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여학생회 폐지됐지만 소수자 정치는 이제 시작”

[워커스 총여학생회 이슈②] 총여 폐지 총투표 보이콧 주도한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 활동가들 인터뷰

단 한 번의 투표로 34년 역사의 총여학생회가 사라졌다. 10월 16일, 성균관대 인문사회과학캠퍼스는 투표율 미달로 투표일을 하루 연장한 끝에 총여학생회(이하 총여) 폐지안을 가결했다. 유권자 9,242명 중 4,854명이 투표한 이번 투표에서 찬성은 4,031표(83.04%), 반대는 716표(14.75%)였다. 유효표를 분석하면 찬성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이번 투표에서 간과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총여 폐지를 묻는 총투표를 거부하자는 ‘보이콧 선언’이다.

총여를 다시 세우고자 했던 이들은 투표 자체가 잘못됐다고 항의했다. 공론의 장에서 논의 한번 없이, 소수자를 위한 기구가 존폐 투표에 부쳐지는 것도 참을 수 없었다. 이들은 미투 운동을 지속하고, 성차별을 없애기 위해 총여는 재건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총여 폐지안이 가결된 뒤에도, 이들의 달아오른 목소리는 식지 않았다. 투표가 끝난 바로 다음 날, 이들은 광장에 모였다. “승리와 패배로 단정 짓기엔 우리들의 노력은 승패여부로 좌우될 수 없는 가치를 담고 있다”고, “총여가 있든 없든 계속해서 외치고 연대하겠다”고, “한 번의 후퇴가 전체 운동의 패배가 아님을 증명하겠다”고, “시끄러운 소리는 ‘공존’을 실현하는 사회를 이끌 것”이라고 서로를 다독였다.

《워커스》는 총투표 보이콧 운동을 주도했던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이하 성성어디가) 소속 총여 입후보 희망자였던 노서영 씨와 대표 활동가 최새얀 씨를 만나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 중인 '성성어디가' 노서영(왼쪽) 활동가와 최새얀(오른쪽) 활동가

총여 재건 움직임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궁금하다

노서영(이하 노) 올해 초 성균관대 내에서도 미투가 있었다. 한 대학원 교수님이 대학원장의 상습적 추행을 폭로했고, 내가 활동하던 여성주의 학회에서도 연대를 시작했다. 징계위가 꾸려졌지만 가해자의 친한 지인들로 구성됐고, 조사 과정은 허술했으며, 솜방망이 처벌이 나왔다. 피해자를 외면하는 결과에 대한 대응이 필요했다. 성균관대 동문, 재학생들로 구성된 ‘성균관대 -미투- 위드유 특별위원회(이하 성균미투)’가 꾸려지고 학생 대표 자치기구인 총학생회(이하 총학)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학생회 대표자들은 학교와 면담을 한다며 시간을 끌더니, 결국 ‘피해자와 학교의 입장이 너무 상충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식의 결론만 가져왔다. 미투를 흘려버릴 수 없다는 절박감과, 피해자와 함께 설 학생 대표자가 없다는 한계에 부딪혔고 자연스레 총여를 떠올리게 됐다. 여름방학 때부터 총여 회칙을 찾으며 재건에 힘을 보탤 이들을 모았다. 9월 3일 개강과 동시에 3장짜리 대자보를 붙이고 활동을 개시했다.

전설 속의 총여를 끄집어낸 느낌이다. 총여는 얼마나 오래 공석이었나?

2009년부터다. 2012년 마지막 후보자가 나왔는데 투표율 미달로 무산됐다. 학생자치가 무력화되면서 총여 역시 힘을 잃었다. 또 학생회가 복지 정책을 폭넓게 주관하면서 총여 기구의 필요성과 관심이 떨어진 것 같다. 2015년 페미니즘이 리부트 된 시기에 관련 학회들이 많아지긴 했다. 그것도 지금은 다시 문을 닫는 추세지만.

학회는 왜 다시 줄어드나?

최새얀(이하 최) 15년, 16년에 학회를 만들었던 사람이 졸업하고 있다. 지금의 대학 구조에선 모임이 몇 년간 유지되는 게 너무 힘든 일이다. 취업 준비로 짬을 낼 틈이 없다. 백래시 또한 한 원인일 수 있다. 올해 6월 백래시 규탄 집회를 했는데 참가 단위를 색출해 ‘에브리타임’이라는 익명 커뮤니티에서 조리돌림을 하더라.

대학 내 성폭력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결하나?

