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미투 1년… "의지 없는 정부, 믿고 고발하기 어렵다"

[인터뷰] 스쿨미투 집회 제안한 양지혜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운영위원

‘여자는 애 낳는 기계다’ ‘예쁜 여학생이 내 무릎에 앉으면 수행평가 만점을 주겠다’ 같은 성희롱부터 ‘여자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대답을 잘해야 한다’’ ‘(여자에게) 섹시하다는 건 칭찬이다’ 같은 성차별적 언행까지. 여학생들에게는 학교조차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지난해 미투 운동이 확산되던 시기, 여학생들은 트위터에서 스쿨미투 해시태그를 달고 학교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에 대해 고발했다. SNS에서부터 점화된 스쿨미투는 2018년 4월 용화여고 졸업생들이 교사들의 성범죄 사실을 고발하며 오프라인으로까지 번졌다. 이후 70여 개 학교에서 스쿨미투 운동이 벌어졌다. 대부분의 가해자는 교사였다.

학생 당사자들은 집회를 열고 고발을 이어나갔다. 지난해 11월 3일 청소년 당사자들이 주최하는 첫 집회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가 개최됐고 이후 대구, 충남, 인천, 부산 등 전국적인 스쿨미투 집회가 이어졌다. 오는 16일엔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스쿨미투, 대한민국 정부는 응답하라’는 전국규모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참세상>은 스쿨미투 1년을 맞아 스쿨미투 집회를 제안한 양지혜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운영위원을 만났다. 양 씨는 최근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해 UN아동권리위원회 관계자들과 만나 한국의 스쿨미투 현황을 알리고 UN아동권리위원회에 본 심의 주제로 스쿨미투를 상정해달라고 요청했다.


-UN에 가서 어떤 이야기를 했나

유엔 활동가들은 한국에서 학내 성폭력이 어떻게 만연한 일이 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선진국이고, 아동보호에 합의한 나라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신고처는 있는지, 학부모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여러 가지를 물었다. 사실 한국에서 제도가 없는 건 아니다. 학교엔 위클래스(학교, 교육, 지역사회가 연계된 상담ㆍ교육 프로그램), 학폭위, 성고충심의위가 있고 교육청에서도 수사절차가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형식적이거나 너무 느려 피해자들은 제대로 된 지원을 받기 어렵다. 또 스쿨미투 상당수가 수업시간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언어 성희롱인데 사법적 처리로 귀결되기 힘든 문화적, 근본적 영역이 있다. 또 고발을 힘들게 하는 입시 중점의 교육 등을 설명하다 보니 이야기도 길어졌다.

  UN에서 한국의 스쿨미투를 설명 중인 양지혜 운영위원 [출처: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UN의 초청이 있었다. UN이 한국의 스쿨미투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국제 사회에 심각한 아동 성폭력 문제들도 많다. 파키스탄에선 생리하는 아이를 불결하다며 내쫓는 관습도 있다. UN 관계자들은 학내 성폭력 당사자들이 고발하고, 시민의 확대로 이 운동이 대중적으로 커지는 점이 영감을 줬다고 했다. 온라인 펀딩을 통해 유엔에 올 수 있었다고 하니 놀라워했다.

-UN이 이슈리스트에 스쿨미투를 상정할 경우 기대하는 변화는?

스쿨미투가 터진 지난해보다 올해가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 속출하는 고발 시기를 넘어 전망을 만드는 시기이고, 요구안 관철을 위해 더 많은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 국제사회에서 스쿨미투에 대해 한국정부에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권고안을 낸다면 그 자체로 힘이 실리지 않겠나.

-“스쿨미투는 지난해 트위터 해시태그 1위를 기록할 정도로 파급력이 큰 의제였다”고 말한 바 있다. 스쿨미투는 학교를 둘러싼 당사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보나?

학생에게 말조심해야겠다는 감각이라도 생긴 게 교사들의 큰 변화다. 최근 교총(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 미투로 인한 교권침해를 이야기하며 신체 접촉 허용 기준을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성폭력 피해를 신체접촉으로 한정해 물리적인 범위에서만 고려하고 있는 사실은 화도 나고, 안타깝다.

학생들에겐 말하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1년이 훌쩍 지났고 슬픈 결과들을 마주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들의 말이 학교에 균열을 내고 있지 않나. 그런데 미투나 페미니즘이 낙인이 되고, 학교에서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일이 테러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게 요즘의 고민이다.

  인터뷰 중인 양지혜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운영위원 [출처: 김한주 기자]

-지난해 12월 21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교육 분야 성희롱-성폭력 근절대책이 발표됐다. ‘성희롱-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학교 문화 조성’을 목표로 크게 여섯 가지 정책을 담고 있다. 징계제도 개선, 피해자 회복, 교육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스쿨미투 해결책을 찾기 위한 정부부처 간담회도 있었고 정부에서 나름대로 이 문제를 신경 쓰고 있다. 하지만 정부 대책은 예방 교육 강화에만 치중할 뿐 구조를 바꾸기 위한 학생인권 증진, 입시중점 교육에 대한 문제는 짚고 있지 않다. 또 교육부는 성차별적인 성교육표준안을 고수해서 18년까지 유지하고 있는데 실효성 있는 교육이 가능한지 의구심도 든다.

