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주의의 새로운 믿음과 실천

[책소개] <진보평론>, 76호(2018 여름호, 메이데이)

올해는 맑스 탄생 200년이 되는 해다. 요란하고 시끌벅적한 행사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
고 너무 조용히 지나간다는 상상을 해본 적도 없다. 오히려 영화 ‘청년 마르크스’가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허전함을 달랬다.

맑시즘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빨리 마치 주문을 외우듯 그 교의를 신봉하고 추종한 사상도 드물 것이다. 그토록 삽시간에 세계를 장악했다가 그렇게 빨리 소멸해간 사상도 드물 것이다. 이렇게 맑시즘의 등장과 소멸이 빠른 이유는 그 교의가 사상과 철학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정치와 권력의 수단으로 직접 활용되고 동원된 현실 적용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200년이 됐지만 계속해서 맑스를 소환하고 있다. 여전히 우리가 현재 처해있는 모순과 위기를 분석할 수 있는 탁월한 이론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현실유지와 현실 전복의 무기임에는 틀림없다.

‘혁명전야’로서의 80년대 목적론적 맑스주의가 폐기되면서 자유주의만이 미래의 총아임을 확신했지만, 2008 미국 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자본주의 위기가 증폭되면서 다시 ‘혁명전야’와 ‘이행기’를 동일하게 강조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현 시기는 자본주의에 대한 미래의 불확실성과 사회주의에 두려움/거부감이 공존하면서 체계적-역사적 관심이 그 어느때보다 지대하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맑시즘을 어떻게 기념할지 잘 모르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전방위적 공격 앞에 노동자민중의 저항이 거세지고 있지만 맑스주의의 위력을 찾아보기 힘들다.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서 맑스주의를 다시 호출하고 있지만 응답은 소심하기만 하다. 맑스주의가 사상과 투쟁의 보고라지만 형식과 내용 모두 빈곤하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맑스주의를 연구하는 교수연구자의 책임이 크다. 학습을 통해 이론으로 무장되어 대중들을 선동하고 현장에서 실천하는 선동가와 활동가 그리고 연구자를 재생산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지만 이들 다수는 그냥 맑스주의를 연구하는 자유주의자일 뿐이다. 자유주의는 현실 대응의 논리로서나 개인적 선택에 있어서도 사실 쉽고 편한 것이다. 다수의 맑스주의 교수연구자들에게 자유주의는 일종의 현실주의 같은 것이다. 뚜렷한 전통과 일관된 이념이 아니라 전략을 빙자한 현실적 선택이다. 그래서 쉽게 선택한다.

맑스주의가 과학인 것은 실천을 하기 때문이다. 이론에 머물면 관념이다. 새로운 사회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주의, 코뮤니즘 등을 만드는 것이지 적응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란 어쩌면 모든 노동자민중의 호흡과 연민들 그 자체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는 맑스주의의에 대한 새로운 믿음과 실천이 필요하다. 그것은 첫째,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과 총체적인 극복을 지향하며 등장한 맑스주의가 여전히 그 유효성을 상실하지 않았다. 지금도 맑스주의는 자본주의를 극복을 위해 자본주의 사회를 규정하는 근본적인 경향이 무엇인가를 인류에게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둘째, ‘현실사회주의’를 너머 인류가 지향해야 할 생산적이고 인간적인 공동체를 제시하고 있다. 셋째, 맑스주의는 인간을 대하는 태도, 시대와 역사를 대하는 태도 그리고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전범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진보평론> 76호의 특집 주제를 ‘맑스 탄생 200년: 맑스주의의 현재성’으로 정했다. 맑스주의적 사상과 현실적 실천이 그 어느때 보다 절박하기 때문이다.

박영균은 [맑스의 코뮤니즘, 그 고유성과 현재성]에서 코뮌 건설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맑스주의와 코뮤니즘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대중들에게 인식시키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것이 코뮌 사회를 건설하는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맑스주의는 기본적으로 현실의 물질성과의 상호작용을 수행하는 실천적 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이론을 만들어가는 코뮤니즘이다. 맑스주의 궁극적 목표는 ‘노동의 해방’이 아니라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이것을 만들어가고 있다. 문제는 그것을 인민의 향유대상으로 전화시키는 정치적 주체화가 지연되고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노동해방은 ‘적-녹-보라’ 연대라는 사회해방과 함께 대중을 정치적으로 주체화하는 코뮌의 건설로 나아가야 한다.

