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5일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대기업 비정규직 실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업의 규모와 비정규직 사용 형태에는 상관관계가 존재했다.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기간제 비정규직은 줄어들지만, 간접고용 비율이 크게 증가한다는 것이다. 특히 고용규모 5000인 이상 거대 기업에서 이 현상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업무를 나눠 외주화하고, 도급을 사용한다는 의미다.
연구진이 조사한 3,475개 기업 중 989개(28.5%) 기업이 비정규직을 정규직보다 더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보다 10배 이상 사용하는 기업도 402개에 달했다. 특히 사업시설관리지원업과 건설업의 비정규직 비중이 가장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건설업의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비율은 7배 이상으로 나타났는데, 건설 현장 대다수가 일용 혹은 도급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제조업의 경우 규모가 클수록 사내하청 비율이 많이 늘어나는 현상을 보였다. 직접고용 1만인 이상 거대기업은 정규직의 절반이 넘는 규모를 직영과 더불어 사내하청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포스코·현대제철…‘죽음의 외주화’
연구진들은 해당 산업을 주도하는 기업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첫째로 철강 산업에서 포스코·현대제철의 비정규직 실태를 공개했다. 포스코·현대제철은 국내 철강 산업에서 ‘유형 설정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만큼 고용구조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다. 포스코·현대제철의 정규직 대비 사내하청 비율은 100%에 이른다. 지난해 포스코의 사내하청 노동자 수는 15,496명(90.7%), 현대제철은 12,847명(112%)에 달한다. 철강 산업의 사내하청 확대는 중대재해를 불렀다. 2016년 기준 철강 산업을 포함하는 금속재료품제조업의 사망만인율은 2.94‱, 재해율은 1.02‱다. 제조업 사망만인율 0.96‱, 재해율 0.62‱에 비해 압도적인 수치다. 30~49인 사업장의 사망만인율은 4.45‱지만, 50인 이상 사업장의 사망만인율은 2.56‱~3.34‱로 나타났다. 철강 산업에서 30~49인 중소사업장은 대부분 대기업의 사내하청일 것이라고 연구진들은 설명했다. 실제로 현대제철 당진공장의 경우 2008년 2013년까지 총 22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했고, 27명이 사망했다. 2013년 중대재해 6건, 사망자 10명이 나왔다. 2013년 5월과 11월 특별근로감독을 했는데도 12월 다시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죽음의 외주화’라고 부르는 이유다.
편의점 대기업…“자영업을 노자관계 내부로 포섭”
2016년 말 기준 한국의 편의점 수는 32,611개. 편의점 종사자 수는 12만 7895명에 달한다. 한국의 편의점 91%(29,831개 점포)가 GS25, CU, 세븐일레븐이 독점하고 있다. 연구진은 편의점 산업에서 △중앙집중적 표준화 사업모델 △일일송금제도 △극단적 장시간 노동 △사업 포기의 자유 상실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편의점 대기업은 가맹점주에게 각 편의점 운영을 맡기지만, 가맹점주는 독립된 자영업자로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따라서 가맹점주는 가맹본부의 종속된 노사관계의 틀로 설명돼야 한다고 봤다. 또한 가맹점주가 채용한 아르바이트 노동자, 즉 기간제 노동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주요 문제로 △최저임금 위반 및 임금체불 문제 △안전사고에 의한 손해배상 책임의 문제가 있었다. 연구진들은 편의점 비정규직의 임금이 가맹점주가 가맹본부로부터 보장되는 이익 범위 내에서 한정적으로 지급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맹본부를 가맹점 노동자들과의 관계에서 연대책임을 지우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방송 산업…“대작 중심 제작 현장, 모든 리스크는 비정규직이”
연구진은 방송 산업에서 외주제작 의무 편성 비율을 확대한 정부의 정책을 비정규직 양산의 주 원인으로 꼽았다. 최근 방송 산업은 외주 제작 시스템을 가속하는 과정에서 유연한 프로젝트 단위별 고용을 늘려나갔다. 이 과정에서 ‘바우처 노동’으로 불리는 일자리가 증가했고, ‘바우처 노동’ 인력은 점차 파견 노동으로 대체된 것이다. 특히 CJ ENM 자회사인 ‘스튜디오 드래곤’의 ‘미스터션샤인’,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프로젝트 사례를 보듯, 대작 프로젝트 중심의 수익 창출을 도모하는 데 따르는 리스크는 모두 비정규직이 떠안았다. 연구진은 방송사 및 제작사가 노동자와 체결한 계약서의 내용을 확인한 결과 △노동자성을 명시적으로 부인하는 조항 △계약기간의 지속 및 종료에 대한 일방적 결정 권한 △포괄적 업무범위와 업무 수행에 대한 지시권한 등의 문제를 확인했다. 연구진은 지난해 7월 방송 분야가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됐는데도 사용자다 대책을 전혀 준비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비판하며, △다단계 하도급 금지 △노동자에 직접 임금 청구 권리 부여 △균형적 근로계약 작성 의무 등을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KT, ‘자회사 정규직화 정책’ 미래 보여줘”
KT 고용구조는 ‘자회사’ 고용의 문제를 명확히 드러냈다. KT는 2000년 민영화 이후 자회사를 통해 노동자를 고용하고, 그 아래 다시 하도급 구조를 만들었다. KT는 KT서비스남부·북부, KTis, KTcs, KTm&s 등 자회사를 두고 있다. 이들 자회사는 독립적인 사업을 영위하고 있지 않다. 사업보고서상에도 KT의 상품을 판매한다고 적을 만큼 KT 사업에 귀속돼 있다. KT는 자회사를 통해 사용자성 책임을 지워갔다. 자회사 노동자의 처우는 여느 비정규직과 다를 바 없었다. KT의 평균급여는 약 7600만 원, 근속연수는 약 20년에 달하는 반면, KTis의 평균급여는 2400만 원, 근속연수는 3.6년, KTcs의 평균급여는 1900만 원, 근속연수는 3.3년에 불과했다. KT 자회사가 사실상 하청업체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KT가 다면적·중층적 고용관계를 통해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산별교섭의 법제화 △노조법 2조 개정(사용자 범위 확대) △공정거래법상 기업집단 규정의 확대 등을 주장했다.
민주노총의 과제
연구진은 연구 결과를 종합하며 대기업들이 ‘업무’를 나눠 별도 법인으로 외부화하는 현상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대기업들이 고용구조를 외부화하면서 원청 본사의 직접적인 통제력을 놓지 않았고, 사용자의 책임은 비가시화했다는 것이다. 이 구조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박탈됐고, 스스로 권리를 찾는 데 ‘하청-자회사-원청’ 같은 단계적인 어려움이 뒤따랐다고 설명했다. 이는 정부가 대기업들에 고용을 외부화할 수 있는 제도를 선물하면서 고용 문제에서의 책임은 제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연구진은 민주노총이 △상시·지속 업무의 정규직화 원칙 아래 정규직 전환 투쟁 △업종 고용구조 개선을 위한 산별교섭과 투쟁 △대기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 등의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