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전환기-‘17체제’

[워커스] 연재

[출처: 홍진훤]

잔치는 끝났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의원들의 팔뚝질은 비장했다. 그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을 저지하기 위해 광장까지 장악하고 독재타도 헌법수호를 외치며 마치 30여 년 전 6월을 시늉 내는 듯했다. 그렇다고 이들을 87년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치던 노동자 민중에 비할 일은 아니다. 군부독재에 죽어간 자식을 대신해, 혹은 수배당한 자식을 볼 수 있을까 싶어 거리에 나온 어머니, 아버지에 비유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몸부림은 자신이 독점해 온 70년의 분단체제와 삶의 기반을 부여잡기 위한 처절한 투쟁임을 인정해야 한다.

다시 6월이다. ‘87체제는 투쟁을 통해 민주화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역사의 진전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분단체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에 미완이었다. 그리고 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한 신자유주의 자본축적체제가 전일화되면서 한국사회는 불안정노동체제로 재편됐다. 생존권에 기반한 삶이 무너지면서 민주주의도 무너져 내렸다. 이어 여성이 노동시장으로 편입되며 가부장적 국가와 가족중심체제가 흔들렸고 여성과 청년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분단체제의 경직성은 유연한 신자유주의체제와는 맞지 않았고 위기의 자본에게는 철조망 위의 북쪽마저 돋보이기 시작했다. 이로써 다시 노동자 민중이 거리에 밀려 나왔지만 정권은 자유주의자의 몫이 됐다. 그리고 16년 광장투쟁 이후 무성하던 개헌논의는 없던 일이 됐다. 이러한 조건에서 자유주의정권에게도 선거구제 개편은 내키지 않는 발걸음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이미 소선거구제와 분단체제의 정치적 파트너였으며, 박정희 시절 ‘유정회’를 만들어 비례대표 의석 1/3을 여당에 우선 배분하던 엄혹한 시절에도 여당과 함께 했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 그간의 분단체제의 균열이 제도적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국 사회의 역사적 경로를 ‘87체제’로, 그리고 신자유주의체제로 전면 재편되기 시작한 1997년을 기점을 ‘97체제’라 나누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2017년 광장투쟁이후 계급적 재편이 전면화 됐다는 점에서 이후를 한국사회의 전환기로서 ‘17체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념의 굴레를 넘어

문재인 정권 이후 남북정상회담뿐 아니라 북미정상회담까지 열렸지만 비핵화는 아직 가시거리에 들어오고 있지 않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 이후 분단해소를 위한 노력은 있었지만 분단의 시작이 그러하듯 남한은 당사자의 지위에 있지 못했다. 같은 연유로 북한은 미국을 바라보고 핵과 이를 실어 나를 ICBM과 같은 무기 등을 생산하면서 힘겨루기를 해왔다. 이후 미국의 역대 대통령과는 달리 진영논리에서 자유로운 트럼프가 당선돼 북미간의 협상에 대한 기대가 피어올랐다. 현재까지 두 번의 북미정상회담은 여전히 비핵화의 물꼬를 트지 못하고 있지만 그 가능성은 열려 있다.

분단을 기반으로 유지되던 남북의 70년 정치체제에도 끝이 보인다. 머릿속에서부터 사회 전반을 옥죄던 국가보안법은 살아있지만 제 역할은 끝난 듯하다. 앞서 거론했듯 체제를 유지하던 온갖 악법들은 여전하지만 보수정치를 재생산하는 선거법에서부터 균열이 일고 있다. 적폐라 불리던 체제, 기구는 여전하지만 온전히 유지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또 다른 광장투쟁 몫이기도 하다.