성폭력, 차별 사건이 생기면 나에게 문의를 많이 한다. 학과 내에서 유일하게 여성주의 공부와 학회를 운영해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나마 우리과에선 2015년에 만들어진 반성폭력 내규가 있었다. 내규가 있어 다른 과보다는 상황이 낫지만 내규가 있다고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는 건 아니다. 대책위가 빨리빨리 처리하려는 경향도 많고,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도 힘든 분위기가 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제보, 신고가 들어오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총여를 반대하는 사람들한테 묻고 싶다. 당신들 말대로 경찰도 있고, 총학도 있는데 왜 우리 같은 여성주의 학회에 성폭력 신고가 들어오는지. 총학이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폭력 사건이 터지면 문과대 여학생회를 찾으면서도, 어떤 권한이나 권위도 주지 않았다.

총여 폐지 총투표는 어떤 과정을 거쳐 진행된 건가?

8월 16일 총학생회장에게 처음으로 총여 선거 관련 문의를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선관위)를 꾸려서 선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는 8월 27일 중앙운영위원회(총학생회장단·단과대 회장단·독립기구장단으로 구성, 이하 중운위)에서 이야기를 꺼내면 별 무리 없이 진행될 것 같다고 말했다. 27일 회의를 참관했는데 총학생회장단은 총여 세칙이 너무 오래되고 서로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고, 문과대 여학생회가 보관하고 있던 회칙이 진본이 맞는지 의심했다. 이후 해당 회칙이 진본과 같음을 입증하는 역대 총여 졸업생들의 증명을 준비해 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총여 회칙을 제·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결국 10월 17일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에서 총여 회칙 제·개정 발의 권한을 중운위에 위임한다는 안건이 상정됐다. 여기서 또 꼼수를 부린 건 ‘개정 권한’이 아닌 ‘개정 발의 권한’을 위임한 것이다. 개정안을 만들면 또다시 확대운영회의, 전학대회를 열어서 각각 인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회칙 중 일부만 수정하자는 안 등 우리가 냈던 수정안들은 모두 부결됐다.


총투표 발의는 누가 한 건가?

10월 17일 전학대회에서 결국 총여 회칙 제·개정 발의 권한을 중운위에 위임한다는 원안이 통과됐다. 전학대회가 끝나고 나가려는데 문 앞에서 글로벌리더학부(글리) 학생회장이 총여 폐지 총투표를 위한 서명을 받고 있다고 홍보했다. 글리 학생회장은 총여 회칙 제·개정 안건이 통과되면 중운위원으로서 열심히 회칙을 개정해 선거하겠다고 했던 학생이었다. 그는 폐지 총투표 서명은 대의원 한 명으로서 받는 거라고 변명했다. 경영학부 학생회장도 똑같은 서명을 받고 있었다. 너무 황당해서 중운위원으로 돌아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서명했나?

이틀 뒤, 글리 학생회장단은 학생회 페이스북 페이지에 자신들이 재적 대의원 1/3 이상의 서명을 모았으며, 회칙에 따라 총여 폐지 총투표를 발의했다고 알렸다. 대의원이 170명 정도 되는데 60명이 서명했다고 했다. 명단을 공개하라고 했지만, 글리 회장단이 이를 거부해 결국 총학 측에 요구했다. 글리 학부에서 갑자기 입장문이 나온 게 이때인데, 대의원들에게 쏟아질 과도한 비난이 우려되니 절대 공개해선 안 된다고 했다. 총학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무기명으로 안건 발의가 가능한가?

대의원 1/3 이상 서면 발의는 무기명 표결이나 현장발의보다 훨씬 무게감 있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60명의 사인만으로 총투표가 발의됐는데 누가 발의했는지도 모른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도 안 지키느냐 항의해도 공개 의무 조항이 없다고 해명했다. 2014년 자연과학캠퍼스에서 총여를 폐지할 때도 전학대회에서 충분히 논의하고 총투표가 부쳐진 건데 이번에는 아예 공론장이 없었다.

10월 8일, 역대 총여·총학 졸업생들이 총투표 철회를 요구하며 성성어디가의 활동을 지지하고 나서기도 했다

선배들이 총여는 군부정권 하에서 민주주의뿐 아니라 여성인권이라는 대의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호소했다. 또 총여 폐지를 주도하고 있는 게 당사자인 여학우들이 아닌 글리학부와 경영학부라는 사실이 개탄스럽다고 했다. 우리가 무슨 글을 써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 총학이었는데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하루 연장된 투표 기간 중 유효투표율이 넘었다. 연장 투표에 대한 논란도 있었는데

요즘 학생 사회에선 총학 선거도 투표율 50%를 넘기기 어렵다. 이번에도 당연히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투표관리위원회(투관위)가 온갖 수단을 써서 투표율을 끌어올린 것이다.

투관위는 구체적으로 어떤 수단을 썼나?

