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과 성착취로 연결되는 한국과 일본

[워커스X한사성]


쿄토에 다녀왔다. PAPS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PAPS는 ‘People Against Pornography and Sexual violence’의 줄임말로, ‘포르노 피해’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일본의 시민단체다. 한사성은 작년부터 사이버성폭력 피해를 지원하는 해외 단체들과 MOU를 맺으며 국제 연대체를 구축하고 있는데, PAPS도 구성원 중 하나다. 다만 PAPS는 피해 상담의 대부분이 상업 포르노로 쏠려 있다. 인입되는 상담의 7~80%가 ‘포르노 피해’, 나머지 30% 정도는 성매매 관련 피해다.

PAPS는 포르노의 제작, 유통, 판매, 소비, 사회적 존재 등을 통해 발생하는 성적 피해를 ‘포르노 피해’라고 규정한다. 상업 포르노 제작 및 유통이 활발한 일본에서, 불법촬영과 비동의 유포 문제는 포르노 피해 안에 배정된다. 포르노 제작 과정 중 부당한 계약과 폭력적이고 위험한 행위를 강요당하는 것, 그리고 불법촬영이 함께 ‘제작 피해’로 묶이고, 이 제작 피해물을 유통, 유포하는 것을 ‘유통 피해’라 한다. 유통된 제작 피해물을 소지하고 시청하는 것, 협박에 사용하는 것 등으로 인한 피해는 ‘존재 피해’다.

이와 같은 피해의 분류에 따르면 포르노그라피와 불법촬영물은 이 세계에서 같은 의미로 읽힌다. 즉 ‘몰래 찍힌 여성과 동의하에 찍힌 여성은 같은 취급을 받고, 같은 방식으로 거래되고, 서로를 대체할 수 있는, 같은 기능을 가진 상품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인 것 같아 흥미롭다.

그 외 가정 및 직장 등에서 포르노 시청을 강제당하거나 포르노에 나오는 행위를 강요받는 등의 ‘소비 피해’, 너무 만연한 포르노 때문에 여성 전반의 존엄성 훼손을 경험하는 ‘사회적 피해’와 같이 직간접적 영향을 받게 되는 피해의 종류도 있다.

실제로 나는 이번 방문으로 PAPS가 말하는 ‘사회적 피해’가 어떤 것일지 짐작할 수 있게 됐다. 간식거리를 사러 편의점에 들를 때마다 거기 비치된 잡지들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음을 목격했다. 중고등 학생들이 볼 법한 잡지에도 노골적으로 유아를 성적대상화하는 사진이 실려 있는 등의 문제가 있었으나, 성인 잡지의 심각함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포르노 섹션(으로 보이는) 진열대의 맨 앞에는 약이나 술에 취한 듯 눈을 감고 길바닥 위에 쓰러져 있는 여성 사진을 표지로 쓴 잡지가, 그리고 그 뒤에는 살을 많이 드러낸 여성들을 표지로 한 잡지들이 숨겨져 있었는데, 옷을 입고 있기는 한 ‘소프트’한 이미지로 ‘하드’한 이미지를 가리려는 나름의 원칙이 엿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소위 ‘골뱅이’를 암시하는 사진이 ‘모두에게 보여도 괜찮은 것’이라 통용된다고 해석해도 되는 것일까?

확실히 이런 환경은 여성과 아동·청소년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섹스를 엄숙하게 다뤄야 한다는 입장을 지지하는 편은 전혀 아니지만, 정말 ‘성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이런 잡지가 공공에 전시되는 사회라면 오직 여성들만 이렇게 일방적인 성적 대상으로 재현돼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사카의 성매매 집결지

