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스트가 ‘포퓰러’할 수 있는 유통기한은?

[워커스 인터] 계급 없는 대중정치의 함정

[출처: www.dissentmagazine.org]

영국 캠브리지 대학이 발표한 2017년의 단어는 ‘포퓰리즘’이었다. 2018년에도 이 단어는 내내 국제면을 달궜다. 최근 가디언의 보도1)2)에 따르면, 유럽에서 포퓰리즘 정당 지지는 지난 20년간 3배로 증가했다. 최근 주요 선거에서 포퓰리즘 정당을 택한 유럽 유권자도 4명 중 1명에 달했다.

지금 포퓰리스트라고 불리는 정당은 20년 전 유럽에서 약 7%로 현저히 적었다. 전 나치세력이 1956년 창당한 오스트리아 극우 자유당이 1994년 20% 이상을 득표했고 노르웨이나 스위스, 이탈리아에서도 1990년대 극우가 성공을 거두기는 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까지는 많아도 10여%, 그리고 지역적으로도 한정됐다.

포퓰리스트 정치세력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계기는 2007-8년 세계경제위기였다. 이후 2015년 유럽의 소위 ‘난민위기’ 후 이 경향은 더욱 두드러졌다. 2016년 영국 독립당은 브렉시트를 주도하며 고공행진을 했고 2017년 프랑스 극우 국민전선의 마린 르 펜은 대선 결선에 진출해 33%를 득표했다. 같은 해 독일대안당은 제2차 세계대전 후 극우정당으로서는 처음으로 90석 이상을 획득하며 연방의회에 진입했다. 2018년 이탈리아에서도 극우 북부동맹과 반기득권주의의 오성운동당이 50% 가까이 득표했다. 같은 해 치러진 헝가리 총선에선 ‘반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는 모호한 구호를 내건 극우 피데스가 기독 민주국민당과 연합해 49%를 득표하여 4선에 성공했으며, 극우 스웨덴민주당도 17.5%로 선전했다.

최근 부상한 포퓰리즘 정당들은 다양한 모습을 취하고는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회 불평등 문제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득권층, 엘리트에 대한 공분을 조성하며 세계화와 국제기구에 반대한다. 그리고 이들의 스펙트럼은 주로 난민이나 이주노동의 문제에서 갈라진다. 집권에는 대체로 극‧우익 성향의 정치세력이 성공했다. 좌측에서도 반긴축을 내걸었던 그리스 시리자가 2015년 36%로 집권했으나 대게는 스페인 포데모스나 프랑스 ‘라 프랑스 앵수미즈(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와 같이 집권에 이르지는 못했다.

‘포퓰러(popular)’하지 않은 포퓰리스트 정부 “프랑스 시민들을 거만한 엘리트로부터 자유롭게 할 때이다.” - 프랑스 마린 르 펜
“사람들은 자기 나라의, 그리고 그들 삶과 가족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기를 원한다.” - 미국 도널드 트럼프
“유럽의 엘리트들은 실패했으며 이 실패의 상징은 EU집행위원회이다.” - 헝가리 독재자, 오르반 빅토르

