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순번제, 나는 1번이 됐다

[워커스] 코르셋 벗기


주말 오후, 시댁에 갔다가 올라오는 기차 안이었다.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 보니 몇 통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다. 엄마와 아빠가 번갈아 가면서 전화를 했던 모양이다. 집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곧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다짜고짜 “오늘 저녁 늦게라도 집에 와”라고 말했다. 무슨 일이냐 물으니 옆에 있던 아빠에게 전화기를 넘긴다. 아빠의 목소리는 상기 돼 있었다. 축하 파티를 해야 한다고 했다. 새 가족이 생긴다고 했다. 새언니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새언니의 임신 소식

처음에는 그저 놀라운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이내 폭풍 같은 감정이 휘몰아쳤다. 조카가 생긴다는 기쁨이나 감격스러움 따위가 아니었다. 새로운 가족이 생기거나 말거나, 그것 역시 내 관심 밖이었다. 이기적이게도, 나에게 몰아친 감정의 종류는 ‘위기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동지 한 명을 떠나보낸 공허함이 가슴 한켠에 스산하게 내려앉았다. 가뜩이나 왕복 8시간이 걸리는 시댁 방문에 진이 빠져 있던 나는, 순식간에 몸과 마음이 엉망이 됐다. “친정에 가고 싶지 않아.” 정말 끔찍이도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나를 남편이 달랬다. 가지 않으면 더 모양이 이상해질 것이라며.

새언니가 임신을 했다는데, 축하는 못 해줄망정 위기감이나 공허함 따위를 느끼고 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정말 나쁜 년 같았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새언니의 임신을 축하할 수도, 축하하고 싶지도 않았다. 결혼 4년 차에 들어선 새언니는 나보다 한 살이 어렸다.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자주 보긴 했지만 편한 사이는 아니었다. 내 위치가 시누이다보니 이런저런 말을 붙이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차라리 아무 말도 않는 것이 중간이라도 가겠다 싶었다. 언니와 딱히 할 말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의례적인 안부 인사 정도만 나눴고, 그 외의 대화는 서로 삼갔다. 새언니-시누이 관계를 맺은 지 4년 차가 되도록 서로의 휴대폰 번호조차 몰랐다.

하지만 언젠가 거실에 나와 새언니 둘만 남겨졌을 때. 조심조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어떻게 하다 나온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임신과 출산에 대한 고민이었다. 언니는 나에게 ‘아이가 예쁘지 않다’고 말했다. 아이를 낳을 자신도, 키울 자신도 없다고 했다. 언니는 아이 키울 시간에 일을 더 하고 싶다고 했다. 아직은 아이 낳을 생각이 없다고도 했다. 언니는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나는 언니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래요.” 하지만 부모님은 언니가 임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 줄 몰랐다. 그래서 언니가 올 때마다 은근슬쩍 남의 집 손주 이야기를 했다. 어느 날은 엄마가 동네 아주머니로부터 먹으면 임신한다는 신비의 계란을 얻어왔다. 계란도, 메추리알도 아닌 미심쩍게 생긴 알이었다. 모두가 둘러앉은 식탁 앞에서, 엄마는 그걸 새언니에게 건넸다. “이거 몸에 좋은 거니까 너만 먹어.” 새언니가 엉거주춤하게 계란을 받아 들었다. 언니는 누구도 먹고 싶지 않게 생긴 돌연변이 계란을 손에 쥔 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짜증이 밀려와 언니 손에 있던 계란을 빼앗아 순식간에 까먹었다. 노른자가 없는, 밍밍한 흰자로만 이뤄진 진짜 돌연변이 알이었다. 맛대가리 없는 흰자를 씹으며 나는 너무도 서글퍼졌다.

1번이라는 임신순번표를 받았다

그리고 지난해, 나는 서른 초중반의 나이에 결혼을 했다. 빠른 결혼은 아니었으나 그렇게 늦은 결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양가 어른들의 생각은 달랐다. 결혼 후 몇 달 되지 않아, 조금씩 임신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누구네 집에서 손주를 봤는데 그렇게 이쁘다더라, 아이를 낳아 큰 집으로 옮겨야 하지 않겠느냐, 조금 더 나이가 들면 힘들어질 것이라는 등등. 나는 어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이 곤두섰다. “아이를 낳지 않을 거예요”란 말이 목젖까지 차올랐지만, 함부로 내뱉을 수 없었다. 이 말을 꺼냈을 때, 시부모님과 나와의 관계, 시부모님과 남편의 관계, 그리고 나와 남편을 둘러싼 수많은 참견과 비난들이 우리 관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아마 언니도 그랬을 거다. 참자, 조금만 버티자, 그러면서 집으로 돌아갔을 거다.

올 초, 언니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자꾸 임신을 재촉하는 압박이 들어오고 있다고. 언니는 나에게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일단 버티겠다고 했다. 내가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는요?” 언니의 입에서 뜻밖에 이야기가 나왔다. “아이 낳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런데 이제 낳아야 할 것 같아요.” 일종의 항복 선언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시댁에서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았던 언니가, 엄마가 요리와 설거지를 하며 투덜거려도 꼿꼿이 의자에 앉아있던 언니가, 부모님에게 먼저 전화 한 통 한 적 없는 언니가 항복 선언을 한 것이었다. 나는 언니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낳고 싶지 않은데 낳아야 할 것 같은 이 아이러니한 감정은 나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섯 달 뒤, 시댁에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언니의 임신 소식을 들었다.

백화점에서 언니에게 선물할 ‘튼살 크림’을 사들고 가족들이 모인 음식점으로 갔다. 가족들이 소고기를 굽고 있었다. 언니는 소고기를 못 먹었다. 언니는 불판 한 쪽에서 돼지고기를 구워 먹었다. 언니가 웃고 있었는지, 찡그리고 있었는지, 아니면 무표정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언니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별 말이 없었다. 부모님은 흥분된 목소리로 나에게 “이제는 네 차례”라고 말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드디어 1번이라는 순번표를 받아들었다. 어떠한 준비도, 고민도, 결의도 돼 있지 않았지만 내 차례가 와 버렸다. 어른들은 나에게 많은 시간을 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얼마 전, 어머니가 나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사돈댁 손주 보게 돼서 얼마나 기쁘실까. 너무 좋으실 거야.” 내가 어머니에게 답한 말은 고작 “그렇게 좋아하시진 않던데요”였다. 시간은 많지 않은데, 나는 아직도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나는 내 순번표에 순응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지금으로선 나의 자신감은 바닥이다. <워커스 4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