), 홍신애(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 지회) 등 다섯 명의 패널들은 직장 내 성차별, 젊은 노조 활동가, 워킹맘으로서의 고충들을 풀어나갔다.

회사 내 성차별과 싸우다

이들이 지금까지 살아남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경기불황으로 인한 가정 경제 파탄, 구직난, 구직해도 살아갈 수 없는 저임금 착취 구조, 진급에서의 성차별, 임신-출산-육아의 짐, 성희롱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그중 ‘성차별’은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였다.

김민지 씨는 이력서에 가족 사항을 숨기고서야 재취업을 할 수 있었다. 둘째 아이를 낳고 생계를 위해 출산 40일 만에 구직활동을 했지만 지원한 11군데 회사에서 모두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당신의 경력은 인정하지만, 아이가 어려 당신을 고용하기 부담스럽다’라는 게 회사가 김 씨를 거부한 거의 공통적인 이유였다. 김 씨는 아이를 돌봐줄 집안 어른들이 있다고 설명했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결국 이력서에 가족사항을 적지 않고서 3년 전, SK브로드밴드 하청업체에 취업하게 됐다.

최근 김 씨는 교선위원으로 임금 협상을 담당하며 여성 임금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김 씨는 “구직 사이트를 찾아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직종이 단 하나라도 없다. 똑같은 직원인데 남성들이 더 많은 역할을 하니, 힘을 쓰는 일이 많으니 더 많이 준다고 한다. 사람마다 역할이 다른 건데 왜 성으로 나눠서 생각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라며 “남자든 여자든 홑벌이를 해도 먹고 살 수 있게 생활임금을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종린 씨는 지난해 결성된 화학섬유연맹 파리바게트지회의 지회장이다. 임 씨는 지난해 노조를 결성하고 인터뷰를 하면서 수당 때문에 노조를 결성하게 됐다고 말했지만 사실 “남녀 차별적인 진급이나 불합리한 일들이 계속 있었고 거기서 수당 문제가 터졌기 때문에 그게 계기가 돼서 노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지회의 조사에 따르면 파리바게트의 전국 관리자 85명 중 여성은 단 20명에 불과하다. 여성이 훨씬 많은 직군임을 고려하면 이 결과는 더욱 심각하게 느껴진다.

누구보다 빠른 진급을 했고, 핵심인재 및 모범사원으로 뽑히고,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중간 관리자의 역할도 했다던 임 씨는 부당한 이유로 남자 후배에게 자리를 뺏겼다. 임 씨는 “연차도 낮고, 실력도 없는 남자 기사들이 줄을 타고 진급을 시작했다. 심지어 제가 어떤 보직에 올랐는데 다음 달부터 내려가야 할 것 같다는 통보를 받았고, 그 자리를 남자 후배가 대신했다. 부당한 이유를 말하던 관리자에게 계속 따지니 다시 올려준다고 했는데 그게 더 화가 났다. 이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굳이 나를 내쳐야 했나 생각이 들었다. 담배를 배워야 하나, 당구를 함께 쳐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수당 문제를 계기로 노조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노조 내부의 페미니즘

평등을 지향하는 노조 내부는 어떨까? 홍신애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지회 조합원은 “여성 조합원과 함께 활동하는 민주노조면, 민주노총이면 달라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지만, (젠더 감수성은) 별로다”라고 고백했다. 홍 씨는 “지난주 2박 3일 순회 투쟁을 갔는데 숙소가 문제가 됐다. 남성이 대다수인데 여성 숙소를 따로 잡아준 것에 대해 ‘여자들 방을 따로 잡아주네. (여자들은) 좋겠네?’라는 얘기를 들었다”라며 “그래도 그런 문제에 대해 왜 그렇게 생각하는 얘기를 나눌 순 있어서 설득할 수 있는 여지는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미투 이후 남성들의 행동에 이전과 다른 조심스러움이 묻어나기는 하지만, 여전히 불만은 남아있는 듯하다. 어떤 이들은 주춤하기 시작한 것 자체가 큰 성과라고도 하지만 여전히 ‘페미니즘’에 대한 날 선 반응은 여전하다.

임종린 씨는 ‘여성 인권’에 대한 노조 내부 분위기를 전달하며 “(남성 조합원들이)조심스럽게, 천천히 알아가게 할 수 있게 내부에서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 씨는 “지난주 인권위 제소 사항 중 여성 승진 차별 항목을 집어넣었는데 남성 간부들 사이에서 ‘역효과가 있을 것’ ‘노조가 페미니즘은 아니잖아요’라는 반응이 나왔다”라며 “노조도, 페미니즘도 어차피 인권의 문제라고 설명을 하고 넘어갔지만 ‘대화를 좀 많이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우지영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지부 사무장은 성폭행 사건이 노조에 접수되면 여성 간부에게만 맡기는 문제를 지적했다. 우 씨는 “여성 간부가 다른 일도 할 수 있는데 이 문제만 맡아서 해결하게 하고 있다. 여성, 남성 할 것 없이 젠더적 감수성을 키우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라고 강조했다.

나에게 노조란?

그럼에도 이들에게 노조는 ‘자유’(우지영/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등대’(김다민/망망대해를 떠다니는 와중 선택의 길잡이가 되준다), ‘학교’(홍신애/새로 배우고 방향성도 알게 된다)이자 ‘새로운 세상’(임종린/꿈을 꿀 수 있게 한다)이고 ‘빽’(김민지 답변)이다.

김민지 씨는 “노조엔 나와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당한 것을 함께 싸워주는 사람들이다. 내가 싸울 수 있는 건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 때문이고, 한마음 한 방향을 가진 앞에 계신 여러분 때문”이라며 “항상 여성 조합원들에게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 비정규직지부 1600명이, 또 민주노총이 함께 싸워준다’라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홍신애 씨는 “2014년 노조를 접하기 전 내가 접한 사회는 굉장히 작았다. 노조 활동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됐는데 이 사람들하고 말하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본, 가부장제, 우리를 차별하고 억압하는 기득권 세력들과 싸워 바꿔보고 싶다”라고 했다.

우지영 씨는 “성폭력 사건이 생기면 노조로 온다. 병원 내부에서도 그런 사건들이 많은데 피해자들이 공론화하길 꺼리거나 병원이 방기 혹은 훼방을 놓으며 사건 해결을 막는다. 우선 노조의 신뢰 회복을 고민하고 있다. 가해자들의 잘못된 마음을 바꿀 수 없으면 주춤하게라도 해야 하는데 성교육 등이 잘 안 지켜지고 있어 아쉽다”는 고민도 전했다.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국장은 “그동안 민주노총 안에서 얘기됐던 젠더 이슈가 제한적이었다고 생각을 한다. 일자리 대책 이야기를 할 때도 여성과 청년 담론이 빠졌다. 여성 영역의 복원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현재 미조직돼 있는 청년과 여성이 어디 있나 보면 가장 낮은 일자리다. 거기서부터 연대는 시작돼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