쿄토에 머무르는 동안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은 마지막 날 밤, PAPS와 함께 오사카의 유명한 성매매 집결지를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출발하기 전에 그곳의 지도와 가격표를 받았다. 포주들이 직접 홍보를 위해 만들어 배포하는 것이라고 한다. 빽빽이 그려진 네모들 옆에는 20분에 16000엔이라는 글씨가 작게 적혀 있었다. 놀랍게도 일본 또한 한국처럼 성기를 삽입하는 성매매가 불법인 나라다. 그래서 각 업소들은 모두 레스토랑으로 신고 돼 있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음식점 종업원과 손님이 우연히 사랑에 빠져서 발생하는’ ‘낭만적인’ 것으로 포장된다. 그러나 활동가들은 ‘16000엔이라는 가격을 보면 누구나 여기서 무엇이 거래되는지 안다’고 했다.

우리는 매끈하게 닦인 대로를 벗어나 오래된 시장처럼 생긴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길 양옆엔 작은 술집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상반신 정도를 가리는 문발 사이로 노래를 부르는 여성들과 남성들이 보였다. ‘일본의 집결지는 이런가 보다’ 하고 담담해질 즈음, 앞서 걷던 PAPS 활동가가 뒤를 돌아보며 멈춰 섰다. “여기서 잠시 주의사항 전달할게요. 이 앞에서부터 시작입니다.” 그의 어깨너머로 달 같은 전등이 주르륵 걸려 있는 고풍스러운 목조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서부터는 정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환한 조명을 받으며 다소곳이 앉아 있는 젊은 여성 한 명, 그의 수발을 드는 듯 보이는 나이든 여성 한명이 고시원처럼 칸칸이 나뉜 방마다 자리해 있었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나이든 여성이 젊은 여성의 얼굴을 부채로 가려주었다. 동행인이 PAPS 남성 활동가에게 얼굴을 가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하자 그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남성이 지나갈 땐 얼굴을 가리는 게 아니라 호객행위를 하기 때문이었다. 얼굴을 가리지 않아도 되는 타인으로 만났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는 그들에 관해 뭐라고 쓰든 너무 실례가 되고 만다.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고르자면, 그곳이 내겐 “와, 꿈만 같아!” “한 번 더 할까?”라는 한국말을 들을 수 있는 공간으로 다가왔다는 지점이다. 20대 한국남자들이 한껏 들뜬 상태로 돌아다니다가 우리를 마주치고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눈을 피하며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포주들이 세운 ‘레스토랑 조합’ 건물에 ‘비상시 여기로 대피하세요’라는 한글 공지가 붙어 있는 것을 보며 한국인 구매자들의 후기를 검색했다. ‘어지간한 AV 여배우 못잖은 누님들이 많다.’ ‘AV 느낌 내고 싶어서 갔다.’ ‘꿈을 실현했다.’는 게시물이 쏟아졌다. 실제로 포르노 업계에서 실패한 여성이 이 집결지로 오고, 여기서 돈을 못 버는 여성은 포르노 업계로 간다고 하니 ‘포르노를 실현했다’는 한국남성들의 환호성은 꽤 사실에 근접한 감각일 것이다.

포르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성폭력 범죄자의 하드디스크 드라이브에서 엄청난 양의 포르노그라피가 발견되었다는 식의 뉴스에 분개하며 ‘포르노를 본다고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으냐, 성인 남성들은 현실과 가상을 구분할 줄 안다’고 주장하곤 한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한 사람이라도 ‘정말 그렇게 되고 싶어’ 한다는 것, 그리고 포르노를 실천하고자 하는 남성이 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니, 애초에 포르노가 ‘가상’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현실의 여성에게 직접 가해지는 행위를 촬영한 영상을 보고, 그 행위를 다른 여성에게 다시 해보고 싶어져서 ‘AV속의 그녀’의 물리적 실체를 찾아 한국에서 일본까지 온 사람이 이렇게 많이 존재하는데?

머릿속이 복잡해진 상태로 한국에 돌아왔다. 그때 내 눈을 피했던 남자를 죽이지 못했고, 죽여선 안 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워커스 56호]