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안법 하위법령, 수많은 노동자의 죽음 배반하는 것”

15개 시민사회단체,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 전면 수정 촉구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의 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정부가 입법예고한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이 반쪽짜리로 전락했다는 비판과 함께다.

구의역 참사 3주기를 하루 앞둔 27일 노동단체와 시민사회단체는 전태일기념관에 모여 ’위험의 외주화’ 금지 약속을 파기한 문재인 정권을 규탄하고, 일터에서의 죽음을 멈출 수 있도록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하위법령을 전면 개정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등 15개 청년, 시민사회 단체들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산재사망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했지만, 현실에선 떨어짐, 끼임 같은 예방 가능한 원시적인 사망이 줄을 잇는다”라며 “산업안전보건법의 구체적 행동 지침인 시행령과 시행규칙에는 위험의 외주화를 도려낼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태안화력의 김용균 동료들이 살아갈 현장이 그 법에서 빠졌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위험의 외주화가 그를 죽게 했다고 인정한 정부는, 그 현장을 외면하며 오로지 적극적이고 의도적으로 위험의 외주화를 방치했다”며 “하루 평균 6명의 노동자가 죽는 나라인데, 이들은 법의 보호 없이 죽어도 되는 사람들인가”라고 물었다.

이들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의 개정과 함께 기업의 경영책임자와 기업 자체가 안전의무 위반으로 인한 재해사망사고에 대한 형사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도 주장했다.

생명안전 시민넷 공동대표인 김훈 작가는 이날 기자회견의 여는 발언을 맡았다.

김 공동대표는 “해마다 노동자 2400여 명이 노동현장에서 산업재해고 죽고 있다. 부상자들은 훨씬 더 많다”라며 “이 비극은 자본이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조적이고 제도적이며 관행적인 사태”라고 꼬집었다.

이어 “지난 4월 고용노동부가 입법예고한 산업안전보건법의 하위법령은 모법의 정신을 크게 훼손하고, 모법의 적용 범위를 축소하고 집행력을 무력화시켜서 법 전체를 공허하고 무내용한 작문으로 전락시켜놓았다”라며 “정부의 이 같은 태도는 세월호의 교훈과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의 의미를 배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구의역 김 군, 태안화력 김용균은 다시 죽음의 위험에

15개 단체가 분석한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에 따르면 2016년 구의역에서 사망한 김 군이나 태안화력발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씨, 조선소 비정규직 노동자 같은 하청 노동자들은 여전히 산재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들의 작업 모두 위험의 외주화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도급승인 대상에서 여전히 제외된 것이다.

산안법 시행령은 또 도급승인을 받는 범위를 4개 화학물질의 설비, 개조, 분해, 해체 등의 작업으로 한정해 ‘도급승인 대상’을 축소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5개 단체는 “반도체 공장의 세정작업, 삼성반도체 불산 누출 사고 등 라인작업, 일상적 수리 정비업무의 위험성이 수차례 확인된 바 있으나 이 업무들은 적용제외 됐다”라며 “도급승인 대상은 산재예방 정책심의위에서 확대하게 되어 있으나, 이는 현행법에도 있는 조항으로 십수 년 동안 1회의 심의도 없었다. 정기적 검토와 승인확대에 대한 요구가 반영이 안 됐다”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사업장 원청 책임 강화 제외 △건설기계 27종 기종 중 4개만 적용돼 이동식 크레인 등 사고다발 기계 제외 △특수고용노동자 보호 조치 미반영 등이 산안법 시행령의 문제점으로 꼽혔다.

이날 기자회견이 끝나고 같은 장소에서 구의역 3주기 추모 토론회 ‘청년노동자, 반복되는 죽음을 막기 위한 방법’이 열렸다. 토론회에서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법률의 의의 및 한계와 하위법령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오는 28일엔 구의역 3주기 및 고 김태규 노동자 49재 추모 문화제가 열릴 예정이다. 문화제는 오후 6시 30분 광화문 세종로 소공원 앞에서 진행된다. 고 김태규 노동자는 지난 4월 10일 경기도 수원의 한 건설현장에서 추락해 사망한 청년 노동자다. 가족과 시민사회가 나서 사망사고에 대한 진상규명을 밝혀달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경찰은 ‘실족사’를 주장하며 노동자의 잘못으로 돌리고, 고용노동부는 작업중지 명령 이후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아 비판이 거센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