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동자 ‘폭염 사망’…정부 가이드라인 무용지물

“일 안 하면 임금 없는 ‘하도급’ 탓”

지난 17일 전북의 한 건설 현장에서 건설노동자 1명이 폭염으로 의식을 잃고 추락사했다. 당시 현장의 노동자들은 정부 가이드에 따라 폭염으로 인한 작업 중지를 요청했으나, 관리자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 위원장 장옥기)은 24일 정부서울청사 앞 기자회견에서 희생자를 추모하고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고용노동부의 ‘옥외작업자 건강보호 가이드’ 이행을 촉구했다.

산안법 24조(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는 ‘사업주는 노동자가 폭염에 직접 노출되는 옥외장소에서 작업하는 경우에 적절하게 휴식하도록’하고, 고용노동부 가이드는 폭염 단계마다 작업을 제한, 중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산안법 24조를 위반할 경우 사업주는 5년 이하의 징역, 5,000만 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건설노조에 따르면, 현장에서는 이들 조항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건설노조가 지난 20일부터 이틀간 건설노조 조합원 23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76%가 폭염 관련 정부 대책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폭염으로 작업 중단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고 응답한 사람은 19.3%, 받아들여졌다고 답한 사람은 14.6%에 불과했다. 66%는 모른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48.4%는 폭염으로 본인이나 동료가 실신하는 등 이상징후를 보인 적이 있다고 했다.

특히 정부 대책에 따르면 폭염경보 발령 시 오후 2~5시 사이에는 옥외작업을 제한하고 있지만, ‘중단 없이 일하고 있다’고 답한 노동자가 85.5%에 달했다. 14.5%만이 중단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아울러 폭염경보 발령 시 1시간 일하면 10~15분 이상씩 쉬어야 하지만, 46.2%가 ‘쉬지 않고 일한다’고 답변, 45.3%는 ‘재량껏 쉰다’, 8.5%만이 ‘규칙적으로 쉰다’고 답했다. 휴식 공간에 대해서는 33.3%가 없다고 밝혔다.


건설노조는 “폭염경보가 울린 무더위 속에서 일하다가 건설노동자가 탈진해 목숨을 잃었다”며 “법률과 정부 가이드라는 빈 수레는 요란했다. 현장 노동자들은 세면장도 없이 안전모에 물을 받아 쓰고, 철근 속에 앉아 쉰다. ‘노동 존중’ 문재인 정부 들어 건설노동자의 삶도 바뀌길 기대했고, 고용노동부는 대책을 쏟아냈지만, 여전히 건설노동자는 ‘존중’은커녕 초라하다”고 밝혔다.

이영철 건설노조 부위원장은 건설현장에 만연한 ‘하도급’ 때문에 정부 대책은 실속이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부위원장은 “건설 노동자들은 대부분 물량 도급으로 이를 제때 처리하지 못하면 임금을 받지 못한다”며 “따라서 노동부가 휴식을 권고해도 현장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정부는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임금을 포기하지 않고 폭염에 살아갈 수 있는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한다. 폭염, 계절수당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난 17일 사망사고 현장을 점검한 우영인 전북건설지부 전주2분회장은 “사망한 조합원은 35도의 날씨, 5m 높이에 안전장비 없이 일하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이라며 “이 사고는 미리 예견된 것이다. 300명이 일하는 곳에 물이 나오지 않는 화장실이 4칸이다. 그늘막도 없이 모두가 쪼그려 쉬고, 세면장도 없어 세수도 못 한다. 우리는 안전 문제를 언급하며 작업 중지를 요구했으나, 관리자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작업을 강행했다”고 증언했다.

한편 건설노조는 기자회견에서 △폭염 대책 미이행 건설현장에 대한 처벌 △폭염 대책 관리 감독 등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