그러면 포퓰리즘 정치세력이 집권한 정부는 과연 그들을 선택한 유권자의 의사에 부응했을까? 그러나 지난 몇 년을 돌아보면, 우선 우익포퓰리스트의 정치로 세상이 변한 것 같지는 않다. 최근 슈피겔3)도 “현재까지 트럼프 정치는 자유시장의 질서를 토대로 한다. 지금도 서구 시장민주주의 체제는 트럼프, 마테오 살비니(이탈리아 북부동맹 대표) 또는 야로스와프 카친스키(폴란드 집권당 대표)와 같은 유별난 인물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슈피겔의 보도처럼, 세계 포퓰리스트들의 행보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제로 트럼프는 미국 연준의 책임자로 월가 출신의 부유한 자산가이자 공화당원인 제롬 파월을 임명했다. 트럼프의 무역정책 또한 그가 대선 전에 외쳤던 톤 보다는 훨씬 약하다. 헝가리 극우 빅토르 오르반은 더 많은 시장개방을 약속하면서 외국기업 유치를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유럽연합 난민 할당제를 거부했던 폴란드 집권당도 이주노동자는 적극 받아들이고 있다. 독일에선 연방의회 제3 정치세력이 된 독일대안당의 위력에도 이민제도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국제기구나 협상들도 뭔가 크게 변한 것은 없다. 트럼프가 철수하겠다고 큰소리 쳤던 나토는 여전히 건재하다. WTO나 IMF와 같은 초국적 무역・금융 기구도 트럼프나 다른 포퓰리스트들로부터 쓴 소리는 들었지만 변한 것은 없다. 한미FTA나 북미자유협정(NAFTA)에도 이변이 없다. 미국이 탈퇴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파리기후협약도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좌파포퓰리즘은?

“좌파포퓰리즘은 좌파가 전진할 유일한 방법이다.” - 장 뤽 멜랑숑

그러면 소위 좌파포퓰리즘은 어떨까? 이들은 집권에 이르지는 못했더라도 일부는 각국에서 주요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며 주목을 모았다. 우선 대표적인 좌파포퓰리즘 정당인 스페인 포데모스는 경제위기 후 15-M 운동의 여파로 2014년 1월 창당, 2016년 총선에서 21%를 득표하며 의회 350석 중 43석, 지역의회에선 1,248석 중 136석으로 제3당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지역 현장 써클이나 온라인 투표 행위와 같은 ‘풀뿌리민주주의’ 형식이나 사회운동과의 일정한 연대는 유지하면서 자신의 정치를 구현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15-M와 같은 대중투쟁보다는 선거에 치중하면서 ‘선거기계’가 됐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스페인 민족주의가 부상하면서 카탈로니아 선거에서도 좌절했고 이제는 극우 ‘복스’에 위협받고 있다. 한편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당대표는 호화주택 구입 논란 외에도 당 전체에 미치는 입김 때문에 비판에 시달린다. 포데모스는 지난 12월 중순 지지율 조사에서 16.7%로, 스페인 사회당, 국민당과 시우다다노스에 이어 4위로 뒤쳐졌다.

스페인에 포데모스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라 프랑스 앵수미즈’가 좌파포퓰리즘을 채택하고 있다. 지난 대선과 총선을 앞둔 2016년 2월 창당을 주도한 사회주의자 출신의 장 뤽 멜랑숑은 이제는 그 누구보다도 좌파 포퓰리스트를 자임하고 있다. 이들의 언술도 포데모스와 큰 차이가 없다. 이러한 좌파포퓰리즘 세력은 ‘계급’ 대신 ‘인민’을, 자본가 대신 ‘카스트’나 ‘올리가르히’ 그리고 사회주의 대신 급진 민주주의라는 구호로 정치세력화를 추구해 왔다. 노동자 계급에서 시민으로 정치세력화의 주체가 바뀐 것인데 결국 자본이 이끄는 ‘탈노동’이 이제 좌파 내에서도 확산되고 있는 점을 생각해보면 매우 본질적인 방향 전환이다. 실업률 확대나 노동시장의 변화, 노조 약화 등 변화된 정세에 부심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러나 동시에 노자 문제나 노동자계급 중심의 사회 변혁 보다는 집권을 앞세워 의회주의와 개혁주의 또는 국수주의로 기울고 있는 것은 아닌지라는 의문도 제기된다.