그러나 부분적인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채택돼 자유한국당, 민주당의 독점체제가 무너진다고 해도 광장에서 제기된 이슈와 요구를 담아낼 그릇이 없다. 색깔이 분명한 녹색당을 제외하면 사민주의를 내세운 정의당의 정치적 포지셔닝은 아직까지 유동적이다. 일부는 광장투쟁 당시 제기된 이슈를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스페인 포데모스의 경험을 실험해 보기도 했지만 분단 이데올로기의 이념지형을 넘어서는 정치적 기치를 정립하고자 하는 흐름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 낙수효과론인가

문재인 정권은 국가가 소득에 재정을 투여해 경기를 부양한다는 소득주도성장론을 내놨다. 이른바 ‘97체제’를 거치면서 자본소득이 늘어나는 만큼 노동소득이 줄어드는 소득 불균형이 확대돼 왔다. 이로써 자본의 사내유보금 1500조에 개인 부채 1500조라는 극단적인 소득 불균형의 시대에 접어들었고, 그만큼 소득주도성장론은 박수를 받았다. 정부는 공무원 등 고용기회 확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과 함께 복지예산을 대폭 확충한 예산안을 내놨다. 이러한 정책 기조는 70년대 말~80년대 초 오랜 케인즈주의 정책의 여파로 스테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함께 오는 디플레이션에도 영국이나 프랑스가 은행과 기업의 국유화를 포함해 소득 중심의 재정확장정책을 폈던 사례 이후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싶다. 세계공황의 성격이 다르고 그 정책의 특성이 달라 애초 비교 대상이 안될 수 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이래 지금까지 정책은 항상 자본 중심이었고 ‘97체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던 한국에서는 거의 최초의 시도였다. 2008년 세계공황기에 4대강 사업과 같은 확장적 재정정책을 실시하면서도 언제나 들어오던 ‘낙수효과론’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었다. 당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연방 최저임금을 시간당 7.25달러에서 10.1달러로 인상하기 위해 연두교서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공화당 의원들에게 “1년에 1만5000달러가 안 되는 돈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면, 한번 그렇게 살아보라”고 일갈한 바 있다. 그리고 일본의 아베 정권이 기업에 최저임금 인상을 독려하며 강제할 때조차도 우리에게는 먼일이었다. 떨어지는 물방울을 기대하기에 대지는 너무 말라 있었다. 결국 그 열기는 광장의 촛불이 됐고, 소득주도성장은 그만큼 큰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애초 자본에 대한 강제, 통제 없는 소득주도성장론이란 허망한 그림이었다. 건강한 자본주의를 소망하던 재벌개혁조차 물 건너가고 노동비용을 확대하는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자본의 반발은 이미 예상돼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시작되면서 재정확장정책은 방향을 바꾸고 있다. 정부는 2019년 경제정책방향에서 24조 원 규모의 예비타당성을 면제하면서까지 GTX 착공, 남부내륙고속철도사업, 현대 본사 신축을 포함한 대규모 토건사업을 내놓았다. 이뿐 아니라 공공부문과 함께 소득주도성장의 지렛대로 활용 가능한 대우조선, 우리은행과 같은 국유기업의 민영화까지 추진하고 있다. 노동자에겐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효과를 삭감하는 탄력근로제와, 노동3권을 무력화하는 법안을 경사노위를 통해 강제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시 떨어지는 물방울에 목을 매야 할 것인가. 사실 민주당뿐만 아니라 정의당까지 소득주도성장론에 목소리 높여왔기에 다른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녹색당과 노동당이 기본소득을 내놓고 있지만 유럽에서는 우파의 대안으로 실행되기도 하는 소득의 재분배 정책일 뿐이어서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신자유주의체제는 수명이 다했고, 삶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불안정노동체제를 넘어설 발본적 수준의 대안이 제시돼야 할 시기라는 진단은 이미 세계적인 공감대를 얻고 있다.