또 학교가 너무 많아서 성폭력 실태 전수조사가 아닌 현황조사를 하겠다고 하는데 정말 학교 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 건지 묻고 싶다. 의지 없는 정부를 학생들이 신뢰하고 고발할 수 있겠나? 70~80개교(추정치)에서 스쿨미투가 발생했다는 건 개별의 사건이 아니라 성폭력 유지돼 온 시스템을 고발하는 거였다. 정확한 실태 파악을 위해서 전수조사는 꼭 필요한 과정이다.

-스쿨미투를 촉발한 서울 용화여고에서 최근 가해 교사에 대한 불기소 처분이 나왔다. 수사당국이나 사법당국에서 스쿨미투에 불리한 판단을 하는 사례가 또 있나?

교육청 감사로 성폭력 사건을 전수조사한 케이스가 몇몇 학교에서 있었는데 10분 안에 조사가 끝난다거나, 설문조사가 오픈된 곳에서 진행되기도 했고 고발자 이름 노출, 부실한 설문 항목 같은 문제가 불거졌다. 정부가 책임지고 스쿨미투 해결 양식과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사기관의 적극적인 수사 의지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현재 경찰이나 검찰에서 아동성폭력 피해의 특수성을 고려한 아동 친화적 수사들이 진행되지 않고 있고 적극성이나 체계성도 없다.

-스쿨미투 고발자들은 여성이기도 하지만, 나이가 적다는 점에서 조금 더 약자의 위치에 있다. 고발자가 2차 가해와 신변의 위협에 시달린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피해 사례, 규모들을 알고 싶다.

정발고에서는 고발자가 쓴 트윗을 경찰이 정보를 지우지 않고 학교로 전달했고, 고발자는 트윗을 지우라는 압박에 시달렸다. 광남중에선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가 반을 돌아다니며 ‘누가 말했냐, 예쁘게 봐달라’고 말했는데 학생에 대한 조롱이고 2차 가해다. (광남중 미투고발은 교육청과 경찰이 진상 조사에 나선 것에 이어 교육청 특별 감사까지 이어지며 해당 교사가 중징계 처분됐다.) 이밖에 다른 미투 고발 학교들에서도 색출시도가 계속됐고,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일축하거나 고발자의 명의로 사과를 요구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대응이 필요한가?

고발자들이 과도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거나 과정상의 어려움으로 고발을 멈추지 않도록, 연결된 하나의 집단성을 갖고 싸우는 것이 목표다. 미흡했던 성폭력 상담에 대한 지원, 법조계를 통한 법률적 지원 프로세스도 만들어보고, 고발자들이 다 같이 모여 전망을 만들 예정이다. 학교당국을 벗어난 단위에 힘이 실려야 한다. A고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체제 전반의 문제임을 드러내면서 포괄적인 교육을 바꾸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내 투쟁도 중요하지만 그게 고발 당사자, 학생 당사자에게 짐을 지우는 방식이라면 좀 더 큰 틀로서 이런 움직임을 이어가야 한다.

  지난해 11월 3일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집회 현장 [출처: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스쿨미투 고발자들은 주로 학생들이다. 노동자들에게 파업이란 무기가 있다면, 학생들은 어떻게 싸워야 할까?

노동자들의 파업은 정치적으로 인정되지만 학생들에겐 탈 정치성, 순수성, 피해자성이 요구된다. 이런 여건에서 SNS 고발은 10대 페미니스트의 새로운 투쟁 전략이다. 일반적으로 청소년들은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학교에 종속된 사람들로 이들에게 SNS는 파급력을 갖는 접근이 쉬운 공간이다. 그만큼의 한계도 있는데 하나의 운동으로 결합되기 힘든 점이 그 예시인 것 같다. 그래서 온라인상의 고발을 이어오고 연대해온 이들을 집회 등을 기획해 오프라인으로 부르고 연대와 교류를 확장하고 있다.

-페미니즘 교육이 현 교육과정에선 ‘양성평등 교육’ 정도로 대체되고 있는데 페미니즘 교육은 왜 의무화돼야 하는가?

기존의 양성평등 교육이나 성폭력 예방 관점 자체가 한계적이고 성차별적이다. 양성평등 자체가 성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교육은 기존에 교육부가 고수해온 성차별적이고 피해자에게 정조를 강요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성인지 감수성은 소수자, 여성의 존재를 지울 수 없다는 성교육에서 나오는데 인권과 다양성을 중심으로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 성폭력이 단순히 개별자들의 권력 차이가 아니라 구조적 부분이라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 남녀 신체적 힘의 차이를 말하지 말고 위계, 위력을 말해야 할 때다. 권력 구조에 대해 성찰할 수 있고, 평등한 학교를 만들 수 있는 방식의 페미니즘 교육을 요구하고 있다.

동시에 지금 입시 중심의 교육 속에서 페미니즘 교육이 과연 페미니즘적으로 이뤄질까에 대한 고민도 든다. 입시 중심의 교육에선 기본적으로 인권시수나, 실효적 수업을 확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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