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남자 맛을 몰라서 그래’에서 ‘네가 거부하면 될 일이었다’까지

[워커스] 레인보우

[출처: 김용욱]

“교정강간(矯正強姦, corrective rape)”이라는 말이 있다. 언뜻 이해되지 않는 이 기이한 조어는 상대방을 교정해 준다는 명목 아래 행해지는 강간을 뜻한다. ‘비정상적인’ 섹슈얼리티를 교정한다는 명목 말이다. 동성애자 여성들이 종종 듣곤 하는 ‘네가 남자 맛을 몰라서 그래’라는 말들, 혹은 소위 ‘전환 치료’의 이면에 있는 일이다. 레즈비언을 대상으로 한 강간 범죄가 잦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만들어진 이 용어는 여전히 성소수자 인권을 이야기할 때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다.

널리 알려진 용어가 아니기도 하지만, 언론에서 이따금 이 용어가 사용되는 것은 그나마도 대개 남아공을 비롯해 보수적인 성 문화를 가진 국가들의 사례를 전하는 외신 보도를 통해서다. 마치 ‘외국에는 이런 일도 있더라’는 풍의 글들이다. 그 반대편에서 보다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는 일로서의 교정강간을 생각하는 이들 역시도, 알려진 국내 사례는 찾기 어려웠으므로, 주로 외국 사례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실상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사건 하나가 알려졌다. 지난 11월 9일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올라 온 “부하 여군을 강간한 두 명의 해군 간부를 처벌해주십시오”라는 글을 통해서다. 스스로를 피해자의 여자 친구라고 밝힌 작성자에 따르면, 지난 2010년 A해군 중위(현재 대위)는 상관인 B소령에게 강간을 당했다. A중위가 성소수자임을 알고 있었던 상관이 ‘남자 맛을 알려 준다’는 빌미를 내세워 행한 일이었다. 또한 이를 통해 임신하게 된 A중위가 중절 수술을 위한 휴가를 얻는 과정에서 사건을 알게 된 또 다른 상관 C중령(현재 대령) 역시 그를 강간했다.

혼자 견뎌야 했던 오랜 시간 끝에, 이 사건이 법정에 오른 것은 지난해 7월이 돼서였다. 9개월 가량이 걸린 1심에서 B와 C에게 각각 징역 10년형과 8년형이 선고됐지만, 2심에서 C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11월 8일의 일이다. 판결 이튿날 쓴 청원에서 “2차 가해자의 형량이 줄다 못해 완전무죄로 나온 이 시점에, 1차 가해자의 항소심 결과가 좋으리라 판단하기 어렵다”고 작성자가 말한 그대로, 19일 서울군사법원은 B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규제와 가해 옹호

법원은 A대위와 B, C가 절대적인 권력 관계 속에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이 사건에서 A대위가 저항 불가능한 상태에 있지는 않았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네가 남자 맛을 몰라서 그래’라는 말로 시작해 ‘네가 거부하면 될 일이었다’로 이어진 이 흔한 말들은 한국에서 여성이자 성소수자, 성소수자이자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사람이 처한 상황을 또 한 번 여실히 보여준다. 군대 내의 다른 사건에 비해 이 사건이 주목을 덜 받는 점, 여성 군인에 대한 군대 내 성폭력이 끊이지 않는데도 여전히 여성 징병제 실시 요구 따위가 새로운 청원으로 등록되는 점 등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3심의 결과는 군대를 비롯한 이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 특히 성소수자 여성의 지위에 대한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한편 교정강간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설명해야 했던 한 사회의 특수성을 쉽게 희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만큼, 이러한 현실이 넓게 볼 때 어떤 맥락에 있는지를 살피는 일도 중요할 것이다. 성행위에 관심이 없음을 밝힌 사람, 혹은 성적 지향성을 넘어 여러 가지 젠더 표현에 있어서 전형적인 여성상을 벗어나는 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생각할 때 우리는, 사회가 어떤 수단을 동원해 어떤 ‘일탈적인’ 성(性)들을 규제하려는지를 알 수 있다. 이것을 그저 ‘하나’의 사건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워커스 4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