내 삶을 바꾸는 정치

지난 16년 말에 시작된 광장투쟁에 6개월간 1700만 명이 거리에 나왔다. 대체로 불안정노동자들과, 차별과 배제에 표적이 된 학생 및 청소년, 그리고 여성들이었다. 광장의 촛불은 전면화된 차별과 배제에 대한 투쟁이었다. 이러한 차별과 배제는 정리해고와 파견제를 시작으로 신자유주의 자본축적전략이 전면화 된 97년 불안정노동체제에 기인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과 여, 정상과 비정상 등으로 나뉜 차별과 배제가 그것이다. 동원의 질서는 기존 노동조합 등의 질서와는 달랐고 어떤 경우는 사소하게 보이는 삶의 다양한 이슈를 중심으로 깃발이 나부꼈다. 특히 다양성과 차이를 내걸고 여성혐오와 나이주의 등을 제기하면서 내면의 정치혁명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다양한 깃발 아래 다양한 퍼포먼스가 이루어졌고 그것이 광장의 힘이 됐다. 그리하여 87체제의 수혜자이자 자유주의정권인 민주당이 신자유주의 축적전략을 채택하면서 무너진 민주주의를 대중의 투쟁으로 아래로부터 복구했다.(1)그럼에도 그 정치적 귀결은 자유주의정권에 돌아갔다.

2007년 말 이후 전 세계를 뒤흔든 금융위기에 이은 세계공황은 백 년만의 공황이라는 비유가 무색하지 않게 침체가 깊었다. 최근 미국만이 회복의 기미를 보였지만 곧 새로운 침체에 접어들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공황 이후 양적완화로 수요를 떠받치는, 대규모 재정적자를 근간으로 유지되는 이른바 뉴노멀시대에 접어들었지만 대안적 자본운동의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한편, 이러한 경기침체는 자본의 위기이자 동시에 노동자 민중의 위기로 다가왔다. 미국, EU 등 중심부의 위기는 양적완화 등으로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됐다. 지구적 수준의 노동자 민중의 삶의 위기는 아랍의 봄, 월스트리트점거투쟁(OWS), 남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노동자민중투쟁과 같이 혁명적으로 표출되고 정치적으로 다른 양상으로 귀결됐다. 유럽과 미국의 투쟁과 선거에서 조직된 노동의 계급대표성이 약화되고 이에 기반을 둔 기존의 정당체제가 무너지거나 흔들린 경우들을 보아왔다. 동시에 투쟁을 통한 계급형성과 정치적 조직화의 사례는 다양하게 표출됐고 여전히 경쟁하고 있다. 투쟁의 조직화를 통한 스페인 포데모스, 일상적 가두의 조직화를 정치적으로 일군 이탈리아 오성운동, 기존의 정당질서를 부정하고 ‘앙 마르슈’라는 독자적 조직화를 통해 집권한 프랑스 마크롱, 금융위기 이후 가두로 쫓겨난 불안정노동자의 조직화로 기존 질서에 편입을 시도한 미국의 샌더스, 러스트벨트를 기반으로 기존 질서를 올라타면서 집권에 성공한 트럼프 등의 경우가 그렇다.(2)

특히 미국에서 사회주의자와 민주사회주의자들의 주의회 및 연방의회에서의 약진은 우익의 발호와 대비된다. 비록 한국보다 더 강고한 양당체제를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지만 한국 못지않은 이념지형에서 나타난 현상이고 트럼프의 극단적 민족주의적 성격에 비견하면 더욱 도드라진다.(3)

반면 한국에서는 대선을 거치면서 광장의 열기가 가라앉고 제도로 인입되면서 광장의 이슈와 투쟁이 정치적 자유주의자의 잣대로 재단되고 있다. 적폐세력은 여전히 온존하고 팔뚝질로 체제유지를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촛불의 열기, 광장투쟁이 내 삶을 바꾸는 정치의 주체로 서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한국사회는 기로에 서 있다. 분단체제의 이념적 굴레를 깨고 적자생존의 벼랑에 내몰린 삶을 바꾸는, 노동의 가치가 온전히 실현되는 사회로 나아가는 정치주체로서의 선언이야말로 16년 광장투쟁을 매듭짓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 매듭짓기 또한 광장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워커스 55호]

(1),(2) 2007년 사회변혁노동자당 정치캠프 개막강연 발제문 ‘광장투쟁 이후, 혁명 후의 혁명을 내다보며’를 인용, 원용함.
(3) <미국 사회주의자들의 도약을 어떻게 볼 것인가>, 김선철, 《워커스》 46호, 20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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