총학 시행세칙엔 중선관위 의결에 따라 하루 연장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준용해 자기들끼리 의결하고 하루를 더 연장했다. 총학 선거와 어떤 정치적 사안을 결정하는 총투표는 성격이 달라 총학 시행세칙을 개정해 써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치 투표에서 투표율이 미달하는 건 학생사회의 의사일 수 있는데 그런 고려나 이해 없이 총투표 연장 사유도 내놓지 않고 기간을 하루 연장했다.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총투표를 무효화시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나?

절차적 하자가 많던 선거여서 가처분 신청을 할 수도 있지만 하지 않으려고 한다. 법적 투쟁 2년 해서 총여 살리고 하는 일이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을까 고민이 든다. 소수자 의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이에 그치지 않고 다른 기구를 만들어 활동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성성어디가의 지난 활동에 대해 평가한다면?

우리가 어떤 지형 속에 있었고, 어떤 사람을 설득하지 못했는지 평가하는 시간을 아직 갖지 못했다. 감정이 정리되는 대로 냉정하게 분석할 것이다. 총투표 다음 날 ‘잘 싸웠다’ 이어말하기 행사를 열었던 건 우리가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단 한 번도 그냥 넘어간 적이 없다는 당당함 때문일 거다. 그렇게 싸웠기에 그동안 보이지 않던 학내 구성원으로부터 지지도 받았다. 간식과 핫팩을 보내주고, 피케팅 지원도 해주셨다. 총여 재건 운동 중에 남은 게 있다면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연말에 이 사람들을 모아 ‘페미의 밤’을 여는 게 작은 목표다.

성성어디가의 활동가, 연대자에 대한 인신공격이 심했다고 들었다

개인 SNS에 악플이 달리는 건 기본이었다. 에브리타임 글들이 정말 저열했다. 실명을 공개하기도 하고, 추측할 수 있게 초성을 적어 놓고 외모 품평을 하고, 고립시키겠다는 협박을 했다. 워마드, 메갈이라는 프레임으로 씌우고 우리를 트집 잡는 집단으로 매도했다. 성성어디가 활동가와 동명이인인 사람들까지 인신공격 문자를 받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총여 세력을 몰아낸 것이 성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당당히 성차별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성성어디가에 연대한 문과대 여학생회, 교지편집위에 대한 공격도 심해졌다. 지금 내 SNS 계정에도 투표 결과를 복붙해 놓고 조롱하는 댓글들이 달리고 있다. 그동안 놔두다가 하나씩 차단하고 있다.

활동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명박, 박근혜 때 집회를 나가면 차벽에 막혀 무기력감을 느끼지 않았나. 이번 활동도 비슷했다. 학생사회 권력을 쥐고 있는 총학, 중운위를 상대로 정당한 문제제기를 해도 그것이 학생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이미 저들은 공식적인 언어, 공식적인 위치, 공식적인 채널을 다 확보하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맞는 말 대잔치를 해도, 총학이 공개 의무조항이 없다는 엉성한 입장문을 내면 몇만 명에게 전달되고 원칙이 된다. 보이콧 하는 동안에도 정말 힘들었다. 우린 아직 총여가 필요하다고, 없애지 말아 달라고, 입이 틀어막힌 채로 침묵 피케팅을 하고 있으면 옆에서 노래를 크게 틀고, 당신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라며 소리치는 데 정말 폭력적이라 느꼈다.

앞으로의 계획은?

학내에서 여성이나 소수자 문제에 목소리를 낼 다양한 방식을 고민해 보려고 한다. 다음 학기가 시작되면 새로운 기구에 대해 알아보고, 다음 행보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이 마지막 학기라 졸업을 한다. 굉장히 마음이 무겁다. 우선 이번 학기 총학 선거가 열리면, 소수자 정책 등 적극적으로 관여할 사항이 생길 것 같다.

각계각층에서 여성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만큼, 백래시도 큰 상황이다. 이 시기 페미니스트의 역할은 무엇일까?

페미니스트에게만 사회 변화의 책임을 짊어지게 하는 것 같다. 다른 사회 문제는 사회 각계각층에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데 미투는 그런 게 하나도 안 돼서 너무 답답하다. 미투 이후 사회적 노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증거는, 내가 느낀 바 없기 때문이다. 노동절이나 다른 특별한 날도 아니고, 어느 주말에, 평범한 여성들이 6만 명 모이는 게 쉬운 일로 보이나? 성차별, 성폭력은 여전히 여성의 문제이지, 사회 전체의 문제로 다뤄지지 않는다. 페미니스트의 역할은 이것이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본다. 문 대통령 같은 경우에도 페미니즘 진영을 의식해 스스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 했지만, 전혀 실천이 없지 않나. 국회 절반, 기업 임원진 절반 등 수적인 평등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많아야 목소리 내기가 쉬워진다. [워커스 4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