한상원은 [맑스와 유령적 모더니티: 상품의 이중성과 객관적 사유형식]을 통해서 맑스의 물신주의를 분석하고 있다. 상품의 가치를 형성하는 노동시간은 개별 노동자들이 구체적으로 지출한 자연적,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규정된’ 시간이며, 따라서 상품의 가치는 그것을 만드는데 ‘실제로’ 투하된 노동시간이 아니라, 관념적으로 상정된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모더니티는 합리적 주체와 투명한 이성을 중심으로 태동한 계몽이라는 선구자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의 발전과정은 불투명한 관계의 비가시성이라는 특징을 보여주며, 근본적으로 유령적인 특징을 갖는다. 반자본주의자들은 ‘초현실적 현실’에 맞서 싸워야 하는 과제, 보이지 않고 불투명하지만 분명히 실재하는 어떠한 구조와 관계에 대항해야 하는 과제를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성백은 모더니티를 자본의 논리로 관통하고 있다. 그는 [자본 논리와 모더니티]에서 자본의 논리는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자본-노동의 대립 관계를 넘어 전사회적으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도시, 자연, 여성, 문화, 일상생활 등 자연과 인간 사회의 모든 영역이 자본의 공간으로 편입된다. 이 관점에 따라 자본주의의 개념이 확대 정의되어야 한다. 자본주의는 노동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자본의 논리에 포섭되는 여러 대상들과의 관계로 확장된다. 이렇게 확대된 자본주의 개념이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더 적합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확대된 자본주의 개념은 노동운동과 부문운동의 구분을 해소하여 현대비판사회이론의 재구성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배상미의 글은 요즘 가장 뜨거운 이슈인 페미니즘을 다루고 있다. 그(녀)는 [맑시즘과 페미니즘: 여성 억압의 물질적 토대인 가족에 대하여]에서 맑시즘과 페미니즘을 논해 온 이론가들의 논의를 분석하고, 맑시즘이 페미니즘에 어떤 시사점을 주었으며 이 이론이 지금도 유효한지 논하고 있다. 특히 맑시스트 페미니즘이 여성 억압의 물질적 토대를 가족에서 찾았다는 점에 주목하여 맑시스트 페미니즘에서 가족에 관한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어왔는지, 그리고 이 논의는 여전히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 방법론으로서 유효한지 살피고 있다. 최근 많은 대중문화에서 가정 내에서 억압받는 여성들의 위치를 재현하고 있는 상황은 여전히 ‘여성’ 문제가 집합적으로 해결되어야하며, 여성 억압의 물질적 기반을 분석할 필요성을 제시한다.

신영전은 [마르크스와 의학]에서 러시아 혁명 후 소련과 중국, 라틴 아메리카 등에서 이루어진 의료개혁이 만들어낸 놀랄만한 성과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알마아타 선언에서 리오 선언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의 건강(Health for ALL)’을 지향하는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정치, 사회, 문화 정책으로서 ‘건강공공정책(healthy public policy)’은 지금 이 순간에도 놀라운 성과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성과는 평생 결핵과 간 질환을 앓고 진물이 흐르는 피부병 때문에 자리에 앉지도 못한 채 밤새 원고를 썼던 ‘인간’ 마르크스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면서 마르크스의 커다란 기여를 새삼 잊지 않게 해준다.

