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허공으로 질주하는 건 미사일만이 아니다

[워커스 한반도]전략적 변화의 한반도 정세,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출처: 위키피디아]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후 한반도 정세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북한은 초기 미국의 비핵화 요구에 맞서 제시했던 경제제재 해제를 접고, 그 대신 체제안전보장 문제를 본격적으로 꺼내 들었다. 올해 하반기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지 못하면 한반도는 2년 전 엄중한 상황으로 돌아가는 국면을 맞이할 수도 있다.

북미 양측의 판단 착오와 전략 수정

북한이 동해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5월 4일, 이들은 한미 군사훈련을 맹비난하면서 남북 간 합의를 철저히 이행하라고 강조했다. 북한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지금 조선반도에는 북남관계 개선의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는가 아니면 파국으로 치닫던 과거로 되돌아가는가 하는 엄중한 정세가 조성되어 있다”고 비판하면서 판문점 선언과 평양공동 선언을 철저히 이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이들은 5월 9일 단거리 미사일을 추가 발사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지도 아래 장거리 타격수단을 동원한 화력타격 훈련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의 “나라의 진정한 평화와 안전은 자기의 자주권을 수호할 수 있는 강력한 물리적 힘에 의해서만 담보된다”는 말을 전했다. 특히 주한미군의 사드 훈련을 비난하면서 자위적 군사력 강화를 강조하기도 했다.

물론 당시 이러한 보도는 미국이 이례적으로 5월 1일과 9일 연달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미니트맨3(LGM-30)을 시험 발사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은 언제나 그랬듯이 자체 핵 억제력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란 및 북한과의 상황이 악화되면서 무력 과시에 나선 것이다.

1년 5개월 만의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재개는 한미가 지금과 같은 형태의 연합훈련을 지속할 경우 미사일 유예를 철회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날 발사는 한미 군사훈련에 대한 대응 차원의 조치라는 점에서 ‘쌍중단 유지’ 상태가 위태로운 단계까지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5월 16일에는 미국이 북한 화물선 ‘와이즈 어니스트(Wise Honest)’호를 대북 제재 위반 혐의로 억류한 것을 두고 북한 외무성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짓뭉개버릴 것”이라고 반발하는 일도 있었다.

이렇게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게 된 배경은 미국과 북한 양측의 전략적 판단 착오에서 기인한다. 당초 북한의 공식적인 비핵화 조건은 체제 안전보장이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제재로 인민경제 향상과 경제발전 전략에 차질을 빚으면서 미국의 경제제재 완화로 전략을 변경했다. 하지만 미국은 오히려 선비핵화를 강하게 압박하면서 하노이 회담을 결렬에 이르게 했다. 미국의 선비핵화 전략에 대해 북한이 오판한 것이다.

그런데 미국 역시 전략적인 판단 착오를 했다. 북한을 강력하게 제재하면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굴복할 것이라는 오판이다. 하지만 미국의 이러한 오판은 오히려 비핵화 협상을 난항에 빠뜨릴 뿐이다. 북한은 미국의 경제제재에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북미 양측은 정치적 관계와 신뢰 형성과정에서 오판에 의해 사태를 악화시키고 상호 불신을 초래하고 말았다. 트럼프의 즉자적인 접근방식은 김정은에게 신뢰의 근거를 제시했지만, 그의 정치적 판단과 계산은 결코 즉자적인 방식이 아니라 전략적이었다. 전형적인 제국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매개로 신뢰를 형성하다 보니 나이브한 태도와 자세를 지니면서 판단 착오를 하게 됐다. 그동안 김정은은 문재인의 한반도 평화체제 건설 노력에 대해 높게 평가하면서 다소의 희망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정은은 북미 협상과 남북관계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나타난 문재인 정부의 비자주적인 태도에 대해 크게 실망했다. 이에 북한은 문재인 정부에게 종종 전향적인 태도를 요구했지만, 문재인 정부가 이에 부응하지 못하고 북미관계 역시 뜻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자, 결국 트럼프의 덫에 걸린 것이라고 뒤늦게 판단한 것 같다.

5월 들어서도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이어졌다. 북한의 대남비판은 문재인 정부가 대북정책에서 좀 더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자율적으로 행동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북한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북미 대화 시한을 연말로 정했다. 이는 최소 연말까지는 북한이 제재를 견딜 수 있다는 뜻이다. 북한경제가 제재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근간이 흔들리거나 붕괴할 수준의 위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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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의 보고서가 북한의 식량사정을 최근 10년 이래 최저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현재 북한은 경제 개혁과 시장화를 통해 최소한의 내부 발전 동력을 확보한 상태다. 시장 물가나 민간 환율을 봤을 때 과거와 같이 크게 요동을 치는 일이 없다. 지난 4월 김정은이 원산·갈마 지구와 삼지연 공사 현장에 현지 지도를 다녀온 것은 아직 경제제재를 버틸 만하다는 방증이다.

또한 북한 정부의 예산이 감소했다는 징후도 없다. 공장가동률은 공급 능력이 향상됐다는 점에서 볼 때 소비재 차원의 공급은 국영기업, 기업소에서 정상적으로 운영된다고 판단된다. 최근에 전력이 단전됐다는 소식도 없다. 신의주 등 북중 접경지역 도시는 밤에도 안정적으로 전력이 공급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인민경제 향상을 위해 경제 성장과 개발에 속도를 내고 싶지만, 경제제재가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상당히 진척된 개방 개혁이 북한 경제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고 있는데, 외부 자본의 유입이 안정적으로 확대돼야 경제 활로와 주민들의 불평등 완화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90년대의 ‘고난의 행군’ 시기와 비교해서는 안 되며 그런 어려움도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북한은 경제제재 완화를 대미협상의 우선과제로 제시한 전략적 판단의 실패를 인정하고 체제 안전보장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김정은은 4월 12일 시정연설에서 “제재 해제 문제 따위에는 이제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우리의 힘으로 부흥의 앞길을 열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는 자력갱생으로 제재를 돌파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정치적 의사 결정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는 메시지다.

가능한 해법은

그럼에도 인도주의적 식량지원을 통해 북한을 움직이려는 남한, 미국 그리고 국제사회의 노력은 가당치 않다. 이는 오히려 북한을 자극할 뿐이다. 북한이 전략을 수정하며 미국을 향해서도 전략 수정을 요구했는데, 한국과 미국은 북한에 겨우 식량 지원으로 불만을 가라앉히려고 했다. 이에 북한은 분명한 태도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미사일 발사로 이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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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미 양국은 식량지원을 통해 북미 대화를 재개하려는 시도가 ‘헛발질’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진퇴양난에 빠졌다. 문재인 정부는 일단 대북 제재 틀 내에서 개성공단 재개를 위한 환경 조성과 사전 준비에 집중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지난 2년 동안 집행하지 못한 800만 달러 상당의 대북 지원금도 집행하기로 했다. 꾸준히 남북교류와 인도적 지원을 늘리면 신뢰가 형성될 것이라는 낭만적 인식이다.

당분간 한미 양국에는 묘수가 보이지 않는다. 현재의 핵 문제와 남북관계가 북한을 압박한다고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포기가 체제안전보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 그 확신이 제공되지 않는 한 북한은 대화를 포기하거나 미사일 발사로 이어지는 차선 또는 차악을 선택할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이 북미 대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인식은 미국 제국주의의 본질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다. 그나마 남북미 정상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동시적·단계적 실현에 적극 나서는 것이 차선이 아닐까? [워커스 5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