최근 몇 년간 자본 대 노동자 간 계급투쟁에 천착하는 맑스주의 좌파는 이러한 좌파포퓰리즘을 비판해왔다. 그러나 적지 않은 좌파가 경제위기 후 극우의 돌풍과 지지부진한 지지율 속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며 이에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좌파포퓰리즘은 벨기에 정치학자 샹탈 무페가 최근 ‘좌파포퓰리즘을 위하여’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좌파 사이에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4)5)

독일에서도 자라 바겐크네히트 좌파당 공동 원내대표가 멜랑숑을 모델로 지난 9월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을 위한 플랫폼 ‘아우프슈테엔(Aufstehen, 일어나라)’6)을 창설했다. 그러나 그 역시 아우프슈테엔을 세운 뒤의 발언은 정부에 이민자를 제한하라는, 극우 독일대안당과 큰 차이 없는 주장이었다.

무페의 책이 출간된 뒤 첫 번째 대선이 치러진 브라질에서 유권자들은 폭력과 마약, 빈곤과 불평등이 없는 사회를 꿈꾸며 극우 자이르 보우소나루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그는 취임 뒤 모두를 위한 정치를 펴겠다고 약속하면서도 바로 적극적 자유무역협상을 통해 시장개방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결국 포퓰리즘 언술만 앞세운 도로 신자유주의 노선이 반복되고 있다. 이제 2007-8년 경제위기 이후로 부상한 세력들의 모습이 서서히 확인되고 있다. 포퓰리즘의 이름으로 노동과 계급에 눈을 감는 이러한 정치세력이 ‘포퓰러’할 수 있는 유통기한은 언제까지일까? 그리고 포퓰리즘을 내세운 좌파들의 이론은 그들과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혹시 포퓰리즘의 이름으로 우향우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봐야 할 때다.

포퓰리즘, ‘샤이한 백인들의 반란’이 아니야

지난 몇 년 간 부상한 포퓰리즘이라는 정치변동의 원인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제기돼 왔다. 근대화 희생자들이 들고 일어났다거나 문화적 갈등 또는 기성 정치의 실패에 의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었다. 진보나 좌파는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심화되면서 확대된 사회적 불평등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그러나 각 지역별로 다르게 우파 또는 좌파가 부상했던 차이에 대한 설명은 부족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퓰리즘에 대한 새로운 논쟁이 제기돼 눈길을 끌고 있다. 필립 마노프(Philip Manow) 독일 브레맨대 정치학자는 최근 ‘포퓰리즘의 정치경제학’이라는 책을 통해 현재의 논쟁에는 두 가지가 빠져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포퓰리즘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상이한 정치 현상을 체계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분석틀이 없다고 한다. 그는 이를 전제하며 각국 사례를 토대로 포퓰리즘 부상의 경제적 측면, 즉 이민과 상품교환에 따른 반작용에 중점을 두고 좌우포퓰리즘에 대한 해석을 끌어냈다.7)

마노프는 우선 유럽 북부에선 우파포퓰리즘이, 유럽 남부에선 좌파 포퓰리즘이 강하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북부에서 포퓰리즘은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에 반대하는 반면, 남부에선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반대한다고 한다. 즉 각국 정치경제에 자본과 사람의 이동이 중요한 문제가 되는데, 북부와 같이 성장모델이 수출지향적이거나 남부와 같이 내수가 중요한지가 포퓰리즘의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마노프에 따르면, 북유럽에서 복지 국가는 노사 간 장기 교섭과 고도화된 전문인력을 통해 수출 주도형 성장 모델의 필요를 충족시킨다. 이 방식은 세계 시장의 변동에 매우 취약하며 그 때문에 복지국가는 생활수준 보장을 통해 충격을 완화한다. 그런데 이는 미숙련 이민자에게 매력적어서 이들은 특히 북유럽으로 향하게 되고 현지 우익은 이를 문제로 포퓰리스트 세력으로 부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남유럽에서 복지국가는 북부와 유사한 사회복지제도를 운영하더라도 이민자들에게는 크게 제한돼 있다. 경제 성과가 주로 노동시장 내부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거나 사회적 부에 대한 접근이 국민 당사자에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유럽에서는 유로화위기와 긴축에 따라 사회적 저항이 유발돼 유권자들은 좌파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마노프는 국가 간 비교를 통해서 뿐 아니라 국내 지역적으로도 이 모델이 관철된다고 한다. 그가 대표적으로 제시하는, 이탈리아의 경우엔 산업중심지 로서의 북부와 이에 종속된 남부로 2개의 경제체제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북부에선 극우 북부동맹이, 남부에선 좌측에 가까운 오성운동당이 강세이다.

