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용균 씨 추모제 5천 명 참가…“비정규직 제로 약속 지켰다면”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해야...“노동자가 죽지 않는 사회 위해 싸우자”

태안화력발전소 청년노동자 김용균 씨가 작업 도중 사망한 지 보름이 지났다. 그 사이 산업안전보건법도 개정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족을 만나겠다고도 밝혔다. 그러나 5천 명이 억울하게 숨진 김용균 씨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며 촛불을 들었다. 또 반쪽짜리 산업안전법 개정으로는 반복되는 죽음을 멈출 수도, 하청,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불합리한 고용 구조도 바꿀 수 없다며 비정규직 없는 사회를 만들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 김용균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2차 범국민 추모제가 열린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참가자들은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약속을 지키지 않은 데 분노했다. 체감온도 영하 20도였지만 수천 명이 광장을 메웠다. 곳곳에선 언 볼에 흘러내린 눈물을 훔치며 무대에 귀를 기울였다. 경찰은 불어나는 인파에 폴리스라인을 다시 세워야 했다. 유족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시민대책위 참가자들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과 함께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호소했다.



김경자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전태일 열사의 죽음으로 근로기준법을, 원진레이온의 17세 어린 노동자 문송면의 죽음으로 산업재해라는 말을 알게 됐다. 한국 사회는 죽어야 세상이 바뀌는 것인가. 산업안전보건법은 개정됐지만 여전히 1-8호기에선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만들겠다는 한 약속은 그냥 말이었는가. 왜 발전소에서는 단 한 명도 정규직이 되지 못했는가. 문 대통령이 약속을 지켜 김용균이 비정규직이 아니었더라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그런데 김용균이 죽었는데도 여전히 그의 친구와 동료들이 똑같이 일하고 있다. 유성기업에선 퇴사 노동자가 또 숨졌다. 413일째 굴뚝에서 싸우는 노동자들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답해야 할 때다. 노동자들이 죽지 않도록 함께 싸우자. 죽지 않고 바뀌는 세상을 만들자”고 호소했다.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아들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면서 이 사건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책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용균이가 죽은 컨베이어 벨트는 지금도 돌아간다. 용균이의 억울한 죽음은 문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졌다면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었다. 문 대통령이 우리를 만나겠다고 했다. 그러나 말로만 하는 약속, 말로만 하는 위로는 필요 없다.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양한 노동 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무대에 올라 김용균의 죽음을 자신의 문제로 말하며 사회를 바꿔야만 한다고 호소했다.

윤재민 맥도날드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1주일에 70시간을 일해도 단 한 번도 야간 수당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근로계약서를 요구했다가 해고됐고, 산재처리를 요구했다가 욕을 먹었다. 대학을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졸업을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누가 다치고 죽어도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까지 죽음을 추모해야 할 것인가. 행복한 얘기를 하고 싶다. 죽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특성화고를 졸업한 뒤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이은아 씨는 “한 번 비정규직이 되면 빠져 나오기 힘들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을 위해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과 피로가 반복되는 일상에 내일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직과 실직에 불안해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죽음에 불안해 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다고 하는데 나는 다시 비정규직인 일자리로 돌아가 일을 해야 했다. 얼마 후에는 직장을 잃고 다시 구직 활동을 해야 한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단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정규직이 되는 것이다. 국회는 애매한 법만 통과시키고 정부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멈추지 말라. 우리는 이제야 입을 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족할 리 있는가. 우리는 계속 외치고 싸우겠다. 우리 곁에 서 준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교육공무직 비정규직의 한 노동자는 “급식노동자 80%가 골병이 들어 있지만 해고만 되지 말라며 견디고 산다. (...) 용균이는 우리의 아들이다. 나는 용균이의 엄마이다. 다 같이 아파해야 한다. 우리가 열심히 투쟁해서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자”라고 제안했다.

박준호 파인텍지회 조합원도 영상을 통해 “죽음의 구조가 파괴돼야 한다. 정치해고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유경근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도 무대에 나와 “용균이와 같은 죽음을 더 이상 만들지 말자. 그 길에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송영섭 변호사는 “5시간 동안 고인은 어둡고 추운 곳에서 견뎌야 했다. 사고가 났지만 방치돼 있었다. 왜 그렇게 방치돼 있어야 했는지 그 원인을 찾는 게 이 사건 진상규명의 핵심이다. 단순한 사고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인 죽음, 피할 수 있던 죽음이다. 그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증거 인멸로 급급하다. 사고 현장을 훼손하며 물청소까지 했다. 그리고 지금은 위험하지 않다고 뻔뻔하게 얘기하고 있다.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 안전한 작업장을 만들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발언했다.

시민대책위의 이태호 씨는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5년이 흘렀다. 그 사이 이 촛불도 있었다. 우리가 그렇게 바꾸고자 한 재난자본주의는 사람의 뼈를 깎으며 지금도 그대로이다. 가만히 있지 말자고 했지만, 이제 살아남은 아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어 죽어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유가족을 만나는 것은 모든 정부가 했던 일이다. 김용균은 살아 있을 때 대통령을 만나자고 했다. 비정규직 대표 100인이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자고 했다. 더 죽지 않기 위해, 살아 있는 사람과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이 죽음의 질서를 바꿔야 한다. 정치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촛불을 든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거리로 나서지 않는다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함께 걸어가자”고 제안했다.

참가자들은 저녁 7시 경 추모제를 마치고 청와대로 행진했다. 이들은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인근까지 행진하고 이곳에서 다시 자유발언을 한 뒤 대회를 마무리했다. 대책위는 다음 주말에도 범국민 추모제를 진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