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이 죽은 곳에서 또다시 산재사고 발생

골절당한 노동자 2시간여 만에 승용차로 병원으로 이송돼… “정부의 안일한 태도가 낳은 사고”

고 김용균 씨가 목숨을 잃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또다시 비정규직 노동자가 설비에 끼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피해 노동자의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골절이 발생한 환자를 구급대가 아닌 승용차로 이송하는 등 사고 이후의 조치들이 다시 문제가 되고 있다.

5일 한국서부발전은 지난 4일 태안화력발전소 2호기 석탄분배기실에서 협력업체인 한전산업개발 직원 윤모(48) 씨가 현장을 점검하던 중 다쳤다고 밝혔다. 윤 씨는 설비에 끼어 오른쪽 빗장뼈가 골절되고 갈비뼈 5개에 실금이 확인되는 등 병원에서 전치 6주를 진단받았다. 옆에 있던 동료가 풀코드(비상정지장치)를 당겨 설비 운영을 멈춰 더 큰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지난 2월 5일, 당정의 故김용균 후속대책 합의 후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는 기자회견을 열고 후속 대책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출처: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은 5일 성명을 내고 “고용노동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의 안일한 태도가 낳은 사고”라고 비판했다.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씨 사망 이후,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와 유가족은 1~8호기도 작업을 중단하고, 설비개선과 안전 진단 후 재가동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는 2인 1조 등의 매뉴얼을 잘 지키도록 시정하고, 위험이 있다면 가동 중단을 검토하겠다는 말로 이러한 요구를 갈음해왔다.

공공운수노조는 “2인 1조가 참사는 막았지만 근본적으로 끼임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설비 개선이 필요하다”라며 “사람이 협착되고 난 후 설비를 멈추는 것이 아닌 설비에 끼지 않는 설비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또 설비 개선을 위한 시간이 소요되므로 인력확충이 필수적인데 현재 서부발전 등의 인력확충 규모는 노동자들이 일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골절 환자, 구급차 아닌 승용차로 옮겨… 하청 노동자 사고 대처 논란거리

공공운수노조는 하청 노동자에게 사고가 발생했을 때 취해지던 행태가 또다시 반복됐다고도 비판했다.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피해 노동자는 사고 2시간여 만에 구급대의 응급구조 차량이 아닌 자가용 승용차로 병원에 이송됐다. 또 골절이 발생한 상황에서 대기실에서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지체했다.

공공운수노조는 “이는 하청업체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를 감추기에만 급급할 수밖에 없는 원하청 간의 지배구조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필연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사고 발생 보고서에 쓰인 사고원인에 대한 판단도 논란거리다. 사고 발생 해당 사업소인 한전산업개발은 이번 산재 사고의 원인으로 노동자의 판단 오류나 안전 불감, 안전교육 미흡을 꼽았다. 하지만 공공운수노조는 “작업자의 부주의라고 몰아붙이는 한 산재공화국이라는 오명은 벗을 수 없고 산재사고를 줄여나갈 수 없다”라며 “설비가 운영되는 동안 점검업무를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다양한 안전장치가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고 김용균 씨 사망 이후 나온 발전소 노동자 안전을 위한 각종 대책도 이번 사고로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달 ‘김용균법 후속대책 당정협의’에 따라 당·정은 ‘발전산업 안전강화 및 고용안정 TF’를 만들어 김용균 후속 대책을 지원한다고 밝혔으며, 산업통상자원부는 '발전부문 근로자 처우 및 작업환경 안전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적정인원 충원과 안전 설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태안화력발전소 원하청 노사는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TF를 구성해 논의를 진행 중이다.

최규철 발전산업노조 한전산업개발발전지부 태안지회장은 “이번에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2인 1조가 적용된 탓이 크지만 많은 영역에서 편법적인 2인 1조가 운영되고 있다. 인원충원은 되지 않은 채 2인 1조를 운영하다보니 과중한 업무로 이어지고, 이 경우 사고가 나도 사리 판단이 어려울 수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문제를 노동부에 제기했다”라고 말했다. 최 지회장은 또 “사고가 나면 경미하더라도 응급센터를 이용하고, 바로 후송하는 원칙이 세워졌지만, 현장에선 아직도 사고를 덮으려는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TF에서도 이런 점을 고려해 안전 대책을 세우겠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