마노프의 이 같은 해석은 유럽에 국한하지만 경제위기 이후 상이한 정치현상을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노동과 자본 간 계급적 관계에 입각해 풀이하려 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 동안 영국 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과 미국 트럼프 대선 승리를 시작으로 소위 ‘샤이한 백인들의 결집’ 또는 ‘러스트벨트의 반란’ 등의 해석이 다수였지만 그의 해석은 이를 경제적으로 분석하며 한 발 더 나아갔다. 세계화한 자본과 노동의 이동을 주요 문제로 삼고 이를 대비해 산업중심국인 북부와 의존국인 남부에서,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이 북부에 그리고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남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주목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의 세계화 속에서 산업중심국의 자본은 시장개방과 국제금융기구를 통해 의존국의 경제를 좌우하는 한편, 의존국의 노동력은 산업중심국에 집중된다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비판은 결국 마노프의 이론에서도 도돌이표를 그린다. 그렇다면 그것을 우리는 왜 포퓰리즘이라고 불러야 할까? 그들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결국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그자장 안에서 유동하는데도 말이다.[워커스 50호]

[각주]
1) 가디언은 30명 이상의 정치학자와 함께 6개월 동안 해당 조사를 수행하고 지난 11월 20일 이를 보도했다.
https://www.theguardian.com/world/ng-interactive/2018/nov/20/revealed-one-in-foureuropeans-vote-populist
2) 가디언이 해당 연구를 수행하며 채택한 포퓰리즘 개념은 네덜란드 정치학자 카스 무데(Cas Mudde)가 제안한 것이다. 그는 “포퓰리즘은 흔히 ‘숙주(host)’ 이데올로기와 결합돼 좌우 모두에 적용될 수 있다”고 전제한다. 또 “포퓰리스트들은 도덕적인 ‘평범한’ 대중과 사악하거나 부패한 엘리트 사이의 전투로서 정치를 프레임 지우며 민중의 일반 의지가 항상 승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설명한다.
3) http://www.spiegel.de/wirtschaft/soziales/weltwirtschaftwas-populisten-ausbremst-a-
1226088.html
4)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211807#09T0
5) 샹탈 무페는 이미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1985, 에르네스토 라클라우공저)>, <정치적인 것에 대하여(2005)> 등을 통해 경제적으로 결정된 ‘노동자계급’ 대신 ‘대중’을 새로운 정치 주체라고 부르며 다양한 세력들의 ‘헤게모니적 접합’과 급진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통해 사회주의로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면서 그는 포데모스 등 정치세력에 간여하기도 했으며 이제는 미국 버니 샌더스, 영국 제레미 코빈의 정치까지 모두 좌파포퓰리즘으로 부르고 있다. 또한 무페는 현 시기를 ‘포퓰리즘의 적기’라고 부르며 이를 좌우의 경계선이 희미해진 포스트-정치의 상황에 대한 다양한 저항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이 저항들은 더 많은 민주주의의 요구를 표현하고 있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개진되어 반드시 진보적이지만은 않다고 본다. 그럼에도 그는 이 저항이 진보적인 방향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며 이를 ‘좌파포퓰리즘’이라고 부른다.
https://www.redpepper.org.uk/fora-left-populism-an-interview-withchantal-mouffe
6) https://de.wikipedia.org/wiki/Aufstehen
7) http://www.taz.de/Populismus-aus-Sicht-eines-Politologen/!5554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