특집의 마지막은 김지형이 장식하고 있다. 그는 [카프, 복수(複數)화하는 빼기]에서 식민지 시대 마르크시즘의 수용과 전개의 주체로서 카프(KAPF)를 분석하고 있다. 카프는 민족주의 진영뿐만 아닐 해외문학파, 아나키스트 등의 외부와의 논쟁 및 내용•형식 논쟁과 같은 내부 논쟁을 통해서 조직의 성격을 규정해 나갔고, 그 결론은 임화, 김남천을 위시한 무산자 그룹이 주창한 문예운동의 볼세비키화로 모아졌다. 그런데 정치적 이념과 달리 내부적으로는 심각한 딜레마에 처했는데, 카프 문인들은 이를 ‘도식성’이라고 표현했다. 도식성은 곧 소련발 마르크시즘을 정통으로 여기는 일종의 종속성의 표현이다.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보면 임화는 [자본론]에서 묘사된 상품의 논리를 비평의 논리로 삼았고, 김남천은 마르크스의 [독일 이데올로기]를 경유하면서 마르크스의 방법론을 창작의 논리로 적용하게 된다. 김남천은 여전히 새롭게 사유되어야 하는, 성실한 작가였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이번 호 <국내정세>는 정태석의 [체제전환을 확인시켜준 6.13 지방선거와 진보정치의 과제]를 실었다. 그는 6.13 지방선거가 민심을 통해 한국사회 체제전환의 방향을 보여준 선거였다고 평가하면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 제도와 문화를 개혁하고 혁신해나가는 시대적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진보정당과 진보정치의 발전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진보적인 이데올로기-가치들이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도록 하려면, 우선 표의 등가성과 대표성을 공정하게 반영할 수 있는 선거제도로의 개혁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반 위에서 지방선거에서 표출된 진보적 가치지향을 진보적 정책개발과 홍보로 이어나가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양한 민심을 읽어내면서 다원적 정의와 평등의 추구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수평적인 민주주의적 연대를 형성하려는 노력만이 진보정치와 진보정당의 발전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국제정세>는 두 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먼저 고민택은 2018년 가장 핫 이슈인 동북아정세를 [한반도, 동(북)아시아 대전환의 서막이 올랐다]는 주제로 분석하고 있다. 한반도-동북아 정세의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노동자민중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노동자민중이 현 정세를 이끌어 낸 동력의 중요한 한 부분을 이미 당당하고 있다는 것에는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그것이 전면적으로 가시화되고 있지 않은 현실에 있다. 그런 만큼 한국 노동자민중에게 바로 이 과제를 헤쳐 나가야 할 책무가 주어져 있다. 당장에 부딪치고 있는 어려움에 낙담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다음으로 정병기는 [2018년 이탈리아 총선과 포퓰리즘 연정 출범]을 다루고 있다. 이탈리아 포퓰리즘 연정의 출범은 정치/정당 혐오증이라는 장기적 흐름과 선거법 개정이라는 제도적 요건의 산물이다. 동맹과 오성운동은 지지층과 정책 등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면서도 난민 문제와 유럽 통합에 대해 보수적ㆍ민족주의적 성격을 공유한다. 또한 포퓰리즘적 속성으로 인해 복지 정책과 소득 정책은 실제 추진될지 알 수 없다. 포퓰리즘은 대중 인기에 영합해 실현 가능성 없는 정책들로 유권자를 현혹한다는 점에서 위험하지만, 권위적이고 경직된 정당 체제를 해체하고 직접 민주주의를 확산하는 징후이기도 하다. 오성운동-동맹 연정의 출범은 이탈리아가 근대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실험대에 올라섰음을 의미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번 호 <발언대>에서도 두 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먼저 강태경은 [대학의 변화와 하나의 직종으로서 대학원생]을 주제로 최근 결성한 대학원생 노조의 역할을 전망하고 있다. 한국의 대학원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봉건적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 인분교수사건과 8만대장경 스캔노예사건, 텀블러 폭탄사건 등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결국 조직적 집단행동이 문제 해결의 열쇠임에 틀림없다.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은 학술공동체들과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연대하면서 구조의 전환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정명준은 [대안대학운동의 현황과 미래]를 주제로 현실의 대학을 비판하면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제도권 대학이 붕괴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대안대학의 관심은 생각보다 매우 저조하다. 역시 현실의 규정력 때문일 것이다. 그는 지금이야말로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상징하듯, 생산관계의 전면적인 개편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영원한 신진대사’인 노동이 더 이상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차는 족쇄가 아니라 마르크스가 꿈꿨듯 자아실현과 진정한 ‘자기계발’에 봉사할 수 있는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가능성이 존재하는 시대라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을 가장한 반지성적 맹동주의에 맞선 역사적 투쟁의 자랑스런 일익을 대안대학이 담당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번 호 <일반논문>은 배강범의 [아피찻퐁 영화 속 기억의 나눔(partage)에 대한 연구 – 이산(Isan)의 이미지들을 중심으로]가 실렸다. 이 글에서 필자는 아피찻퐁의 영화가 이산이라는 변경의 로컬, 세계와 네이션의 ‘사이 공간’의 틈새에서 중층적인 경계의 사람들과의 마주침을 열어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분석 텍스트는 <정오의 낯선 물체>이다. 일반적으로 <정오의 낯선 물체>는 독특한 이야기 전개 형식으로 주목을 받았다. 아피찻퐁의 요청은 해방적인 공동체를 영화적으로 구성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그 외 이번 호에는 랏자라또의 인터뷰 번역 글과 서평도 두 편이나 실렸다. 제11회 일곡유인호학술상은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의 이은숙 연구자가 선정되어 그 수상소감을 실었다.

제도화된 계급을 부정하고 혁명을 통해 중세를 몰락 시켰던 부르주아지들은 근대를 열었던 진보주의자들이었다. 그런 부르주아지가 현재의 가부장제적 자본주의 시대에는 보수주의 세력에 불과하다. 자본주의를 장악해서 주도하고 있는 부르주아들은 포스트모던을 외치면서 근대의 가치를 부여잡고 있는 보수주의자들이다. 맑스주의자들의 실천이 더욱 절실한 때이다.

[목차]

특집: 맑스 탄생 200년, 맑스주의의 현재성
맑스의 코뮤니즘, 그 고유성과 현재성 - 박영균
맑스와 유령적 모더니티: 상품의 이중성과 객관적 사유형식 - 한상원
자본 논리와 모더니티 - 이성백
맑시즘과 페미니즘: 여성 억압의 물질적 토대인 가족에 대하여 - 배상미
마르크스와 의학 - 신영전
카프, 복수(複數)화하는 빼기 - 김지형

국내정세
체제전환을 확인시켜준 6.13 지방선거와 진보정치의 과제 - 정태석

국제정세
한반도, 동(북)아시아 대전환의 서막이 올랐다 - 고민택
2018년 이탈리아 총선과 포퓰리즘 연정 출범 – 정병기

발언대
대학의 변화와 하나의 직종으로서 대학원생 - 강태경
대안대학운동의 현황과 미래 - 정명준

일반논문
아피찻퐁 영화 속 기억의 나눔(partage)에 대한 연구 – 이산(Isan)의 이미지들을 중심으로 - 배강범

번역
마우리치오 랏자라또와의 인터뷰 - 이성혁

서평
불평등한 세계에서 우리가 꾸는 꿈 - 최예륜
100년 전의 레닌이 100년 후 우리에게 말하는 것 - 박현수

제11회 일곡 유인호 학술상
『페미니즘 자본축적론』의 일곡 유인호 학술상 수상에 붙여 - 이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