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삭기 노동자의 죽음, 조환 하나 보낸 국방부

건설노조, 발주처인 국방부 앞 무기한 노숙농성 돌입 “책임있는 사과와 보상 실시하라”

“남편은 하루 14시간씩 씻지도 못하고 일했습니다. 현장에서 변사자로 발견됐는데 저는 이 죽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사망했는지, CMC나 한진중공업의 누구도 설명하지 않고 사과도 안 합니다. 건설노동자는 죽어서도 대우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마음이 아픕니다. 관리자 한마디에 쫓겨나야 하는 파리 목숨보다 못한 처지였습니다. 상납을 요구하면 들어줘야 했습니다. 한 집안의 가장이 사망했는데 아무도 책임지는 곳이 없습니다.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만으로 법의 보호도 못 받고, 사회적 약자인 저를 짓밟는 느낌만 듭니다. 경제력도 없는 저는 어디에 기대야 하나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요.”

[출처: 건설노조]

3개월 전 건설현장에서 남편을 잃은 유족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남편은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던 8월 12일, 충북 청주의 공사현장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국과수는 경부손상(목뼈 골절 등)에 의한 사망이라고 결론 내렸다. 경찰은 실족사로 추정하지만, 구체적인 원인은 밝히지 못했다.

건설노조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굴삭기 노동자 고 김종길 씨는 사망 당일 새벽 6시 40분경 현장 소장의 작업 지시를 받고 기지 내 주 작업장소에서 3km 떨어진 독립 개활지(06)에서 ‘깨기’ 작업을 하던 중 8시경 현장 소장의 2차 작업 지시 후 굴삭기 버켓을 교체하러 이동하다 사망했다.

8월 12일은 일요일로, 대부분의 공정이 중단됐던 날이다. 그날 김 씨는 허허벌판에서 굴삭기를 운전하다 변을 당했고, 숨진 지 1시간이 넘어서야 발견됐다. 평일이었다면 실족사가 됐어도 주변 동료들에 의해 일찍 발견돼 응급조치가 이뤄졌을 터였다. 더군다나 ‘2인 1조’를 지켜야 하는 건설 현장에서 신호수도 없이 작업을 한 건 명백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었다. 이를 어긴 건, 김 씨 개인일까, 김 씨에게 작업 지시를 한 관리자일까, 관리자가 소속된 CMC 건설일까, 원청인 한진중공업일까, 아니면 발주처인 국방부 시설본부일까.

김 씨는 올해 3월부터 공군 17비행전투단 청주공항 군전용 활주로 개선공사에 투입돼 일했다. 올여름은 기록적인 폭염으로 떠들썩했다. 올여름 폭염일수는 31.2일로, 전설적인 1994년의 기록을 갈아치웠을 정도였다. 고인의 작업 현장이 있던 충북 청주도 8월 내내 35도를 웃돌았다. 유족을 더욱더 힘들게 한 건, 당시 김 씨가 운전하던 굴삭기의 에어컨이 고장 나 있는 상태였다는 사실이다. AS를 신청한 상태였지만, 작업지시가 있었고, 결국 고장 난 굴삭기로 일을 해야 했다.


국방부가 발주한 공공공사의 현장이었지만, 폭염에 대한 대책도 없었을뿐더러, 7월 1일부터 시행해야 하는 주 52시간 노동도 지켜지지 않았다. 김 씨는 7월 19일부터 사망 시점까지 25일 동안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 작업일지는 그가 하루 평균 9시간을 일했다는 사실이 고스란히 적혀있다. 주간 평균 노동 시간은 63시간을 넘어섰다. 건설노조는 이 사망 사고를 ‘폭염 속 과로에 의한 실족사’로 규정했다.

특수고용노동자, 대통령도 인정한 ‘이상한 사장님’의 위치

김 씨 사망 후 3개월이 지났지만, ‘개인사업자’ 지위는 김 씨의 죽음을 누구도 책임지지 않게 만들었다. 굴삭기 노동자뿐 아니라 27개의 직종 건설기계를 운전하는 노동자들이 산재로 사망하면 모두 이런 상황과 마주한다. 법적으로 이들은 노동자가 아니기에 노조 역시 ‘산재에 준하는 보상’을 요구할 수밖에 없고, 안전 관리 책임이 있는 건설사들을 처벌받게 할 수도 없다. 건설노동자들이 ‘노동기본권 쟁취’를 요구하는 이유다.

고인이 조합원으로 있던 건설노조 강원건설기계지부 원주굴삭기지회의 이창권 지회장은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건설현장에서 추락, 매몰돼 사망하는 사고가 끊이지 않지만, 여전히 준 노동자라고 치부되며 산재나 근로자법 관련해서 법의 보호에서 제외된 상태”라며 법 개정을 요구했다.

정부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을 3개월 앞둔 지난해 2월 <주간 문재인 6호>에서 특수고용 노동자를 가리켜 “이상한 사장님”이라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영상에서 “특수고용직에게 노동 3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노동기본권을 외친 건설 노동자의 지난 20년처럼, 이번 정권 역시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건설노조, 국방부 앞 무기한 노숙농성 돌입

건설노조는 14일 오전 11시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국방부 앞에서 ‘자녀 뒷바라지에 여념 없던 굴삭기 노동자의 죽음, 국방부가 책임져라’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은 “작업을 지시하던 발주처 국방부와 원청 한진중공업은 고인이 사망하자 마치 고장 난 기계를 버리듯 취급하고 있다”라며 “관급공사의 현장에서 국방부는 건설기계노동자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만 한다. 고인과 유족 앞에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고 보상을 진행해 건설현장의 최종 책임자로서의 책임을 다하라”고 촉구했다.

이 자리에 유족도 참석해 “의학대학원을 다니는 딸의 학비 마련을 위해, 하청 건설사가 상납을 요구하는 등 갑질을 일삼아도 울분을 삼키며 일했는데, 돌아온 건 주검뿐”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유족은 “현장 소장의 조문, 공군17비행전투단장 명의의 조화 하나가 사과인가”라며 “가족이 항의하고 싸워 한진중공업에선 겨우 장례비 정도만을 지원했다”라고 밝혔다.

한편 건설노조는 기자회견 직후 국방부 앞에서 무기한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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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방부개혁

    국민청원 해야합니다
    단순 실족사가 아닌듯합니다
    온열에의한 과도한일 때문에 신체변화가와서 추락한
    했을것으로 보입니다 세밀한 수사가 필요합니다
    공사단축때문에 일어난 사건이 아닌가요
    부실활주로가 되지않를까 염려되네
    유골함이라도 국방부정문앞에 안치실 만들어야할듯
    지금 군사정권도아니고 머리가 깨어있을텐데 말이죠
    쟁취해야죠 강한투쟁만이 살길입니다
    멋진대통령님 보고계시나요

  • 유족 입니다

    청원 했었는데. 기간 만료 되었습니다 .관심 가져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